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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1

    -끽.

     

    자동차의 바퀴에서 나는 짧은 정지음.

     

    도시에서 그리 멀리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저택, 그 앞의 조그만 분수대 앞에는 검은색 고급 차량이 서 있다.

    이 작은 화단과 푸른색 지붕이 멋진 저택 역시, 그 고급 차량과 위화감 없이 잘 어울려 보인다.

    풍경화로 그려낸 듯 한 아름다운 광경.

     

    그때, 운전석의 문이 열렸다.

     

    -찰칵.

     

    깔끔한 검은색 양복으로 차려입은 운전기사가 내려, 뒷문으로 다가가 철컥 문을 열며 말한다.

     

    “도착했습니다, 아가씨.”

    “응.”

     

    차에서 내리는 것은 분홍빛 머리칼이 인상적인 엘프족 아이, 헬레나 루스핀드였다.

    헬레나는 그대로 또각또각, 너무나 자연스럽게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헬레나의 도착을 환영하듯, 루스핀드 가문의 저택의 문이 활짝 열린다.

     

    “다녀오셨습니까, 아가씨.”

    “응, 에이미.”

     

    헬레나가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언제나 하녀, 에이미였다.

    에이미는 능숙하게 어린 주인의 짐들을 받아내며 물었다.

     

    “어떤가요? 오늘 시험은 잘 보신 것 같으세요?”

    “그럭저럭…….”

     

    헬레나의 표정이 그리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에이미는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별로 만족스럽지 않으신 모양이네요.”

    “…….”

     

    에이미의 말에 헬레나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렇게 에이미를 돌아보는 헬레나.

    헬레나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에이미는 헬레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작게 물었다.

     

    “시험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마법과목에서……시간이 부족했어.”

    “저런.”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헬레나가 마법 과목의 공부에 얼마나 열을 올렸는지를 생각해 보면 더더욱.

     

    “하필 마법에서……!”

     

    헬레나는 분함을 이기기 힘든 지, 주먹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사실은 고작 한 문제를 시간이 부족해서 찍어야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헬레나에게 너무나 커다란 실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은 루크가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만점을 받던 과목이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자신도 만점을 받아야만 했다.

    단 한 문제라도 틀린다면, 자신은 루크를 이길 수 없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답지에 언제나 서술형을 가장 먼저 작성하는 버릇 덕분에 고득점 문제에서 아예 답을 적어내지도 못하는 불상사는 피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답에 확신이 없다는 것은 여전하고, 만점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도 그대로다.

     

    아마도, 틀렸겠지.

     

    “짜증나…….”

     

    헬레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에이미는, 헬레나를 끌어안고는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앞치마가 조금 축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작 어린아이 시험문제 하나를 틀린 것이 그렇게 분할까?

    최근 자신의 라이벌이 나타났다며 열의를 내곤 했는데, 아마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헬레나는 원체 승부욕이 강한 데다가, 자신에게 엄격한 아이였으니까.

     

    그렇게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비록 돈으로 이어진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임에도 어떤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모성애인지, 아니면 단순한 연민인지 에이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에이미가 할 행동은 정해져 있다.

     

    에이미는 헬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한다.

     

    “일단 목욕부터 하시죠, 아가씨. 기분도 풀 겸. 미리 준비해두겠습니다.”

    “……응.”

     

    헬레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목욕을 마친 뒤, 잠옷으로 갈아입은 헬레나는 자신의 방 문을 열었다.

     

    방에는 분홍색 커튼이 장식된 커다란 캐노피 침대가 가장 먼저 눈에 보인다.

    그 위에서는 옛날에 아빠가 사 주었던 연회색의 토끼인형, 앨리스씨가 자신을 맞이한다.

     

    헬레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곧장 침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쿠션에 의해 잠시 헬레나의 몸이 위아래로 요동쳤다가, 침대의 푹신한 감촉이 감싼다.

     

    “…….”

     

    헬레나는 그대로 베개에 얼굴을 콕 박은 채로 가만히 엎드려 누워 있다가, 숨을 쉬기 힘들어지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앨리스씨가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앨리스 씨, 나 좀 위로해줘.”

     

    헬레나는 그렇게 토끼인형을 껴안았다.

    자신만한 크기의 인형은 품에 안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항상 안을 때 마다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부족했다.

     

     

    헬레나는 멍하니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헬레나의 손바닥에 남아있던 감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털의 감촉은 굉장히 보들보들하고, 매끄러우며, 폭신하면서 따듯했다.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털의 감각은 마치 딱 알맞게 데워진 목욕물을 가르는 것 같은 감각이었고, 그 속에 들어찬 뼈대는 탄탄하면서도 말캉거려 마치 단단한 젤리를 눌러보는 것 같았다.

     

     

     

    루크의 꼬리를 쓰다듬었던 그 감촉이 손에서 떠나질 않는다.

     

     

    사실은, 헬레나가 시험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사람의 기억은 참으로 이상해서, 공부를 하며 들었던 노래는 똑똑히 기억을 하지만 막상 기억해야 할 것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옥상에서 공부를 하며 쓰다듬었던 루크의 꼬리 감촉이 문제를 볼 때마다 떠올랐기 때문에 도저히 시험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탓에 페이스조절에 실패한 것이 시간 부족의 원인이었다.

     

    헬레나는 눈물이 났다.

     

    고작 그 꼬리의 감촉 때문에 시험에서 실수를 했다는 것이 억울했다.

    그것이 자신의 성적을 떨구기 위한 루크의 방해공작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면 이빨이 갈린다.

     

    하지만, 눈물이 나는 와중에도 루크의 그 부드러운 백금색 꼬리의 형상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무래도 자신이 미친 것 같았다.

     

    “진짜 이상해…….”

     

    루크는 여자아이인데, 그러니까 루크를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닌데.

     

    “앨리스씨, 내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걸까?”

     

    앨리스 씨는 당연하게도 대답이 없었다.

     

    ————-

     

    그 시각, 루크는 시루드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시루드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정말 끝내줬어! 어떻게 그 순간에 토템을 탈 생각을 한 거야?”

    “당연히 그 때는 그 수밖에 없었으니까.”

     

    루크는 상황에 맞는 최적의 수를 찾았을 뿐이다.

    당시에 토템이 적 근처에 깔려 있었고, 자신의 스킬 범위가 맞았으며, 적의 공격은 이미 자신을 향해 유도되고 있었으니, 루크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지고 만다.

     

    “너는 그걸 다 예상하고 있었어?”

    “대부분은 예측했지. 그때는 적 궁사의 궁극기가 있다고 의식하고 있었고, 만약 사용한다고 하면 그 상황에서 반드시 나올 것이라 생각해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의식하고 자리를 미리 잡고 토템을 설치해두고 있었기에 그 기술을 피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반격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게지.”

    “엄청난데! 슈퍼매직리그를 그렇게 하는 사람은 처음봤어!”

     

    어쩐지, 루크가 설치한 토템의 위치가 좀 생뚱맞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모든 움직임이 전부 다 계산된 거였다니!

    그동안 게임에서 루크가 보여주었던 기행들은 사실 모두 팀의 승리를 위한 초석이 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룩 카모시가 너무 약해졌더군. 옛날 같은 피해량이 나오질 않던데.”

    “아, 그거. 최근에 매직미사일 스킬이 하향당해서 그래. 맞췄을 때의 마력방어력 감소도 줄어들었고.”

    “어쩐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너무나 약해서 답답한 마법사가, 더 약해지다니.

    룩 카모시만 사용하는 루크의 입장에선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었다.

     

    시루드는 그런 루크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역시, 루크랑 놀면 재미있어.’

     

    그래, 루크가 여자를 좋아하든, 남자를 좋아하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냥, 루크랑 노는 것 자체가 즐거우니까.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여자친구가 될 수 없으면 아무렴 어때?

     

    그렇게 생각하니 시루드는 괜히 혼자서 루크를 피해다녔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훗.”

     

    루크 역시, 시루드의 밝아진 표정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서먹서먹하던 시루드와의 관계가 예전과 같이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확실히 아이들과 친해지는 데에는 예나 지금이나 같이 노는 것이 제일이었다.

    함께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다 보면, 사람은 금방 마음을 열게 된다.

    게다가, 같은 게임을 하면 동일한 대화주제도 생긴다.

     

    여러모로 친해지는 것에는 게임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루크는 그렇게 시루드와 방금 있었던 게임에 대해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라 물었다.

     

    “시루드, 그런데 말이다.”

    “응?”

    “’핵쟁이’가 정확히 무슨 뜻인 것이냐?”

    “응? 핵쟁이? 누가 너한테 핵쟁이래?”

     

    어떻게?

    루크가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설정에서 채팅 전체차단을 미리 걸어두고 시작했기 때문에 루크가 그런 말을 들을 수는 없었을텐데.

     

    “아까 마지막 게임이 끝나고, 친구추가가 오길래 받았다.”

    “……아.”

     

    인 게임 채팅차단으로는 친구추가로 귓속말을 거는 것 까지는 어쩔 수 없다.

    루크가 멋모르고 친구를 받아버린 모양이다.

     

    루크는 말을 이었다.

     

    “내게 ‘애미애비 없는 고아년이, 핵쓰니까 좋냐? 더러운 핵쟁이 새끼’라고 하던데. 혹시 이 게임을 하는 다른 사용자가 남의 가정사를 찾아볼 수 있는 건가? 핵쟁이가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는데, ‘애미애비 없는 고아’라는 말에는 조금 놀랐구나.”

    “어…….”

     

    귓속말의 내용을 들은 시루드는 꽤 강도높은 욕설에 식은땀을 흘렸다.

    애미애비 없는 고아년이라니…….

    하필 루크는 실제로 부모님이 안 계셨다 보니까 그 부분에서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건 그냥 욕설같은 거야. 걔네들이 네 인적사항을 보고 한 소리는 아닐 걸.”

    “음, 그런가. 그건 다행이로군.”

     

    루크는 상대가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약관’을 위반한 것인줄 알고 게임사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는 듯하다.

    ……솔직히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핵쟁이라는 말은 정확히 어떤 뜻을 지닌 말인거지?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인가?”

     

    루크의 질문에 시루드는 루크에게 핵에 대한 것을 어떻게 납득시켜야 하나 곰곰히 생각하다가, 자신 역시 핵에 대해선 잘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답했다.

     

    “핵쟁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너가 게임을 너무 잘한다는 뜻이야. 칭찬 같은 거니까 신경쓰지 마.”

    “음, 그런건가? 헌데 욕을 하고 칭찬을 하다니, 참 이상한 사람이 다 있구나.”

     

    루크는 의문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앞으로 그런 친구추가가 오면 받지 마.”

    “앞으로는 그래야겠어. ‘친구’라는 시스템을 이리 악용할 수 있다니.”

     

    루크의 표정이 미묘해지자, 시루드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긴, 처음 만든 계정으로 10연승은 좀 너무했다고 본다.

    좀 살살 하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 ㅋㅋ 개인정보 유출당한 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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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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