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71

       6번 경기장인 극장을 조사하고 있던 엘라는 종소리를 듣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사회자의 외침이 뒤따라 들렸다.

         

       “첫 번째 소멸 지점은 3번 경기장인 중앙 정원입니다!”

         

       그곳은 첫 번째 보물상자가 발견되었던 대나무 숲이 있는 그곳이었다. 역시 이전 시험들처럼 이미 공략된 지점부터 지워나가는 모양이었다.

         

       엘라는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사격장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 게임은 다른 팀의 선수들이 계속 움직여줘야 그 과정에서 타일의 색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녀가 밟을 수 있는 빨간색 타일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닌 것에 비해 다른 선수들은 그렇게 많이 움직이지 않아서, 빨간색 타일의 수는 상당히 줄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동속도는 처음보다 더딜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경기장을 마구 가로질러 가면 시간을 단축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거기 있는 타일은 나중을 위해 아껴둬야 했다.

         

       그러나 엘라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사격장은 공략만 알고 있으면 깨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마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자신감은 금방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녀가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사회자의 외침, 관중들의 환성, 희희낙락한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사격장에 있는 선수들이 장애물들을 모두 공략했습니다! 무대 바닥이 개방되면서 무언가가 떠오릅니다! 보물상자일까요?”

         

       경사로에 있던 진상 관객 패널들이 모두 백기를 들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다른 경기장을 돌아다니고 있는 동안, 이곳의 도전자들이 퍼즐의 종착점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들은 무대 중앙을 둘러싸고 서서 거기서 나오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보물상자? 아니, 이렇게 허무하게?

       엘라는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클라라가 자신에게 아무런 소식을 전달해주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그때, 마침 기다리던 상대가 말을 걸어왔다.

       

       ‘엘라! 방금 샛별 서커스 쪽의 전령에게서 소식을 들었어! 사격장에서……’

       ‘내가 지금 거기 있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게……마야는 서든 데스가 시작되기 5분 전에 트랙으로 나와 있었거든! 위험 변수는 줄이는 게 맞다 싶어서 내가 나가라고 했는데……. 설마 그사이에 해결해버릴 줄은…….’

       ‘그래도 그전부터 조금씩 공략을 풀어나가는 낌새가 있었을 거 아냐? 미리 말했으면 내가 와서 대비했을 텐데…….’

         

       이곳의 퍼즐은 한순간의 번뜩임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이 과녁 저 과녁 건드려보면서 어떤 장치가 반응하는지 하나하나 조사해가며 해답을 찾아가야 했다. 단계를 밟지 않고 갑자기 퍼즐을 해결해버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냐! 정말로 어떤 전조도 없었어! 마야가 그러는데 자신이 나오기 전까지 공략에는 별로 진전이 없었대! 저 선수들은 10분 사이에 갑자기 답을 발견한 사람들처럼 휘몰아치듯이 장애물을 돌파해버린 거야!’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막 언성을 높이려던 엘라는 객석에서 누군가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전신을 온통 황금색 일색으로 도배한 정장을 입은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우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엘라는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역시 그녀가 자신이 한 행동을 알아차렸음을 간파했다.

         

       “그런 굴욕을 당하고 내가 그냥 물러날 줄 알았나?”

         

       지몬의 입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엘라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들이 그를 너무 얕봤다. 그가 복수한다고 해봤자 이번 시험이 끝난 뒤에 시작할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레이나를 원더스타인에게 뺏긴 직후, 바로 보복할 준비를 했다. 그가 택한 방법은 바로 다른 팀에게 공략에 대한 정보를 파는 것이었다.

         

       이미 트로피를 차지한 서커스단은 경기에 더는 개입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객석에 있는 다른 서커스단의 직원에게 다가가 해당 경기장의 공략을 전수해주는 것은 규칙에 어긋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겐 황금 카니발의 직원들이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분석한 내용이 있었다. 로드 판타스틱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읽고 현장을 잠시 둘러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공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엘라는 클라라에게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전달해주었다.

         

       ‘저, 정말 그 재수 없는 콧수염이?’

       ‘그래. 제길, 설마 저 인간이 저렇게 행동할 줄은 몰랐어.’

         

       이 업계에서는 마술사건 곡예사건 광대건 아무리 입이 가벼운 사람이라도 자신의 재주에 관한 내용은 함부로 타인에게 발설하지 않았다. 마술의 속임수, 곡예의 기술, 재담의 소재. 그것들은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재주꾼으로서의 정체성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로드 판타스틱은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늘 냉소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눈앞에서 보여줘도 알아채지 못하는 얼간이들에게는 가르쳐줄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런데 그가 비록 목적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남들에게 가르침을 베풀다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행동이었다.

         

       “아, 안타깝군요. 나온 것은 보물상자가 아닙니다! 대신 ‘부활권’ 아이템 1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무대 위의 곡예사들은 상자에서 나온 보상을 보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매달리던 곳에서 어떻게든 결착을 본 것에는 만족하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몬은 그들을 흘겨보며 속으로 크게 비웃었다.

         

       ‘흥. 저런 썩은 근성으로는 평생 이곳에서 별을 못 따지.’

         

       그는 콧수염을 한 번 씰룩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엘라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지향성 마이크처럼 주변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엘라에게만 전달되었다. 원더스타인이 쓰는 마법이 아닌, 복화술의 기술을 응용한 것이었다.

         

       “아깝게 됐군. 여기서 끝내버릴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아직 경기는 55분이 더 남았으니까. 후후, 보자. 서두르면 두세 군데 공략을 더 전수해줄 수 있겠군.”

         

       그는 빠른 걸음으로 객석을 나갔다.

         

       “두 번째 소멸 지점은 8번 경기장인 운동장입니다!”

         

       황금 카니발이 보물상자를 발견했던 곳이었다. 서든 데스는 공략이 끝난 순으로 진행되었다. 즉, 다음 소멸 지점은 이곳일 것이다.

         

       엘라는 정신을 차리고 다음 경기장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발을 뗀 순간, 뭔가 하얀 물체가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팡.

       벽에 맞고 튕겨 나오는 그것은 공이었다. 사격장에서 제공되는 투척용 도구를 누군가가 그녀를 향해 던진 것이다.

         

       엘라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방금 사격장을 공략한 네다섯 명의 곡예사가 그녀를 보며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그녀의 외침에 곡예사 한 명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뭐긴 뭐야, 널 탈락시키려고 하는 거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의미? 있지. 우리에게 이곳 공략법을 가르쳐준 양반이 약속했거든. 널 탈락시키는 팀에게 이곳 경기장 전체의 공략법을 작성한 기술집을 주겠다고 말이야.”

         

       그의 말에 엘라는 속에서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그 콧수염이! 평소에는 일류 마술사는 아무리 사소한 기술이나 지식도 팔지 않는다고 우쭐거려 놓고!

         

       “아직 이번 시험 안 끝났잖아!”

       “우린 그냥 다음 시험이나 노리려고. 이번은 솔직히 물 건너간 것 같아.”

       “쳇, 썩은 근성들! 기술집을 받는다고 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어차피 다음 시험은 또 공략법이 바뀔 텐데?”

       “기본적인 틀은 유지되지. 최소한 발상이라도 건질 수 있을 거 아냐? 솔직히 이곳 사격장도 우리가 2시간 가까이 매달려도 알지 못했던 걸 그는 한 번에 간파했잖아?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말은 됐다! 공격해!”

         

       십수 개의 공들이 동시에 엘라를 향해 날아왔다. 그걸 보니 쏴를 맡은 곡예사들답게 동시에 여러 개를 투척하는 기술도 익힌 듯했다.

         

       엘라는 전방위적으로 날아드는 공들을 보고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중 일부는 벽에 튕겨 그녀의 경로를 가로막기도 했고, 일부는 그녀가 착지하려는 지점을 미리 노려 점프를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다.

         

       ‘레이나, 이런 기분이었니?’

         

       엘라는 아까 자신이 그녀에게 했던 공격을 떠올리며 공중에서 몸을 비틀거나 물구나무를 서거나 공중제비를 돌아가며 공들을 피해냈다.

         

       곡예사들은 그녀가 보인 재주에 잠시 감탄하는 빛을 내비쳤다가 금방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대단하군. 대단해.”

       “이렇게나 던졌는데도 다른 타일로 안 넘어가네?”

       “타일을 소모하면, 자신이 있을 곳이 좁아지는 걸 아는 거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제자리에서 모두 피할 수 있을 것 같냐!”

         

       다시 공들이 그녀를 향해 빗발쳤다. 그녀는 최대한 기존의 타일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지만, 집요하게 날아오는 공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타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빨간색 타일이 하나씩 지워지면서 그녀는 점점 구석으로 내몰렸다.

         

       “세 번째 소멸 지점은 7번 경기장인 사격장입니다!”

         

       사회자의 외침에 따라 바닥에 있는 타일에 숫자가 떠올랐다. 300부터 시작된 초읽기는 시시각각 줄어들었다. 그러나 엘라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들의 공격을 피하는 것만 해도 힘에 부쳤다.

       그렇게 숫자는 어느새 두 자릿수까지 내려왔다. 저 숫자가 0이 되면 경기장의 타일 전체가 검은색으로 물들 것이다.

         

       ‘여기서 또 탈락하는 건가?’

         

       엘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물론 이걸로 끝은 아니었다. 동전 30개를 사용하면 바로 부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수영장처럼 따로 탈락자 구역이 없었다. 탈락이 선언된 순간, 밟고 있는 색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부활해도 밟고 있는 지점에서만 시작할 수 있었다. 즉, 지금 탈락했다 부활해봤자 다시 저 인간들에게 노려질 뿐이었다.

         

       부활한다면 이곳이 완전히 검은색으로 물든 뒤에 해야 했다. 그러면 경기장 입구까지 그냥 달려 나가서 거기서 부활할 수 있었다.

         

       ‘엘라, 그러니까 지금 바로 탈락해. 어차피 조금 있으면 부활할 거 계속 뛰어다녀서 체력을 소진할 필요 없잖아.’

         

       그것이 클라라가 전달한 전략이었다. 엘라도 그녀가 말한 방법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주변에 남은 빨간색 타일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이미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

         

       이렇게 또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분통이 터졌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발을 멈추고 다른 색 타일로 건너가려는 순간, 갑자기 바람이 확 몰아쳤다.

         

       “우와아아!”

       “어엇?”

       “이것들은 뭐야!”

         

       느닷없이 나타난 일군의 무리가 엘라에게 공을 던지던 자들을 덮쳤다. 그들은 자신들이 탈락하는 것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는 듯 아무 타일에나 몸을 날려 그들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엘라는 그들이 모두 회색 체육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 색은 분명 은막 서커스였다.

       그중 한 명이 공 세례에 두들겨 맞으면서 그녀를 향해 외쳤다.

         

       “단장 명령으로 널 돕는다!”

       “어서 탈출해!”

         

       엘라의 입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단장이 뭔가 했구나!’

         

       그녀는 솔직히 지금까지 은막 쪽 단원들을 볼 때, 전부 비실비실한 것이 공부만 한 샌님들 같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해 보일 수 없었다.

         

       “고마워요, 마법사님들!”

         

       엘라는 재빨리 출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은막 쪽 사람들이 타일을 밟고 들어온 덕분에 몇몇 군데에 빨간색 타일이 나타났고, 그녀는 무리 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녀가 밖으로 몸을 날리고 얼마 안 있어, 초읽기도 종료되었다.

         

       “3, 2, 1, 0! 사격장이 모두 검은색으로 물들었습니다! 10명의 선수가 탈락했습니다! 어떤 합의가 오고 간 걸까요? 엘라 선수를 방해하던 3개 서커스단 연합이 은막 서커스단의 방해로 저지되었습니다!”

         

       빨간색 말이 7번 경기장이라고 적힌 지도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 은막 서커스의 중년 마법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옆에 있는 단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단장님이 의도한 대로 됐군요.”

         

       중년 마법사는 15분 전에 그가 내렸던 지시를 떠올렸다.

         

       ‘그들도 경기장 안에 있으면, 부상 위험이 있으니까 이제 나오라고 해야겠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하지만……그전에 할 일이 있네. 모두에게 전하게. 괴물 서커스를 도우라고 말이야.’

         

       루미는 대회 1주일 전, 원더스타인에게 공략집을 받았을 때, 이 제안을 할까 망설였다. 어차피 자신들의 탈락이 확정되는 거면, 그들을 도와줄 수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먼저 그에게 잘해주겠다고 덤비는 건 왠지 내키지 않아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그 선택이 훌륭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나 자신들을 도와준 그녀를 향해 원더스타인이 멀리서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것이다.

         

       “흐, 흥. 어차피 대가는 따로 받아낼 거라고.”

         

       일부러 미간을 찌푸리려 애썼지만, 그녀의 입술에서는 미소가 떠나가질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Nir99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