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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1

        

       토마스는 말했다.

         

       “사랑은 세상을 이루는 근본이니 첫째이며, 약속은 그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니 둘째인 까닭입니다.”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라.”

       “세상을 능히 지킬 거대한 성벽을 쌓아 올린다 한들 그것을 유지할 수 없다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조물주께서 악에서 구원하기 위해 종복을 내려보낸다 한들 그것이 잠깐밖에 머무르지 못한다면 그 구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천년왕국이라고 할지라도 천년이 아닌 일 년을 못 버틴다면 그것은 영세 무궁한 낙원이 아니라 한낱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것이요, 생육하고 번성한다 한들 그것이 한 시대를 넘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역사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랑은 씨앗이요 반석이다.

       마침내 자라나 온 세상을 뒤덮을 지붕이다.

         

       다만 그 사이에 있는 것은 기둥이니.

       그 기둥이 바로 약속이다.

         

       “어릴 적의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들어주시겠습니까? 아, 윌리엄 도련님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토마스는 윌리엄이 앉아있는 의자를 자신 쪽으로 조금 끌고 왔다.

       자신의 이야기가 더 잘 들릴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윌리엄이 읍-읍- 하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비틀기는 했지만,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의자를 끌고 오는 토마스나, 그것을 보는 진성에게나.

       그 누구에게도 말이다.

         

       “저는 어릴 적부터 좋지 않은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집불통 토마스라는 별명이었지요.”

       “읍-!”

       “아, 지금 윌리엄 도련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군요. 지금 저와도 잘 어울리는 별명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셨겠지요.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고집불통이라는 말조차도 순화된 표현일 정도로…. 그래요. 저는 무언가 하나를 정하면 그것을 쭉 밀어붙이며 살아왔었지요.”

         

       토마스는 방긋 웃었다.

         

       “어떤 녀석이 나쁘다고 생각하면 저는 끝까지 그 녀석을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음식이 나와 잘 맞는다 싶으면 삼시세끼 전부 그 음식이 식탁에 올라와야만 했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과목만 열심히 했고, 한 번 흥미를 잃어버린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을 봐야만 했지요.”

       “고집이 아니군요.”

       “네.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아집에 가까운 것이었지요…. 하하하. 어쩌면 말입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그때 약간 자폐증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아무리 어리다고 한들 그런 행동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잖아요?”

       “흐음.”

       “하지만 그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지요. 저는 고집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유연해지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직 저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오만한 아이였습니다. 참으로 오만방자한 꼬맹이였지요…. 그래서 그랬던 걸까요.”

         

       토마스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마치 먼 과거의 풍경을 생생히 지켜보는 것처럼 말이다.

         

       “친구와는 항상 좋지 않게 끝이 났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과는 파탄이 일어났어요. 애인을 사귀려고 하면 싸움이 일어나곤 했어요.”

       “흐음.”

       “그때의 저는 몰랐습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믿고 남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고 다니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집은 밖으로 튀어나온 칼날과 같지요.”

       “게다가 저는 상처받은 사람이 저를 피하는 것의 이유를 저에게서 찾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만 했습니다. 집안을 욕하기도 했고, 조상을 욕하기도 했어요. 부모님을 욕하기도 했고, 신을 욕하기도 했고, 초월종을 욕하기도 했어요. 친구를 욕하기도 했고, 한때 사랑했었던 여자를 욕하기도 했죠. 오직 저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모든 존재를 욕하면서 그들이 잘못되었다 소리치고 다녔을 뿐이었습니다.”

       “저런.”

       “화도 많이 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 때려 부수며 다니고 싶었어요. 네, 윌리엄 도련님처럼 말입니다.”

         

       토마스는 방긋 웃으며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윌리엄은 웃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신부님을 만나게 되어 그릇된 길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번듯하게 자라나게 된 것은 다 그분 덕분이지요.”

         

       윌리엄은 개소리하지 말라는 듯 토마스를 노려보았다.

         

       ‘번듯하게 자란 새끼가 사람 납치해서 손발에 구멍을 뚫어? 엿이나 처먹어라, 예수쟁이 새끼야!’

         

       그는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를 하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출혈 때문인지 안색이 창백하기는 했지만, 주술의 효과 때문인지 몸에 힘이 넘쳐나고 정신은 또렷했다.

         

       “그분께서는 제가 상처받았다고 했습니다. 상처를 너무 받아 사랑하는 것을 겁냈고, 사랑을 받는 것도 겁을 낸다고 하셨지요. 그렇기에 심장을 쇳덩이로 둘러싸고 가시를 바싹 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그 속에서 상처를 감싸며 웅크리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말씀을 하셨군요.”

       “그리곤 말씀하셨지요. 힘들고 괴로운 것을 자신이 모조리 들어주겠다고. 감정을 참으려 하지 말고 그대로 자신에게 쏟아내라고. 오직 자신에게만 쏟아내기로 약속하자고.”

       “약속이라….”

       “네. 약속입니다. 저는 그때 신부님과 약속했습니다. 분노를 주위에 번지게 하지 않고, 힘든 일과 화나는 일을 모두 신부님에게만 털어놓기로 말이에요.”

         

       토마스는 추억을 떠올리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꽤 삐뚤어져 있던 그때의 저는 신부님에게 온갖 폭언을 쏟아내었습니다. 네.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의 마음속에 깊숙이 박힐 날카로운 말들을 말이에요. 하지만 그분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저를 위로해주셨지요.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된 말 대신, 잘 견뎌내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흐음.”

       “하하.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그 말 한마디로 저에게 깃들었던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에 붕대가 감아지는 것 같았고, 포근하게 저를 감싸 안는 기분이 들었지요.”

         

       토마스는 환하게 웃었다.

         

       “네. 사랑이었습니다. 신의 가르침이, 사랑이 제 저주받은 삶을 치유하고 저를 구원해주었습니다. 신부님은 아들에게 주는 것과 같은 사랑으로 구렁텅이로 향하는 저를 끄집어낸 것입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셨는지요?”

       “하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 어겼었지요.”

         

       그는 회상하는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며 질문에 답해주었다.

         

       “신부님과 약속을 한 지 반년이 지난 무렵이었습니다. 친구가 반에서 장난을 치다가 제 물건을 부쉈고, 저는 그것에 불같이 화를 냈었지요. 신부님과의 약속도 잊어버린 채, 분노를 터뜨린 것입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때 똑똑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반년 동안 주위에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 오만하게 행동하지 않고, 아집에서 비롯된 고집을 부리지 않은 것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그리고, 반년 동안 쌓아 올린 신뢰가 무너져버렸다는 사실 역시 깨닫게 되었지요.”

         

       토마스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은 모두 기절할 듯 놀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분노를 터뜨렸다는 사실에 놀랐고, 착해졌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갑자기 옛날처럼 돌아가자 배신감을 느끼는 듯도 보였지요. 그리고 무서움을 잊고 저에게 다가오려는 아이들은 다시 한 발짝 물러나게 되었고, 저는 반년 동안 잘 지내고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서먹하게 대하는 것을 똑똑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본디 항상 불이 일렁이는 화산보다, 얌전하다가 갑자기 불을 토해내는 화산이 더 무서운 법이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약속을 어김으로써 말이에요.”

       “하지만 돌이킬 수 있었겠지요.”

       “하하하. 맞습니다. 신부님께서도 그것과 비슷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을 어긴 것은 혼나야 하는 일이나, 내가 굳이 혼낼 필요는 없다. 지금 너는 약속을 어겼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깨달았으며, 오만과 아집을 남에게 내세우면 어떻게 되는지를 깨달았다. 이제 너는 쉽게 깨달을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도록 하거라.”

       “사랑이라….”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사랑을 베풀면 그들이 다시 너에게로 다가올 것이요, 언제든 너의 힘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일을 교훈 삼아 약속을 어기지 않고 그들을 대하여 신뢰를 얻으라 하였지요. 그렇게 얻어진 신뢰는 기둥이 되고, 무형의 자산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무형의 신뢰는 이윽고 기적이 된다고 하셨지요.”

         

       흐.

         

       윌리엄은 기적이라는 단어를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저 미치광이 신부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한 것이다.

         

       토마스는 그 비웃음을 듣고 윌리엄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훈계하듯 조곤조곤한 말투로 말했다.

         

       “윌리엄 도련님. 기적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사람을 치유하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엿이나 먹어.’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면 불행이 줄어듭니다.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면 사람이 구원받지요. 무관심이 사랑으로 바뀌면 가족을 이루고, 사랑이 더 큰 사랑으로 충만해지면 행복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퍼져나가는 사랑은 마침내 세상을 바꾸게 됩니다. 이게 어떻게 기적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응. 엿 먹어.’

       “도련님. 도련님도 바뀔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바뀌었듯, 도련님 역시도 사랑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토마스는 웃었다.

         

       “윌리엄 도련님. 착하고 순수했던 그때의 당신은 사랑이 있었지요. 하지만 사랑을 잃고 과거의 저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오만과 아집이 가득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없기에 사랑을 전달할 수 없게 되었고, 사랑을 잃었기에 다른 사람의 사랑을 부수고 다니는 괴물처럼 되었습니다.”

       ‘뭐라는 거야, 개자식아!’

       “저는 도저히 이것을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요! 절벽 위로 나아가는 어린 양을 강제로 끌고 오지 않는 것은 곧 그 어린 양을 죽이는 것과 같은 일. 그러니 오직 아무것도 모르고 위험에 발을 디디는 어린 양을 구하기를 바라는 목자의 마음으로 저는 도련님을 돌려놓으려 합니다.”

         

       오직 선한 마음으로.

       오직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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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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