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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1

     노스트럼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에게 재앙이 다가왔던 적이 제법 많았다.

     오염지대의 마수가 들끓었다거나.

     노스트럼의 황금 들판에 메뚜기가 떼를 지어 그 해에 기근이 들었다거나.

     홍수나 가뭄이 생겨 많은 이들이 죽었다거나.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기 힘든 역병이 돌아 많은 이들이 병에 걸렸다거나.

     500년 동안 ‘이러다 왕국이 멸망하는 거 아니냐’라는 말이 나올만큼 큼지막한 대재앙이 9번 정도 발생했다.

     규모는 비슷하지만-혹은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재해도 있었다.

     왕국 내에서 왕성이 포위될 뻔한 대규모 반란도 있었고, 수백 년 전 제국의 군대가 해상을 통해 후방을 기습할 뻔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들은 노스트럼의 재앙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9번 전부 특정 상황, ‘노스트럼 왕좌에 성년인 왕족이 없을 경우’에만 발생했기 때문.

     그렇다보니 누군가는 이를 노스트럼 왕실의 핏줄에 대한 황금룡의 가호이며, 이를 망가뜨리려는 자에 대한 황금룡의 저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능왕의 횡포를 참아왔다.

     이미 조상들이 검증을 했던 만큼, 무능왕을 죽이고 난 뒤에 어떤 저주가 대륙을 휩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능왕에게 피해를 받은 이들이라면, 속으로는 다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무능왕이 죽기만을.

     나리아든 누구든, 왕위를 다른 이가 이어받기를.

     그러던 찰나, 왕도에 울려퍼진 무능왕의 왕명에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크림슨 지브롤터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죽이려고 했다!!

     지브롤터 후작의 국왕 암살 미수 사건.

     국왕은 왕도에서 자취를 아예 감춰버렸고, 지브롤터 후작은 급히 아들’들’을 데리고 지브롤터로 돌아갔다.

     암살 미수는 진실인가?

     진짜로 죽이려고 든 것인가, 아니면 왕가에서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오는 말처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제멋대로 자기가 죽을 거라고 망상장애에 빠져 지껄인 명령인가?

     적어도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공동왕이 지브롤터를 ‘반역자’라고 선포를 하지 않았으니, 분명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만의 명령이 맞으리라.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그에 집중하지 않았다.

     왕실의 핏줄이 살해 위협을 받아 성년인 왕족이 사라질 뻔한 것에 대한 황금룡의 저주.

     그리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몰랐던 노스트럼 왕가에 전해져내려오는, 아마도 오직 국왕에게만 전해져내려오는 신기(神技).

     황금의 기사.

     물처럼 흐르는 황금이 피가 되어, 죽은 이의 육신에 스며들어 그 몸을 강제로 일으키거나, 혹은 비어있는 육신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부정형의 무언가가 되어 왕실을 지키는 수호자가 된다.

     누군가는 황금의 노예라고 칭하고.

     누군가는 황금이고 뭐고 흑마법이라고 말하지만.

     암살 미수가 진실이든 뭐든, 중요한 건 현상.

     당대 국왕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왕명에 따라, 죽은 자들이 반역자 지브롤터를 향해 황금으로 된 언데드를 소환하여 지브롤터로 보내고 있다는 것.

     노스트럼의 역대 영웅들의 혼령을 불러,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이들을 죽여 반역자를 토벌하려고 한다는 것.

     누가 옳고 그른가?

     -그건 모르겠고, 단 하나 옳은 게 있지.

     그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설령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정치적인 의미부여를 하는 이들조차도, 제 입맛과 ‘주머니 사정’에 맞게 떠들기 시작했다.

     -황금은, 언제나 옳다.

     황금.

     지브롤터를 죽이려고 하는 황금의 기사들을 쓰러뜨리면, 그 몸으로부터 황금이 나온다.

     어디에서 황금이 나왔는가?

     모른다.

     제국의 마도공학 연구소에 따르면 노스트럼에서 흑마법에 이용되는 황금은 ‘진짜 황금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기준이 그저 ‘마나의 전도성’ 정도의 차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황금이었던 것.

     황금은 아니었는데, 마나의 기적으로 황금이 되어버린 것.

     진짜 황금은 금속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거짓된 황금은 마치 기름이나 피와도 같다는 것.

     -고대에 죽은 드래곤들의 유해가 황금으로 변한 거라면, 그 또한 황금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전문가 중에서도 제국의 마도공학 연구소 수준에서만 구분할 수 있다면, 과연 황금룡의 유산으로서의 황금은 황금일까 아닐까.

     -아니어야 해! 아니어야 한다고!!

     어떤 이들에게는, 반드시 황금이 아니어야만 했다.

     -내가 지금까지 모아둔 황금이 장식용 은제 도자기보다 못하게 되었다니까!!

     황금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금속이라고 알려져있지만, 동시에 희소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것.

     이미 제국의 재계에서는 노스트럼의 바르셀로나 총독부에서 개발한 무수히 많은 금광에 우려를 표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건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금광이 지하로 얼마나 뻗어있든, 생산량을 조절하고 특정 권력자들이 독과점을 하면서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는 단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금이 쏟아지고 있다.

     금이 피처럼 흩뿌려지고 있다.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이들을 죽이라는 왕명에 따라, 반역자 지브롤터를 죽이기 위해 무한히 솟아나는 황금의 기사가 죽을 때마다 바닥에는 황금이 핏물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그 거짓된 황금은 그냥 바닥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핏물같은 황금을 주워담아 주괴의 모양으로 굳히기도 하고.

     누군가는 금화의 모양을 본따 백만 골드 주화와 똑같이 만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런 황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지브롤터의 영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땅에서 솟아나는 황금의 영령을 사냥하기 위해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입수한 황금은 기어이 협곡을 넘어, 서서히 제국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지브롤터 협곡 사이에서 제국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황금이라도 섞여서 흘러가는 것처럼, 일반인들은 구분할 수 없는 거짓된 황금이 비바람처럼 제국인들의 치맛자락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제국력 99년 9월 2일.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된 협곡 아웃렛을 뚫고 들어온 제국신문의 헤드라인은, 평소에 나오던 것보다 훨씬 자극적인 문구로 점철되어있었다.

     [대륙 경제는 좆됐다.]

     * * *

     [제국력 99년 9월 2일, 지브롤터 후작령-바르셀로나 경계].

     “헤드라인부터 자극적이기 짝이 없군.”

     지브롤터 후작성과 바르셀로나 총독부 사이를 돌아다니며 순찰 중이던 나는 나의 비룡 니드호그가 발목에 묶어다가 가져온 제국신문 당일호의 내용을 보자마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신문사에서 이런 저속한 표현을 써도 되는 겁니까?”

     

     로버트 경은 제국신문의 헤드라인을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켰다.

     “아무래도 신문이라는 게 자극적인 문구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극적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만큼 대륙 경제가 지금 위기에 빠졌다는 거지. 저거 때문에.”

     나는 바르셀로나 경계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보게.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이가 이렇게 영지 근처로 나오자마자 스멀스멀 나타나는 거.”

     “꼭 도련님이 여기 안 계셨더라도 나타났을 것 같은데….”

     “하지만 바로 앞에 이렇게 있는 덕분에 바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여기에서는 솟아나지 않지만.”

     나는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지브롤터 영지는 500년 전이나 2년 전이나 달라지지 않았지.”

     “도련님께서 바르셀 후작령을 바르셀로나 총독부로 만들기 전까지는요.”

     “그리고 황금의 저주는 지브롤터 백작령에는 통하지 않아. 오직 지브롤터 땅이 아닌 곳에서만 저 황금의 노예들이 땅에서 솟아나지.”

     “예. 오직 순수한 지브롤터 땅만이 안전하죠. 적어도 황금의 노예들이 솟아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황금의 노예가 왕도 톨레도에서 솟아난 이후.

     그들은 말 그대로 ‘아무렇게나’ 땅에서 솟아났으나, 인명 피해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렘버리에서도 깨어나고, 세이레네 해협에서도 물속에서 튀어나오고, 왕도 톨레도의 근처에 있는 왕립공동묘지에서도 묘비를 부수고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였으나-

     오직 지브롤터 영지에서만, 땅 아래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지브롤터가 역적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글쎄. 500년 전에 어떤 약속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뭔가 마법적인 조치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마법이라…. 이제는 정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툭하면 이런 기적이니 마법이니 하는 걸로 변수가 생기니 원.”

     “그게 바로 제국 황제가 노스트럼을 싫어하는 부분 중 하나야. 법과 질서, 사회과학으로는 설명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세상이거든.”

     “그 세상이 지금 저희를 위협하고 있지 않습니까?”

     “위협이라….”

     우리가 서 있는 위치로부터 약 1km.

     “위협은 위협이지. 이제는 상급 이상 뿐만 아니라 일반병사였던 이들까지도 저렇게 솟아나는데.”

     땅에서 솟아난 인간형의 황금색 슬라임같은 것이 스멀스멀 걸어오고 있다.

     땅에서 솟아난 순간에는 몸이 부정형에 가까웠지만, 점차 지브롤터에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또렷해지고 인간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외형마저도 알몸의 인간이 아닌, 갑옷을 입은 병사의 모습을 한 존재로 변모하게 되니.

     “저거, 300년 전 바르셀 후작가에서 지급된 갑옷입니다.”

     “참 귀찮은 세상이야. 현재만 알기도 힘든데, 과거까지 이렇게 다 기억해야 한다니.”

     “도련님이 이쪽으로 전혀 관심없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슬라임 껍질에 누가 관심을 가진다고.”

     황금으로 된 언데드지만.

     “예전에 한 번 이야기를 한 적 있었던 것 같은데, 역사학자들이나 저런 거에 관심을 가질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나는 지금 망해버린 대륙 경제를 어떻게 하면 수습할 수 있을까, 그게 지금 제일 큰 문제라고.”

     “뭐…저들에게는 가장 좋은 기회 아니겠습니까?”

     로버트는 어색한 얼굴로 바르셀로나를 넘어오려는 황금의 망령을 가리켰다.

     “저 망령, 형태를 온전히 갖춰서 ‘경화(硬化)’되는 순간….”

     황금의 노예가 모든 형태를 갖추며 단단해지는 순간.

     ■■■■■■!!

     황금의 노예가 포효를 내지르듯 달리려고 하자마자.

     “야, 잡아!!”

     주변에 있던, 여러 기사들이 일제히 황금의 노예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 튀지 않게 잘 잡으라고!!”

     “황금이야, 머저리야!”

     “피든 황금이든, 최대한 아끼란 말이야!!”

     기사는 물론이거니와, 고용된 용병들까지 밧줄을 내던지며 순식간에 황금의 노예를 사로잡았다.

     황금의 노예는 자신을 향한 구속에도 나를 향해 계속 똑바로 걸어오려고 했으나, 자신을 향한 십수 명의 손길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만일 노예사냥이라는 게 있었다면, 딱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잡는 것까지는 똑같지만, 저러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렇지.”

     서걱.

     커다란 도끼를 가진 기사가 황금의 노예를 뒤에서부터 그 목을 찍어 베었다.

     푸화아악.

     실제 사람이 죽는 것처럼 몸에서 피가 튄다.

     하지만 그 피는 황금빛으로 빛나고, 실제로 황금이었으니.

     “아, 젠장! 힘 적당히 줘야할 거 아니야!”

     “미, 미안하오. 너무 약해서 그만.”

     “아, 미치겠네. 이거 언제 다 주워담지? 삽으로 땅 퍼내서 황금에 섞인 흙 갈라내는 것도 일이란 말이야, 젠장!!”

     “그, 반대 아니오…?”

     “황금보다 흙이 더 많은데, 그러면 흙을 갈라내야지!!”

     모래 속에 섞인 사금을 가르는 게 아닌, 황금의 혈액에 묻은 흙과 자갈을 갈라내야 하는 시대.

     “아 씨, 이거 어떻게 하지? 그냥 몸만 챙겨가?”

     황금은 더 이상 희소한 금속의 왕이 아니게 되었다.

     누구나 지브롤터의 영지 외곽에서, 혹은 노스트럼 왕국 전역에서 황금을 얻을 수 있게 되었기에.

     “어, 잠깐만. 저기….”

     “켁. 역적님이시잖아.”

     역적에 님이 붙는 게 어처구니가 없지만, 기사들은 나를 향해 그 어떤 적의도 보이지 않았다.

     “도련님.”

     “아아, 그래.”

     나는 황금의 노예를 사냥하는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그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나에게 충성을 하듯 경례했다.

     “오늘도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 지브롤터 경!!”

     지금, 이 순간.

     대륙 전체 시장에 풀린 황금의 총량이 약 5kg 정도 늘었다.

     “참, 아이러니해. 제국 경제는 지금 망했다고 앓는 소리 내고 있는데.”

     그것이 금광에서 캐낸 금인지, 아니면 노스트럼의 지하에서 솟아난 거짓된 황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국인들도 왕국 기사인척 협곡을 넘어와서 거짓된 황금을 주워가고 있으니.”

     “경제는 나랏일이지만, 주머니는 개인 사정이니까요.”

     로버트 경은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당장 내 주머니에 황금이 늘어나고 있는데, 반 년 뒤의 물가가 걱정되겠습니까?”

     “그렇지.”

     제국력 99년 9월.

     대륙은, 유례없는 황금의 시대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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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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