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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2

    “그러니까, 그 날 헬레나와 수영장에 가는 건 너 혼자다. 괜찮겠느냐?”

    “헬레나랑 단 둘이? 그거 좀 불편할 거 같은데……. 걔 하고는 대화해본 적이 별로 없단 말이야.”

    “내 일정이 바빠서 어쩔 수 없다. 미안하게 되었구나.”

    “네가 수영을 못 해서 도망치는 건 아니고?”

    “……그런 게 아니다. 일정이 바빠서 어쩔 수 없는 거다. 처리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보면 일단 콩쿠르 준비부터 시작해서, 마법 경시대회의 준비도 해야 하고…….”

    “아, 알았어 알았어! 그냥 장난 쳐본 거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버스 정류장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역시 말동무가 있으면 걸음이 빠르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보통은 이 순간에 시루드와 루크는 헤어지게 된다.

     

    “잘 가거라, 오늘 즐거웠다.”

     

    루크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지만, 시루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응? 나 아직 안 갈건데?”

    “음? 보통은 지금 차를 타러 가야 하지 않느냐?”

    “오늘은 버스 타고 갈거야. 평소 운전해주시던 기사님이 쉰다고 하셨거든. 그런김에, 오늘은 버스 타고 가기로 했어.”

    “아하. 그랬던 거군.”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는 버스를 타본 적 있는 게냐?”

     

    시루드는 꽤 잘 사는 집의 아이였다.

    이런 대중교통에는 익숙하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과거에도 가문에 속한 마부와 마차만을 이용하던 명문가의 자제들은 다른 마부가 모는 마차를 타는 법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러자 시루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날 너무 어리게만 보지 말아줬으면 해. 우리집도 버스를 타야 했던 시기가 있으니까.”

     

    시루드의 대답에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느냐?”

    “설마 모르는 거야?”

     

    처음 만난 그 때 루크는 트리핀드라는 성에 대해서 아는 것 같길래, 당연히 옛날에 있던 일도 알고 있을 줄 알았다.

     

    “사업이 한번 망했거든. 아빠가 돌아가셔서.”

      

    과거에는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뒤에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트리핀드의 그 때를 안다.

    트리핀드 가문은 지금은 그럭저럭 잘 나가는 가문이되기는 했지만, 그 때의 일은 당시 뉴스에도 자주 나올 정도였으니까.

     

    하필이면 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그룹 경영진이 다 함께 사고를 당한 것이다.

    대형 그룹의 종말, 기자가 그런 엄청난 사건을 보도하지 않을리 없으니까.

    결국 그룹을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어머니밖에 남지 않았다.

     

    어머니 혼자서 모든 업무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급하게 경영진을 뽑았다.

    그러나 새로 뽑은 경영진 중에서 하필이면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

     

    그래서 있던 별장도 하나만 남기고 모두 팔아버리게 되었고, 그동안 하던 사업도 대부분 철수하게 됐다.

     

    “그래서, 버스를 타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적도 있지.”

     

    그렇게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여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고생도 꽤 했다.

    그것 때문에 옛날에는 놀림도 많이 당했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자신도 마냥 행복하게만 살아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음, 그런 일이 있었나.”

     

    하긴, 시루드는 부잣집 자제인 것 치고는 취미생활부터 해서 입맛까지 굉장히 소박한 아이였다.

    그건 신기한 일이다.

     

    보통 부잣집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서민들의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도 그랬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건 그들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리니까,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시루드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이 시대의 서민문화에 속하는 PC방에도 빠삭하고, 몸 쓰는 운동도 나름대로 익숙하며, 엘프라서 육식을 가리는 것 외에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마치, 모든 것에 이미 익숙하다는 것처럼.

     

    하지만, 그 이유가 정말로 익숙했기 때문이라면 말이 된다.

     

    루크는 그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것 참 기특하구나.”

     

    그 말은 진심이었다.

    어느정도 짐작은 했다만, 시루드가 어린 나이에 그런 고생을 했을 줄은 몰랐으니까.

    마냥 부잣집 도련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록 이제는 전쟁이 없다고 해도, 비극적인 일이 절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이토록 씩씩하게 자란 것이 얼마나 기특한가.

     

    시루드에겐 그 손길에 정말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루크가 말해주지 않으려고 해서 자세한 사정이야 당연히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루크 역시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잃는 경험을 했다.

    그런 면에서, 시루드는 루크가 정말로 자신의 아픔을 공감해 주는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거북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대상이 자신보다 어린 여자애라는 점에서.

     

    시루드는 불만스런 목소리로 루크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뭐래, 나보다 어린 게.”

     

    루크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그리 보이나?”

    “야! 지금 너 나 작다고 놀리는 거지!”

    “그런 건 아니네만.”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거리며 웃던 루크와 시루드는 문득,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풍겨오는 것을 깨달았다.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것이, 빵 같기도 하지만 이 거리를 걸으며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근처에 새로운 빵집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서 고개를 향이 나는 방향으로 돌리니, 그곳에는 웬 노점이 하나 생겨 있었다.

    예전엔 없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생긴 걸까?

     

    루크는 시루드에게 물었다.

     

    “시루드, 저기서 뭔가 만드는 것 같구나. 저게 뭐지?”

    “붕어빵이네, 벌써 만드는 사람이 있나봐. 요즘 금방 쌀쌀해져서 그런가.”

    “붕어빵이라? 흐음…….”

    “너, 설마 붕어빵 처음 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 진짜야? 그동안 전혀 본 적이 없다고?”

    “그리도 신기한 일인가?”

    “아니, 뭐. 조금?”

     

    루크가 붕어빵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보이자, 시루드는 흔쾌히 말했다.

     

    “그럼 마침 버스도 안 오는데, 오늘 10연승 보답으로 하나 사줄까?”

    “오, 정말인가? 그럼 고맙게 받겠네!”

     

    루크는 거절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맛이 궁금하기는 했으니까.

     

    궁금증을 참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이었다.

     

     

    ‘흠, 안그래도 요즘 해물이 고팠는데. 마침 잘 됐군.’

     

    ——–

     

    루크는 붕어빵이 담긴 봉투의 온기를 느끼며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붕어빵 봉투는 꽤나 묵직했다.

     

    그건 누가 보아도 2000길 짜리는 아니었다.

    루크는 거 보라는 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어때, 내 말대로 하니 많이 받을 수 있었지않느냐?”

    “……뭐어.”

     

    시루드는 루크를 조금 질린 듯 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희 조금만 더 주면 안돼요, 오빠’라니?

    누가 봐도 저 사람 배불뚝이 아저씨잖아! 수염도 났고!

     

    정말, 요즘 루크가 저 얼굴을 써먹는 걸 보면 소름이 돋는다.

    저렇게 손 모으고 올려다보는 거, 진짜 너무 남용하는 거 아냐?

     

    ……하지만, 실제로 많이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신도 당해봐서 알지 않은가, 저 표정의 파괴력을.

     

    귀엽게 올려다보고 웃으면서 ‘오빠’라고 한다고 그 아저씨는 헤벌레 웃으면서 그래, 이 오빠가 조금 더 넣어줄게!라고 하면서 봉투가 찢어지는 걸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많이 담아준 것이다.

     

    시루드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루크의 봉투를 바라보았다.

     

    “그거 다 먹을 수나 있냐고…….”

    “뭐, 남으면 집에 가져가서 먹으면 되지. 집에는 파이리스도 있으니까.”

    “음, 그건 그러네.”

     

    루크의 여동생 파이리스는 엄청나게 많이 먹으니까.

     

    “뭐, 그런 이야기는 이제 됐고, 먹어보도록 하자꾸나. 으음, 이게 엘프식이로구나. 자.”

    “으응…….”

     

    루크는 시루드에게 붕어빵을 하나 건네고, 자신도 하나를 꺼내 들었다.

     

    “후우……. 후.”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루크는 붕어빵에 입김을 불어 식혔다.

    붕어빵이 적당히 식은 것 같자, 루크는 평소 생선을 먹듯이 빵을 가로 들고는 한입을 베어 물었다.

     

    하지만, 루크는 혹시나 해서 앞니로 살살 물었음에도 안에서 터져나온 무언가에 의해 강한 통증을 느꼈다.

    아무래도 겉은 식었을 지 몰라도, 속은 전혀 식지 않은 모양.

     

    “응웁!”

     

    루크는 곧장 입 안에 있던 것을 퉷, 하고 뱉어내었다.

    너무 갑작스런 고통이라 눈물이 찔끔 나왔다.

     

    “흐에, 후우ㅡ, 후……!”

     

    루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계속해서 자신의 혓바닥을 향해 숨을 불었다.

    아무래도 화상을 입은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혓바닥이 찬 공기에 닿으니 그나마 조금 낫다.

    그렇게 간신히 진정하고 있으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루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하하! 나도 그런 적 있어! 속은 안 식어서 엄청 뜨거운 거!”

     

    붕어빵을 처음 먹어보는 거라 그런지 실수했나 보다.

    원래 저러면서 하나하나 배우는 거지.

    자신도 저거엔 몇 번 데여 본 적이 있었다.

     

    “후으으…….”

     

    루크는 곧 혓바닥을 재생시키고는 한숨을 쉬었다.

    첫 한입이 꽤나 고역이었다.

    무슨 맛을 느끼기도 전에 뱉어야 했으니…….

     

    그런데, 루크가 바라본 단면에는 붕어가 요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단지 약간 붉은 빛을 띄는 검은 단팥 앙금 뿐.

     

    “뭐지? 엘프식 붕어빵이랑 바뀌었나? 이거, 붕어가 없다.”

    “붕어빵에는 원래 붕어 안들어가.”

    “뭐라?”

     

    루크는 꽤나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

     

    “그런데 왜 붕어빵인가? 붕어는 조금도 안 들어가는데.”

    “보면 알잖아? 그냥 붕어처럼 생겨서 붕어빵이야.”

    “그거 참 속편하군.”

     

    도대체가, 작명이 너무 성의가 없지 않은가?

    메론빵 때도 딱히 메론이 들어가서 메론빵인 것이 아니라 그냥 메론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그런 이름을 붙여서 혼란스럽게 하더니.

     

    그나마 메론빵의 경우는 이것보단 낫다.

    그건 만드는 과정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메론처럼 보이게 되어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대체 빵이 붕어처럼 생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자기들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놓고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게 아닌가?

    붕어빵이니 붕어가 조금이라도 들어있을 거라고 기대했건만…….

     

    ‘이름이란 건 원래 깊은 고찰이 들어가야만 하는 것인데…….’

     

    이 또한 정령이 역사속으로 자취를 감춘 탓인가?

    빵의 이름들이 모두 하나같이 성의가 없다.

    마치, 레니에가 지은 리브라는 이름 처럼…….

     

    “아.”

     

    루크는 화들짝 놀라 가방을 벌컥 열었다.

    이것저것 물건과 책들을 치워내니, 그 안에는 힘이 없어 보이는 리브가 들어 있었다.

     

    “리, 리브. 미안하다, 그대를 완전히 잊고 있었어…….”

     

    PC방에서 게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가방 안에 눌려있던 리브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리브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었다.

    마치, 피를 흘려 죽어가기 전 병사의 마지막 손짓처럼…….

     

    루크는 말없이 그 손을 붙잡아 꺼낸 뒤에, 시루드에게 말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버스는 혼자 타거라! 나는 갑자기 가야 할 곳이 떠올라서!”

    “어? 어……. 아니, 괜찮아. 잘 가.”

    “그럼!”

     

    시루드는 붕어빵 봉투를 들고 어딘가로 달려가는 루크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며, 남겨진 자의 황망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허.”

     

    그나저나, 루크가 곰인형을 가지고 다니다니?

    시루드가 보기엔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아무래도 생일 선물로 받았던 곰인형이 되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가방에서 꺼내던데, 그럼 학교에도 가져왔던 걸까?

     

    “루크는 그런 거엔 별로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시루드는 붕어빵을 다시 입에 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붕어빵 먹고싶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수능이었나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본의아니게 루크가 시험치는 날이랑 비슷한 시기네요!
    맙소사, 내가 쓰고 있던 건 현실기반 일상 웹소설이었나…

    만약에 수험생인 독자분이 있다면, 다들 이번 수능 잘 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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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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