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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2

       사격장을 탈출한 후에도 엘라를 향한 다른 팀 선수들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그들은 실시간으로 객석을 통해 그녀의 위치를 전달받으면서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심지어 아까 탈락했던 인간들도 어느새 부활해서 그녀의 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정말로 보물상자 여는 것을 포기하고 그녀를 잡는 데만 전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 같았다.

       

       “저기다!”

       “꼭 붙잡을 필요는 없어!”

       “그래! 타일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돼!”

       

       그들은 손에 잡히는 게 있으면 닥치는 대로 그녀에게 던져댔고, 심지어 자신의 탈락을 전제로 한 육탄돌격도 서슴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시험은 포기한 마당에 그녀만 탈락하게 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는 것 같았다.

       

       “더럽게 질척거리네!”

       

       엘라는 어느새 또 자신의 진로를 막고 있는 그들을 확인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녀는 그들을 보지 않고도 그들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었다. 왜냐면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계속해서 성난 고함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이도 많은 것들이 부끄럽지 않냐?”

       “애한테 뭐 하는 짓이냐!”

       “더러운 놈들!”

       

       이런 합종연횡은 지난 시험들에도 계속 있었던 일이었다. 10개의 팀이 3개의 트로피를 노리는 것과 8개의 팀이 1개의 트로피를 노리는 것의 온도 차는 극명했다. 레카체프의 시험은 결국 후반으로 가면 그 특성상 서커스단끼리의 야합과 몸싸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달은 관중들의 반응이 이전에 있었던 시험과는 사뭇 달랐다. 그때는 싸움이 벌어져도 그들은 양 진영을 골고루 응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관중들 대다수가 일방적으로 엘라만 편들고 있었다.

       

       그녀가 오늘 보여준 재기발랄한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어른 곡예사들도 힘들어하는 장애물을 척척 통과해내는 기술의 수준도 놀라웠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발상력도 감탄스러웠다.

       거기다 중간중간 쇼맨십도 뛰어나서 눈앞에 과제에만 집중하고 있는 다른 곡예사들의 재주와 달리 그녀가 보여주는 묘기는 서커스 기술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심지어 오늘 경기장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그녀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품고 있던 사람들도 전부 그녀의 팬으로 돌아섰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시험을 포기한 패배자들에게 방해받고 있으니 누구라도 성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초에 다 큰 어른들이 떼를 지어 여자애 한 명에게 달려드는 꼴을 좋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엘라, 힘내라!”

       “저런 놈들에게 지지마!”

       

       관중들의 응원을 들을 때마다 엘라의 입술에 깃든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무대에 설 때와 같은 짜릿한 고양감이 그녀의 집중력을 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십여 명의 곡예사들의 포위망도 그녀는 머리카락 하나 스치는 일 없이 빠져나갔다.

       

       “저게 사람인가!”

       “망할, 이래놓고 실리도 못 건지면, 후원자 쪽에서 또 까이겠군.”

       

       객석에 앉아 있는 서커스단 관계자들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낭패의 기색이 가득했다.

       

       그들이라고 좋아서 관객들에게 야유받을 짓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후원받은 이상 그들은 주기적으로 실적을 올려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끼리 지몬의 공략집을 나누기로 약속하고 함께 힘을 합친 것이었는데, 오히려 후원자 이름에 먹칠한 일만 만들고 말았다.

       

       “어떻게든 막아 봐!”

       “고작 하나잖아!”

       

       그러나 위에서 아무리 울부짖어도 그들은 엘라를 잡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유도에 넘어가 하나둘 탈락하는 사람이 늘어갔고, 동전이 바닥난 팀은 이제 더는 선수들을 부활시킬 수도 없었다. 갈수록 그들의 포위망은 약해졌다.

       

       “와아아! 돌파했다!”

       “가라! 가라, 엘라!”

       

       그녀는 그렇게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를 한 몸에 받으며 쾌속으로 진격해나갔다.

       

       “다섯 번째 소멸 지점은 6번 경기장인 극장입니다!”

       “여섯 번째 소멸 지점은 1번 경기장인 앞뜰입니다”

       “일곱 번째 소멸 지점은 5번 경기장인 식당입니다!”

       

       식당의 타일이 초읽기를 시작했다. 이제 남은 곳은 후원, 현관, 트랙이 전부였다.

       

       여기서 가장 확률이 높은 곳은 역시 현관이었다.

       이전 시험에서 한 번도 보물상자가 나오지 않았던 곳이자 그녀가 맨 처음 갔던 곳이었다.

       

       그곳은 많은 사람이 달려들었음에도 공략은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다른 경기장은 그래도 보물상자가 한 번씩은 나온 적이 있어서 기초적인 공략법은 알려져 있었지만, 현관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람이 많이 몰린 것도 좋은 게 아닌 게, 서로 견제와 방해만 계속 일삼다가 결국 실마리 푸는 것은 등한시되었다.

       

       심지어 1시간 전에는 현관 장애물의 핵심인 화단의 뱀들을 두고 조련사들끼리 서로 공격 명령을 반복해서 내리다가 중간에서 혼란이 온 뱀들이 통제에서 벗어나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그 때문에 선수들은 그곳을 잠정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뱀들이 진정이 된 것 같아. 이제 슬슬 현관으로 이동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겠지만…….’

       

       엘라는 주변을 훑어봤다. 현재 그녀가 있는 곳은 5번 경기장인 식당이었다. 방금 소멸 지점으로 지정되었고, 초읽기는 150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남은 선수들은 다들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엘라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무리 자신이 날렵하다고 해도 한 경기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그들의 손에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쫓는 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최후의 무대까지 힘을 아껴두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퍼즐을 해체하고 보물상자를 꺼내면 낚아채는 것도 분명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엘라는 이대로 현관으로 향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나한테 작전이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

       

       그렇게 제자리에 서 있기를 1분가량.

       이제 초읽기는 두 자릿수가 되었다. 슬슬 나가야 되지 않나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엘라가 갑자기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앗, 엘라 선수!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 방향은 후원인가요?”

       

       다들 놀란 표정을 지으며 웅성거렸다. 안 그래도 방금 그들은 역시 보물상자는 현관에 있을 거라고 떠들던 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가 현관과 정 반대 방향에 있는 후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4번 경기장인 후원은 길들이기 실습생들이 이용하는 장소로 시험에서는 동물들을 이용한 함정과 장애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설마 엘라는 그곳에서 보물상자에 관한 단서를 찾아냈던 것일까?

       

       “쫓아라!”

       “엘라의 뒤를 따라가!”

       

       선수들은 허겁지겁 그녀의 뒤를 따라 후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그녀가 그리폰의 둥지에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독수리의 상반신에 사자의 하반신을 가진 녀석은 제국을 대표하는 영물로 레카체프에서도 딱 한 마리 기르고 있었다.

       

       “앗, 엘라 선수, 사나운 그리폰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네, 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녀석은 신입생 선발 시험에서 엘라와 만난 적 있던 그놈이었다. 그는 길들이기 교수 파이렌이 실종된 이후로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후원 한쪽에 둔 채, 조교들이 돌보고 있었다.

       물론 말이 돌본다는 거지 겨우겨우 먹이나 주고 둥지나 청소해주는 정도였다. 놈도 원래 다른 맹수들처럼 시험에서 맡은 역할이 있었지만, 놈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이번에는 그냥 구석에서 위협감만 발산하는 역할로 뒀다.

       

       “끼이익.”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한 그리폰은 눈을 부릅뜨고 날개를 펼치더니 발톱으로 땅을 박박 긁었다. 명백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엘라는 거침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부리를 쓰다듬었다.

       

       “헤헷, 오랜만이야. 착하지.”

       “끼룩, 끼룩.”

       

       그러자 그리폰은 방금까지 성내던 모습은 어디 가고 너무나 순순히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빗질 한 번 할 때도 조교 몇 명이 달라붙어서 진정시켜야 하는 저 무서운 맹수를 그녀는 마치 온순한 망아지처럼 다루고 있었다.

       

       “세상에.”

       “‘높은구름’이 저렇게 얌전하게 구는 건 처음 봤어.”

       

       길들이기 조교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신입생 선발 시험에서도 놈을 다루는 데 최고점을 받아서 놀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험을 위해 통제된 상황이었다. 전날 안정제가 섞인 최고급 사료를 듬뿍 먹인 덕에 그만큼 얌전했던 것이었다. 근처에 파이렌 교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반야생이나 다름없는 놈을 저렇게까지 다루다니.

       레카체프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라는 찰리조차 저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와아아!”

       “그리폰을 길들이다니!”

       “대단하다, 엘라!”

       

       사방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키예프 주민들은 다른 맹수는 모르지만 그리폰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그리폰 기수가 되기 위해서 10년 가까이 험난한 훈련을 거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비록 기존에 길들인 그리폰이라고는 하지만, 저렇게까지 훌륭하게 제어하는 것은 제국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일부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엘라는 그들 모두 깜짝 놀랄 만한 짓을 또 저질렀다. 그녀는 그의 목을 붙잡더니 몸을 날려 그의 등 위에 올라탄 것이다.

       

       객석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용의 피를 먹인 고삐를 매고 안장을 얹지 않으면 절대 등 위에 사람이 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고고한 생물이 바로 그리폰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맨몸으로 그의 등 위에 올라탄 것이다.

       

       대참사다!

       사람들은 그리폰이 크게 날뛸 거라 여겼다. 그녀가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두려움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리폰은 엘라가 자신의 등에 앉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끼돌아!”

       

       그들이 받은 충격 덕분에 그들은 엘라의 외침이 그녀가 탄 그리폰의 이름을 부른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것은 막 지어낸 게 분명한 이름이었다.

       그리폰이 저 허접한 이름에 화내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은 그것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이름을 불린 그리폰이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았기 때문이다.

       

       그리폰은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치솟았다. 제국 사람들은 종종 하늘에서 그리폰이 나는 걸 볼 수 있었기에 그 장면 자체는 신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제반 상식을 무너뜨리는 저 소녀의 친화력이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직업적 소명 덕분일까.

       사회자는 평정심을 회복하기도 전에 입이 먼저 움직였다.

       

       “에, 에, 엘, 엘라 선수가 그, 그리폰을 타고 날고 있습니다! 규, 규칙상 문제는……그, 그러니까 문제는 없습니다! 자, 장애물로 나온 생물을 이용하는 건…….”

       

       아래에서 길들이기 전공 조교와 학생들이 미친 듯이 호각을 불었다. 설마 엘라가 이대로 그리폰을 타고 멀리 날아가 버리면 어쩌나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리폰은 조교와 학생들이 뭐라 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엘라의 말만 따르고 움직였다.

       

       그녀는 그렇게 자유롭게 학교 건물들 위를 날아 현관으로 향했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선수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닭 쫓던 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재빨리 식당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곳의 타일은 이미 초읽기가 한 자릿수에 진입해 있었다.

       

       우와아앙.

       얼마 후, 사이렌이 재차 울렸고, 사회자는 다음 소멸 지점을 발표했다.

       

       “여덟 번째 소멸 지점은 4번 경기장인 후원입니다! 그리고 이걸로 서든 데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남은 경기장은 트랙과 현관, 두 곳인 상태에서 서든 데스가 종료되었다. 트랙은 원래 서든 데스가 시작되면 모두가 밟을 수 있는 흰색으로 바뀌기 때문에, 여기서 서든 데스가 멈췄다는 것은 보물상자는 현관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망할.”

       “당했다.”

       

       선수들은 엘라가 후원으로 자신들을 유인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후원은 학교에서 가장 깊숙한 곳으로 중앙 정원과 더불어 유일하게 트랙과 이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즉, 이곳은 빠져나갈 길이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그래서 엘라가 이곳으로 달리는 것을 보고 다들 의심하지 않고 따라왔는데…….

       

       그들은 허망한 표정을 짓은 채 지붕 너머로 사라져가는 그리폰의 엉덩이를 바라봤다.

       

       후원을 빠져나온 엘라는 그리폰에게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대로 현관까지 타고 날아도 좋지만, 그리폰을 위해서 그러기 싫었다. 녀석은 기특하게도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지만, 마음의 갈등은 겪고 있었다. 친구를 위해 훈련받은 호각과 신호를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자, 이제 넌 돌아가는 게 좋겠다. 널 돌봐주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면 안 되지.”

       “끼루룩.”

       “언제든 태우고 날아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켜줘서 고마워. 그게 이번이 될 줄은 몰랐지만.”

       “끼이익.”

       

       그리폰은 별거 아니라는 듯 그녀의 뺨에 부리를 가져다 대어 보였다. 엘라는 녀석의 깃털을 쓰다듬어 주고는 뒤따라오는 조련사들에게 그를 넘겼다.

       

       “남은 경기장은 이제 하나! 보물상자도 하나! 보이십니까? 현재 아크로바틱 러시에 남은 선수는 한 명입니다! 그 이름은 괴물서커스의 부단장, 엘라!”

       

       조금만 기다려, 단장.

       별을 가져다줄게.

       지금의 내가 말이야.

       

       남은 경기 시간은 20분.

       엘라는 이제 최후의 장애물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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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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