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72

        

         

       “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세상에 충만하게 만들고,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차게 하라. 그리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라.”

       ‘어쩌라고.’

       “저는 사랑에 구원받은 만큼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랑을 퍼뜨리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신학교로 가서 그분의 말씀을 배웠고, 신부가 되기 위해 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며 사랑을 키워나갔지요. 피를 사용하는 주술의 고통도 사랑으로 끌어안았고, 주술의 대가 역시 달게 받아들였습니다.”

         

       윌리엄은 미친놈을 보는 시선으로 신부를 노려보았다.

         

       주술의 대가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니.

       그게 제정신인 사람이 할법한 생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진성은 토마스의 말에 일부 공감했다.

         

       대가라는 것은 주술사의 일상과도 같은 것.

       그 고통에 익숙해지지 않는 이상은 주술을 사용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아 살아갈 수 없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그 과정도 전부 각기 다르되 그것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주술사라는 존재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흔쾌히 십자가에 매달리셨지요. 고통스러웠음에도 망설임 없이 그리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괴롭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괴로움으로 사람을 구하고, 모두에게 사랑을 충만할 수 있기에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소리하지 마.’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사랑이 번성케 하는데 어찌 이 한 몸의 고통을 못 견디겠습니까? 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꾹 다문 채 한 달을 제자리에서 기도하는 것도, 몸을 쇠로 만든 채찍질로 찢어발기고 부복하여 기도하는 것도, 곰팡이가 가득 뒤덮인 빵 하나를 뜯어먹으며 신에게 불쌍한 이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것도! 그 모든 것이 사랑이며, 사랑을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미친놈 같으니….’

       “다만 사랑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연약한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사랑해도 다른 마음의 형태로 상처를 입기도 했고, 짝이 맞지 않아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곤 했습니다. 불처럼 타올랐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들기도 하였고, 꾸준함을 가지고 있되 반드시 끝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만 좀 닥쳐. 싸이코 신부 놈아!’

       “그렇기에 사랑에는 약속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언약. 사랑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계약이 말입니다!”

         

       토마스의 눈이 번들거렸다.

         

       “사랑의 계약. 사랑의 약속! 가정의 평온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 부모를 공경하겠다는 약속, 자식을 언제까지 사랑할 것이라는 약속. 우정이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는 약속! 그리고.”

       ‘미친….’

       “영원히. 죽어서도 영원히 서로를 사랑하겠다는. 신랑과 신부의 약속.”

         

       그의 눈은 자애로움이 들어 있었다.

       그의 입은 선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신념이 묻어 있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표현하는 그의 얼굴에는, 광기가 있었다.

         

       “윌리엄 도련님. 사람들은 당신을 그냥 삐뚤어진 망나니로만 여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도련님을 신께 버림받은 사람이라고도 말했고, 누군가는 성자에게 버림받았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진실을 알고 있고, 당신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윌리엄은 토마스를 노려보았다.

         

       개소리를 지껄이지 말라는 뜻을 담아서.

         

       “저는 윌리엄 도련님을 이해합니다. 머리로 이해했고, 마음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윌리엄 도련님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실수라는 것은 커다란 상처로 남아 오랫동안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곤 하는 법이니까요. 오, 어찌 이해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당신의 인생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린 시절의 내가 앞에 있고, 어린 시절의 내가 그대로 자라나 살아가는 모습이 내 눈앞에 있는데!”

         

       토마스는 자애롭게 미소 지었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지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딱딱 맞는 것이 아니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 부딪친 곳이 모서리라면 흠집이 나기 마련이지요. 그렇게 깎이고 깎이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의 눈동자는 자애로웠고, 진심으로 윌리엄을 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그 눈동자의 번들거림은 광기에서 비롯된 빛이었다.

         

       광기.

       순수에서 오는 광기.

       남을 위해 제 몸을 바치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광기.

         

       토마스 신부의 눈에서는 선의에서 비롯된 광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의 상처는 더더욱 아픈 법입니다. 깎이지 않은 모서리는 날카롭고 뾰족할 테니까요. 당연히 그 모서리가 낸 흠집은 깊고 선명하겠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토마스는 마치 불쌍한 어린아이를 보는 것처럼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모두가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이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괜히 엄살을 피우지 말아라…. 하하하. 참으로 무책임한 말입니다. 사람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 새겨진 흠집 역시 천차만별인데, 어찌 그것이 똑같다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

       “사람에게는 사람마다의 상처가 있습니다. 상처를 마음에 품고, 그것을 잊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호된 말을 하는 대신에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며 남의 상처에 공감하고, 그 아픔에 눈물을 지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니까요.”

       “….”

       “그렇기에 감히 저는 말합니다. 저는 윌리엄 도련님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공감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그리고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마땅히 의무를 행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일을 매듭지으려 합니다. 말재주가 부족한지라 신부님처럼 따스한 말로 도련님의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없지만-”

         

       토마스는 구석에 놓인 캐리어를 향해 걸어갔다.

         

       “-쓸만한 재주를 익히고 있으니, 그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윌리엄은 그 말에 눈을 부릅뜨고야 말았다.

         

       대신했다는 말.

       그것은 이미 행동을 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주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오직 하나.

       꿈에서 악령들이 몰려와 그를 끌고 가려 했던 것뿐이었다.

         

       윌리엄은 의문과 분노를 담아 토마스를 노려보았다.

         

       대체 왜 그랬냐고.

       그나마 믿고 있었던 사람인 당신이,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짓을 한 거냐고.

         

       토마스는 배신감에 사무치는 윌리엄을 보며 웃었다.

         

       그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격정적인 감정도 없이.

       오직 상대를 위한 선함과 사랑을 가득 담은 미소로.

         

       “도련님. 약속을 지킬 시간입니다.”

       ‘약속? 무슨 약속?! 개자식아!’

         

       윌리엄은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토마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분노는 가라앉고 말았다.

         

       토마스가 자신이 가지고 온 캐리어를 가져와 그것을 여는 순간, 활화산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처럼 솟구쳐야 할 불꽃은 얼음물을 끼얹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꺼져버리고 만 것이다.

         

       대신에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차갑고 날카로운 감정이었다.

         

       공포.

         

       원초적인 본능이요, 위험에서 도망치라는 몸의 신호였다.

         

       “읍- 으으으읍–!!”

       ‘미친, 미친 새끼가아아아아-!’

         

       윌리엄은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내질렀다.

       재갈이 물려 제대로 형상이 되지 못 하는 말을 내질렀다.

         

       윌리엄은 캐리어에서 애써 눈을 돌리며 방긋 미소를 짓는 토마스에게 공포의 감정이 듬뿍 담아 소리쳤다.

         

       “으읍—!!!”

         

       열려 있는 캐리어 속에는 물건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옛날에는 사람이었던 물건이 있었다.

         

       “도련님. 보십시오. 여기 당신의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의 사랑이며, 당신의 행복이었으며, 당신의 상실이며, 되돌릴 수 있는 기회이며,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게 될 그때의 소녀가 이곳에 있습니다.”

         

       캐리어 안에는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의 시체였다.

         

       “비아트리스. 행복을 가져오는 여자라는 그 뜻과 같은 아이였지요. 윌리엄 도련님께 행운을 가져왔고, 당신의 추억 속에 자리 잡아 항상 당신을 죄책감 속에서 살게 만들었던 비극의 소녀이기도 합니다.”

         

       한참 전에 무덤 속에 묻혔던 소녀는 뼈와 머리카락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뼈와 머리카락밖에 남지 않아 볼품없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시체가 입고 있는 옷은 깔끔하고 화려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순백의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개자식, 개자식아! 이게 무슨 개짓거리야———!!!’

         

       윌리엄의 공포는 다시 분노로 변했다.

         

       비아트리스.

         

       어린 시절 그가 구해내지 못했던 소녀의 이름.

       그 이름이 신부의 입에서 나오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분노가 솟구쳐 오른 것이다.

         

       평생 살아가면서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분노였다.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눈앞이 새빨갛게 변하며, 이성이 전부 마비되어버리는 듯한 끔찍한 분노였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지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오직 저 신부를 맨손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폭발하는 분노!

         

       덜컹!

       덜컹!

         

       윌리엄은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그 과정에서 손과 발에 난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기도 하고, 어깨가 탈골되기도 하는 등 다치기도 했다. 하지만 윌리엄은 끔찍한 분노 덕분에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몸이 어찌 되든 상관없으니 저 신부를 죽여버리겠다는 일념으로 계속 움직였다.

         

       그러자 토마스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그렇게 날뛰시면 옷이 구겨지지 않습니까. 멈추세요.”

         

       신부는 그렇게 말하며 윌리엄을 옴짝달싹 못하게 제압했다.

       몸을 아예 비틀 수도 없게 철저하게 그를 포박했고, 탈골된 어깨는 손수 맞춰주었다.

       그리고 몸을 비트는 과정에서 구겨진 옷은 주술을 이용해 쫙 폈으며, 헝클어진 머리는 단정하게 다시 빗겨주었다.

         

       그렇게 다시 윌리엄이 깔끔한 모습이 되자 토마스는 방긋 웃으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도련님. 어릴 적, 천사 석상 앞에서 비아트리스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나십니까?”

       “으읍-! 읍-!”

       “비아트리스가 새침하게 윌리엄 도련님께 고백했지요. 네가 미남으로 크면, 신부가 되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그때 도련님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읍! 읍!”

       “하하하. 네가 미녀가 된다면 신랑이 되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고 했었지요. 그 퉁명스러우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듯한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읍!”

       “그런데, 도련님. 그때 그 대화를 나눴던 천사 석상이…어떤 천사였는지 알고 계십니까?”

         

       토마스는 웃었다.

         

       “조물주의 축복이라 불리는 천사였습니다. 바라키엘(ברכיאל)이라고 하지요. 치천사이시며, 49만 6천의 천사를 거느리는 어전 천사이며, 정교회에서 공경하는 분이십니다.”

       “읍!”

       “참으로 신의 돌보심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정교회에서 보낸 그 석상을 잠시 그곳에 놓았을 뿐이었는데,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 두 분이 나타나 그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이것이 신의 인도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토마스는 성호를 긋고 잠시 기도했다.

       조물주의 위대함을 찬미하는 기도였다.

         

       “윌리엄 도련님. 바라키엘께서는 수호천사의 우두머리이십니다. 특히 어린이와 가정을 지키시며, 혼인을 성사해주신다고 합니다. 게다가 기쁨과 행복이 넘치도록 도와주시며, 웃음이 넘치도록 도와주시는 분이기도 하지요.”

       “….”

       “그렇습니다. 한 쌍의 소년 소녀는, 윌리엄 도련님과 비아트리스 양은! 놀랍게도 혼인과 행복을 담당하는 천사의 앞에서 그러한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풋풋한 사랑이요, 풋풋함이 가득한 혼인에 대한 언약을 말입니다!”

         

       토마스는 번들거리는 눈을 휘어 눈웃음을 지었다.

         

       “도련님. 약속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사랑이 아무리 퍼져나간들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눈에는 선함에서 비롯된 광기가 있었다.

         

       “도련님이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윌리엄을 위해 말하고 있었다.

         

       “그 비어버린 자리는 너무나 커다랗고 황량해서, 어쩌면 다시 돌이킬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윌리엄을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께서 인도하사, 사랑을 다시 채울 방법을 알려주셨으니. 그것은 어린 시절의 언약을 이루고 연을 맺어 숨이 끊기는 그날까지 해로(偕老)하게 만드는 것이라! 그리하여 저는 그 뜻에 따라 지금 여기서 윌리엄 도련님과 비아트리스를 짝을 지어주려 합니다!”

         

       토마스는 그렇게 말하며 캐리어 안에 붙은 주물(呪物)을 떼어냈다.

         

       그러자 해골에서 일렁이는 무언가가 새어 나왔으며, 홀로그램처럼 피어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귀엽고 예쁜 소녀였다.

         

       “이 결혼식은 바라키엘께서 축복하실 것이니! 둘의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