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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2

       예순네 명으로 시작한 개인전은 어느덧 열여섯 명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그들은 고작 두 번의 승리로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다.

         

       오직 뛰어난 자질을 지닌 자만이 입관할 수 있는 정무학관과 흑사무관에 입관하고, 또 최소 수재 이상이 모인 집단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그렇게 고르고 고른 예순네 명에 속한 이들을 꺾고 올라온 것이기에.

         

       말하자면 지금 살아남은 열여섯의 인원은 훗날 정파와 사파를 선두에서 이끌어갈 인재 중의 인재라 봐도 무방하다.

         

       그중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이는 단연 백우진이었다.

         

       그는 사파에서 명성이 자자한 후기지수 둘을 꺾고서 16강에 안착했다.

         

       그것도 상대와 수 한번 나눠 보지 않고 오직 한 수로 제압하면서 말이다.

         

       백우진의 오만한 태도에 싫어하는 이들마저도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

         

       다음으로 그의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는 이는 도경과 독고천, 두 사람이다.

         

       그들은 백우진처럼 한 수로 상대를 제압하지는 못했으나, 비무 상대를 어중이떠중이로 보이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격차를 보이며 승리를 거머쥐어 이 자리까지 올라섰다.

         

       둘 중 누가 더 앞서 있냐고 묻는다면…, 도경이 조금 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 이유는 도경의 32강전 상대가 옥면신룡조에 속한 장삼이었기 때문.

         

       백우진에 대한 앙심을 깊게 품은 그녀는 장삼으로부터 확실한 승리를 따낸 뒤, 옥면신룡의 유일한 대항마 자리를 꿰차는 데에 성공했다.

         

       각각 끝자리에 위치한 두 사람이 과연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는 상황.

         

       균형은 아슬아슬하다.

         

       살아남은 열여섯 명 중 정파의 인원이 아홉, 사파의 인원이 일곱.

         

       그러나 정파와 사파가 아닌, 다른 구도로 본다면 한쪽의 압승으로 바뀌게 된다.

         

       바로 신룡조.

         

       살아남은 정파 인원 아홉 중 신룡조원만 다섯.

         

       모두가 한두 명이 간신히 살아남은 이때 무려 다섯이 16강에 도달했음은 옥면신룡조가 후기지수들 중 최강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솔솔 나오고 있는 상황.

         

       ‘좋은 얘기야, 음음.’

         

       그럴 때마다 백우진은 더없이 흡족했다.

         

       신룡조원의 명성은 높을수록 좋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그들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에.

         

       백우진의 명성이 높아지면 신룡조원의 명성도 덩달아 높아지고, 반대로 신룡조원의 명성이 높아지면 그들을 이끄는 백우진의 명성 또한 같이 상승한다.

         

       이거야말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계 아닌가!

         

       기대감이 한껏 끌어 올라 있는 상황.

         

       이 기세가 끝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야 백우진도 간절했지만, 아무래도 힘들 듯했다.

         

       “으음….”

         

       백우진은 복잡한 시선으로 비무대 위에 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16강 첫 번째 경기를 치르는 이는 다름 아닌 제갈연지와 유화연이었다.

         

       조원 중에서 처음에 비해 가장 높은 성장을 이룩한 이를 묻는다면, 백우진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제갈연지를 꼽을 것이다.

         

       그녀는 다방면으로 성장했다.

         

       무공의 경지뿐만 아니라 기관술, 진법, 심지어 내면까지 성장을 이룩했다.

         

       그뿐인가?

         

       그녀는 제갈세가의 선법에 혈수마녀의 가르침을 더해 자신만의 새로운 선법인 ‘천지호연선법’을 창안하기까지 했다.

         

       이는 백우진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성장이었다.

         

       책사로서의 면모를 기대하고 뽑은 이가 전투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바람으로는 그녀가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갔으면 하지만….

         

       “…하필 상대가 상대네.”

         

       문제는 그녀의 상대가 숫제 괴물이라는 것.

         

       악양에서 유화연을 본 순간, 백우진은 깨달았다.

         

       그녀의 성장세는 자신의 이해를 아득히 뛰어넘은 지 오래라고.

         

       ‘저게 말이 되나?’

         

       이야기는 들었다.

         

       그녀가 검후의 인정을 받아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것은.

         

       검후는 검을 논함에 있어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수 중의 고수.

         

       단순히 검만 놓고 보면 검존조차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검의 달인.

         

       그런 그녀의 가르침을 받은 유화연은 그야말로 괴물 중의 괴물이 되었다.

         

       ‘검후의 가르침이 특별한 건…, 아닐 테지.’

         

       만약 그랬다면 검후의 제자들이 모인 검각이 구파일방의 위에 놓여 있었을 터.

         

       그렇다면 결국 유화연이 특출나게 빠른 성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인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 나이에 벽에 닿았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그냥 벽도 아니고, 화경에 이르는 벽에 말이다.

         

       ‘나야 이미 경험이 있으니까 그렇다 치지만….’

         

       백우진이 빠른 성취를 보이는 건 남들처럼 막혀야만 하는 구간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오직 깨달음만으로 뚫어내야만 하는 벽을 이미 모두 뚫어낸지 오래인 만큼, 그의 성취는 빠를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유화연은 경우가 다르다.

         

       그녀는 벽을 깨부수면서 자신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그래.

         

       그 맑은 눈동자에 오직 자신 하나만을 담아둔 채로 말이다.

         

       “이렇게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 그러게요.”

         

       비무대 위에 선 두 사람이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제갈연지는 그녀를 볼 때마다 조금씩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두려워서? 아니다.

         

       다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유화연은 백우진과 혼인을 하기로 약조했던 여인.

         

       말하자면 내 남자의 전 연인임과 동시에 오랜 세월 함께 지내며 자신조차 모르는 것들을 수없이 알고 있는 이라는 뜻이 된다.

         

       그렇기에 마주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이 모르는 그의 이야기를 꺼내놓을까 봐.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자신이 추하게 질투하게 될까 봐.

         

       “잘 부탁드려요.”

       “저, 저도요.”

         

       그녀는 철선을 강하게 쥐며 기수식을 취했다.

         

       ‘지고 싶지 않아.’

         

       유화연에게 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녀의 온몸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것은 유화연도 마찬가지.

         

       ‘절대로 질 수 없어.’

         

       당선영과 제갈연지.

         

       두 여인을 보고 있노라면 무심코 머릿속에 망상이 스며든다.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의 미래를 그린다.

         

       두 사람 대신 오직 자신만이 그의 품에 안겨 아득한 행복에 여유롭게 잠이 드는 미래를.

         

       그리고 망상에서 깨어나고 나면 지독한 후회와 자기혐오, 그리고 고통에 휩싸인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된, 제 손으로 닫아버린 미래임을 알기에.

         

       그렇기에 두 사람에게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다.

         

       마지막 한 조각 남은 그녀의 자존심과 삶의 끈 한 자락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것마저 패배한다면 더 이상 자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

         

       정신을 한 곳에 기울이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그녀의 온 정신은 오로지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백우진 단 한 사람만을 위해.

         

       그것은 그 어느 때에도 흔들리는 법이 없기에, 그녀는 지독히도 빠르게 당도했다.

         

       “비무를 시작하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사람이 땅을 박찬다.

         

       비무대 한가운데에서 맞부딪힌 철선과 검.

         

       쩌정-!

         

       얼핏 동수를 이룬 듯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유화연은 평온했고 제갈연지는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생각보다 차이가 커….’

         

       단 한 수만에 알아차렸다.

         

       유화연의 경지가 자신을 두 수 이상 앞서 있다는 것을.

         

       한 수 차이를 뒤집는 데에도 사력을 다해야 하는데, 두 수 이상이라.

         

       사실상 패배 선고나 다름없는 절망적인 차이임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 없던 그처럼.

         

       유화연의 공세가 이어졌다.

         

       검후에게서 사사한 낙화검법은 떨어지는 꽃과 낙엽의 어지러운 움직임을 본떠 창안한 검술.

         

       현묘한 검의 움직임이 제갈연지의 눈을 한껏 어지럽혔다.

         

       ‘검로를 읽기가 너무 힘들어…!’

         

       낙화검법을 익히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다름 아닌 손목이다.

         

       찌르고, 휘두르는 도중에 손목을 꺾거나, 뒤트는 등의 동작으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어지러운 검로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

         

       유화연은 손목의 힘과 유연성은 물론이고, 압도적인 내구성까지 지니고 태어났다.

         

       그 덕에 검후는 훗날 낙화검법이 그녀의 존재로 인해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서슴지 않을 정도.

         

       “흣…!”

         

       단단한 수비로 검로를 차단하고 있던 그녀의 팔에 얇은 혈선이 그어졌다.

         

       그녀의 현란한 검초를 모조리 눈으로 읽어내는 바람에 두 눈에 급격히 피로가 쌓인 탓에, 순간적으로 검로를 놓친 탓이었다.

         

       ‘눈이 안 된다면 기감을…!’

         

       뒤늦게 기감을 활용하기 위해 감각을 확장시켰으나, 그것은 오히려 악수에 가까웠다.

         

       상대는 그녀보다 최소 두 수 이상 앞서 있는 상황.

         

       자신보다 고수인 상대의 기운을 완벽하게 읽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므로.

         

       “꺄악!”

         

       결국 그녀는 악수를 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날카로운 검초가 그녀의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지나갔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금세 허벅지를 붉게 적셨다.

         

       유화연은 검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내며 그녀에게 물었다.

         

       “상처가 깊어요. 이만 기권하는 게….”

       “아, 아니에요.”

         

       제갈연지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허벅지에 난 상처 주변의 혈도를 짚어 일시적으로 피가 흐르는 것을 막았다.

         

       혈도를 막아 피를 멈추기는 했지만,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녀의 얼굴에는 연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모두가 우려 섞인 시선을 던지고 있음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그녀는 제 실력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기에.

         

       ‘딱 한 번만…!’

         

       제갈연지를 중심으로 강대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과도하게 기를 운용한 탓에 잠시 멈춰두었던 허벅지의 출혈 또한 재차 터져 나왔다.

         

       이윽고 그녀의 철선에 선명한 기운이 맺혔다.

         

       선기(扇氣)를 넘어선, 그러나 강기에는 닿지 못한 불완전한 형태.

         

       그녀는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절초를 펼쳤다.

         

       「천지호연선법(天地浩然扇法)

         

          오의(奧義) 사풍관(射風貫).」

         

       불완전한 형태의 강기를 머금은 바람이 유화연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에서 휘몰아쳤다.

         

       단 한 줄기만 몸에 닿아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절초 중의 절초.

         

       크게 당황한 유화연이 입술을 짓씹었다.

         

       ‘절대… 지지 않아!’

         

       오의에는 오의로 대항해야 하는 법.

         

       그녀는 낙화검법의 오의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낙화검법(落花劍法)

         

          오의(奧義) 백화요란(百花燎亂).」

         

       그녀의 검 끝에서 온갖 만개한 꽃들이 떨어져 나와 주변을 온통 물들인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꽃송이들이 마침내 들불처럼 퍼져나가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강기의 바람과 한바탕 요란한 춤사위를 벌였다.

         

       꺾이고, 꺾여나간다.

       

       

       카가가각!

         

       바람의 기세가 꺾이고, 피어오른 꽃송이가 꺾인다.

         

       마침내 저버린 것은 바람이었다.

         

       “아아….”

         

       짙은 패배감으로 물든 그녀의 앞으로 유화연이 다가와 일장을 내질렀다.

         

       퍼억!

         

       상대를 해하려는 수가 아닌, 승기를 꺾기 위한 일장이 그녀의 가슴팍을 때린다.

         

       끈 떨어진 연처럼 비무대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제갈연지.

         

       그런 그녀를 받아낸 것은 관객들 사이로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백우진이었다.

         

       가뿐히 받아 품에 안은 제갈연지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허벅지에 난 상처를 제외하면 큰 이상이 없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패배의 충격이 컸던 모양.

         

       백우진은 그녀를 대신해 유화연에게 말을 건넸다.

         

       “좋은 승부였어.”

         

       오랜만에 들은 그의 음성에 유화연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그리고 좋은 승부였다고 제갈 소저에게 전해줘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비무대 반대편으로 걸어 내려갔다.

         

       멍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고 있던 제갈승이 유화연이 내려간 방향으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유화연 승!”

         

       짝짝짝짝!

         

       쓸쓸히 걸어 내려가는 그녀의 등 뒤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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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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