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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2

     무한이라는 건 없다.

     특히 자원이라는 부분에 있어, 무한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저 인류가 가늠하기에 한계가 없어보이는 것 뿐이다.

     라는 관점은 이제, 황금의 시대에서는 어쩌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황금이 무한하다, 인가.”

     나는 후작성 광장의 한 쪽에 비치된 금괴의 탑을 올려다봤다.

     왕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4층 건물 높이의 금괴 탑.

     총독부의 모 창고에서 제작 중이던 황금의 비행선처럼 내부가 텅 비어있는 게 아닌, 내부에도 황금으로 된 금괴가 빼곡하게 쌓여있는 황금탑.

     ‘무능왕에게 제대로 농락당했군.’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일으킨 황금대란에 크게 낭패를 본 건 제국 뿐만이 아니다.

     나도 크게 당했다.

     바르셀로나의 땅에서 모아둔 금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금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며 금이 많아보이게 마석을 파고 온갖 수작을 부렸지만, 그 행동은 전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황금을 전부 띄울 수 있는 양의 마석이나 준비할 걸.’

     황금으로 벽돌을 쌓아 집도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황금으로 비행선이라고 만들지 못하랴.

     반 년 동안 열심히 배를 만드느라 고생한 나 자신에 대하여 약간 회의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물론, 기술의 발전은 무시하지 못한다.

     황금의 배를 무능왕의 무덤으로 만들기 위해, 그 배에 들어간 온갖 기술들을 접목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

     가령 내부 빈 공간에 숨겨둔 기체가 불에 닿으면 폭발을 일으키기 쉽다거나.

     그 기체가 숨겨진 황금은 어느 특정 부위에만 집중적으로 몰려있다거나.

     죽을 위기가 아니라면 황금의 비행선 내에 있는 패닉룸 안으로 도망갈 일이 없다거나.

     그리고 비행선의 조작에 대하여,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이가 특정 조작을 하면 비행선의 마도엔진과 풍석이 일제히 ‘동작정지 및 자기파괴’에 이른다거나.

     그런 기술을 연구하여 물리적으로 다시 만들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결국 쓸모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무능왕이 훔쳐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혹시나 무능왕이 황금으로 된 비행선은 또 못 참고, 역적이든 뭐든 이건 원래 자신이 가져야 할 물건이라며 기뻐하며 훔쳐간다?

     그렇게 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당장은 창고에서 운행 준비를 마친 애물단지일 뿐이다.

     거대한 황금 덩어리일 뿐.

     ‘적어도 이제는 황금으로 된 비행선이 하늘을 날아도 사람들이 그다지 불쾌해하거나 그러지는 않겠네.’

     아무것도 없을 때는 저 수많은 황금을 고작 비행선으로 만들었냐고 불쾌감이 들 수 있겠지만, 저마다 품에 금괴 5kg씩 들고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황금이 나왔던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는 말한다.

     제국과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제국의 문화가 서서히 왕국 경제를 잠식하려고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모두 이 날을 위해 무릎을 꿇고 있었을 뿐이라고.

     제국 경제를 망가뜨리기 위해 협곡 너머로 무한한 황금을 뿌려버리기 위해, 황금의 대영웅 골든-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꾹 참아왔던 것이라고.

     뭐, 당연히 헛소리다.

     

     어떤 이들이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며 정신적으로 승리를 선언할 정도로, 대륙 상황은 현재 최악을 달리고 있다.

     약 2달.

     지브롤터 후작령에서 기사단을 동원하여, 황금의 노예들이 후작성까지 다가오기 전에 미리 처치를 하여 확보한 황금만 약 5톤에 달한다.

     단순 계산만 하더라도 5톤, 그러니까 약 5000kg의 황금이 모였다는 이야기이며, 천 명 가량의 황금의 기사를 제거했다는 이야기.

     지브롤터만 해도 이런데, 노스트럼 대륙 전체에서는 어떨까?

     지브롤터 후작령 바깥에서 나타나는 황금의 기사들을 사냥한 황금추적자들이 어디 공식적으로 신고를 하지 않고 몰래 빼돌린 황금의 양까지 포함한다면, 황금은 얼마나 늘어났을까.

     그리고 제일 무서운 건,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리하여.

     현재, 제국에서는 벼르고 있다.

     황제가 황성으로 급히 돌아가 제국의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황금의 대란을 막아내는 동시에, 모든 일의 원흉을 찾아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행방불명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찾아라.

     황제의 명령에 따라, 제국의 그림자들은 왕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황제를 찾아다니고 있다.

     원래 마법이든 기적이든 저주든, ‘술자’를 죽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니까.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혹은 몰랐던 이들도 이제 다시금 깨닫는 것이 하나 있으니.

     “우리 전하께서는 어디에 숨어계실까.”

     무능하지만, 도망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유능한 사내가 바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는 것.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자칭 암살 위협을 받았다고 하며 왕도 톨레도에서 행방불명된 날로부터 어느덧 2개월.

     오늘도 대륙의 황금은 늘어나고, 나에게는 또다른 임무가 생겼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이 황금을 어떻게 해야 시장에서 없애버릴 수 있을까.”

     황금의 제거.

     

     기존에 시장에 이미 풀렸던 진짜 황금은 그대로 확보하고, 노스트럼의 저주로 인해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거짓된 황금을 시장에서 없애는 일.

     이른바, 폐기.

     “어떻게 해야 이 황금 덩어리들을 전부 쓰레기로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들고 있는 마석을 향해 물었다.

     “바르셀로나 총독부의 행정관들이여. 좋은 생각이 있으면 기탄없이 한 번 말해보게.”

     마석 너머, 바르셀로나 총독부 회의실에 모여있는 행정관들이 보인다.

     “벌써 황금대란이 일어난 것도 두 달에 가까워지고 있다네. 오늘까지 각자 아무거나 하나씩 아이디어를 가져오라고 했었지. 설마 내가 총독부에 없다고 일을 게을리 한 건 아니겠지?”

     총독 없는 총독부.

     “아니면 설마 그대들도 무력 좀 있다고, 거짓된 황금을 모으느라 밤에 황금의 영령들을 찾아다닌 건가? 이거, 내가 총독부로 가줘야 하나? 구 백작령 영지가 아니라, 바르셀로나 총독부로 황금의 영령들이 기어오게 말이야.”

     총독이 왜 총독부에 없냐하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니면 설마 나 말고 동생들 중 한 명을 바르셀로나 성으로 보내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행정관들을 믿어. 이번에 크게 성과를 보여야 황제께서도 그대들을 신임하시지 않겠나?”

     황금의 노예들은 무조건 지브롤터의 피를 노린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방해물로 여겨 무기를 뽑지만, 기본적으로는 대로를 이용하든 산을 타고 넘어오든 아니면 강을 헤엄치든 지브롤터 영지를 향해 진군한다.

     “무능왕의 흔적을 찾았거나, 아니면 이 황금을 처리할 방법을 찾아냈기를 바라네. 그렇지 않으면…우리 지브롤터는 평생 후작성에 갇혀 살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지브롤터의 피를 추적한다.

     만일 그 피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겠지.

     “한 번 말해보게. 이 수많은 황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총독님. 건설도시국에 소속된 행정관들의 의견을 수합하였습니다.]

     행정관 중 건설도시국장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행정관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건설도시국장을 바라보고, 건설도시국장은 마치 총대를 멘 사람처럼 긴장한 채 입을 열었다.

     [파악한 바에 따르면, 거짓된 황금은 일반 황금과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도는?”

     […집 짓죠?]

     

     건설도시국장의 말에 다른 행정관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벽돌 대신에 황금을 쓰는 겁니다. 어차피 잘 녹아내리기도 하니까, 벽돌 모양으로 굳혀서 쓰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바깥에는 흙을 바르든 석회석이나 대리석으로 된 벽돌을 쌓든.]

     “과연. 내부를 황금으로 채운다?”

     [예.]

     “…….”

     바르셀로나 총독부에서 일하는 행정관들은 개개인의 무력이 마스터급이라거나 상급 기사 중 으뜸이라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황제가 엄선하여 보내준 황제의 핏줄들이다.

     “그게, 최선인가?”

     [최선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당장 넘쳐나는 황금을 활용하기에는 적절하리라 판단됩니다.]

     그런 이들이, 이렇게 판단을 내렸다.

     “황금으로 집을 짓자?”

     [집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다 황금으로 지어버리죠?]

     “…….”

     황금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어버리자고.

     “채택.”

     […네?]

     “집도 만들고, 도로도 만들고, 이참에 황금으로 된 열차도 만들어보도록 하지. 마도자동선을 전부 황금으로도 만들고, 황금으로 만든 곡괭이로 금광을 캐기도 하는 거야.”

     [그, 죄송합니다! 저희가….]

     “죄송할 게 뭐 있나.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데.”

     [……네?]

     멀리서 마도구 통신을 통해 원격으로 회의를 하면 이게 문제다.

     나는 진심으로 이야기하는데, 행정관들은 마도구 통신을 통해 원격으로 내 목소리를 듣다보니 내가 진담인지 농담인지 목소리와 뉘앙스로 구분을 하지 못한다.

     “황금으로 집 짓자고. 어떻게, 총독부부터 황금으로 성을 만들까?”

     […….]

     “농담같나?”

     [아, 아닙니다. 그…추진, 할까요?]

     “그래.”

     나는 진지하다.

     “지금은 뭐라도 해야 해. 안 그래도 지금 은값이 금의 턱밑까지 쫓아가고 있는데, 이렇게라도 금을 사용하지 않으면 금이 은보다 더 저렴해질 거야. …시기상조지만.”

     그리고 이렇게라도 황금을 쓰지 않으면, 안그래도 황금대란 때문에 동요하기 시작한 제국 경제를 어떻게 진정시킬 수 없다.

     “계속 이야기해봐. 우리 한 번 황금을 어떻게 예쁜 쓰레기로 낭비할지,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자고.”

     

     장난치지 말라고 하기에는, 쏟아지는 황금이 너무나도 많다.

     * * *

     

     여기도 황금, 저기도 황금.

     

     온 세상이 황금으로 물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한 건 아니다.

     왜 사람들이 노스트럼에서 쏟아지는 황금을 두고 ‘거짓된 황금’이라고 부르겠는가.

     진짜 황금과 무슨 차이가 있길래 가짜황금이라고 부르며, 실제로 노스트럼 안에서도 무수히 쏟아지는 황금에 대하여 일단 확보는 하겠지만 그걸 가지고 뭔가를 하기 꺼려하는 걸까?

     죽은 시체를 움직이던 혈액이어서?

     뭔가 고인을 능욕하는 것 같아서?

     노스트럼의 영웅을 잠시나마 그 영혼을 담았던 물질이라서?

     그도 아니면 왕국과 제국 경제에 거대한 물가 상승을 가져올 걸 알고 개인 단위에서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진짜 황금과는 다른 ‘불안전성’ 때문이다.

     “연구 끝났어. 최종적으로.”

     바토리 에르제베트 소장이 두 달 동안 거짓된 황금을 연구한 결과가 나왔다.

     “광물로서의 황금과 거짓된 황금의 차이는 역시 하나 뿐이야. 광물은 영원하지만, 거짓된 황금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물질이라는 것.”

     기원이 자연인가, 아니면 자연의 무언가가 마법과 기적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인가.

     “기본적으로 황금과 같은 구조를 갖추고 있고 반응도 같지만, 어떤 특정 반응에는 다른 반응을 보였어. 그게 뭘 것 같아, 지브롤터의 도련님?”

     “지브롤터의 피?”

     “맞아.”

     눈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바토리 소장은 금괴 두 덩어리를 내 앞에 들이밀었다.

     “여기에다가 한 번 피 한 방울 떨어뜨려볼래? 아니다. 피가 아니라 침이어도 좋아.”

     “피라고 했을 때는 뭔가 엄청나보였는데, 침이라고 하니 뭔가 갑자기 확 내려가는 느낌이군요.”

     “진지하게. 어서.”

     “…….”

     나는 손가락 끝을 반대쪽 손의 손톱으로 짧게 그은 다음, 황금에 각각 피를 흘렸다.

     두근, 두근.

     한쪽 금괴가, 마치 심장이 박동하는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파스스스.

     “짜잔. 흔적도 없이 소멸했습니다.”

     “…….”

     “역시 내 예상대로야. 아, 오해하지는 마. 솜누스에 백은에 온갖 시약을 이용해 반응을 확인해봤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

     “속였군요. 바토리 소장.”

     “즉석실험이었지. 후후, 연구 끝난 거 맞았거든? 지브롤터의 피에 반응하면 그게 답인 거고, 지브롤터의 피에 반응하지 않으면 이건 인류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구불변의 황금이라는 거니까.”

     거짓된 황금은 지브롤터의 피와 반응한 뒤, 수 초 지나기 무섭게 안개처럼 사그라들었다.

     “뭔가 마법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노스트럼에 드리운 황금의 축복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는 오직 지브롤터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 뿐이다. 어때? 아니면….”

     “노스트럼을 심판할 수 있는 건, 지브롤터 뿐이다?”

     “그럴 수도 있고.”

     “…….”

     

     거짓된 황금에 마법이 걸려있고, 이 마법을 해주하기 위해 지브롤터의 피가 필요하다면.

     “…지브롤터의 피가 아니라면, 황금과 다를 바 없다는 거 아닙니까.”

     “응.”

     “…….”

     “실험, 계속 해볼래? 피와 금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거짓된 황금.

     -지브롤터가 건드리지 않으면 소멸하지 않는다.

     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것 참, 거짓된 황금을 예쁜 쓰레기로 만들 수도 없….”

     …….

     “바토리 소장. 혹시 예술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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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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