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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2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

   불사자라 불리는 그녀는 이 세계에서조차 매우 오랜 시간을 살아온 세계 침식자다.

     

   그녀가 지닌 저주이자 축복 ‘영원불멸’.

   그걸로 인해 불사가 되었지만, 육체는 영원히 잠들어 있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그녀는 수많은 종을 다루고 있었다.

     

   그녀는 잠들어 있음에도 그들을 통해 세상을 엿보며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닌 종 중 한 명이 만난 마법사 소년.

   마법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소년과 나누었던 마법의 진리에 관한 이야기.

     

   그때만 해도 크림슨가든조차 몰랐다.

   그 이야기 한 번이 소년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게 될 거란 사실을 말이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하고 방치한 거냐.”

   [ ……딱히 방치한 것도 아니다. ]

     

   크라슈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까마귀를 다그치듯 말했다.

     

   바이오렌에게 자리를 비워달라 한 이후.

   크라슈는 크림슨가든과 다시금 대치했다.

     

   그러자 까마귀는 크라슈의 눈을 피하며 멋쩍은 반응을 보였다.

     

   [ 애초에 내가 마황 녀석이 그 일로 인해 저렇게 성장했을 거라는 건 오늘 안 일이었으니까. ]

     

   크림슨가든도 그날의 대화는 기억하고 있다.

   어린 소년이 도달할 재능의 끝이 흥미로울 정도로 소년의 재능은 넘쳐흐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뿐.

   후에 그가 이름을 떨칠 때도 크림슨가든은 구태여 소년을 찾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년이 아직까지도 자신을 찾고 있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 기껏해야 나와의 이야기가 재능 성장에 조금은 도움 됐겠거니 했었지. ]

     

   문제는 그게 너무 과잉으로 도움이 되어 마황이 비뚤어진 계기가 되고 말았다.

     

   “마황이 널 찾아다녔었다고 했잖아. 그때 소식을 못 들었냐?”

   [ ……당시에 마황이 만났던 내 종은 염세주의자였다. 세계 침식으로 인해 남편과 배 속에 있는 아이까지 잃은 뒤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지.

   나름대로 도왔지만, 결국 자살은 막지 못했다. 그녀가 살던 마을은 자살하는 이는 묘비조차 안 만드는 풍습이 있어서 그 흔적만 지워주고 난 뒤 그쪽은 신경 쓰지 않았다. ]

     

   크림슨가든 입장에서는 돌봐준 종이 자살했으니.

   그 충격과 멀어지고자 오히려 그녀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등한시했던 모양이다.

     

   하여튼 마음 약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우연들이 겹쳐 결국 마황에게 황당한 꿈을 가지게 하고 말았다.

     

   “다시 만나볼 생각은?”

   [ 딱히 문제야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

     

   크림슨가든은 여러모로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 나도 마황에 관해 모르지는 않는데. 과연, 그 녀석이 얌전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겠느냐? ]

   “눈 안 돌아가면 이상한 일이겠지.”

     

   크림슨가든을 찾겠다고 세상을 이 잡듯 뒤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마황을 말릴 수 있는 이는 어디에도 없을 터.

     

   안전장치 제작이 물 건너감은 물론.

   백룡왕을 완전히 흡수하고자 받으려 했던 도움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만큼 곤란한 일은 없다.

     

   ‘크림슨가든을 미끼로 던지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커.’

     

   마황에게 있어서는 평생의 꿈이 될 만큼 가장 예민한 부분이었으니까.

     

   한참 동안 고민하던 크라슈는 문뜩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마황이 원하는 마법 대화 상대.”

     

   크림슨가든도 마침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거 그냥 내가 하면 되는 일, 아니냐?”

     

   크림슨가든이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크라슈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반응을 보이려다.

   이내 말의 뜻을 이해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그러니까 내 대역을 하겠다. 이 말이더냐? ]

     

   크라슈가 정답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림슨가든의 목소리는 늘 크라슈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 크림슨가든 대신 그녀의 목소리를 마황에게 전해준다면 마황이 원하는 마법의 진리에 관해 이야기할 이가 되어줄 수 있다.

     

   ‘원래라면 놈이 마법 종족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 하나가 어디 숨어 있는지 거래할 속셈이었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놈이 원하는 타인과의 교류의 욕구를 채워주는 게 훨씬 유용할 것 같았다.

     

   적어도 그걸로 마황을 확실하게 이쪽 편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 확실히 나쁜 제안은 아니긴 하지만. ]

     

   크림슨가든은 살짝 찝찝한 얼굴로 크라슈를 보았다.

     

   [ 옛날의 어린 소년 시절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마황은 어디로 튈지 모를 종잡을 수 없는 놈이다. ]

   “그걸 알고도 찾아온 거잖냐.”

     

   크라슈가 백룡왕의 힘을 흡수하는 데 마황의 도움을 받으려는 이유는 그가 마법 종족 창조를 위해 쏟아 부운 연구 결과를 알기 때문이다.

     

   마황은 종족 창조를 위해 수많은 타종족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거기에는 기존 종족을 다른 종족으로 탈바꿈시키는 비윤리적인 연구도 더러 있었다.

     

   ‘지금 난 쓸 수 있다면 뭐든 써야 하는 마당이야.’

     

   자칫하면 익시온과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크라슈는 하루라도 빨리 백룡왕의 힘을 전부 흡수해야만 했다.

     

   “어때? 될 거 같아?”

     

   마지막으로 크라슈가 묻자 크림슨가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되게 만들어야겠지. ]

     

   옳은 소리를 했다.

   크림슨가든의 말대로 이건 되게 만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크라슈는 문을 박차고 나왔다.

     

   어디, 마황 놈, 마법으로 논파해서 자지러지게 만들어 보자.

     

     

   * * *

     

     

   프레이야 산맥.

   드넓은 산이 끝없이 이어진 평원 위.

     

   한 소년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불어온 바람이 그의 은발 머리카락을 조용히 휘날렸다.

     

   하늘을 보는 그의 눈은 무척이나 무감정하게 보이기도 했다.

     

   사박-

     

   그때, 그의 귀에 발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그가 발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다른 소년이 있었다.

     

   이제는 어린애 티를 벗어 던지고, 성인의 얼굴을 한 소년.

     

   크라슈 발하임.

     

   그와 마주한 마황, 테라시우스 제블람은 크라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화할 생각이 생겼나요. 선배님?”

     

   그러자 얼굴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의 입에서 무척이나 발랄한 소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 같지 않은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발랄한 목소리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감정이 없는 생물이 마치, 인간의 감정을 따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크라슈는 소름 돋는 기분과 함께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마법은 만물의 창조라 불리지만 실상은 인간의 얄팍한 상상력 안에서 표현되는 한계점에 지나지 않는다.”

     

   뜬금없이 내뱉어진 마법의 정의.

   그 말을 들은 순간 처음으로 테라시우스의 얼굴이 미묘한 빛을 띄웠다.

     

   마치, 이것 봐라? 하는 같잖은 어린애를 보는 얼굴이었다.

     

   “인간의 상상력은 자신이 본 것과 경험으로 기인하고, 그 말은 즉, 마법의 영역을 늘리는 것은 곧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것으로 이어진다.”

     

   크라슈의 다음 말을 듣고, 테라시우스의 입이 따라 열렸다.

     

   “그렇다고 한들 결국 인간은 자신이 보고 경험하고, 습득한 지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똑같이 복사하여 창조해낸 세상은 새로운 세상이라 할 수 있는가.”

     

   다음 말은 테라시우스가 연구하는 마법 종족을 관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스스로가 알고 있는 정보를 입력해내어 출력된 세상은 똑같은 이론과 결론에 도달할 뿐, 해결점으로는 작용할 수 없다.”

     

   지금까지 테라시우스가 해온 연구는 과연 가치가 있는가.

   그의 개인 욕망을 위해 비윤리적으로 희생당한 이들에게 가치가 있는가.

     

   크라슈가 그곳에 의문을 던진 순간 테라시우스는 가볍게 웃었다.

   거기까지는 누구나 내놓을 수 있는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 인간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것들을 부수는 것부터 시작한다.”

   “부순다면?”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우선, 언어.”

     

   테라시우스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이 바뀌었다.

     

   “언어란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를 제약한다.

   예시로 ‘나는 오늘 아침밥을 먹었다.’라는 12글자로 이어진 단어가 어디 소수민족에게서는 ‘바코.’ 2글자로 좁혀지기도 한다.

   이처럼 언어는 인간의 사고의 방식을 조잡하게 만드는 기초적인 제약이다.”

     

   아름답다.

   예쁘다.

     

   아름다운 것을 본 인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표현이 그림으로서 그려짐에도 습득한 언어의 제약으로 인해 인간은 한정된 표현밖에 하지 못한다.

     

   그러니 크라슈는 상상력을 늘리기 위해 언어의 제약을 먼저 부술 것을 논하였다.

     

   “거기서 부터 하나둘 지닌 모든 것들을 버린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인간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기초적인 감각으로 얻는 정보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한계점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창공을 가로지르는 새는 자외선 영역의 빛도 인지할 수 있다.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는 초음파를 감지한다.

     

   이와 같아 인간이 보는 세계는 아주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한계점을 모두 돌파했을 때, 비로소 이제 마법의 기초에 도달할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하고 본 것을 상상하여 모방한 것이 마법.

   그러니 세계의 모든 경험을 지니고서야 마법은 시작된다.

     

   마법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를 크라슈가 언급한 순간 테라시우스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별소리를 다 하는군.”

     

   의외로 돌아온 대답은 무덤덤했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미세한 떨림과 함께 조금씩 흥분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더 이야기해 봐야 할 게 많을 듯싶군.”

     

   그의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그것이 좋은 신호임을 단번에 눈치챘다.

     

   “어디 해봐.”

     

   이번에는 이쪽이 들어주겠다는 듯.

   크라슈의 입에 잔망스러운 웃음이 거닐어졌다.

     

   그리고 시작된 마법의 논의가 두 사람에게서 계속 이어졌다.

     

   때로는 서로의 의견을 들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의견을 논파하기도 하며.

   둘은 계속해서 마법의 진리에 도달하고자 끝없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날을 새도록 이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죽을 맛이었던 건 크라슈였다.

     

   ‘썩을, 다시는 안 한다.’

     

   크림슨가든의 말을 단순히 전하는 것뿐이지만.

   크라슈는 대화에 맞는 연기를 하고, 진심인 것처럼 말해야 했다.

     

   연기는 나름의 특기 분야라 한들 그것이 밤새도록 이어지면 이쪽도 한계에 도달하는 법이다.

     

   문제는 크라슈를 제외한 둘이 너무 흥이 나버렸다는 점이다.

     

   ‘한 가지 깜빡했다.’

     

   크림슨가든 또한 지독한 마법 마니아였는데, 똑같은 놈을 두 명이나 붙여 놨으니.

   이야기의 끝이 있을 성이 있나.

     

   문제는 이야기가 너무 심오하게 흘러가기 시작하니 크라슈도 도중부터 이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완전히 천재의 영역에 들어서고 만 것이다.

     

   그러니 크라슈는 여기서 멈춰야 할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이 대화가 이어진다면 크라슈가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날이 샜네. 여기까지 하자고. 애들도 걱정할 테니까.”

   “아.”

   [ 흠. ]

     

   마법 마니아들답게 둘 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쉬움이 담긴 눈으로 크라슈를 보던 마황은 뒤늦게 자신이 마법의 진리에 관해 누군가와 떠들었음을 눈치챘다.

     

   “테라시우스 제블람.”

     

   아직 마법을 주제로 논의한 것으로 열기가 끝나지 않은 시점.

   마황은 이번 대화에서 어쩌면 크림슨가든의 존재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네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어. 내 신변의 위협이 되는 일이라. 꼭 좀 하고 싶다.”

     

   그러니 크라슈는 일부러 그가 의문을 보이기 전에 조건을 제시하며 미리 경고의 의미를 담았다.

     

   네가 설령 눈치챘더라도 앞으로 크림슨가든과 대화를 하기를 원한다면 모른 척하고, 이쪽을 도우라고 말이다.

     

   마황은 크라슈를 가만히 직시했다.

   그러고는 이내 그의 눈에 번들거리는 욕망이 은근하게 서렸다.

     

   마황은 이미 한 번 마법을 교류할 수 있는 이를 잃은 경력이 있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을 것이다.

     

   크라슈는 그 점을 자극 시켰다.

   마황이 크라슈 너머에 있는 크림슨가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크라슈를 돕도록 말이다.

     

   “……알아두지.”

     

   그 의도에 결국 마황도 어울려 주었다.

     

   마황에게 있어 평생의 결핍.

   그것을 채워준 크라슈에게 마황은 완전히 족쇄가 채워지고 말았다.

     

   불어온 바람을 따라 크라슈의 검푸른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떠오른 태양을 따라 빛나는 크라슈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좋은 이야기였어. 다음에 또 하자.”

     

   독종은 독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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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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