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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3

       비행이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전생에도 비행기를 타본 적은 있었고, 이쪽에 와서도 비행선을 타는데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빌딩 옥상처럼 어중간하게 높은 곳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서 있어야 한다면 당연히 다리가 후들거리겠지만, 일반적으로 ‘비행기’ 혹은 ‘비행선’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탈것이었다.

        

       당연히 그 안에 있다고 갑자기 땅으로 훅 떨어질 걱정 따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불의의 사고로 그 탈것 자체가 떨어진다면 모를까.

        

       비행기는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한 방향으로 날아가기에 오히려 안정적이었고, 비행선은 애초에 공중에 고정되듯 떠 있으니 기상악화가 아니라면 유난히 흔들릴 일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폰은…… 그리폰의 등 위는 다르다.

        

       그렇다. 그리폰의 날개는 그리폰의 ‘등’에 달려있다. 그리고 나는 그 ‘등’위에 타 있고.

        

       공중에 떠 있기 위해 그리폰이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그에 맞춰서 몸도 위아래로 요동을 쳤다. 그렇다고 그리폰이 내가 걸터앉아있는 어깨와 등 사이 부분을 가만히 두는 것도 아니었다. 펄럭거리는 소리가 한 번 들릴 때마다 내 눈이 위아래로 요동쳤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 앉은키 정도는 되는 높낮이는 될 것이라 확신한다.

        

       “퓌요오오오!”

        

       원래대로라면 그림이 되어야 할, 공중에서 앞발을 들어 보이며 뒷발로 서는 것 같은 자세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냥 뒤로 굴러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은 무서운 자세일 뿐이었다.

        

       아니, 그보다 공중에 뜬 상태로 굳이 그런 자세 취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아까 공중에서 내려올 때는 물리법칙을 죄다 무시하면서 날개를 눈곱만큼도 안 움직였잖아. 왜 지금은 이렇게 날개를 펄럭이면서 날고 있는 건데?

        

       물론 아래쪽에서 내 표정이 잘 보이는 것은 아닌 모양이라, 이쪽을 올려다보는 기사들은 모두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그리폰을 지배하는 자’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는 일은 없었다. 하긴, 애초에 그 이야기는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니까. 설화에서 ‘먼 훗날 진정한 팬그리폰이 그리폰을 이끌고 나타날 것이다’ 같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세계의 권력은 법률에 따르는 것이다. 그러니 기사들은…… 음,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굴러가고는 있어도 일단 지금까진 황제의 아래 있는 이들이었다.

        

       다시 한번 귀를 찢는 것 같은 독수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리폰은 그대로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하강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솔직히 비명을 지르지 않은 나를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는 시간도 못 돌리게 되었을 것이 뻔하니,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테니까.

        

       쿵, 쿵, 하고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용맹하게 함성 비슷한 것을 지르다가 깩, 하는 소리를 내는 것도 들렸다.

        

       그리폰은 굳이 발톱을 휘두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저공으로 비행하며 아래를 쓸어버리는 것만으로도 기사들이 나가떨어졌으니까.

        

       조금이라도 긁혔지만 버텨낸 샤를로트가 대단할 지경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요행이었다.

        

       아마 그리폰이 바닥을 쓸어버리고 착지한 덕분에 조금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뜬 내 얼굴을 향해 소총 한 자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황급히 소총을 받았다. 반사적으로 확인해보니 안에는 총알이 들어있었다.

        

       눈을 끔뻑이며 그리폰을 보았다.

        

       내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린 그리폰은 ‘훗’ 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왠지 열받았다.

        

       ……오냐, 그냥 등 뒤에서 꿀이나 빨고 있지는 말라는 말이지.

        

       적막에 싸였던 공간은 다시 칼 부딪히는 소리로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그리폰이 나타났어도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다. 황제는 여전히 그대로 서 있었고, 루카스도 아직은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검성과 일대일로 싸운다면 루카스가 이길 가능성이 크니 오히려 검성을 칭찬해야겠지만.

        

       나는 양손으로 소총을 꽉 잡았다.

        

       그리고 양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안장이고 뭐고 없어서 솔직히 다리가 쓰라렸다. 그리폰의 깃털은 얼핏 보기에는 무척 부드러웠지만, 막상 피부가 닿으니 쓰라릴 정도로 빳빳했다.

        

       그러니, 전투는 최대한 일찍 끝내는 것이 낫겠지.

        

       다시 한번, 서부극에서나 나올 법한 위엄찬 맹금류 소리를 내며, 그리폰이 날아올랐다.

        

       *

        

       그건 정말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리폰의 뒤에 타고 있는 실비아가 정말로 팬그리폰과 같은 모습일 리는 없었다. 사실 팬그리폰의 성별에 대해서는 제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없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팬그리폰은 그림에서 남성으로 그려졌으니까.

        

       그리고, 설화에서처럼 제멋대로 생긴 모습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혼돈 속에서 태어나 기형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말을 애써 무시하듯, 팬그리폰의 모습을 그린 그림 안에서 그는 위풍당당한 근육질 백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니 설화와도, 그림과도 맞는 모습은 아니다. 아니긴 하지만.

        

       앞발을 든 채 포효하는 그리폰. 그리고 그 그리폰의 날개를 따라 내리쬐는 빛.

        

       그리폰의 등에 올라탄 채 무표정하게 소총을 장전하는 실비아.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팬그리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

        

       앨리스는 순간 실소를 지었다.

        

       아직도 그녀의 머리로는 상황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실비아가 보아 온 것들을 그녀가 보지 못해서, 가 아니었다.

        

       아까 그 순간, 그러니까 클레어와 실비아가 함께 장치를 구동시켰던 그 순간을 기점으로, 머릿속에 너무 많은 정보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이전에 이미 겪어본 것 같은 기억들’이 갑자기 마구 떠오르듯.

        

       비슷한 상황 비슷한…… 하지만 어딘가 명백하게 다른 상황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듯, 아니, 마치 잊고 있던 사실들이 갑자기 마구 떠오르는 것 같았다.

        

       분명히 같은 순간 같은 장소일 텐데도 어딘가 다른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들에는 실비아의 얼굴이 끼어 있었다.

        

       앨리스는 급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한순간이지만, 실비아와 얼굴을 알고 지내던 이들이 몸을 멈췄던 것 같기도 했다. 그리폰이라는 존재 때문에 적들도 시선을 빼앗기고 몸을 멈추지 않았다면 분명 큰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

        

       앨리스와 눈을 마주친 클레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앨리스는 이해했다.

        

       아, 그렇구나.

        

       이 기억은—

        

       …….

        

       좋아.

        

       앨리스는 양손으로 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을 허투루 배운 이는 아닌지, 바로 검을 들어 앨리스의 검기를 막아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는 것으로, 앨리스는 잡념을 떨쳐냈다.

        

       좋아. 일단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기로 하자.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기는 하지만, 그건 나중에 다 끝나고 물어봐도 되는 일이니까.

        

       그 해피엔딩이 뭔지도 조금 궁금하고.

        

       앨리스는 앞으로 뛰어나가면서 생각했다.

        

       *

        

       좋아, 요령이 붇기 시작했다.

        

       한평생 총을 쏘아온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외로 날뛰는 그리핀 등 위에서 쏘는 총이 그럭저럭 맞았다. 심지어 쏘면 쏠수록 명중률이 더 올라가는 기분이다.

        

       총알을 다 쏠 때마다 대체 어떻게 주워다 던지는 것인지, 그리폰은 나에게 총알이 들어있는 가방이나 탄띠들을 휘릭 휘릭 던져주었다.

        

       ……솔직히 그냥 너 혼자 날뛰면 끝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폰은 그리폰대로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으니까.

        

       혹시 법국과 제국의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는 거 아닐까? ‘자길 구해준 나’와 ‘그 이외의 사람’으로 구분해서 그냥 날뛰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뭐, 나를 볼 때의 표정을 생각해보면 마냥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기는 하다만.

        

       “퓌요오오!”

        

       어쩌면 오랫동안 갇혀있다가 드디어 날뛸 수 있어서 즐거운 걸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가 사람이 죽는 거라는 것이 좀 무섭긴 했지만.

        

       발톱을 휘두르고, 날개로 바람을 일으키고. 심지어 날개 근처에서는 얼음창이니 화염구니 하는 것들이 생성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턴제 게임인 원작에서 볼 때는 온갖 속성에 상태이상 내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 전속성을 다 방어할 액세서리가 없으면 온갖 방식으로 두들겨 맞아서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턴제’ 같은 것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지금 상황에서 보면 정말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비아!”

        

       그리폰이라고 마냥 무적인 건 아니지.

        

       ‘원작’에선 그리폰을 쓰러뜨릴 수 있었으니까.

        

       저 멀리, 그리폰조차 신경 쓰지 못한 곳에서 검기가 날아왔다.

        

       그리폰은 황급히 한쪽 날개를 들었다.

        

       피슉, 내 얼굴에 붉은 피가 점점이 튀었다. 나를 감싸듯 들어 올린 오른쪽 날개에서, 그리폰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날개가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나는 나에게 검기를 날린 인간이 누구인지 볼 수 있었다.

        

       웃고 있는 루카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 화는 금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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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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