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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3

    그렇게 루크가 도착한 곳은 이제는 루크 숲 만큼이나 익숙해진 장소, 리엔느 숲이었다.

     

    곧 웨이브가 시작될 위험이 있는 루크 숲에 들어갈 수 없는 지금은 리엔느 숲만이 유일한 대안이었으니까.

     

     

    현재 리엔느 숲은 루크 숲으로 지원나간 인력들 탓에 숲지기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아 몰래몰래 마나를 빼먹기에는(?) 굉장히 적합한 곳이었다.

    물론 숲의 마나에는 가치를 매기지 않으니 도둑질인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자신 정도 나이의 어린아이가 혼자서 숲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위험하다며 잔소리를 듣거나, 집에 돌려보내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루크는 루크 숲에서 있었던 샌슨과의 일을 떠올리고선 한차례 몸을 떨었다.

    그런 어른들을 설득시키는 것도 귀찮은데다 피곤한 노릇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숲은 딱히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장소는 아니었다.

     

    루크에게 숲이란 보통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하는 것을 기대하기보단, 마나를 쌓으며 명상을 하고 싶은 곳이었으니까.

     

    그렇게 리엔느 숲 초입을 벗어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간 루크는 한차례 주변을 훑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루크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웃음을 지었다.

     

    “숲의 향이 좋구나.”

     

    흙과 나무, 그리고 낙엽이 쌓여 나는 냄새는 이 계절의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냄새다.

    그렇게 폐를 가득히 가을의 향을 머금고 나면, 마나를 심장에 차곡차곡 개어넣은 뒤 다시 천천히 뱉어내며 가슴을 움츠린다.

     

    “마나도 훌륭하고.”

     

    이 정도면 리브에게 먹이기엔 충분히 맑고 청량한 마나다.

     

    루크는 근처에 있는 돌 위에 리브를 앉혀 놓으며 말했다.

     

    “리브, 여기에선 마음대로 움직여도 될 게다.”

     

    루크의 허락이 떨어지자, 리브는 곧바로 몸을 벌떡 일으키며 몸을 움직여댔다.

     

    팔을 붕붕 돌려 보기도 하고, 다리를 탈탈 털기도 한다.

    머리를 원으로 뱅글뱅글 돌리기도 하고, 좌우로 도리질 치기도 한다.

     

    마치, 검투사가 전투 직전에 몸을 푸는 것만 같다.

     

    하지만 조그맣고 무해해 보이는 곰인형이 그러고 있는 것을 보니, 마치 어린아이가 재롱을 떠는 것 같은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루크는 큭큭, 웃으며 말했다.

     

    “큭큭, 어차피 인형의 몸인 것을, 굳이 관절을 풀 필요가 있느냐? 단단한 갑옷과는 달리, 솜과 천은 구동부에 문제가 생길 일도 없을 텐데.”

    “…….”

     

    리브는 잠깐 놀란 듯 루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가, 그러고보니 그렇네, 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인형의 몸에는 익숙치 않은 모양이다.

     

    루크는 바닥에 치마가 닿지 않도록 꼬리를 다리에 딱 붙여서 치맛단을 잘 붙잡은 뒤 쪼그려앉아 그런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갑고 단단한 아세릴 갑주와는 달리, 참으로 만지는 맛이 있는 몸으로 변하지 않았나?

    인형의 몸에 리브를 담는다는 생각은 이제와 생각해보아도 참 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루크는 시간을 돌려 리브를 살려내기 전, 한번 리브의 마력핵을 파괴했던 감촉을 떠올렸다.

     

    ‘내게 그걸 다시 하라고 한다면 못 할 것 같구나.’

     

    주인이 바뀌며 인격이 조작당했다고 생각해서 편하게 만들어주고자 어쩔 수 없이 행한 일이었지만, 자식과도 같은 창조물을 제 손으로 부수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정말 오랜 세월의 추억이 녹아 있는 물건이기에 더더욱.

     

    하지만, 자신은 한번 리브를 죽였다.

     

    세뇌를 당했던 것도 아니고, 자아가 변질되거나 초기화된 것도 아닌, 레니에와의 추억이 그대로 깃든 그 소중한 리브를 단지 자신을 적대한다는 이유로 죽였다.

    자신이 그 ‘루크 이루시’라고 알리고자 일말의 노력도 해보지 않고, 단순히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검을 겨눴다는 이유로 마력핵을 파괴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섣부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엔 마음에 여유가 별로 없었으니까.

     

    루크는 그것에 대해서는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리브에게는 옛날보다 더 많은 애정을 쏟고 싶었다.

     

    사실은 그것이, 리브의 몸으로 곰인형을 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정작 리브는 ‘역천의 모래시계’의 영향으로 죽음으로부터 시간이 돌아간 탓에 자신이 루크의 손으로 한번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생각을 마친 루크는 리브를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붕어빵 봉투를 바라보았다.

    붕어빵 봉투는 여전히 묵직하다.

     

    잠시 후, 루크는 퍼뜩 생각났다는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중얼거렸다.

     

    “아차, 그러고보니 시루드한테 붕어빵을 고작 하나밖에 안 줬구나.”

     

    남는 건 파이리스에게 갖다 준다고 하긴 했어도, 일부러 많이 받아서 시루드와 나눠 먹으려고 붕어빵 장수에게 ‘부탁을 잘 들어주는 자세’까지 썼던 건데.

    이래서야 정말로 혼자서 다 먹게 생겼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시루드는 저 멀리에 있는 것을.

    루크는 뒷목을 긁적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하나를 깊이 생각하면 하나를 잊어버리니 원…….”

     

    평소에 너무 많은 걸 생각하기 때문일까.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는 깜빡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

     

     

    리브는 그런 루크를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아까도 게임인지 뭔지를 하다가 자기가 가방에서 온갖 물건에 짓눌리고 있었다는 것 조차 까먹더니, 그런 것도 까먹느냐’라는 듯 한 뉘앙스였다.

     

    루크는 그런 리브의 시선을 피하며 변명하듯이 중얼거렸다.

     

    “뭐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건망증도 오고 그러는 법이지. 다 그런 것 아니겠나.”

    “…….”

     

    그런 루크의 생각을 읽으려고 하는 것인지, 리브는 허리춤에 팔을 올린 채 루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정말이야?’라고 묻는 듯하다.

     

    “……사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사실, 건망증 비슷한 것이 온 적은 없다.

     

    루크가 죽고 자신이 모든 주도권을 넘겨받은 순간에 가장 먼저 기억은 손상되지 않도록 서클에 모조리 백업해 두었으니까, 기억을 잃어버릴 턱이 없다.

    아마도 그 서클에 백업된 기억들이 가장 먼저 살아났기 때문에 자신이 ‘루크 이루시’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겠지.

     

    그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 몸에 자신의 기억을 담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고.

     

    게다가 ‘서클인 자신’이 루크 이루시임을 부정한다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스스로를 의심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루크 이루시’라는 자아가 쌓아올린, 분명한 ‘루크 이루시’였기 때문에.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리브는 갑자기 루크가 말을 멈춘 것이 걱정되었는지 루크의 손을 툭툭 쳤다.

     

    “아.”

     

    리브의 접촉에 상념에서 벗어난 루크는 피식 웃으며 주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여기까지 가져오니, 붕어빵도 많이 식었군.”

     

    붕어빵의 봉투는 종이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뜨거운 붕어빵에서 나온 수증기로 습기가 차서 조금 젖어있었다.

    하나 집어서 꺼내 반으로 잘라보니, 처음의 뜨거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아무래도 루크 숲 보다는 리엔느 숲이 아카데미에서 가깝긴 하지만, 리엔느 숲까지 오는 길 역시 보통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루크는 오히려 그렇게 된 붕어빵을 반겼다.

     

    뜨겁지 않으면 무서울 것이 없다.

     

    -합.

     

    루크는 반으로 자른 붕어빵을 크게 베어물었다.

     

    “으음…….”

     

    먹다보니 달콤한 단팥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달콤한 단팥은 식었음에도 꽤 훌륭한 미각적 자극이 되었다.

    정말 너무 맛있어서 어쩌질 못하겠다고 말할 정도의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출출할 때 먹으니 상당한 별미였다.

    적당히 간식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맛이다.

    이제보니 생선처럼 생긴 형태도 나름 재미있는 것 같다.

     

    붕어는 전혀 들어가지 않지만.

    그건 여전히 불만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반찬으로 생선을 사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순식간에 붕어빵 하나를 먹어치운 루크는 곧 다음 붕어빵을 꺼내 입에 물었다.

     

    “…….”

     

    그런데, 리브가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

     

    “리브, 뭘 그리 보느냐?”

    “…….”

     

    그러자, 리브는 팔로 자신이 바라보는 것을 가리키며 루크를 올려다보았다.

     

     

    리브가 바라보고 있던 것은 개미의 행렬.

    루크는 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개미를 왜 그리 뚫어져라 보고 있던 거지?”

     

    설마 리빙아머인 리브가 돌연 곤충에 관심이 생긴 건 아닐 테고.

     

    그러자 리브는 다시금 팔을 뻗어 한 개미를 가리켰다.

    리브의 팔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향한 루크는 곧 리브가 무엇을 그토록 곰곰히 고민하고 있었던 것인지 깨달았다.

     

     

    그 개미가 옮기고 있는 것은, 루크의 붕어빵에서 나온 단팥이었다.

     

     

    아마도, 주인의 소유인 물건을 훔쳐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곤충을 처벌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처음 리브에게 부여한 자아는 5000년 전의 법률과 문화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리브는 여전히 도둑질을 한 자는 손을 베고, 사기꾼은 혀를 자르며, 살인자는 목을 벤다는 아주 기초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아린세이아가 멸망하고 나서 얼마나 더 오랜 시간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던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기준이 바뀌지는 않았으리라.

     

    물론 도둑질한 물건의 가치에 따라서 차등을 부여하기는 했으나, ‘붕어빵’이 리브의 자아에서 어떤 값어치를 지니고 있는지는 순수하게 루크의 반응에 의거한다.

     

    리브는 루크가 붕어빵에 별 관심이 없었다면 개미가 그것을 가지고 가건 말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루크가 붕어빵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브는 붕어빵을 ‘값지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때문에, 개미가 그 ‘값진 물건’을 도둑질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상 그 원리원칙대로 이행하기 위해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리브는 저 개미의 손, 그러니까 앞다리를 자르는 것이 올바르다.

     

    하지만, 루크는 현재 리브에게 ‘자신의 허락 없이 다른 이들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는 명령을 추가했기 때문에, 그것이 기존의 명령과 충돌하고 만다.

     

    아마도 그 때문에 기준에 혼란이 있는 것이겠지.

     

     

    루크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냥 두거라. 고작해야 붕어빵이고, 개미도 겨울을 준비하는 것 뿐이니.”

     

    거기서 멈추지 않고, 루크는 오히려 붕어빵의 머리를 떼어 개미에게 건네며 말했다.

     

    “리브, 이 시대는 옛날처럼 맛있는 음식이 귀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 하나하나에 너무 심각하게 연연할 필요 없단다.”

    “…….”

     

    그렇게 개미를 바라보던 리브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 알아들은 모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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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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