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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3

        

         

       반투명한 소녀는 허공에서 하늘거렸다.

       매미의 날개처럼 얇은 실크가 바람에 흔들흔들 움직이는 것처럼 살랑였고, 금방이라도 손을 휘저으면 사라질 신기루처럼 덧없이 움직였다.

         

       피부는 희다 못해 창백한 수준이었으며, 예쁘장하기는 했으나 얼굴에는 생기가 없어 인형 같은 느낌을 주는 소녀.

       소녀는 창백하게 질린 피부를 가지고, 순백의 눈보다도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하얀색으로 허공에서 흔들거렸다.

         

       얕은 바다의 밑바닥에 누워서 바라보는 해파리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을까.

         

       “으읍-!”

       “하하하. 윌리엄 도련님, 너무 좋아하시는군요. 하기야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인데 어찌 참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참아주시지요. 식을 마치고 영원히 함께하게 되면 하루하루가 꿀같이 달콤한 나날일 것인데, 어찌 그새를 참지 못한단 말입니까.”

       “읍-!”

       “본디 색욕이라는 것은 중간에 위치해야 하는 법. 색욕이 적어도 많아도 반드시 불화가 일어나고 파탄이 일어나기 마련이지요. 도련님께서는 마땅히 절제의 미덕을 깨달아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영원히 유지하셔야 할 것입니다.”

         

       토마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영원히.”

         

       짧은 단어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한 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묘한 힘이 서려 있었다.

       서로 다른 둘을 단단히 결속하는 듯한 무게가 서려 있었다.

         

       토마스는 자신이 말로만 강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듯 직접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푸욱!

         

       그는 자기 몸에 날카로운 금속을 꽂았다.

       못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는 몸에 못이 꽂히는 고통을 견뎌내었다.

       아니, 단순히 꽂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못을 한 바퀴 돌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는 상처를 후벼파며 넓혔고, 충분히 되었다 싶을 때 못을 빼냈다.

         

       “자. 윌리엄 도련님. 이제 결혼식을 시작합시다.”

         

       그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윌리엄에게 걸어갔다.

       그는 제 몸뚱이의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조종해 실처럼 만들었고, 그 실을 윌리엄의 옷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윌리엄의 옷 안으로 들어간 실은 옷감이 짜이는 것처럼 촘촘하게 윌리엄의 피부에 달라붙었고, 이윽고 뭉치고 굳어지며 뼈대를 만들어 윌리엄의 몸을 단단하게 고정했다. 그리고 탄탄하면서도 끈끈한 옷감과 같은 것이 뼈대 사이를 메우면서 그의 몸을 감쌌고, 그렇게 감싸진 표면에 사람의 근육과 비슷한 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읍-!”

         

       윌리엄은 자기 몸에 이상한 것이 덮이는 것이 싫었는지 소리를 내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윌리엄은 모두의 무관심 속에 몸에 피를 이용해 만든 보디슈트(Bodysuit)가 강제로 착용되었고, 그 보디슈트는 윌리엄의 뜻이 아니라 토마스의 뜻에 따라 움직이며 그의 몸을 움직였다.

         

       “자. 이제 풀어드리겠습니다.”

         

       윌리엄은 결박에서 풀렸음에도 자기 뜻대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토마스의 뜻에 따라 자기 몸을 보디슈트의 인공 근육에 맡긴 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읍-!”

         

       윌리엄은 결박에서 풀려났음에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에 한탄하며 항의했다.

         

       하지만 그 항의는 아까와 별다른 것이 없었다.

         

       결박을 풀기는 했으되 그의 입에 물려있는 재갈은 그대로였으니까.

         

       그는 재갈 너머로 언어가 되지 못한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고, 짐승이 입이 묶인 채 내는 듯한 소리만을 낼 수 있었다.

         

       ‘개자식아! 그만두라고!’

         

       윌리엄은 그저 속으로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욕설도, 항의도, 한탄도.

         

       그 모든 것은 그의 입에 단단하게 물려있는 재갈 덕분에 형태조차 이루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윌리엄은 뚜벅뚜벅 문 쪽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몸을 조종하는 보디슈트의 지배를 받은 채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신랑의 모습이었다.

         

       보디슈트는 그가 입고 있는 옷의 안쪽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크기나 부피도 그렇게 크지 않아 그를 뚱뚱하게 보이게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얼굴 역시 재갈이 물려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주 그럴싸한 모습이었다.

       머리가 단정하게 빗겨져 있는 것은 물론, 가볍게 메이크업까지 되어 있었다.

         

       재갈만 없으면 흔히 볼 수 있는 새신랑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결혼식에 설레 하는 새신랑 말이다.

         

       분노 때문에 빨갛게 되어버린 얼굴은 결혼식의 설렘 때문에 붉게 변한 것처럼 보였고, 어색해 보이는 몸짓은 결혼식이라는 인생의 중대사 때문에 긴장한 것으로 보였으며, 재갈 때문에 숨 쉬는 것이 살짝 불편해서 조금 거칠어진 숨은 아리따운 신부의 모습을 기대하는 새신랑의 모습 그 자체였다.

         

       “훌륭한 신랑의 모습이군요. 아, 그 자그맣던 아이가 이렇게 크게 되다니 저는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토마스는 그러한 윌리엄의 모습을 보며 감개무량하다는 듯 말했다.

       어릴 적 윌리엄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았고, 다 커버린 윌리엄의 모습이 대견하다는 듯 그를 자애롭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럼 신부의 차례로군요.”

         

       토마스는 캐리어로 다가가 유령에게 이제 네 차례라는 듯 눈짓했다.

       그러자 멍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 있던 소녀의 유령이 허공에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름이 하늘 위에서 떠다니듯 느릿느릿하고 가볍게 말이다.

       소녀는 해파리가 바다를 떠다니듯 표표히 움직였고, 웨딩 드레스 자락을 하늘거리면서 천천히 문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신랑과 신부가 문 쪽에 자리를 잡았고,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자 둘은 순서에 맞게 버진로드(Virgin Road)를 걸어 토마스의 앞까지 다다랐다.

         

       “자. 지금 여기, 어릴 적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소년과 소녀가 있습니다.”

         

       토마스는 두 사람이 자신의 앞에 서자 주례사부터 시작하였다.

         

       그의 얼굴에는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는 것을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마치 아버지라도 되는 것처럼 둘에게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둘의 미래를 축복하였고, 진심으로 주례를 설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산을 깎고 강의 모양을 바꾸는 매서운 시간의 풍파. 온갖 시련을 주면서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사회. 그리고 좋지만은 않은 이웃들까지…. 둘에게는 수많은 시련이 있었고, 그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와 둘을 괴롭히곤 하였습니다.”

       

       선의.

       그에겐 오직 선의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둘은 그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았고, 서로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기를 멈추지 아니하였습니다.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오직 사랑을 보석처럼 여기며 소중하게 간직해왔고, 다른 것이 풍화되고 짓눌릴지언정 오직 사랑만은 흠집 하나 없이 그렇게 소중히 간직하여 마침내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토마스는 둘을 바라보았다.

         

       재갈이 물린 채 자신을 노려보는 윌리엄.

       멍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 있는 비아트리스.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누군가는 말하였습니다. 인간은 반쪽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을 완전하게 하려고 다른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라고. 그리고 마침내 하나가 되어 완전해지는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고 말입니다. 그 말처럼 사람이란 사랑으로 완전해지고, 사랑으로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이 하나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완벽한 반쪽과 결합하여 완전한 하나가 될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윌리엄은 한때 반쪽을 상실하였다.

       어린 시절의 풋풋한 사랑이었을 분홍색의 색채는 끔찍한 핏빛으로 덧칠되었고, 그 비릿한 피비린내는 지금까지 남아 윌리엄을 괴롭혀왔다.

       그렇게 윌리엄은 평생 새로운 반쪽조차 찾지 못한 채, 계속해서 고통받고 그 고통을 남에게 주는 것을 되풀이하며 그렇게 스러져 갔을지도 모른다.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고 한들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끼리는 차이가 존재하고, 그 차이는 서로 충돌하며 갈등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믿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시련을 모두 딛고 이 자리에 서게 된 두 사람은, 앞으로 그 어떤 시련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견뎌낼 수 있다고. 서로의 다름에 상처받고 서로가 갈등을 빚어낸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비아트리스는 사랑을 안고 그대로 사라졌다.

       분홍색의 사랑은 죽음과 함께 스러지며 검게 변하였으며, 만물이 그러하듯 스러져서 마침내 먼지가 되어 세상에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반쪽이었던 이에게 짙은 피비린내만 남긴 채 그렇게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

       이 둘은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 이제 신랑 신부가 위대한 조물주와 그분의 어전 천사이신 바라키엘, 신랑을 모셔 오는 데 큰 도움을 주신 네 분, 그리고 어렵게 발걸음을 옮겨 찾아와 자리를 빛내주신 진성 박의 앞에서 혼인을 서약하였음을 알립니다. 이에 두 사람의 결혼이 성립되었음을 공표하는 성혼 선언을 할 것이니, 모두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토마스는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이크가 없음에도 기쁨이 가득한 그의 목소리는 교회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퍼졌고, 그것을 들은 진성은 짝짝짝-하는 소리와 함께 손뼉을 쳤다.

         

       휘이이익-

         

       그리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머리만 남아있는 악령들 역시 둘을 축복했다.

       손이 없어서 손뼉을 칠 수 없었던 그들은 입가를 움직여 휘파람 소리를 내어 둘을 축복하였으며, 기쁘다는 듯 귀까지 찢어지는 웃음을 지으며 음침하게 웃었다.

         

       “자, 신랑과 신부. 마주하도록 하시지요.”

         

       토마스는 박수와 휘파람이 끝나자 윌리엄과 비아트리스를 서로 마주 보게 만들었다.

         

       “자, 오늘 여기 신랑과 신부가 이제 둘이 아닌 하나가 되게 될 것입니다.”

       “읍-!”

       “자아. 신랑께 묻습니다. 신랑은 자기 육체가 바스러지고 수명이 다해가며, 아무리 절망스럽고 힘든 시간이 가득하다고 할지라도 변함없이 신부를 사랑하시겠습니까?”

         

       윌리엄은 입을 꾹 닫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하지만 그런 윌리엄의 반항은 별 소용이 없었다.

         

       대답하던 말던 별 차이가 없었으니까.

         

       “신랑께 다시 묻습니다. 신랑에게는 앞으로도 수많은 유혹이 따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자가 올 수도 있고, 이득을 위해 누군가가 유혹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 모든 유혹 속에서 신랑은 오직 신부를 위하여 정절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윌리엄은 그 물음에도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서약은 계속되었다.

       아무런 문제 없이 말이다.

         

       “자아, 신부께 묻습니다. 신부는 앞으로도 영원히. 영혼이 바스러지고 티끌과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린다고 할지라도 영원토록 신랑을 사랑하고 공경하시겠습니까?”

         

       소녀는 토마스의 질문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달과 같은 미소였다.

         

       흐릿해서 금방이라도 흩어져버릴 듯한…. 하지만 빛과 포근함을 품은 미소.

         

       비아트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천천히 움직였다.

         

       [ 네. ]

         

       맹.

       세.

       합.

       니.

       다.

         

       소녀는 맹세했다.

       영원토록 윌리엄과 함께하겠다고.

         

       영원토록.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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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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