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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3

     거짓된 황금을 소멸시키는 방법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지브롤터의 피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로서는 그다지 사용하고 싶은 방법이 아니다.

     “거짓된 황금이 오직 지브롤터의 피에만 반응한다고?”

     “예, 아버지. 이걸 없애려고 한다면….”

     “이건 기밀로 하지. 제국 마도공학 연구소나 바토리 소장이 또다른 방법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는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

     “아니면 아예 거짓된 황금을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가정한 뒤,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나가는 건 어떠냐?”

     “안 그래도 그 안건 때문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거짓된 황금을 없애기에 우리 지브롤터의 손해가 너무 크다면, 거짓된 황금으로 인한 문제를 새로운 방향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번에는 내가 황금에다가 지브롤터의 인장을 새겨놓으면 되겠느냐?”

     “그건 새로운 형태의 화폐를 방행하는 것이며, 그랬다가는 지브롤터 경제에도 큰 위기가 찾아올 것입니다.”

     “면검부를 황금으로 만드는 건?”

     “이미 팔만큼 팔았기에, 황금면검부를 굳이 또 팔 필요는 없죠. 괜히 팔았다가 ‘사람을 죽인 죄도 황금으로 용서받는다’라는 오해를 살 수 있고.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나는 금화 하나를 꺼냈다.

     “노스트럼의 전통과 역사에 따라, 거짓된 황금도 금화로 만드는 것.”

     “음….”

     “1골드까지 전부 금화로 있었던 건, 어쩌면 이런 황금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노스트럼 시조들의 안배였을지도 모릅니다.”

     굳이 1골드까지 쓸데없이 금화로 만들어야만 했던 이유.

     “은으로 실버를, 구리로 쿠페를. 금화의 하위 화폐를 다른 금속으로 구분하기에는, 노스트럼의 땅 아래에 묻힌 황금의 양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겠죠.”

     “쓸데없이 1골드까지 금화를 만들었던 게 아니라는 건가. 흠.”

     그것은 아마도 500년 전, 지하에 넘쳐나는 황금의 존재를 어떻게든 소모했어야 하는 노스트럼 왕가의 전략적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스트럼 금화를 찍어내는 것도 문제가 크다. 그건 그거대로 화폐를 늘리는 거잖느냐.”

     “그래서 특수한 용도의 화폐로 용도를 전환하려고 합니다.”

     나는 미리 준비한 금화의 뒷면을 아버지에게 보였다.

     “드래곤?”

     “경룡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화폐로서 말이죠. 토큰…아니, 제국에서는 ‘칩’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짓된 황금으로 만들어, 경룡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으음….”

     아버지는 탐탁찮은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몰래 황금칩을 훔쳐가는 이들이 생길 지도 모르는데?”

     “재활용하려면 다시 녹이고 굳혀 주괴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이 흔해빠진 거짓된 황금을 가져가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해야죠. 이거, 사실상 마석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마석은 마석이지.”

     거짓된 황금이 기존의 황금과 차이점이 몇 가지가 있기는 하지만, ‘장점’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다.

     “그레이. 거짓된 황금이라는 거, 마나가 황금에 비해서 얼마나 더 잘 통하더냐?”

     “순수한 황금보다는 잘 통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태생이 광물이 아니었던 건지는 몰라도, 황금에 비해 더 잘 녹아내리더군요.”

     진짜 황금과 거짓된 황금은 녹는점이 다르다.

     바토리 소장은 물론이거니와 제국의 마도공학 연구소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발견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진짜 금보다 녹는점이 아주 약간 낮습니다. 특정 온도에서는 진짜 황금보다 일찍 녹아내리지만, 그게 일상 생활에서의 온도는 아득히 뛰어넘는 고열이죠.”

     “고열과 초고열,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건가?”

     “상급기사와 마스터의 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로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그거나 그거나 수준이겠군.”

     “예.”

     거짓된 황금 쪽이 연성하기 더 쉽다.

     “은이랑 비슷하더군요. 차라리 색깔이 황금과 다른 색깔이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금속으로서 이걸 활용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예. 황금만 아니었다면 말이죠.”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 사용했을 지도 모른다.

     “황금보다 다루기 쉽고, 주조하기에 용이합니다. 마나도 잘 통하는 마석 그 자체.”

     드래고닉스라거나, 오리하르콘이라거나, 미스릴이라거나.

     “일반인들은 구분할 수 없으니, 이렇게 사회적 약속을 박아넣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생긴 게 황금이고, 색깔도 황금이다.

     용암처럼 들끓는 용광로를 가진 대장간이나 마도공학 연구소, 혹은 지브롤터가 아닌 곳에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이다.

     “거짓된 황금은 실제 화폐로 쓰이는 게 아니다. 이렇게 공인된 도박장에서만 쓰이는 물건이다.”

     “으음….”

     “아버지. 이렇게라도 활용하지 않으면-”

     “네가 생각하는 게 어느정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단다. 너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아버지는 ‘거짓된 황금을 도박용 칩으로 만든다’라는 부분에 대하여 딱히 부정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네가 도박장을 뭔가 더 확장하고 싶다거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걱정되니까 그러는 거지.” 

     “……하.”

     어처구니가 없다.

     “제가 설마 제가 도박을 즐기고 싶어서 이런 걸 만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네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겠지. 아스타시아 황녀가 도박을 즐긴다거나 하는 경향은 없었으니…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을 위해 도박장을 만들어줄 셈이더냐?”

     “아버지.”

     “농담이다.”

     혹시나 내가 제국 황제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는 게 아니냐는듯 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세상에. 그런 쪽으로 질투를 하시는 줄 알고 놀랐잖습니까.”

     “내가 그 자를 질투할 이유가 무엇이 있지?”

     

     아버지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듯 되물었다.

     “나이도 훨씬 젊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도 있고, 능력있는 자식들도 많지.”

     “…….”

     “안다. 황제가 아내나 자식이 훨씬 많다는 걸.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는 다르지 않느냐?”

     “말하기 민망하게 만드시는군요.”

     “사랑이지.”

     “……그런 말은 어머니를 상대로 하심이, 옳을 듯 합니다.”

     “낯간지럽나? 후후.”

     아버지가 약점을 잡았다는듯 낮게 웃었고, 나는 도박장의 칩용 코인을 반으로 접어 품안에 집어넣었다.

     “도박장에서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온갖 방법으로 거짓된 황금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짓든, 열차를 만들든, 아예 집안의 모든 식기와 가구를 거짓된 황금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죠.”

     “……곤란할 것 같은데.”

     아버지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해도 결국 ‘재산’이 되어버리는 건 맞지 않느냐.”

     “예. 화폐는 아니지만, 결국 물건의 형태를 가진 황금 덩어리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아예 거짓된 황금을 아무짝에도 쓸모 없게 만들어버리는 게 아니라면 모를까.”

     “이미 방법은 생각해둔 게 있는 모양이군.”

     “예. 이건 아버지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아직 진행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양피지 하나를 꺼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쳤군.”

     양피지를 꺼내자마자, 아버지는 헛웃음을 흘리며 양피지 속 그림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장식물로 만들자?”

     

     그곳에는 사람의 인물 모양을 하고 있는 황금으로 된 조각상이 그려져있었다.

     “안 될 것도 없지요. 나무조각이나 석상도 정교하게 깎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 아닙니까. 황금으로 만든 조각상이라고 팔지 못할 것도 없죠.”

     “신을 모시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신상(神像)이라. 좋군요. 당장은 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미래에는 평화를 나타내는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나는 아버지로부터 물러난 다음, 서재의 벽에 걸린 검 한 자루를 뽑아 비스듬하게 위로 겨눴다.

     “협곡의 앞뒤로 황금으로 된 조각상을 만드는 겁니다. 이왕이면 300m 정도의 크기로. 아래에서부터 쌓고 쌓아, 마지막에는 지브롤터 협곡보다 더 키가 큰 대규모 조각상을 만드는 겁니다. 이른바, ‘평화의 황금신상’이라고 하면 되겠군요.”

     “…그레이.”

     아버지는 반쯤 감긴 눈으로 평화의 신상의 스케치를 두드렸다.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에 대하여, 한 번 설명해보거라.”

     평화의 황금상.

     그 얼굴이나 형체는 합스베르크 황제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그야 당연히, 거짓된 황금으로 만들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응?”

     “진짜 황금으로 만들었다면, 당연히 아버지를 모티프로 삼아 조각상을 만들었을 겁니다. 당장 황금의 비행선을 해체하여 그 금을 모아둔 다음, 바르셀로나 금광을 비롯하여 모든 금화를 녹여 300m짜리 아버지의 전신상을 만들었을 겁니다.”

     “…….”

     “하지만 이건 거짓된 황금이지 않습니까. 지브롤터의 후신이 앞에서 재채기만 하더라도 부식되어 녹아내리게 될. 물론 피 한 방울 흘린다고 300m 높이의 황금조각상이 무너져내리거나 하지는 않겠지만요.”

     사실,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거짓된 황금입니다. 무너져내려서 망가진다고 한들, 그건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의 황금상이 무너지는 것이죠.”

     “……그 자라면, 눈치를 챌 건데?”

     “괜찮습니다. 앞에서 이거 터는 건 제 전문이니까요.”

     나는 내 입을 가리켰다.

     “오직 지브롤터만이 없앨 수 있는 거짓된 황금으로 합스베르크 황제의 황금조각상을 만든다는 건, 지브롤터가 합스베르크를 향해 보내는 신뢰의 표현입니다.”

     “신뢰, 라.”

     “우리는 합스베르크 황제를 건드리지 않겠다. 조각상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지브롤터가 합스베르크를 향해 적의를 품는다는 것이다.”

     오직 지브롤터만이 소멸시킬 수 있는 황금이라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지브롤터가 그러지 않겠다고 한다면 영원하면서도 동시에 불멸의 조각상이 되는 셈이다.

     “지브롤터 협곡에 제국 황제의 모습을 한 황금의 조각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륙의 진정한 평화를 알리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또….”

     나는 품에서 꺼낸 최고 단위의 골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상징하는 금화를 꺼내 반으로 접었다.

     “나라 말아먹는데 천부적일 정도로 유능한 어떤 왕이 질투심을 느끼고 분노하여, 어쩌면 황금상을 만드는 곳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가능성있지.”

     아버지가 손가락을 튕겼다.

     “다른 거 다 제쳐두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끌어낼 수 있는 미끼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작업이로구나.”

     “…그런 셈이죠.”

     사실 그쪽은 2순위다.

     5순위. 거짓된 황금을 대량으로 모으기에 최적화된 사용처.

     4순위. 왕국과 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대규모 토목사업.

     3순위. 평화의 황금조각상을 통한 대륙의 평화 분위기 조성.

     2순위. 그 황금조각상이 합스베르크 황제가 아니라는 것에 대하여 질투하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끌어들이는 함정.

     “아버지. 그런 의미에서, 이걸 허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1순위.

     사실 이게 나로서는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합스베르크 조각상을 만드는 건 협곡 밖에서 하더라도, 조각상은 협곡 안에 들어가는 게 제일 보기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당연히 땅을 파야죠. 협곡을.”

     1순위.

     “협곡을, 없애버리는 겁니다.”

     협곡을 파헤치는 것.

     “제국 황제의 조각상을 넣기 위한 목적이니, 당연히 제국의 국토부에서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브롤터는 돈을 내지 않겠다는 것이로구나.”

     “예. 우리는 그저, 계약서 하나만 쓰면 됩니다. 지브롤터 협곡 개발에 대하여, 불가역적인 개발을 허가한다고.”

     낙장불입.

     “협곡을 없애버리고, 그 땅에 거짓된 황금 조각상을 하나 세워버리죠. 협곡이 있었다는 상징만 남겨둔 채.”

     10년이 걸리든, 100년이 걸리든.

     “설령, 훗날 지브롤터가 왜 ‘협곡의 수호자’였는지 그걸 오직 역사만이 알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협곡은, 더 이상 지브롤터가 영원히 떠나지 못한 채 지켜야 하는 감옥이 아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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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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