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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3

   마황과의 사담을 끝마친 후, 다음 날.

   마황은 크라슈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의 말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크라슈의 말이라면 무조건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 짓을 한 거야?”

     

   바이오렌은 초롱초롱한 마황을 징그럽다는 듯이 보았다.

     

   “대화.”

     

   하지만 크라슈가 해줄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에게 입을 빌려주어 마황과 마법에 관해 깊은 논의를 나눴다.

     

   크라슈가 한 것은 이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토록 대화를 갈구해온 마황에게 있어 이보다 달콤한 것도 없었다.

     

   ‘마황을 이렇게 끌어들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과연, 아서는 알았을까.

   무려, 마황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몰랐던 건지, 아니면 시도할 엄두를 못 낸 건지.’

     

   아서는 마황을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았다.

     

   워낙 변수가 많고, 변칙적인 인물이었으니.

   가까이한다 한들 악수로 작용할 수 있을 일이 더 많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크림슨가든이 아니고서야 이건 불가능할 테지만.’

     

   크림슨가든 정도로 오랜 기간 마법에 관한 지식을 쌓은 인물이 옆에 있지 않고서야 어쭙잖은 아는 척으로 마황의 응징을 당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관계를 구축할 수 없었으리라.

     

   “크라슈 님, 저기 보여요.”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옆에서 따라오던 비앙카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말대로 숲속 안쪽.

   마을 하나가 비치기 시작했다.

     

   거인의 숲, 인근 지역이라 그런지.

   다른 나무들보다 더 커다란 나무 아래.

   자그마한 나무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데모란 마을.

   크라슈가 사자단 임무를 위해 찾아온 마을이었다.

     

   ‘확실히.’

     

   크라슈는 왜 아슬란의 연인인 정령 도로시가 세계 침식이 다르다고 말했는지 눈치챘다.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루는 크라슈의 코가 찡그려질 만큼.

   세계 침식의 기운이 무척이나 독하게 느껴졌다.

     

   크라슈는 이 이유가 최흉의 씨앗이 만들어지는 과정임을 눈치챘다.

     

   ‘그래도 일반적인 세계 침식에 씨앗이 만들어지는 건 아직 이른 시기일 텐데.’

     

   최흉의 씨앗은 오랜 기간 세계 침식을 유지해온 금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크라슈는 금역 외부에 있는 세계 침식에서 씨앗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의아했다.

     

   금역에서 씨앗이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다른 세계 침식들도 씨앗이 만들어지는 시기가 가속화 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방치된 세계 침식들이 우선적이니까.

     

   ‘금역인 거인의 숲이 근처니까.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하나.’

     

   조금 수상쩍은 기분과 함께 크라슈가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근처에 세계 침식이 발생한 만큼 일시적으로 대피라도 한 걸까.

   마을에서 흔히 들려올 법한 아이들의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딘가 불길한 느낌이야.”

     

   감이 좋은 편인 하링이 소름이 돋은 팔을 비볐다.

   하링의 말대로 크라슈도 불길한 기운을 물씬 느꼈다.

     

   [ 저기 있다. ]

     

   그 순간 크림슨가든의 말과 같이 인기척 하나가 느껴졌다.

   빠르게 그곳으로 향한 크라슈가 집의 문을 노크 없이 열었다.

     

   크라슈는 집 안에서 풍겨온 독한 냄새에 코를 질끈 막았다.

   그러고는 눈에 비춘 광경에 따라오던 이들을 서둘러 제지 시켰다.

     

   “다들 방 안으로 들어오지 마.”

     

   모두가 의문을 보였지만 우선 크라슈의 말을 따라 멈추어 섰다.

     

   “바이오렌, 각자 개인에게 결계를 걸어줄 수 있겠어?”

   “어렵지는 않은데. 뭘 막으려고?”

   “전염병.”

     

   크라슈의 대답에 바이오렌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를 두고, 크라슈는 착잡한 눈으로 방 안을 지그시 보았다.

     

   방 안쪽, 피골이 맞닿은 사람 하나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런 그의 발과 팔은 거의 썩어들어 가 있었는데 몸 여기저기에 검은색 반점이 나타나 있었다.

     

   게다가 동공이 엄청나게 확장되어 눈 전체가 새까맣게 물들어져 있었다.

     

   크라슈는 이와 같은 전염병의 이름을 알고 있다.

     

   ‘검은 손.’

     

   최초 발병 당시 손이 새까맣게 물들고, 괴사하는 것에서 지어진 이름.

     

   전 세계적으로는 아니었지만 프레이야 근방 지역에 전부 퍼진 탓에 제국이 상당히 골머리를 썩이었다.

     

   ‘그 탓에 전염병을 잡느라 방치된 거인의 숲은 최흉의 씨앗을 무럭무럭 키웠고.’

     

   이윽고, 거인의 숲이 최흉으로 변모하며 거인이 제 발로 나오게 되며 프레이야 산은 끝장난다.

     

   당시 프레이야의 아이, 아르숄더가 죽게 된 이유기도 했다.

   자기 고향을 지키고자 훌쩍 가버린 녀석이 끝까지 거인과 맞서다 죽었기 때문이다.

     

   ‘놈이 자신의 육체를 불사질러 싸워준 덕분에 거인이 큰 피해를 보아 거인의 숲은 어떻게 잡긴 했지만.’

     

   프레이야 산맥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산맥인 만큼, 프레이야 산맥을 잃은 것은 곧 여러 자원의 상실과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

     

   제국이 무너지는 데 크게 한몫한 셈이다.

     

   ‘발병 시기가 이때였나.’

     

   얼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때부터 발병했을 줄이야.

     

   ‘숨은 붙어 있다.’

     

   크라슈는 검은 손에 당한 환자를 살폈다.

     

   발병 시기는 대략 일주일 전.

     

   ‘검은 손의 잠복 기간은 대략 일주일.’

     

   세계 침식 관련 임무 요청이 들어온 것이 이주 전이었다.

   그렇다면 시기상 딱 맞아떨어진다.

     

   크라슈는 골똘히 생각하며 환자에게 걸린 검은 손을 흡수했다.

   그러고는 이내 이그니스로 불태워 병 자체를 지워 버렸다.

     

   환자의 얼굴이 한결 나아졌다.

   이제 영양만 챙긴다면 살아날 수 있겠지.

     

   ‘이쪽은 해결됐어. 이제 진짜 문제는…….’

     

   크라슈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왜냐하면 크라슈의 말대로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은 거의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중한 환자는 데려갈 방법이 없으니 일단 두고, 마을 사람들은 전부 당장 프레이야 산 아래로 대피했을 터.

     

   문제는 그들 중에도 보균자가 섞여 있을 거라는 것이다.

     

   검은 손은 공기 중으로도 감염이 가능한 전염병이니까.

     

   ‘상급의 오러를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단련한 이들이라면 모를까.’

     

   일반인들이라면 영락없이 검은 손이 잠복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크라슈가 당장 문을 박차고 나왔다.

     

   데모란 마을 사람들이 제국 쪽 시민들과 합류해 버린다면 병은 순식간에 퍼진다.

   제국은 인구가 가장 밀집되어 있음은 물론 물자 교류도 워낙 활발한 나라니까.

     

   “테마린!”

     

   크라슈는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비장의 카드를 쓰기로 했다.

     

   가명은 테마린 제블람.

   본명은 테라시우스 제블람인 마황이 이쪽을 보았다.

     

   “데모란 마을 사람들이 제국에 닿기 전에 찾아내서 전부 막아야 해.”

     

   크라슈도 제 육감이 있는 만큼 찾으려면 못 찾을 건 없다.

   하지만 테라시우스의 마법에 미칠 바는 못 된다.

     

   그의 마법은 만능에 가까웠으니까.

     

   “12시간이다.”

     

   테라시우스가 고한 시간의 뜻을 크라슈는 잘 알고 있었다.

   크라슈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그의 모습이 훅하니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본 아슬란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준비 시간도 없이 고위급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다는 건가.

   하긴, 여기 모인 이들에게는 정체가 밝혀져도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마을 사람들이 보균자인 건가요.”

   “그래.”

     

   크라슈는 비앙카의 말에 대답하며 주위를 보았다.

     

   검은 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나니 코를 찌르는 냄새가 무엇인지 확실히 느껴진다.

     

   “어쩔 생각이야? 일단 결계를 걸어 놓기는 했는데.”

     

   바이오렌은 모두에게 걸어 놓은 결계를 가리키며 물었다.

     

   크라슈는 공기 중에 퍼진 검은 손이라면 지울 수 있다.

   이그니스를 피워 올리면 금방 다 지워질 테니까.

     

   검은 손도 치료하고자 하면 치료할 수 있다.

   블랙 후드로 병을 훔친 후 이그니스로 태워 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뿐더러.

   검은 손은 크라슈가 없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린다.

     

   “하링.”

     

   그러니 크라슈는 지금부터 약을 만들기로 했다.

   부름을 들은 하링이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저주와 독, 두 가지 다 연구한 너라면 이 병의 치료 법을 만들 수 있을 거야.”

     

   회귀 전, 검은 손의 약은 분명 개발되었었다.

   그러나 개발된 약은 여러모로 문제점이 있었다.

     

   병이 발병된 지 일주일 이내여야만 약효가 든다는 것부터 여러 가지 부작용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검은 손은 저주와 질병의 중간 지점에 있는 병이다.

     

   그렇다 보니 해주사와 약제사가 함께 연구를 거듭해야 했고, 저주와 약이 지속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여러 부작용을 발생시킨 것이다.

     

   물론 스타론에는 이러한 저주와 약재를 한 번에 연구한 이가 있었다.

     

   연금성주 달링 단펠리온.

     

   그러나 그녀는 스타론 소속이었다.

   당시에 제국과 스타론의 사이는 극도로 악화하고 있었고, 끝에는 전쟁까지 일어났다.

     

   스타론은 자멸하는 제국에게 연금성주라는 인재를 파견해주지 않았다.

     

   ‘그걸로 검은 손의 특효약이 개발 되는 데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고.’

     

   그러나 지금 그러한 저주와 약재를 같이 연구한 이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하링 라그렌.

     

   그러자 하링이 당황한 눈으로 조심스레 대답하였다.

     

   “크라슈, 그건 나 혼자 한 게 아니야.”

     

   약 개발이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만큼 그녀도 섣부른 자신감을 보일 수 없었다.

     

   “알고 있어. 달링에게도 도움을 청할 거야.”

     

   크라슈는 그리 말하며 아슬란을 보았다.

   그의 마법이라면 달링에게 연락을 넣는 게 가능하다.

     

   아슬란은 크라슈의 지시에 바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대신, 약의 개발에 성공하면 그 개발자는 하링 너 단독으로 해야 해.”

   “나 혼자서?”

   “달링은 스타론 사람이니까.”

     

   최근 크라슈의 부단한 노력 덕에 제국과 스타론 사이에 악영향이 갈만한 일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제국은 여전히 스타론을 견제하고, 스타론은 제국을 견제한다.

     

   검은 손의 발병 지역은 어디까지나 제국 영토 근처.

   검은 손에 가장 많이 걸리게 될 이들도 결국 제국민들이다.

     

   그들은 스타론에서 개발한 약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의심할 것이고, 사용하기를 꺼릴 것이다.

     

   그러니 약 제조사로 하링의 이름이 필요한 것이었다.

     

   하링은 잠시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달링에게 미안한 짓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링은 머리 좋게 그녀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알았어. 나 최선을 다할게.”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약의 제조에 성공하겠다며 하링이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맡길게.”

     

   이번 일이 성공한다면 라그렌 가문도 제국에서 다시금 이름을 알릴 수 있겠지.

     

   잘하면 점점 늘어나게 될 저주병을 하링을 필두로 치료를 담당하는 중요 가문이 되줄 수도 있었다.

     

   “저희는요.”

     

   모두가 해야 할 역할이 정해진 마당.

   비앙카가 역할이 없는 자신과 크라슈를 마주 보며 물어왔다.

     

   “정해져 있잖냐.”

     

   크라슈는 우뢰성을 가볍게 누른 채 고개를 들었다.

     

   “세계 침식을 닫아야지.”

     

   그게 이쪽이 할 일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아악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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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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