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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3

       

       끼어든 송병오 녀석이 안경을 슥 올리며 입을 열었다.

       

       “후후. 나도 원래 각성을 하지 않았으면은 소학교 훈도 노릇이나 하려던 사람인데, 내가 들어봐도 썩 잘 불렀다고 여겨지네. 그건 그렇고, 그래 선생이 학생더러 가수를 하라니, 서주 양 자네는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나보이.”

       “머라구요! 저 공부 잘했거든요!”

       

       발끈하는 함서주에게, 송병오는 마치 학생 앞의 선생님이라도 된 것처럼 가르치듯 말했다.

       

       “그래 공부 잘했던 서주 양, 자네는 아까 부른 노래에서 ‘호다루노 히까리’가 무슨 뜻인지 알겠나? 무릇 노래라는 것은 그 뜻을 알고 불러야 하는 게야.”

       “이잇, ‘형설의 공(螢雪의 功)’ 얘기잖아요. 저가 그것도 모를까봐서.”

       

       함서주는 송병오에게 무시당하기 싫었는지 설명을 시작했다.

       

       “누구더라? 옛날 중국에 살던 어떤 대단한 사람이 말예요. 어지간하게 간난해서 촛불을 살 돈두 없어가지구, 밤에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깐요, 오늘같은 여름 밤에는 반딧불을 모아가지구서는 빛을 밝혀서 공부하구, 겨울 밤에는 창 밖으루 쌓인 눈밭에 비친 빛으로 공부했다는 이야기…… 보통학교 다닐 때 수신 책에두 나오잖아요? 본받아서 공부 열심히들 하라구. 머, 저야 보통학교만 나오고 공부는 그만뒀지만……”

       

       함서주는 문득 서글퍼졌는지 말을 흐리고, 시선을 돌려 반딧불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함서주 얘, 이게 마음의 상처였지.’

       

       원래 함서주는 보통학교를 졸업 후 고등보통여학교(미래로 치면 여자 중·고교)에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가세가 기울어지며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었다.  

       

       송병오 녀석도 자신이 분위기를 곱창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나름대로 눈치껏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으음. 꼭 학교를 다녀야만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세. 독학으로 성공한 위인도 많으니.”

       “헤에! 저야 반딧불이 아니라 전깃불이 있어두 책은 커녕 신문두 안 보구있으니깐, 별 수 없었을걸요! 고만두고, 저이 반딧불이나 봐요. 참 예쁘죠!”

        

       함서주가 두 손을 모아서 들어올리자 반딧불이 한 마리가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라앉았다. 감성적이 된 함서주는 손바닥에 앉은 반딧불이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참 가엾기두 하지. 반딧불이는 왜 이렇게 빨리 죽는 걸까요. 덧없게도……”

       

       분위기가 급 숙연해지긴 했지만, 이럴 때에는 어줍잖게 말을 건네는 것보다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도록 그저 곁에 조용히 있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나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것이—

       

       “……크흠! 어흠! 반딧불이가 빨리 죽는 것은……” 

       

       송병오 녀석은 자신이 망쳐버린 분위기를 되돌리고 싶었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한 번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반딧불이는 에네르기를 모두 빛으로 태우기 때문일세. 반딧불이의 에네르기 효율은 무려 98프로……”

       “……머라구요?”

       

       함서주는 뜬금없이 뭔 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송병오를 돌아보았다. 송병오 녀석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했는지 설명을 계속했다.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조명, 이를테면 전등같은 것은 에네르기의 대부분이 빛이 아닌 열로 낭비되어버리지. 그래서 가장 능률이 높은 ‘악크’ 등이라도 전체 에네르기의 십 프로도 채 안되는 칠 프로만 빛이 되는 게야.” 

       

       “하지만 반딧불이의 엉덩이에는 세포 내에 ‘루시페라아제’라는 효소가 있어 산화하며 발광하는데, 에네르기의 전부에 가까운 구십육 프로가 빛이 된다고 하지……. 그야말로 이상적 등화라고 할 만한 놀라운 기술이야!” 

       

       “반딧불이란 이렇게나 대단한 곤충이니, 반딧불이를 보고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네.”

       

       ……뭐랄까. 송병오 녀석은 반딧불이를 보고 울적한 기분이 된 함서주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이런 지난한 설명을 한 것 같지만, 당연하게도 함서주의 반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뭐라고 반박조차 못 하겠다는 듯, 질렸다는 듯한 눈빛으로 송병오를 흘겨보았다. 얘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그렇다. 문과감성과 이과감성의 차이랄까. 서로 똑같은 것을 보고도 노래로 표현하는 등 감성적이 되는 사람이 있고, 뜬금없는 설명을 중언부언하며 뇌절하는 녀석이 있다. 이러한 둘을 붙여놓아 봐야 악효과만 나는 것이다……! 

       

       더 있어봐야 함서주의 송병오 멸시가 더욱 심해질 것 같아서 나는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슬슬 배고프지 않냐. 밥 먹으러 가자.” 

       

       군것질은 꽤 했지만, 저녁부터 나와서 한참 걸어다닌데다가 제대로 식사를 하지는 않았으니 다들 허기질 것이고, 배가 고프면 사람이 괜시리 슬퍼지는 법이다. 

       

       우리는 다시 야시장이 열리고 있는 종로2정목으로 가서 적당한 가게에 들어가 국수 한 그릇씩을 시켰다. 밖에서 먹을 것이 많아서인지 오히려 가게 안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깐 사람도 많고 너무 시끄러워서 이 얘긴 못했는데……”

       

       각자의 앞에 국수가 나오자,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송병오에게 말했다. 

       

       “시간적 여유는 벌긴 했지만, 기왕이면 이렇게 녀석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사보타주를 하고 싶거든. 지금 이 시간에도 대동아공영회 놈들은 뭔가 수작을 하고 있을테니까.” 

       “그렇지! 헌데 마음에 걸리는 문제라도 있나가?”

       “그게, 뭔가 하고는 싶은데 놈들이 정보공유를 안 해주니 정보를 얻을 수단이 없어. 뭘 알아야 사보타주를 하든 말든 하지…… 그렇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너랑 얘기하려고 했던 거야. 너 이런거 잘 알잖아.” 

       

       조직을 만들고, 조직에 침투하고, 정보를 캐내고, 방해공작을 벌이는 것…… 나는 머릿속에 빨간 물이 든, 이른바 ‘주의자’인 송병오가 이런 것들에 일가견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 녀석이 언젠가 나에게 자랑스레 했던 말에 의하면, 평택에서 중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공산주의 계통에 몸담은 적이 있는 ‘맑스 뽀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것들을 언급하자 송병오 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계통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실상 애들 독서회에 가깝지! 그저 중학시절에 동무들과 책을 나눠 읽으며 사상교류나 했을 뿐, 무슨 지시를 받거나 거창한 활동을 해본 적은 없네. 마음은 굴뚝같았지마는……!” 

       

       ‘이 녀석, 진짜 그냥 패션빨갱이였잖아.’ 

       

       하긴, 조금 사상적으로 불온할 뿐 평범한 17세 학생이 무슨 첩보활동을 하고 파괴공작을 해봤겠는가. 내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그럼, 이 녀석이 아니면……’

       

       믿을만한 사람 중에서 누구 없을까. 이제와서 우리 분대원들 이외의 외부인을 들이기엔 어렵겠지만, 비밀스러운 첩보활동같은 것은 나랑 내 분대원들끼리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진짜 이런 쪽의 전문가가 필요한데……

       

       ‘사보타주 전문가이면서, 또 우리의 목적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믿을만한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며 국수를 먹고 있자니, 

       

       —우당탕!

       —와장창!

       

       가게 밖에서 우당탕탕 하고 뭔가 부서지고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은 마치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싸움이야, 싸움!”

       “시비가 걸린 모양인데!”

       “어이, 비켜 보오! 나도 좀 봅시다!”

       

       다들 가게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밖에서 뭔 싸움이라도 일어난 모양이었다.

       

       “학생 손님, 쌈 났나봐요. 어떡해요?”

       

       함서주는 불안한 얼굴로 나에게 물어왔지만, 송병오는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국수 국물을 들이키고는 말했다.

       

       “하등 별 거 아닐세! 나도 상경하고 처음 몇 번은 놀랐지마는, 건달들이 서로 겡까붙이는 거야 종로 바닥에선 퍽이나 흔한 일이더군! 가게 안에 있으면 휘말릴 일 없으니 걱정 말게.” 

       

       종로 건달들의 싸움이라……

       

       “이, 이 되바라진 년을 보았나! 혼자서 외로워뵈길래 조금 놀아주려고 했더니, 감히 이런 짓을 해? 너, 종로패가 우습게 보여!”

       

       유리창 밖으로 힐긋 내다보자 과연 우악스럽게 생긴 사내가 얼굴에 피멍이 들어서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외치고 있었다. 

       

       “젠장. 그냥 범상한 여학생인 줄 알았더니 발놀림이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하지만 우리 두목이 오면 봐라! 네까짓 년은 금방 죽여놀 테니!” 

       

       그 곁에는 사내 한 명이 함께 서있었는데, 서로를 바라보는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둘은 같은 편이고, 누군가와 싸우다가 사이좋게 얻어맞은 모양인데, 아마 송병오가 말한 종로 건달들일 것이다.

       

       그러면, 저 둘과 대치중인 상대방도 건달일까? 하지만 상대의 모습은 잔뜩 몰려든 사람들에게 가려져서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젠장맞을! 두목을 기다릴 것도 없지! 여학생이라고 봐줄 줄 알아!”

       

       쓰러져있던 사내는 벌떡 일어나 그렇게 외치며, 상대가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그 때, 

       

       “이크, 에크……”

       

       하며, 사람들에게 가려진 곳에서 작게 들려오는 소리는, 내 또래 여자애의 목소리. 

       

       그것도,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송병오 혐오를 멈춰주세요……! (2)

    누군가는…… 설명충 역할을 부담해야 하는 겁니다……!

    화면 안에선 송병오 녀석이 설명충 역할을 부담했으니, 이제 제가 화면 밖의 설명충 역할을 할 시간입니당.

    물론, 작중 등장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설명은 전개에 필요하기에 넣은 것이지만, 작가 후기에 제가 쓰는 TMI는 읽으셔도 안 읽으셔도 무방합니당. 그냥 재미로만 읽어주세용!

    그리고…… TMI는 아니고 그냥 출처를 명시해두는 것입니다만, 송병오의 설명 중 반딧불이의 에너지 효율이 몇 퍼센트니 아크등은 몇 퍼센트니 하는 내용은, 1925년 동아일보 기사 「螢(형)」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반딧불이가 빛을 낼 때의 에너지 효율은 무려 99%에 가깝다고 하네요. 신기하지용??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다음주에 돌아오겠습니당!!! 굿 주말 해피 주말!!!!!!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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