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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4

       “예?”

       

       생각과는 다른 마왕의 말에, 길라흐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혹시 상천의 건을 두고 연대책임을 물으려는 걸까?

       

       걸리는 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아, 그렇지. 자네 곁에 있는 그 까마귀 부리 남자를 데려오게나. 내 친히 할 일이 있네.”

       “…알겠습니다.”

       

       길라흐는 일단 태연함을 가장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하. 주군께서 각하의 군재(軍才)를 알아보시고 밀명을 내리시려나 봅니다.”

       “그런가?”

       

       엔테로의 설명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그럼 그렇지.

       

       지고하신 마왕님께서 연대책임을 물으신다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애당초 상천과 자신은 그 격부터가 다른데 말이다.

       

       길라흐는 어깨를 펴고 제단 위로 올라갔다.

       

       “호천의 길라흐, 그리고 그 옆에는….”

       “구천지대계의 5석에 자리한 엔테로 콜리티카라고 합니다.”

       

       엔테로는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처음 보는 마수로군.”

       “예, 저는 마왕님께서 봉인되셨을 때 막 군에 입대한 신출내기여서…….”

       “알겠네.”

       

       마왕은 끌끌거리며 엔테로를 유심하게 살폈다.

       

       “그대, 능력이 무엇인가?”

       “병마(病魔)를 다룰 줄 압니다.”

       “과연, 외모에 걸맞은 능력이로다.”

       

       그 뒤로 마왕은 몇 번에 걸쳐 엔테로의 신변을 물었다. 그중에는 호천과 어떤 관계냐는 물음도 있었다.

       

       “상천에게 로즈마리가 있다면, 호천 각하께는 제가 있습니다.”

       “그렇군. 그러면….”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엔테로는 마왕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쁘진 않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길라흐의 곁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목을 받은 모양이다. 노선을 창천에서 호천으로 갈아탄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제 괜찮은 직위 하나를 꿰찰 수 있겠지. 못해도 구천지대계 4석…. 아니, 아카샤까지 사라졌으니 못해도 2석에 준하는 지위를 받으리라. 그것도 남이 임명하는 것이 아닌, 마왕이 직접 하사한 직위로 말이다.

       

       그렇게 김칫국을 들이켜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자네, 혹시 그거 아는가?”

       

       척.

       

       마왕이 손을 엔테로의 어깨에 올리더니, 말을 이었다.

       

       “다리가 없는 사람이라도 육상 경기는 볼 수 있다네.”

       “……?”

       “짐도 마찬가지이지. 봉인되어 있는 동안에도 세간에 어떤 흐름이 있었는지는 유추할 수 있어.”

       

       꽈악.

       

       어깨를 붙잡은 마왕의 손이 미묘하게 조여든다.

       

       엔테로는 고통과 당혹감을 함께 느꼈다.

       

       “말하게.”

       “……무얼, 말이십니까?”

       “양심껏 말하게.”

       

       갑자기 마왕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채가 서려 있던 그의 금빛 눈동자가 점차 공포로 물들어간다.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마왕은 목을 기괴하게 비틀며 어깨를 들썩였다.

       

       “짐이 심안(深眼)으로 보니, 수백 년 간 뚫리지 않던 1차 저지선이 뚫렸더구나. 미천한 피를 타고난 인간 놈들이 어찌 이것을 했을고?”

       “……?”

       “답은 간단하다. 상천이 수준 높은 마법을 만들어 그들 손에 쥐여준 것이겠지.”

       

       적확한 추론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마수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이럴 때 군의 메뉴얼에는 생화학전술로 후방을 타격하라고 쓰여있다. 귀관들은 그 메뉴얼을 착실히 이행했는가?”

       “그러했습니다.”

       “생화학부대를 주관하는 놈이 누구지?”

       “……!”

       

       마왕의 말을 들은 마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접니다.”

       

       엔테로는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농포와도 같은 마왕의 눈이 심유하게 빛났다.

       

       “자네가 해명해 보게. 왜 지금, 저 개새끼들이 우리 앞마당을 제 놈들 안방 드나드듯이 돌아다니고 있는지 말이야.”

       “……그, 그건.”

       

       꽈아악.

       

       마왕은 그대로 엄지를 내리꽂아 엔테로의 쇄골을 부숴버렸다.

       

       “끄아아악!”

       

       빗장뼈가 으스러지자 팔에 들어가는 힘이 쫙 풀렸다.

       

       마왕은 엔테로의 목을 잡고 그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마수들의 시선이 천천히, 그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짐은 기쁘구나. 자네가 막 깨어난 짐을 위하여, 스스로 양식이 되고자 하다니.”

       “……!”

       

       꽈아아악.

       

       “내 너의 공로를 알아줄 터이니, 옛적에 저지른 과오는 눈을 감아주도록 하겠노라.”

       “끄, 어어억.”

       

       반사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사지가 말을 듣지 않는다.

       

       가면이자 신체의 일부였던 까마귀 부리가 뒤틀리고, 온몸은 설산에 파묻힌 시체처럼 차갑게 식어간다.

       

       “짐이 이 배반자를, 직접 숙청할 것이로다.”

       

       쩌억.

       

       마왕의 아가리가 열렸다.

       

       

       **

       

       

       제단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동족이 잡아먹히는 광경에, 요르문간드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한편, 창천은 땀을 흘리면서도 입매를 비틀고 있었다.

       

       나머지 마수도 마찬가지였다.

       

       구천지대계 5석이나 되는 거물이 잡아먹혔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마왕이라는 자에게.

       

       신선하다 못해 불쾌한 충격이었다. 신참들은 벌벌 떨며 고개를 내리깔아야만 했다.

       

       ‘대체 이게 무슨….’

       

       가장 당황한 것은 길라흐였다.

       

       엔테로가 자신의 심복으로 전향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일이 이렇게 되었는가.

       

       마왕의 총애를 듬뿍 받긴 했어도, 길라흐는 잔혹한 성격 때문에 파벌이 그리 강하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신뢰받는 파스모라든지, 수인족 전체를 비호하는 요르문간드에 비하면 밀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모처럼 거물을 충성스러운 부하로 둘 수 있어서 좋아하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자신도 곧 숙청 대상이 아닌가.

       

       “호천.”

       

       터억.

       

       이번에는 길라흐의 어깨에 마왕의 손이 얹어진다.

       

       “……!”

       

       길라흐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마왕은 탁, 탁, 하며 길라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러더니 옷매무새를 정리해주고, 구둣발에 묻은 흙먼지도 털어주었다.

       

       잔뜩 긴장을 집어먹은 길라흐.

       

       이윽고 마왕의 입이 열렸다.

       

       “자네를 해군총사령에 봉한다. 모든 기동전단과 상륙전단을 줄 터이니, 1차 도련선을 통해 엘프국의 수도를 직접 타격하라.”

       “……?”

       “대답.”

       “아, 알겠습니다.”

       

       길라흐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주억거렸다. 얼떨결에 벌어진 일인지라 상황 판단이 안 되었다.

       

       “그나저나 좋은 능력을 가졌구나.”

       

       마왕은 앙상한 손으로부터 독거미와 뱀, 모기 따위를 불러냈다. 전부 엔테로를 흡수하며 얻어낸 능력이었다.

       

       “상찬할 만한 자였도다. 그렇지 않나, 호천?”

       “…예? 예. 그렇습니다.”

       “좋네.”

       

       길라흐의 어깨를 두들겨 준 마왕은 제단에서 내려왔다.

       

       그가 내려오자마자 눈치를 보던 마수들이 하나둘씩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길라흐는 마왕이 왜 엔테로를 포식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기강이 제대로 잡혔다.’

       

       예로부터 마왕군에는 배신자가 많았다.

       

       조금만 세력이 커진다 싶으면, 자신이 금안족의 새 지도자라 칭하면서 현 마왕을 폐위하려는 움직임이 빈번했다.

       

       그럴 때마다 마왕은 이런 식으로 숙청을 시행했다. 본보기를 통해 반란의 불씨가 커지려는 것을 막는 일이었다.

       

       ‘당장은, 살았다.’

       

       길라흐는 일단 안도하며 제단에서 따라 내려왔다.

       

       정황상 마왕이 자신을 살려 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 곧 있으면 전쟁이니까.

       

       둘. 자신은 진정으로 충성하고 있었으니까.

       

       머지않아 여신을 상대로 대전쟁을 벌일 터인데, 자신과 같은 충신이 아니라면 누가 해군을 맡아 정령계 침공의 선봉에 서겠는가. 마왕도 그걸 알았기에 일부러 팔다리를 자르는 선에서 멈춘 것이리라.

       

       잘못했으면 자신도 ‘본보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반역은 꿈도 꾸지 말아야겠군.’

       

       안 그래도 깊던 충심이, 더욱더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현재 정황을 보고하라.”

       “예, 전하.”

       

       그 뒤로 마왕은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흡수했다. 가히 귀신과도 같은 일처리 속도에, 부하들은 다시 한번 놀라야만 했다.

       

       “호천.”

       “예, 주군.”

       “볼일 보거라.”

       

       모든 일감을 끝낸 뒤, 마왕은 길라흐를 내보내고 요르문간드를 곁에 붙였다.

       

       똥 씹은 얼굴로 마왕의 뒤를 걷는 요르문간드. 한동안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철병팔진 복도를 거닐었다.

       

       “민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마왕이었다.

       

       “여긴 사적인 자리일세.”

       “…….”

       “보는 자가 없으니, 편히 터놓고 얘기해 보게나.”

       

       요르문간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왜 5석을 포식한 거지?”

       

       고룡 요르문간드는 마왕이 마왕이라 불리기 훨씬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

       

       마왕에 대한 그녀의 충심은 덜하다지만, 어떤 의미로는 막역한 사이. 때문에 사적인 자리에서는 종종 존대를 생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리 오래 알고 지냈음에도, 파라켈수스라는 사람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여는 5석이 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

       “내가 죄 없는 놈을 잡아 죽였다고 생각하나?”

       “그러면?”

       

       대체 그 까마귀에게 무슨 죄가 있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논리적인 비약이 심했다. 흑사병 때 전염병 확산을 도중에 그만두었다고 배반 취급이라니.

       

       요르문간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설명을 독촉했다.

       

       “그래, 엄밀히 말하자면 죄가 없지.”

       

       마왕은 끌끌 웃으며 예상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나, 그런 건덕지가 있는 놈을 잡아 죽여야만 권력이 유지되는 것이네.”

       “……?”

       “이렇게 순진해서야.”

       

       마왕의 목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권력은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강하기만 하면 배신당할 일은 없겠지. 하지만, 그걸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망각하는 놈들이 있거든. 언제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르니 그전에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

       “배신할지도 모르니까, 먼저 죽였다고…?”

       

       질겁한 요르문간드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가 1천하고도 수백 년을 더 살았지만, 너처럼 의심이 많은 자는 처음 보느니라.”

       “그런가?”

       

       요르문간드가 무어라 말하건, 마왕은 귓등으로 흘려들을 뿐이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래 알고 지냈어도 충정이 별로 없었다. 차별받던 수인족을 보호해 주겠다는 말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따르진 않았을 텐데.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마왕군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이건 요르문간드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고고한 용족으로서, 결코 추한 행동은 보이지 않겠다는 그런 약속.

       

       “요르무, 나는 말일세.”

       

       철컥.

       

       원자폭탄 조제 시설로 향하는 문을 연 마왕이 목을 뒤틀어 요르문간드를 바라본다.

       

       검은 도와지 위로 별빛처럼 총총히 박힌 수십 개의 금빛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내가 타인을 먼저 배신할지언정, 타인이 나를 배신하게 둘 수는 없다네.”

       “…….”

       

       요르문간드는 다시 침묵을 고수했다.

       

       마왕은 원자폭탄 조제 시설로 들어갔다. 3석인 빌헬름의 설명에 따라 시설을 둘러보고, 완성된 원자폭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흑주(黑晝)란 말인가?”

       “상천… 에테르가 그 위력을 시험한 것을 마왕성의 모든 이가 보았으니 틀림없습니다.”

       

       안 그래도 거물이 잡아먹힌 탓에 마수들은 너도나도 마왕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빌헬름도 이에 대해선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왕의 심기를 거스르면, 먹힌다.

       

       빌헬름의 말을 들은 마왕은 침음을 흘렸다.

       

       “흑주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

       

       에테르를 처음 주웠을 때부터, 마왕은 알고 있었다.

       

       에테르는, 상천은 보통 머리가 아니다. 어떤 마도를 생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 계집이리라.

       

       “마왕님이시여! 외람되오나, 이 요물에 모조 세계수가 파괴되고 8석 리바이어던은 2차 저지선과 함께 증발했습니다. 그 정도 되는 폭탄이, 상천의 최대 능력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실제로 에테르는 아니라 말했지만, 그녀가 사천 중 최약인 줄 아는 이들은 원자폭탄을 흑주로 이해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마왕은 여전히 의심하는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일단 저것을 가져오라.”

       “무엇을 하시렵니까?”

       

       마왕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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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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