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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4

       순간 총을 들어 올린 것은 말 그대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고 나서 나는 총알을 몇 발이나 쏘았을까. 아주 어렸던 시절, 처음으로 리볼버를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거의 항상 몸에 총을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틈만 나면 연습했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갖춘 내가 검을 휘둘러봐야 시간을 돌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열심히 운동해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체력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노력을 해보아야 시간을 돌리면 그 노력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내가 선택한 편법이 바로 총기였다.

        

       방아쇠만 당기면 무조건 일정한 힘을 가진 총알이 발사된다. 그리고 그 속도는 일반적인 사람의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즉각적인 결과를 보였다.

        

       총을 쏘는 데 신체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의 총기는 대부분 무거운 쇳덩어리였고, 그런 것들을 능숙하게 휘두르고 최대한 빠르게 조준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체력관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감각이었다.

        

       바람의 흐름이니, 중력이니, 맥박이니, 그런 것들을 계산하는 계산식이야 당연히 차고 넘친다. 이 시대에도 멀리서 쏘기 위한 소총은 얼마든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쏘는 사람의 감각.

        

       이런저런 계산을 할 필요 없이, 아, 이 정도면 이런 거리겠구나. 이 정도 바람이면 이 정도로 총알이 휘어지겠구나. 지금 내 팔이 어떠니 어떤 식으로 총구가 흔들리겠구나—

        

       —그런 것들을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생각해 총을 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했다.

        

       시간을 돌리는 힘 말고는 아무런 재능도 없던 나였다. 그렇기에 그 감각을 조금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많이 쏴보는 것이었다.

        

       지금, 나에게 시간을 돌릴 힘이 그대로 있었다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그냥 일단 쏴보고, 맞지 않으면 돌릴 뿐이다.

        

       하지만 루카스는 웃고 있었다. 나를 보면서 불만스럽다는 듯 입을 삐죽이지도 않았고, 분하다는 듯 노려보지도 않았다.

        

       그저 그리폰 위에 타고 있는 나를 벨 수 있어서 즐겁다는 듯, 내가 ‘반칙’ 따위 쓰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그게 더 즐거울 것 같아서.’

        

       루카스는 왜 나를 골랐냐는 황제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팬그리폰을 밸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겠지.

        

       “…….”

        

       총을 드는 것은 본능적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온 생각이 있었다.

        

       능력 없이도 내가 저 녀석을 맞출 수 있을까?

        

       지금 시점이면 검성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녀석인데. 그것도 이런 거리에서. 평소처럼 바닥에 편하게 서있는 것도 아닌 자세에서.

        

       하지만 그 짧은 생각은 순식간에 휘발되어 날아갔다.

        

       내가 쓰던 모델과 같은 소총의 딱딱한 개머리판이 내 어깨에 걸쳐지고, 볼이 개머리판에 가 닿는다. 그 익숙한 감각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기다란 소총이 일자로 정렬된다. 가늠쇠 사이에 가늠자가 들어오고,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쳐지고—

        

       —그 안에, 루카스를 넣는다.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 앞부분이 위로 들리고, 어깨가 뒤로 눌렸다.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원래 내가 쏘는 총소리는 남이 쏘는 총소리보다 훨씬 작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루카스는 몸을 틀어 총알을 피했다. 오른쪽이다.

        

       그 광경을 본 나의 머릿속에 생각난 것은 ‘당연하다’였다.

        

       루카스가 어떻게 검성을 떨쳐 보낸 건지, 정말로 떨쳐 보내고 내 쪽으로 오고 있긴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베고자 달려오는 거라면 총알을 검으로 벨 수도 있는 루카스가 내 총알의 궤적을 예측해 피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당연하다’.

        

       최대한 빠르게 손을 놀려 볼트를 뒤로 당긴다. 핑- 맑은소리와 함께 탄피가 옆으로 날아갔다. 폐쇄되어있던 약실이 열리며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났다.

        

       다시 볼트를 앞으로 밀어 넣자 대기하고 있던 다음 총알이 약실로 밀려들어 가며 찰칵, 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탕!

        

       이번에는 루카스가 검으로 총알을 쳐냈다. 동시에 검기가 날아왔지만, 그리폰이 몸을 트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내 머리카락 끝을 베어냈을 뿐이다.

        

       신기한 건, 바로 내 얼굴 옆을 검기가 스치고 날아갔는데도 나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라 내가 겁먹을 틈도 없었던 걸까?

        

       그리고, 이것도 ‘당연했’다—

        

       아, 조금은 알 것 같다.

        

       루카스가 내 총알의 궤적을 몇 번이나 피하고, 막아내는 것을 보고도, 나는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고, 머릿속으로 냉정하게 판단했을 뿐이다.

        

       어째서일까?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루카스는 다시 한번 더 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다.

        

       ‘당연했다’.

        

       루카스는 ‘언제나’ 이렇게 피했다. 가끔 반대 방향으로 피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있을 때뿐이었다.

        

       그리고 루카스가 이렇게 총알을 피해야 하는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애초에 총을 든 인간이 루카스와 대적하면, 그것도 검기가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대적하면 총을 쏘기도 전에 상반신이 반으로 갈라졌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나는 한 번 더 볼트를 당겼다가, 앞으로 밀어 넣었다. 찰칵.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루카스는 이제 그 유쾌한 표정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가까워졌다. 그리폰이 마법을 준비하기라도 하는지 시야가 하얗게 흐려졌다. 나를 보호하기라도 하려는 듯 날개를 바짝 올렸다.

        

       하지만 루카스의 검기가 닿지 않을 거리는 아니었다.

        

       루카스가 다시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내가 총구를 움직이는 것을 루카스가 본 뒤에—

        

       나는 방아쇠를 얹은 손을 ‘아주 살짝’ 움직였다. 오른쪽으로. 하얀빛 사이에 내 모습이 가려 보이지 않을 때.

        

       총기라는 것은 그 방향이 아주 살짝만 틀어져도 나가는 방향이 크게 엇나가는 법이다. 상대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렇다. 뭐, 지금은 그렇게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루카스가 검을 휘두르기 전에,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루카스는 이번에는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래, 그렇겠지.

        

       본인도 그러면서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온갖 것을 죄다 총으로 쏘아보면서 살았다. 황궁 복도에 있는 도자기들이나, 거리에 걸려있는 작은 깃발, 비둘기, 참새, 산짐승, 들짐승…… 그리고 사람.

        

       그 사람 중에는 루카스도 포함된다.

        

       그리고, 단언컨대 ‘루카스를’ 가장 많이 쏘아본 인간도 나일 것이고, 루카스를 맞춰본 인간도 나 뿐일 것이다.

        

       그러니까, ‘당연했다’.

        

       이미 시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돌리면서 내가 익힌 감각이니까.

        

       몸에 새긴 감각은 쉽게 잊기 힘든 법이다.

        

       “큭!?”

        

       루카스가 달려드는 방향으로 미리 쏘아진 총알이, 루카스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했다.

        

       그래, 지난번에 맞은 총알보다 훨씬 아프지? 지금도 그때처럼 방탄 기능이 있는 옷을 입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권총탄과 소총탄에 실리는 에너지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나마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검을 들었던 루카스의 한쪽 어깨가 뒤로 휙 밀리면서 자세가 무너졌다.

        

       찰칵.

        

       다시 한번 총알을 장전하고,

        

       탕!

        

       마지막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여기까지 일어난 일이 말 그대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

        

       적의 사기가 꺾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폰이 날아다니며 마법을 마구 뿌리고 있었다. 법국의 시민으로 채워 넣은 군세도 이러면 별로 소용이 없다. 아무 훈련도 받지 않은 일반인이, 그것도 의식도 없이 달려들어서 막을 수 있는 존재는 결국 같은 사람뿐이다. 그나마도 자기들을 벨 생각이 없는 사람들.

        

       게다가 이미 장치도 기동을 멈췄다. 분명히 존재해야 할 톱니바퀴는 아예 사라져버렸고, 하늘 높게 솟아오르던 빛은 이제 멈췄다. 이 방 안의 광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만큼.

        

       잠깐은 여신의 힘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가 이 세계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군세는 정신을 잃고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를 따라온 일행들과 황제, 황제의 아이들, 그리고 몇몇 쓰러지지 않은 기사들만 겨우 서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끝이군.”

        

       황제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황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난전이 계속되고, 온갖 인물들에게 검격을 맞아 여기저기 베인 흔적이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루카스는 진작에 총에 맞았고, 벨라, 제이든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다들 겨우 선 채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존재는 데미안이었는데, 그렇다고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곧 벨부르에서 군대를 파견하겠지.”

        

       장벽이 사라졌으니 그렇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포로 대우라도 바라는 건가요?”

        

       샤를로트가 그렇게 묻자, 황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 생각 중이다.”

        

       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올라탄 그리폰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황제의 눈에 선망의 빛이 어리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인사는 오늘 안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Ilham Senjaya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독자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처음 노벨피아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2년째가 되어가네요. 솔직히 처음 취업을 했을 때만 해도 글로 돈을 버는 것은 둘째치고 글을 제대로 완성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글을 안 쓰기도 했고, 그때쯤엔 읽는 것도 잘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가 한 번 심심풀이로 읽어보자고 생각하고 웹소설을 읽다가, 저도 그런 글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연중성녀를 쓰기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왔네요.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죠. 분명 이번에도 안될거라고만 생각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신 여러분을 위해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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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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