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74

    루크는 그렇게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른 채로 개미를 구경했다.

     

    개미도 어찌 보면 이 숲의 마력을 구성하는 일원들 중에 하나였다.

    개미는 작지만, 생태계에 아주 큰 역할을 끼치기 때문이다.

     

    곤충들의 개체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잡아먹고, 동시에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또한 땅을 파 그 속에 거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흙을 부드럽고 기름지게 만들어 식물이 잘 자라게 하기도 한다.

     

    숲은 그렇게 개미 한마리조차도 각자의 역할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신비한가?

     

    결국, 루크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파이리스에게 줄 생각이던 남은 붕어빵들이 모조리 자신의 뱃 속과 개미들의 둥지 속으로 사라져버린 뒤였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간식과 구경거리를 즐기며 마나를 취하고 있으니 시간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마력도 슬슬 다 채운 것 같고, 이제 슬슬 돌아가 봐야지.”

     

    루크는 리엔느 숲의 어스름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쭉 폈다.

     

    “으극! 후우…….”

     

    쪼그려 앉아있어서 긴장했던 근육들이 당겨지며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딱히 이 몸이 필요로 하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단지 이 심리적인 충족감을 얻기 위해서 행하는 행동이다.

     

    오늘은 루크 숲에 일이 있어 예르나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가더라도 딱히 혼나거나, 추궁을 당할 일은 없었다.

     

    그러니 그리 급할 건 없지만, 굳이 이 어두운 숲 속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이유도 없으니까.

    리브에게 마력도 충분히 채운 것 같고 말이다.

     

    루크는 리브를 가볍게 안아들고는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그나저나 파이리스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아마도 집에서 자신의 컴퓨터로 정령소녀 메루루를 시청하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최근 파이리스는 메루루에 굉장히 몰입하고 있었다.

    가끔은 자신이 불러도 무시해버릴 만큼…….

     

    어쩐지 조금 버릇없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게 무조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고를 치는 것 보다는 그렇게 얌전히 있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메루루는 그 컨텐츠에 몰입한다는 것 자체로 정령인 파이리스에게는 굉장한 학습이 된다.

     

    루크는 문득, 며칠 전 파이리스가 메루루를 보다 말고 자신에게 다가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언니, 언니! 이것 좀 봐!’

    ‘왜 그러느냐, 파이리스?’

    ‘메루루 극장판이 나온대!’

    ‘으음, 그래? 잘 되었구나.’

    ‘있지, 있지. 극장판에선 대마왕이 나와서, 메루루 말고도 다른 정령소녀도 엄청 많이 나오고,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합체변신도 한대! 어때! 엄청 재밌겠지!’

    ‘으음……? 정령소녀가 합체도 하나……? 그런 설정이 있었던가……. 으음……. 뭐, 그래. 그거 재미있겠구나. 기대되느냐?’

    ‘응! 응! 엄청-!’

    ‘후후, 그럼 나중에 극장에 가서 보자고 예르나에게 말해보자꾸나. 12월 21일에 개봉이라…….’

    ‘응! 근데, 12월 21일이면 언제야? 몇 밤 지나야 돼?’

    ‘……!’

     

    그렇다.

    메루루를 보기 위해 컴퓨터를 자신에게 빌려 쓰기 위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한 파이리스가, 이제는 무려 ‘날짜’라는 개념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었다.

     

    직접 파이리스에게 날짜에 대한 개념부터 하나하나 설명하려고 했으면 아마 흥미도 없고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영화 개봉일이 언제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그런 파이리스에게 날짜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메루루의 덕분.

     

    ‘메루루가 그렇게 재미있었나.’

     

    뭐, 재미있었으면 된 것이리라.

     

     

    “……응?”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되돌아가던 루크는 문득, 어떤 것을 발견했다.

     

    바로, 나무가 긁힌 흔적과 발자국들.

     

    ‘이건…….’

     

    루크는 천천히 다가가 그 흔적들을 자세히 살폈다.

    나무가 긁힌 깊이나 높이, 그리고 발자국의 모양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이것은 절대 일반적인 동물의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인간이거나 인간과 매우 닮은, 그런 생물의 흔적.

    흔적은 그렇게 리엔느 숲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방향은, 루크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시가르마타를 추방하고, 월영석에서 공간의 파편을 단조했던 바로 그곳.

     

    어딘가 의심스러운 느낌에 루크는 마치 홀린 듯 그 흔적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찰나,

     

     

    루크의 어깨를 부여잡는 한 손길이 있었다.

     

    -휙.

     

    “누구지?”

     

    어깨의 감촉을 느낀 루크가 빠르게 그것을 쳐내며 고개를 돌리자, 단정한 양복 위에 마법사 로브를 걸친, 회갈색 머리칼의 남성이 눈에 보였다.

    게다가, 그에게선 꽤 강한 향수의 향이 느껴지고 있었다. 살짝 과할 정도로.

    루크의 시선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 그는 자신의 둥그런 안경을 고쳐쓰며 조금 난처하게 말했다.

     

    “이런, 내가 놀래켰니? 그쪽으로 가면 안돼, 거긴 출입금지 구역이거든. 너 같은 아이가 들어가면 안돼.”

     

    그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한 안내표지판.

    표지판에는 주의를 뜻하는 느낌표와 함께, ‘이곳은 마력이 불안정하여 위험할 수 있으니, 관계자 외에는 출입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잘 보이게 각인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경고를 무시하고 발생한 피해에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며, 오히려 피해가 생길 경우엔 피해보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는 문구도 매우 작게 쓰여져있다.

     

    가끔 도시에서도 공사 등으로 위험한 지역을 봉쇄할 때에 사용하곤 하던 바로 그 표지판이었다.

     

    루크는 꽤나 당황했다.

     

    이런, 대체 저런 표지판은 언제 생겼다는 말인가?

    분명 예전에 월영석에서 공간의 파편을 단조 할 때만 해도 저런 것은 없었는데 말이다.

     

    “어머, 죄송해요. 전혀 몰랐네요.”

     

    루크는 일부러 더욱이 아이다운 순수한 어투로 말했다.

     

    비록 금지된 숲을 배회하고 있었다는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정말로 몰랐다는 듯 미안하게 구는 여자아이에게 화를 내며 혼을 낼 어른은 아마도 많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루크의 계산은 잘 들어맞았다.

    그는 딱히 화를 내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정신없이 놀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이런 숲에는 무슨 일이니? 혹시 길이라도 잃은 거니?”

     

    그는 교복에 곰인형을 껴안고 있는 루크의 모습을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아카데미의 교복, 그리고 작고 귀여운 곰인형을 품에 안은 채 숲 속을 어슬렁 거리는 여자아이.

    누가 보더라도 비슷한 추리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숲 초입에서 소꿉놀이를 하다가 길을 잃은 아이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놀고 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루크는 자신이 안고 있는 곰인형을 살짝 들어올리며 말했다.

     

    “리브와 함께 개미를 구경하다가, 조금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서요.”

    “음, 역시 그런 거구나?”

     

    그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널 저 안으로 들여보내 줄 수는 없어. 그곳은 금지되어 있으니까. 대신, 이 오빠가 숲 밖으로 데려다 줄게. 아직은 밝아도, 어두워지게 되면 굉장히 위험할 테니까.”

    “으음……. 좋아요.”

     

    루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루크는 그에게 꽤 많은 질문을 건넸다.

     

    ‘오빠는 이름이 뭐에요?’라거나, ‘오빠는 왜 여기에 있어요?’라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 아이의 질문에 그는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그의 이름은 세이어, 그는 자신이 이 숲에 조사차 파견된 마법사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세이어……오빠는 이 리엔느 숲 지역에 파견된 마법사라는 말씀이신거죠?”

     

    세이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최근 이 숲의 마력이 굉장히 불안정 했거든, 마력폭풍도 자주 생기고.”

     

    루크는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저도 들어봤네요.”

    “오, 알고 있구나? 뉴스를 봤으려나? 어려 보이는데, 벌써부터 사회에 관심이 많나 봐? 아무튼, 그런 큰일이 있었으니까.”

     

     

    사실은 고작 들어봤다기 보다, 무려 자신이 그 사건의 틈새에 얽혀 있었지만.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다.

    그동안 리엔느 숲에 출입할 때는 그런 표지판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점차 안정화 되어가던 중이 아니었던가?

    만약 루크가 발견할 거였다면 발견해도 진작에 발견했어야 말이 된다.

    자신은 이전에도 꽤나 자주 리엔느 숲에 찾아왔으니까.

     

    루크는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숲의 사태가 벌어진 초기엔 없던 표지판이 지금에 와서야 생겨났을까.’

     

    하지만 그 의문까지는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것을 알고 묻는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리엔느 숲에 자주 출입했다는 증거이고,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라고 묻는다면 변명하기가 꽤나 골치 아파질 테니까.

     

    루크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리브를 쓰다듬고 있을 때, 세이어가 말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숲을 찾아온 걸 보면, 숲을 꽤 좋아하는가 보구나? 혹시 정령도 좋아하니?”

     

    루크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둘 다 아주 좋아해요.”

     

    숲은 마력을 얻기 편해서 좋아하고, 정령은 실제로 친하니까.

    루크의 대답을 들은 그는 여전히 느긋한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그렇구나, 좋겠네. 하지만 이 시간에 혼자 숲을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지. 길을 잃으면 큰일이잖아?”

    “네에.”

     

    길을 잃을 일 따위는 없지만.

    리엔느 숲은 한두번 와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루크도 길은 꽤 잘 알았으니까.

     

    ‘……잠깐.’

     

    하지만 루크는 문득, 이 길이 꽤 낯설다고 느꼈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세이어? 여기는 제가 왔던 길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 맞아. 더 안전한 길로 가고 있거든. 몬스터라던가, 위험한 마력폭풍이 없는 방향으로. 그러니까 네가 왔던 길과는 다를 거야.”

    “으음, 그런가요?”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자체는 그럭저럭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루크는 세이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요, 세이어. 사실은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하하하, 너, 보기보다 질문이 많구나? 그래, 뭐든 물어보렴.”

     

    그의 흔쾌한 대답에, 루크는 잠시 뜸을 들이듯 세이어를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까부터, 여기서 지독한 흑마법의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

     

    그는 침묵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ps. 명암제거 버전은 늘 그렇듯 사용되지 않은 삽화 모음에…!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