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74

       예테린푸르크에 도착한 찰리 일행이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괴물 서커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서커스 잡지에 그들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기는 했지만, 알 수 있는 내용은 피상적인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조사하려고 해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괴물 서커스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귀족들의 별장이 밀집된 지역이었다. 그곳은 경찰들이 골목을 순찰하고 있어서 함부로 접근하기 힘들었다. 괜히 주위를 얼쩡거리다가 엘라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작전이 실패할 수도 있었다.

         

       찰리는 특히나 다른 친구들보다 좀 더 조심해야 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한 지 고작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곳에는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나마 마침 할로윈 시즌이 시작되어서 다행이었다. 별장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괴물 단원들이 외출하기 시작했고, 자신들도 얼마든지 변장하고 다닐 수 있었기에 조사가 한결 수월해졌다.

         

       찰리는 친구들이 괴물 서커스를 조사하는 동안 학교 내부에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그가 맨 처음 떠올린 사람은 당연히 클라라였다. 그는 그녀와 2년 가까이 알고 지냈다. 그녀는 누구보다 믿을 만한 유능한 후배였다. 그러나 그는 선뜻 그녀를 찾아가기 쉽지 않았다.

         

       ‘왜죠?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건가요?’

       ‘아냐, 아냐. 넌 좋은 친구야, 클라라. 하지만 내가……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자신과 그녀 사이에 있었던 마지막 대화를 생각하면, 자신 쪽에서 그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그녀에게 할 짓이 못 됐다. 심지어 이건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던 이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은 그녀가 신입생 환영회에 당한 사고의 후유증으로 휴학계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굳어졌다.

         

       상대에게 정신적 공격을 가한다는 속삭임, 파피락스. 그녀를 괴롭힌 목소리 중에 왠지 자신의 것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대회 기간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엘라를 붙잡기 위해 저지르는 뒷공작을 시험에 대한 부정행위로 받아들이고 신고하려 들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학교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는 것을 포기하고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우선 그는 지하에 거처를 마련했다. 한때 대성당이었던 학교 건물 아래에는 카타콤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해골과 뼈가 가득 쌓인 복잡한 미로였지만 그에게는 앞마당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카타콤의 구조를 숙지 시키며 작전을 준비해나갔다.

         

       그들은 아직 복수의 대상을 어디까지 잡아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했다. 엘라가 괴물을 부려 고향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했는데, 그게 저 서커스의 단원들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마귀나 마물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괴물 서커스의 단원들은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로 보였으나 멀리서 관찰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찰리는 한 가지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어쩌면 레이나에게서 정보를 캐낼 수 있을지도 몰라.”

         

       찰리는 동료들에게 3년 전 신입생 선발시험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로드 판타스틱이 레카체프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 딸을 내보냈다가 그에게 패배한 일을 말이다.

         

       “그래서 그 3년 전의 인연으로 걔가 널 돕는다고?”

       “그게……사실 우리는 그날의 대결 이후로 주기적으로 편지도 주고받았었어.”

         

       그를 바라보는 4명의 친구가 ‘이것 봐라?’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3년 동안 방학마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서 머물다 갔었는데도 한 번도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찰리는 마치 짠 것처럼 동시에 같은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의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오해하지는 마. 연애편지 같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저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몇 번 물었을 뿐이야.”

         

       찰리는 조금 단호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을 빠르게 끝맺었다.

       사실 첫 2년 동안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정말로 그런 내용뿐이었다. 둘은 서로를 자신에게 자극이 되는 선의의 경쟁자 정도로 취급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두 사람은 점점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먼저 마음을 연 것은 레이나 쪽이었다. 그녀는 딱딱한 단답형으로 말하던 이전과 달리 듣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것 같은 미려한 말투로 그에게 호감을 표현했다.

         

       솔직히 그녀 정도 되는 미인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에 혹하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 그는 실제로 몇 번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엘라를 좋아했지만, 자신을 여전히 친구 이상으로 안 보는 그녀에게 섭섭함을 느끼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혹시나 친구들이 그것을 더 캐물을까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어쨌든 괴물 서커스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볼 수 있을 거 같아.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거리 공연에 나가는 버릇이 있어. 그때 접촉해 볼게.”

         

       찰리는 최대한 냉정한 척 말했지만, 자신이 그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편지로만 서로를 격려하던 두 사람이 3년 만에 크게 성숙한 모습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두근거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특히나 엘라에 대한 감정이 혼란스러운 지금, 레이나에 대한 감정은 이전보다 더 커졌다.

         

       “정장을 입고 갈 필요가 있어?”

       “그래그래. 향수까지 뿌리고.”

       “그렇다고 토굴에 사는 부랑자 같은 모습으로 만날 수는 없잖아.”

         

       찰리는 자신을 수상쩍게 바라보는 친구들에게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대꾸하고는 아지트를 나왔다. 황금 카니발과 괴물 서커스가 머무르는 별장 근처를 감시하고 있던 그의 부엉이가 마침 레이나가 거리에 나와서 재주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찰리는 그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정장을 입었고 변장용으로는 ‘웃는 남자’의 가면을 썼다. 위로 향해 곡선을 그린 우스꽝스러운 콧수염과 얼굴의 중심선처럼 그어진 턱수염, 과장된 보조개, 그리고 볼의 홍조가 인상적인 가면이었다. 마침 레이나가 ‘우는 여자’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해서 그녀에게 맞춘 것이었다.

         

       그는 레이나가 공연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균형 감각으로 작두 위에서 재주를 펼쳤다. 군중의 갈채를 받으며 공연을 마친 그녀는 사람이 없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일단 그녀와 대화를 나누려면 가면을 벗어서 정체를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거리 공연이 행해지던 광장에는 레카체프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드문드문 보였었다.

         

       그러나 그녀의 뒤를 밟던 찰리는 곧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했다.

         

       “아빠!”

         

       항상 도도하고 차가운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가 어린애처럼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어떤 남자에게 안긴 것이다. 그녀는 가면을 벗고 그의 가슴에 대고 얼굴을 비비며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애교를 부렸다.

         

       “쓰다듬어 주세요!”

       “뽀뽀해주세요!”

         

       찰리는 충격에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 구축했던 레이나의 이미지가 와장창 깨져 버렸다.

         

       그녀와 직접 마주하고 느꼈던 인상, 그녀와 주고받았던 편지, 기사를 통해 안 그녀에 대한 소문, 최근 며칠간 부엉이를 통해 관찰한 그녀의 평소 모습 등.

       그 모든 것이 부정되었다.

         

       “우리 딸 어제는 많이 참았나 보네. 만나자마자 이렇게 달라붙고.”

         

       레이나에게 아빠라 불린 남자는 그녀의 그런 모습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레이나와 같은 색의 금발에 수려한 외모를 보고 순간 찰리는 그가 정말 레이나의 숨겨진 친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는 10대 초반에 장가를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언뜻 보면 몇 살 차이 안 나 보이지만, 레이나가 또래보다 성숙해 보인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저 남자가 특별히 동안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레이나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역할 놀이’ 운운하는 것을 듣고 찰리는 둘이 그저 부녀 관계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런 사실은 그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저지르고 있는 짓이 더 불결하게 느껴졌다. 특히 그녀가 만나는 상대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자기보다 어린 여자에게 접근해서 아빠 소리 들어가며 상대의 몸을 주무르는 남자가 제대로 된 인간일 리 없었다. 남자의 잘생긴 외모와 음흉한 미소가 그의 그런 생각을 더 부추겼다.

         

       둘은 골목 구석에 등을 기대고 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레이나가 힘든 이야기를 토로하고 남자가 달래주는 식이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시험이네요.”

       “그래. 우리도 이제 연습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지. 그런데 이 와중에 공작님께서 갑자기 우리를 소집하다니. 무슨 일인지 들은 것 있니?”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아는 것 같은데 얘기를 안 해주세요. 또 어떤 뒷공작으로 얻은 정보일지…….”

         

       지몬을 험담하는 것은 레이나가 그를 만나면 늘 하는 일 중 하나였다.

         

       찰리는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레이나가 로드 판타스틱의 가혹한 교육 방식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에게 저렇게까지 반감을 느끼고 있는 줄은 몰랐다.

       찰리는 지금까지 그녀가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여겼다. 특히 최근 1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들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칠 정도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전부 가식이었던 걸까?

       찰리는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하지만 그가 놀랄 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거 아세요? 아버지가 이번 시험의 정보를 얻기 위해 어떤 짓을 했는지?”

         

       레이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의 의문에 대한 해답이기도 했고, 오늘 들은 가장 놀라운 사실이기도 했다.

         

       “이상하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찰리 씨에게 편지가 안 오는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1년 넘게 저인 척하면서 찰리 씨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거예요. 그를 살살 구슬려서 레카체프 시험에 대한 정보를 빼내려고요. ‘남자애들은 다 똑같지. 조금만 추켜세워주면 자기가 아는 걸 자랑하려고 애쓴단 말이야.’ 제 앞에서 그렇게 쓸만한 공략 몇 개를 빼냈다고 신나서 늘어놓는 거예요! 믿겨 지세요? 제가 찰리 씨가 시험의 설계 전반을 맡았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해주는 게 아니었는데…….”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속으로 탄식을 삼켰다.

       지몬 마기어.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는 인간이었다.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인지.

         

       두 사람은 얼마 안 있어 과자 공장에서 보자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홀로 골목에 남은 찰리는 한참을 바닥을 바라보다가 그들이 충분히 멀리 떠난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그는 준비한 선물을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눈물을 닦았다.

       슬픈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에게 품었던 건 은근한 연심 정도였지, 본격적으로 좋아하거나 고백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길 뿐이었다.

         

       별일 아니었다.

       그래. 별일 아니었다.

         

       “처음부터 착각이었구나.”

         

       재담의 소재거리로 손색이 없는 내용이었다. 그 자신의 일만 아니었다면 찰리는 농담으로 자주 써먹었을 것이다. 너무 수치스러워서 어디 가서 꺼내기도 부끄러웠다. 이 웃음의 핵심은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자신이 착각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찰리는 아까 레이나와 함께 있었던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누굴까.

         

       비록 그녀와 자신 사이에 싹텄다고 생각했던 감정은 자신의 착각으로 드러났지만, 그에게 안겨 교태를 부리는 그녀를 떠올리니 속이 썩 좋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돌변할 수 있을까.

         

       혹시 최면이나 암시 같은 게 아닐까?

       찰리는 그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들킬까 봐 자세히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그처럼 잘생긴 얼굴은 쉽게 잊을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걷던 찰리는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멈춰 섰다.

         

       그의 머릿속으로 흐릿한 흑백 사진 한 장이 스쳐 지나갔다. 이 시대의 사진이라는 것이 비록 해상력은 떨어져도 생김새가 같은지 다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찰리는 그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그 남자.

       엘라가 있는 서커스단의 단장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모티콘을 그려주셨던 XONE님께서 다시 팬아트를 몇 장 그려주셨습니다! 아틀리에에 가시면 그림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미노바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의 생생함이 미쳤어요!!

    앞으로 진행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기 때문에 본편에 올리기는 힘든 그림이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