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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4

        

         “흐….”

         

         흔들리는 승합차(Van) 내부에서 남자의 투박한 손이 머뭇머뭇.

         어딘가 사이즈가 안 맞아서 불편한듯 목덜미와 옆구리 주변으로 가 익숙지 않은 해저드 슈트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겼다.

         

         일단 명목상으론… 그리고 사실 서류상으로도 오늘 이곳을 방문하기로 한 청소 용역 업체의 소독 전문 직원인만큼 어색한 티를 내는 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결행 직전에 느껴지는 야릇한 긴장감이라는 건 그렇게 딱 잘라낼 수 없는 영역에 한 발짝 걸쳐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단순히 조심하는 걸 넘어 어디까지나 의연하고 대범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어디 안전한 장소에 앉아 입으로 떠드는 거야 쉽겠지, 그러나 원래 머리로 아는 걸 실전에서 몸으로 실천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드문 법.

         

         결국 몰려오는 초조함에 남자는 계속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

         

         “형씨, 거 너무 그렇게 막 떨지 마쇼. 우리가 무슨 ‘나쁜 일’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이번 거사가 잘 풀리길 바라며 도와주시는 형제 자매분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뭘 그리 걱정하는지 원.”

         

         “아, 아하하… 역시 그럴까요…?”

         

         돌연 능청스럽게 옆구리를 쿡 찌르며 들어온 동승자의 참견에 그는 어색하게.

         그렇지만 빈말이라도 확실히 어딘가 위안이 된 듯, 한층 누그러진 태도로 경직되었던 상반신을 한 번 부르르 떨어 이완시켰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빈말 같은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은 다가오는 어두운 미래를 외면한 채 쓸데없는 돈벌이와 선동에 집중하는 방송국 녀석들을 향해, 그리고 어리석게도 거기에 끌려 다니는 민중을 위한 ‘계몽 운동’을 하러 가는 중이었고 못해도 이백은 넘는 신도들이 투입되었으니.

         

         “당연하지 않나? 어떤 놈들과 맞붙는지만 알아도 거의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게 이런 싸움일진대. 적의 방어 체계는 물론이고, 안에서 내통해주는 동지까지 있는 마당에 쓸데없는 걱정은 하는 건 낭비지! 그러니 우리 기술자 형씨는 눈 먼 총알만 조심하고 그 물건 간수만 잘 부탁한다고? …난 그게 제일 무서워.”

         

         “전용 완충 케이스에 담긴 데다가 점화선도 다 뽑혀진 상태라 불의의 사고가 날 염려는 전혀 없지만…… 제가 여기 집중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된다면야.”

         

         분명 전자공학과 폭발물 전문가로서 차출된 자신과는 달리, 긴장 풀라며 말을 걸어준 상대는 교단(Cult)에 몸담기 전엔 용병 업계에 있던 전문 싸움꾼.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익숙한 전투원의 조언이자 부탁이었으니 거기에 충실히 따르는 게 옳은 판단이리라.

         

         말마따나 걱정할 건 하나도 없다. 각자 맡은 바에만 집중하며 대의를 따르면 실감하기도 전에 무사히 끝날 일이라 마인드 컨트롤을 몇 분이나 계속 했을까.

         

         치익…!

         최대한 부드럽게, 그새 메모리얼 타임즈 건물 앞에 정차한 밴의 유압식 출입문이 열렸다.

         

         “…다른 팀들도 배정된 엔트리 포인트에 모두 도착했다고 저희의 신호탄을 기다리고 있다 합니다. 무운을 빕니다 여러분, 인류의 존엄을 위하여(For all Human’s Dignity).”

         

         “”인류의 존엄을 위하여…!””

         

         으레 맛탱이 간 프레퍼족(Preppers; 멸망에 대비하는 사람들) 새끼들이라 욕먹곤 하지만, 스스로를 한 발 앞서 나간 선각자라 믿는 인공지능 종말론자들.

         

         아르카디아 교단(Cult Arcadia)의 결사대로서 품은 신념의 구호를, 차량을 처리하러 떠날 드라이버의 선도에 따라 나지막이 복창한 그들은, 각자 담당한 짐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는 우르르 내렸다.

         

         안에 방탄판을 덧대어 입은 탓에 일부 인원들의 거동이 수상쩍게 뒤뚱거리고 불편하긴 했어도.

         

         해저드 슈트를 껴입은 노동자들이 몰려다니는 게 그다지 유별난 풍경이 아니었던 덕에 ‘어디서 또 유독 물질이 샜나 보다….’ 하는 눈초리만 받은 결사대 무리는 무사히 방송국 정문, 물품 검색대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아무데나 대충 빨리빨리 몰려든 건 절대 아니었다.

         

         정확히 2번 라인. 기술자 남성과 비슷하게 만만치 않게 긴장한 채, 약조한 대로 교단 인원들이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보안 담당자가 자리한 곳에 줄을 선 그들은 차례차례 물건을 내려놓았으니.

         

         “……오늘 상황실 소독 작업을 해주시기로 한 스위프 앤 스왑 업체분들 맞으십니까? 스읍, 살짝 늦으셨네요.”

         

         “예, 예. 많이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려. 그러니까 얼른 좀 부탁드립니다. 기다리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상당히 묘한 눈초리와 꽤나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고 갔지만, 실제로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경보가 울린 건 아니었기에 다른 방송국 경비원들은 아직까지 무반응.

         

         이 틈에 후딱후딱 처리하자는 것처럼 담당자는 청소 도구를 우겨 담은 것처럼 보이는 가방들을 하나씩 엑스레이 스캐너에 통과시키기 시작했는데.

         

         “…….”

         

         처음 두 자루의 짐에는 부대 전체가 무장하고도 남을 소총을 비롯한 각종 화기 무장들이 꽉꽉.

         곧이어 나타난 포대에는 탄창이나 가스 수류탄을 위시한 각종 전투 소모품들이 차곡차곡.

         

         그리고… 대망의 깜짝 선물이라는 되는 것 마냥, 최후의 가방에는 그 실루엣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중형 사제 폭탄의 그림자가 보이자마자 담당자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교단에 심취하거나 교인으로서 포섭된 게 아니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통과시켜주라는 위로부터의 명령 때문에 일부러 근무 시프트까지 바꿔가며 내려온 심약한 그로서는 당장 알람을 울리고 싶었으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늦은 건 죄송하지만… 저희도 일정이 많이 밀려서 급한데 말입니다.”

         

         “…아뇨! 그 일보러 가셔도 됩니다. 짐도 빠짐없이 다 챙기시구요.”

         

         까딱까딱, 해저드 슈트에 뚫어 놓은 틈새로부터 어느샌가 뽑아진 권총의 총구가 흔들리는 걸 본 그에겐 별로 유의미한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 또라이 사이비 새끼들이 지나갈 금속 탐지기의 전원을 슬쩍 끄고는, 시야에서 사라지는 대로 곧장 조퇴하는 게 좋겠다는 다짐을 했을 뿐.

         

         평소라면 무인기와 경비 로봇이 잔뜩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직원 한두 명이 매수되고 협박 좀 당한다고 뚫릴 허술한 보안이 아니었지만, 최근 극성이라는 신종 바이러스 탓에 외부 경비에 배치되어야 할 드로이드 분대들이 내부로 빠져서 생긴 공백이 이렇게 아프게 찔릴 줄이야.

         

         …아니면 설마 그런 부분까지 다 감안하고 계산해서 이것들이 들어올 수 있게 협조해준 건가? 대체 방송국의 누가??

         

         얼빠진 표정의 보안 담당자가 내적 혼란을 겪고 있던 말던.

         첫번째 관문을 무사히 넘은 교단 무리는 빠른 걸음으로 방송국 내부를 주파해 나가기 시작했으니.

         

         “엔지니어, 그리고 페어를 이루는 팀원들은 흩어져서 휴면 중인 보안 로봇들 소프트웨어 빨리빨리 덧씌워서 전력 보강하고, 기술자 형씨와 B팀은 얼른 가서 폭탄부터 조립해서 4번 관제실에 던져 넣어! 거기가 사라지면 건물 봉쇄 기능이 마비되니까, 바로 후속 지원 팀이 밀고 들어와서 우리 퇴로도 확보하고 백업해줄 거다. 마지막으로 A팀 타격대는….”

         

         작전 개시 신호탄이나 다름없는 폭발 전까지는 비상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가급적 숨겨야 하기에.

         

         옆으로 일반 직원들이 지나갈 때 잠시 입을 다물고선, 손짓으로 명령을 하달한 동지들의 이목을 끌어 모으는 걸로 재차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와 함께 라이브(On-Air) 상태인 뉴스 룸을 친다. 명심해, 공포는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어리석은 놈들에게 진짜 위협을 경고하기 위해 온 거지, 다 죽이려 온 게 아니다.”

         

         “그럼 대장, 폭력은 어디까지 지양합니까? 적진 한복판에서 아예 선제 공격을 금지하는 건 좀 가혹한 것 같은데….”

         

         약간 불만 섞인 투덜거리는 말투로 뒷말을 흐리기까지 했지만, 사실상 테러리스트라는 목숨 내놓은 처지라는 걸 생각하면 지당한 의문을 표하는 팀원에게.

         

         현장 사령관 역할을 맡은 전 용병은 어딘가 순수한. 그러나 옳다고 믿는 가치 이외에 다른 건 일절 상관없다는 식의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확실하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개 시팔 헛소리냐? 당연히 무저항인 민간인을 죽일 이유는 없지만, 대의에 협조하지 않는 녀석들은 전부 이단이지. 덤벼드는 새끼들은 보이는 족족 갈아버려! 작전 개시다…!!”

         

         그렇게 보안 관제실 하나가 폭발에 휘말려 통째로 무너지고, 메모리얼 타임즈의 간판 아나운서가 격앙된 목소리로 대본을 읽던 뉴스 데스크에 난데없이 총부리를 겨눈 미친놈들이 침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

         

         방송국 건물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동시에 치솟았다.

         

         

         

         ★ ☆ ★ ☆ ★

         

         

         

         “자, 여러분. 여러분! 잠시 조금만 진정해주시고, 방금 막 핫라인으로 나간 공지사항 다들 보셨죠? 현재 방송국에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침입하여 자신들의 성명문(Statement)을 송출할 것을 요구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테러리스트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외형도 통일되지 않고 상세한 위치도 불명일뿐더러, 위험성도 높은 만큼 가급적 모든 직원들은 복도를 돌아다니지 말고 스튜디오 내부나 룸 안에 머물면서 사태가 수습되기를 기다려달라 하니 출입문 상태부터 확인합시다!”

         

         카메라 쪽에서 더글라스가 과장되게 큰 목소리로 좌중을 다독였지만, 고층 건물이 뒤흔들릴 수준의 진동과 잇따른 사이렌이 울려퍼지는 것치고는 홀로그래픽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침착했다.

         

         생각만큼 당황하지도 않고, 딱히 새된 비명을 지르는 것도 없고, 적당히 웅성거리는 정도?

         

         워낙 높은 건물이라 현장과는 거리가 좀 있다해도 이런 침착함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은, 역시 눈앞의 이 태연자약한 성희롱 바보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와, 진짜. 너희들은 정보 수집력이 딸리면 운이라도 따라줘야 하는데 재수도 없지.’

         

         ……얘가 나타나기 직전까지 전혀 짐작도 못하고, 쫄래쫄래 방송국 통신망이나 만지작거리러 왔다가 정면으로 마주친 내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에나마 코퍼레이션의 상임 이사께서 몸소 출장 나오신 타이밍에, 생방송 한 번 점거하겠다고 무리수를 둔 사이비 광신도들에게 대신 명복을 빌어 두었다.

         

         나와 쇼우 중 어느 쪽 경호원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헷갈려 하는 것 같은 마사나리를 제외하고서도, 제로를 포위한 추적자만 셋에 촬영장 쪽에 포진한 에나마 무장 사병만 족히 다섯.

         

         이런 상황이니 여기 있는 직원들이 오히려 안심하면 안심했지, 급하게 대피하려는 흉내 따위를 내지 않은 것이다.

         

         드넓은 개활지에서 정교하게 짜인 사선을 이용해 화력으로 밀어붙인다면 또 모를까, 이런 좁은 통로와 코너가 난잡하게 얽힌 실내 전투에서 ‘인공지능이 우릴 다 죽이고 말 거야! 끄아아앙!’거리는 친구들이 저 사이버 닌자를 상대한다?

         

         개개인의 전력 편차가 워낙 심한 집단이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아마 피부에 생채기라도 내면 잘 싸운 결과가 아닐까 싶다.

         

         따라서 결과론적으로 나한테는 정말 완벽한 타이밍에 방해가 들어온 셈.

         

         당장 거슬리는 침입자가 근방에 나타났으니, 그로선 나와 이런 쓰잘데 없는 신경전을 벌일 게 아니라 저것들부터 밀어버리려 가야지.

         나는 빠져나갈 명분도 얻은 데다가, 마침 미리미리 잡아다 마킹이라도 해 두려던 놈들이 제 발로 내 앞에 걸어 들어왔으니 찾아가는 수고도 덜었지.

         

         종교에 과하게 미친 인간들은 사회악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는데 핑계로 써먹기엔 썩 나쁘지 않을지도?

         

         “에다마츠 이사님?? 미스 아나스타샤? 두 분도 괜찮으십니까? 혹시 폭발 충격으로 탈의실에서 불운한 낙하 사고 같은 게 발생한 건 절대 아니리라 믿습니다!? ……제발요!!”

         

         “…꽤 애타게 찾으시는데. 일단 가서 안심시켜 드리는 게 맞지 않겠어?”

         “…….”

         

         얼른 대화의 주제를 틀어버린 내가 얄미운 듯, 쇼우가 양쪽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이쪽을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라도 난 것처럼 방긋 웃었다.

         

         그래, ‘일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테러리스트를 배제하려 할 것이다.’ 혹은 ‘탈출할 방법을 우선적으로 확보한다.’ 이게 보통은 당연한 고위 권력자의 행동 양식이다.

         

         방송국의 지침이 어떻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없는 위협에 관해선 민감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애당초 그런 식으로 행동할 마음이 없던 놈이라면 어떨까?

         이런 스튜디오 쪽에 몰린 상황을 타개하거나 빠져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눌러앉을 기회가 생겼다며 좋다고 순응하는 진짜배기 바보라면?

         

         “마침 잘 됐군요. 그럼 이제 여기서 차분히 저희끼리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동요하는 직원분들만 안심시켜 드리고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아샤.”

         

         “……엥?”

         

         어디 도망가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것처럼 나를 타이르곤 옷자락이 붙잡히기 전에 잽싸게 스탭들에게 다가가는 쇼우를 본 난 빠져나가기는 고사하고 어리벙벙한 감탄사나 흘렸다는 얘기다.

         

         …시발 잠깐만, 이게 아닌데? 저기요?? 얌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님아 왜 안 감;
    ??? : 전 여기가 더 편하고 좋네요~

    으악! 한 시간 지각. 죄송합니다. 도저히 문장이 깔끔하게 매듭 지어지질 않아서 수정을 거듭하다가 늦었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모두 정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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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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