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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4

     황금의 노예가 솟아나기 시작한 이후,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이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예외는 없었다.

     바르셀로나 총독부에 있어야 하는 나도 이곳 지브롤터 성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보고 있는 만큼, 모든 지브롤터가 성으로 모여야만 했다.

     지브롤터의 안전을 위해?

     그런 것도 있기는 하지만, 지브롤터 주변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목적이 더 컸다.

     누아르가 아카데미에 있었다?

     아카데미는 허구한날 황금의 영웅에게 습격당했을 것이다.

     차라리 그 이유라도 몰랐다면 황금의 재앙이니 뭐니 하면서 아카데미에서 계속 지냈겠지만, 지브롤터가 타깃인 걸 온 세상이 아는 만큼 아카데미에서 지브롤터로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더 세게 잡아라, 누아르.”

     “크으윽!!”

     연무장에는 아버지와 누아르가 검을 맞대고 있다. 

     그냥 검을 맞대고 있는 게 아니라, ‘오러’를 일으킨 검을 맞대며 대련을 하고 있다.

     서로, 오러를.

     “누아르 도련님도 많이 성장하셨군요.”

     나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 로버트 경이 연무장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 사이에 이렇게 빨리 성장하시다니.”

     “그러게. 정말이지, 감회가 새롭군.”

     누아르 지브롤터, 16세.

     이제 앞으로 반 년-약 4개월 정도만 지나면 17세가 되는 나이.

     원래대로라면 아카데미 1학년으로 입학을 준비하고 있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누아르는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도련님.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

     “자랑스럽다기보다는, 지브롤터라면 응당 그래야지.”

     “하지만 누아르 도련님이 마스터가 된 이후로 평소보다 표정이 밝아지셨잖습니까.”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주변 사람을 지킬 수 있을만큼 강해졌기 때문이지.”

     내가 누아르를 아카데미에서 잡아다 지브롤터로 왔을 때, 누아르는 상급 기사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누아르는 곧 상황을 파악하고 지브롤터 성으로 돌아와 검술 수련에 매진했다.

     어느정도로 열심히 검을 수련했냐하면, 아버지에게 직접 검을 가르쳐달라고 스스로 나섰을 정도.

     아버지 또한 누아르의 그런 열정에 딸들과의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검을 들었다.

     

     비록 초보 마스터-마스터라는 단어 앞에 초보라는 걸 붙이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에 불과하나, 누아르는 나름 아버지를 상대로 선전하고 있다.

     “크윽!”

     누아르가 바닥에 쓰러진다.

     검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검을 잡으려고 했기에 누아르는 아버지의 검에 어깨가 베였다.

     ‘열심히 하네.’

     선전은 하지만, 이기지도 비기지도 못하는 정도.

     거듭된 패배가 누아르를 성장하게 만들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누아르 도련님!”

     

     바닥에 쓰러진 누아르를 향해 메이드 한 명이 달려간다.

     하얀 머리를 흩날리며 누아르에게 달려간 메이드는 금방 누아르의 어깨를 향해 손수건을 뻗었다.

     “도련님….”

     “괜찮아, 웬즈데이. 아직 할만 해.”

     “…….”

     “나를 믿어. 아버지도 나를 죽일 생각은 아니시잖아? 한계까지만, 딱 쓰러지기 직전까지만 해볼게.”

     누아르는 웬즈데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몸을 일으켰다.

     검을 지팡이처럼 땅에 꽂으며 몸을 일으키고, 어깨를 손수건으로 꾹 눌러 지혈한 뒤 다시 검을 들었다.

     “좋을 때다.”

     나는 둘을 보며 실소가 나왔다.

     아카데미에서 같은 방을 쓸 때부터 느낀 거기는 하지만, 둘은 사실상 일선을 조금만 넘으면 완전한 연인을 넘어 부부와도 같은 관계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좋으십니까?”

     “처음에 누아르에게 여자들 여럿 붙여둘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누아르와 웬즈데이.

     누아르에게 있어 ‘순애’라는 단어는 그의 인생에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 역사는 이제 나의 동생 누아르에 의해 덮어쓰기되어 지워졌다.

     “웬즈데이가 꽉 잡고 살았으면 좋겠군.”

     “아마 그럴 겁니다. 다른 화이트들도 꽉 붙잡고 있거든요. 누아르 도련님의 첩 자리를.”

     “…걔들, 포기 안 했어?”

     “예. 오히려 웬즈데이를 큰언니…아니죠. 정부인으로 추켜세워주며 후처를 노리고 있더군요. 누아르 도련님의 후처 자리를. 정작 누아르 도련님 본인은 웬즈데이를 신경 쓰느라 내키지 않아하고 있지만, 웬즈데이가 허락을 하면 아마 누아르 도련님도 거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오는 여자 거부하거나 그런 녀석은 아닐 거니까. 그런데….”

     여러모로, 조금 그렇긴 하다.

     누아르가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세상이 많이 달라지긴 달라졌어.’

     내 덕분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나 자신에게 스스로 감사할 수밖에 없다.

     누아르 뿐만 아니라-

     똑똑똑.

     문 밖에서 들린 노크 소리.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익숙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나보다는 조금 하얀색에 가까운 은회색 머리칼의 청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보고드립니다. 이번 캐롤라인의 총량은….”

     “오빠!!”

     청년의 뒤, 빼꼼 고개를 내밀며 히죽 웃는 레타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에단한테 일 시키지마!”

     “…….”

     “에단이랑 놀 거란 말이야!”

     “…….”

     사춘기인가?

     라고 하기에는, 에단이 당황하며 얼굴을 붉히는 기색이 역력했다.

     “뭘 하고 놀 건데.”

     “으음…다른 건 없고, 그냥 에단을 안고 잘 건데?”

     “…….”

     “…….”

     에단이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리고, 나는 그런 에단과 레타르를 몇 번이고 바라봐야만 했다.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건지.’

     레타르는 나보다 6살 어리다.

     즉, 레타르의 나이는 이제 13살이다.

     ‘레타르야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았으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그런데 그 성장 정도는 아스타시아가 17살일 때와 비슷할 정도로 빠른 편이며-

     ‘에단도 엄청나군.’

     에단 또한, 왕국의 영웅이 되어야 할 사람답게 그 체격이 아카데미 1학년으로 입학하는 17세 남학생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수백 년 전이라면 아마 둘 사이에서 혼약이 오가고 그랬을-

     “잠깐만. 레타르. 너 지금 뭘 움켜쥐고 있는 거지?”

     “……에헷.”

     “에단, 너는 또 목에 뭘 채워놓고 있는 건가?”

     “아가씨의 명령입니다. 큰도련님.”

     “내 명령이야!”

     레타르는 자랑스럽다는듯 붉은색의 목줄을 앞으로 뻗었고, 그 끈은 에단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에단이 자꾸만 훈련하러 가려고 하니까, 내가 훈련을 해도 내 옆에서 하라고 이렇게 목줄을 만들었어!”

     “아가씨. 그게….”

     “이 나이에 상급 기사면 잘 하는 거지!”

     “…….”

     에단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상급 기사 수준의 실력을 가지게 되었으나, 아무래도 조금은 조바심이 난 모양이다.

     “에단.”

     “네, 도련님.”

     “지브롤터를 상대로 밀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

     에단은 나름대로 누아르를 라이벌처럼 여기며 더 강해지고자 했으나, 에단이 그렇게 훈련을 하기에는 여러모로 악조건이 많다.

     누아르가 더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전혀.

     “레타르와의 시간을 소중히하고, 레타르의 명령을 우선시하도록. 목숨을 걸고 레타르를 지키고. 황금의 노예들에 관한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 뒤에는 따로 대련할 시간을 만들어서 내가 직접 손봐주도록 하지.”

     “정말입니까?!”

     “물론. 당연히….”

     “뿌우우.”

     레타르가 두 볼을 부풀리며 에단의 옆구리를 손으로 쿡쿡 찔렀다.

     “에단은 나보다 큰오빠랑 대련하는 게 더 좋아?”

     “아, 아가씨. 그게 아니라…!”

     “됐어! 그렇다면…!”

     아.

     큰일났다.

     저렇게 삐치게 되면-

     “에단 가지고 놀 거야! 따라와!”

     “…실례하겠습니다.”

     “잠깐만. 가지고 논다니. 어떻게?”

     “그야 당연히….”

     레타르가, 히죽 웃는다.

     “알면, 다쳐!”

     “…….”

     “말해줄 것 같아? 히힛, 오빠라도 안 알려주지롱. 베ㅡ에.”

     “……에단. 네가 고생이 많다.”

     나는 에단을 향해 애도를 표했다.

     “그, 그게.”

     “7년만 참아라.”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가자, 에단!”

     “예….”

     에단은 도살장에 끌려가는-정정.

     수많은 남자 귀족들이 연회장에서 은근하게 백은에 취한 아내들에게 붙잡혀 끌려갈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흐흐흥, 오늘은 어떻게 간지럼을 태워볼까나~”

     간지럼일까?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도련님. 저래도 되는 겁니까? 지브롤터에는….”

     “그거, 남자 한정이야.”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절제해야 한다는 지브롤터의 저주는 오로지 남자에게 한정된 이야기다.

     “그리고 레타르가 저렇게 말은 하지만, 실제로 문제가 될 행동은 하지 않지.”

     “그렇다면….”

     “말 그대로 에단을 끌어안고 잠을 자려는 거지. 안는 베개처럼.”

     “…에단을 저대로 둬도 되는 겁니까? 혹시나 그런 일이 일어나거나 한다면.”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음, 그렇죠. 저도 지브롤터를 벗어난지 꽤 오래 되었던지라, 새삼스럽군요.”

     아무리 에단이라고 하더라도, 아버지가 함께 있는 캐롤라인 성에서 순간적인 욕구에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는 앞으로 레타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인내심을 시험받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 번 잘못하기라도 하면 뭐, 아버지가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설 거지만.

     ‘회귀 전에는 레타르가 뜯어갔을지 몰라도, 이번에도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성인이 되고난 뒤라면 모를까, 성인이 되기 전에 그런 짓을 한다면….

     “다들 연애하느라 난리군. 후.”

     “도련님….”

     “그러고보니, 로버트 경. 자네는 혹시 만나는 여자 없나?”

     “…모르셨습니까?”

     로버트 경이 섭섭하다는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저, 사귀는 여자가 있습니다.”

     “뭣.”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누구?”

     “도련님이 전ㅡ혀 눈치채지 못하게 만나고 그랬으니, 도련님께서 모르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저 로버트, 다른 건 몰라도 여자 만나는 건 그 어느때보다도 조심하거든요.”

     “거짓말이지?”

     “네, 거짓말입니다.”

     “…….”

     이 기사가.

     “도련님께서 그렇게 바쁘게 일을 시키는데, 여자 만날 틈이 어디있습니까?”

     “엘프는?”

     “엘프들은…저보다 다들 나이가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연하 취향입니다.”

     “그 말, 백금경이 듣기라도 한다면 아주 지브롤터를 뒤집어 엎어버리겠군.”

     “사실이 그러한 걸요. 엘프와 인간의 수명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건 똑같잖습니까? 엘프의 1초가 인간의 1초와 다르지는 않잖아요? 가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시간은 같죠.”

     “철학적이군. 그 말, 카를로스 경에게는 하지 말게.”

     “…기어이 엘프를 건드리기로 한 모양이군요. 하아, 그 친구. 정말이지.”

     로버트 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보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마석을 만지작거리고 계십니까?”

     “생각해보니, 동생들도 좋아하는 사람 만나고 막 그러는데 나만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게 억울해져서.”

     “…도련님? 설마, 오로솔 아카데미로 가실 겁니까?”

     “어.”

     내가 든 마석에 로버트 경이 식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랬다가는 오로솔 아카데미에 황금의 노예들이 들끓을 겁니다. 열차를 습격할 것이며, 철도가 망가지고…!”

     “로버트 경. 이제는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기도 하고, 황금의 노예들은 땅에서 솟아나지 않나.”

     “그렇죠?”

     “그러면 답은 정해져있지.”

     나는 바르셀로나 총독부로 통하는 마석을 활성화했다.

     [예, 총독님. 카를로스입니다.]

     “바토리 소장에게 연락하여, 공장에서 ‘출항’ 준비를 하도록.”

     […드디어, 뜨는 겁니까?]

     “그래.”

     나는 경악하는 로버트 경에게 하늘을 가리켰다.

     “당장, 아스타시아를 향해 날아가야겠어.”

     이러려고 비행선을 만들었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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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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