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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4

   세계 침식.

   멸망한 세계가 뿌려 놓은 파편.

     

   세계 침식은 호시탐탐 자기 뿌리를 내리고자 세계를 침략한다.

     

   그러니 세계 침식은 세계에 여러 악영향을 남긴다.

     

   세계 침식은 기존에 살고 있던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없도록.

   원래의 주인들을 내쫓고자 지독하리만큼 악독한 환경을 만들어 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멸망을 막기 위해 다른 세계를 멸망시켜야 했다.

     

   그것이 세계 침식이고, 원래 세계의 주민들에게는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바스락-

     

   그러한 세계 침식을 막기 위해 크라슈는 지금 프레이야 산을 오르고 있었다.

     

   크라슈의 뒤에는 한 명이 따라 오르고 있었다.

   비앙카 하덴하르츠, 크라슈의 약혼녀였다.

     

   “다 왔어.”

     

   크라슈는 비앙카에게 신호를 주며 걸음을 멈춰 세웠다.

   크라슈를 따라 멈춰선 비앙카는 그의 등 뒤에서 앞을 바라보았다.

     

   숲속에 안쪽, 어느 한 선을 기점으로 공간이 비틀리듯 반전된 장소가 비추었다.

   크라슈가 서있는 프레이야 산맥의 산과 다르게 기이하게도 숲 안에 본 적 없는 양식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러한 건물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감염계 계통이긴 한데.’

     

   크라슈는 제 육감을 펼쳤다.

   그러고는 내부를 가볍게 살핀 뒤 비앙카를 돌아보았다.

     

   “비앙카, 세계 침식 내부에 전염병이 퍼져 있으니까. 오러를 몸에 제대로 둘러.”

   “네, 해뒀어요.”

     

   비앙카의 오러 수준이라면 검은 손에 쉽게 감염될 일 없을 것이다.

     

   “가자.”

     

   크라슈는 곧바로 세계 침식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 순간 몸에 무언가가 휘감기는 기분 나쁜 감각이 들었다.

     

   누가 거인의 숲 인근 지역에 만들어진 세계 침식이 아니랄까 봐.

   느껴지는 감각만으로 세계 침식 등급이 상당히 높다는 게 느껴졌다.

     

   화륵-

     

   그 순간 크라슈의 몸 주위에서 이그니스가 피어올랐다.

   침입자를 견제하기 위해 몰려드는 저주가 일순간 일소했다.

     

   비앙카 쪽에도 열기를 보내며 저주를 일소시킨 크라슈는 고개를 들었다.

     

   이러한 산맥에서 어떻게 형태를 유지 중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10층 정도의 고층으로 이루어진 건물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건물들의 안쪽에서 진득한 회색의 액체들이 꾸물거리며 흘러나왔다.

     

   철퍽-

     

   바닥에 쏟아 내린 놈들은 곧 서로서로 합쳐지더니 이내 근육질의 인간 형태가 되었다.

   손에 창 하나를 쥔 놈은 액체로 옷차림까지 구현해 놓았다.

     

   문제는 그런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세계 침식의 입구 쪽을 거의 꽉 채울 만큼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라슈는 그들이 누구의 형태를 따라 하는지 눈치챘다.

     

   ‘세계 침식 안에 들어왔었던 침입자를 따라 하는 놈들.’

     

   잿빛 도플갱어.

   도플갱어 중에서 겉모습과 일부 능력을 따라 할 수 있는 종이었다.

     

   ‘등급은 5성.’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등급은 아니다.

   그러나 이 녀석들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점이 하나 있었다.

     

   저렇게 많은 잿빛 도플갱어 중 진짜는 단 하나.

     

   그 진짜를 쓰러트리기 전까지 녀석들은 계속해서 무한정으로 생산되어 침입자를 공격한다.

   이점 탓에 잿빛 도플갱어는 토벌 난이도에 비해 조금 더 높게 측정된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지형적으로도 최악이네.’

     

   프레이야의 험준한 산맥을 바탕으로 제멋대로 자라난 고층 건물까지 이토록 많이 지어져 있으니.

   진짜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

     

   이러니 마을 사람들이 세계 침식을 포기하고 발을 뺀 뒤 도움 요청을 한 게 분명했다.

     

   문제는 도움 요청했을 때는 이미 검은 손에 감염당한 뒤였다는 거겠지만 말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었다면 엄두도 못 내겠지만.’

     

   파삭!

     

   크라슈가 먼저 행동하기도 전에 비앙카의 등 뒤에서 여우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여우 환수, 피이.

   그러나 예전의 자그마한 새끼 모습과는 달랐다.

     

   어엿한 성인 여우 모습으로 변한 녀석은 길쭉한 네 다리를 쫘악 펴며 꼿꼿이 섰다.

   그러고는 이내 세 개나 되는 꼬리를 좌우로 촤악 펼쳐졌다.

     

   곧이어 꼬리에서 냉기의 구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구체는 이내 압축되듯 꽝꽝 얼더니.

   이내 사방으로 펼쳐지며 포탄처럼 쏘아졌다.

     

   콰아아아앙!

     

   날아간 세 개의 얼음 구체가 순식간에 잿빛 도플갱어들에게 닿으며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잿빛 도플갱어들은 조금의 반항조차 못 하고, 얼음 구체에 의해 지워졌다.

     

   원래라면 부서진다 한들 다시 복구되는 잿빛 도플갱어겠지만.

   잔류한 냉기가 놈들의 육체를 꽝꽝 얼려 버린 탓에 복구조차 되지 못했다.

     

   잿빛 도플갱어에게 있어서 비앙카는 카운터였다.

     

   비앙카와 크라슈의 눈이 짧게 마주쳤다.

   대화하지 않아도 서로의 의사를 파악한 순간 크라슈가 바로 바닥을 박차 뛰었다.

     

   그 사이, 비앙카는 계속해서 피이를 이용해 얼음 구체를 쏘아 내었다.

   구체가 날아갈 때마다 잿빛 도플갱어들은 궤멸 되다시피 했고, 크라슈는 그 사이를 질주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건물에 도착한 크라슈가 즉시 발을 들어 올렸다.

     

   콰앙!

     

   내지른 발과 함께 문을 박살 낸 크라슈가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안에서 잠복하고 있던 잿빛 도플갱어들이 급습해오긴 했으나 크라슈를 상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오러를 두른 손날만으로 잿빛 도플갱어들을 지워버린 크라슈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여기 바로 위.

   잿빛 도플갱어들이 엄청난 수로 불어나며 우글거리고 있었다.

     

   곧 올라올 사냥감을 대비하기 위해 미리 진을 친 것이었다.

   그러나 크라슈는 그 광경을 보며 코웃음 쳤다.

     

   “누가 올라가 준대.”

     

   미안하지만 이쪽은 올라가 줄 생각 없었다.

   크라슈가 우뢰성을 틀어쥠과 동시에 자세를 낮추었다.

     

   화르륵-

     

   그 순간 크라슈의 불길의 색깔이 백색으로 바뀌었다.

   세계 침식의 힘이 아우라로 변환된 것이었다.

     

   타오른 백염의 불길이 우뢰성에 집중되며 거세게 타오르며 주변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아래쪽에서 비이상적인 흐름을 느낀 것인지.

   잿빛 도플갱어 쪽에서 당황한 반응이 느껴졌다.

     

   놈이 어떻게든 대응해보고자 움직이려는 낌새가 느껴졌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미 크라슈의 검에는 백염이 전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타륵-

     

   불똥이 튀어 타오르는 소리가 짧게 울려 퍼진 그 순간.

   크라슈의 검이 천장을 향해 그대로 뻗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크라슈의 검에서 뻗어 나온 백염의 참격이 천장을 꿰뚫었다.

   바로 위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잿빛 도플갱어들은 백염의 참격에 일제히 타올라 버리며 연소했다.

     

   끝없이 뻗어 나간 백염의 불길은 천장을 몇 개나 박살 내며 끝내는 건물 옥상까지 뚫고 치솟아 올랐다.

     

   쿠구구궁!

     

   화려하게 타오른 백염이 번져 나가며 건물을 통째로 불사질러 버렸다.

   그 엄청난 위력 앞에 건물은 무너지며 잔해를 쏟아 내렸다.

     

   크라슈는 무너지는 건물 파편을 유유히 피해 나가며 밖으로 나오자 잿빛 도플갱어들이 무너지는 게 보였다.

     

   위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짜 도플갱어마저 함께 죽었기 때문이었다.

     

   “크라슈 님.”

     

   어느새 등 뒤에 생겨난 얼음의 날개와 함께 날아온 비앙카가 크라슈의 옆에 섰다.

   둘이서 5성급 침식종을 순식간에 제거한 것이었다.

     

   비앙카가 크라슈의 손을 양손으로 소중히 잡았다.

   그러자 비앙카에게서 흘러 들어온 냉기가 크라슈를 빠르게 식혀주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정도 열기로는 몸에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지만.

   비앙카가 냉기를 줄여준 덕분에 가동 시간이 더 늘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마워.”

     

   크라슈의 감사 인사에 비앙카는 크라슈를 힐끗 올려다보며 잡았던 손을 풀었다.

     

   “이걸 위해서 노력한 거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비앙카의 앞에서 워낙 엉망이 된 꼴로 온 적이 많았던 만큼.

   크라슈는 할 말이 없어 멋쩍게 웃었다.

     

   “그러니 저 지금 굉장히 기뻐요.”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비앙카는 순수한 기쁨을 내비쳤다.

     

   줄곧 크라슈의 옆에 서는 것만을 꿈꿔온 그녀였다.

   그런 만큼 그녀에게 있어 오늘은 무척이나 가치 있는 날이었다.

     

   비앙카가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의 크라슈는 여러 생각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안전하게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한편으로는 들지만,

   이토록 강해졌다면 최소한의 걱정은 덜 수 있다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비앙카의 노력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었고, 앞으로 크라슈에게 큰 힘이 되어줄 거라는 것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비앙카, 환수를 조금 큰 영역으로 풀 수 있겠어? 주인을 찾을 생각인데.”

     

   그러니 크라슈는 지금은 자기 동료로서 비앙카에게 부탁했다.

   크라슈 혼자서 제 육감을 쓰는 것보다 전방위로 환수를 보내어 정보를 알아 오는 게 더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럴게요.”

     

   비앙카의 얼음 날개가 촤악 하니 옆으로 펼쳐졌다.

   그 순간 날개 깃털 하나하나가 빠져나가며 각각이 하나의 환수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새들부터 쥐들까지.

   수백 마리의 환수들이 깃털에서 변모함과 동시에 순식간에 숲속 전역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저만한 수의 환수를 다루고 있음에도 비앙카의 얼굴은 여유로웠다.

   새삼 크라슈는 비앙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 비앙카가 크라슈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도 말이다.

   크라슈는 짧게 미소 짓곤 비앙카의 머리를 툭하니 감쌌다.

   

   크라슈의 손 감촉에 비앙카는 베시시 웃었다.

     

   “오늘 안에 끝마치고 나간다.”

   “좋아요.”

     

   부부 한 쌍이 세계 침식을 초토화시켜 놓는 순간이었다.

     

     

   * * *

     

     

   이후로도 크라슈와 비앙카는 세계 침식 안을 쭉쭉 나아갔다.

     

   이미 완숙한 강자로서 성장한 두 사람이다 보니.

   침식종들은 두 사람에게 조금의 상대도 되지 못했다.

     

   이렇게 순조롭게 끝까지 나아가 주인까지 도달했으면 좋겠으나.

   아쉽게도 크라슈와 비앙카는 곧 한 가지 큰 문제를 맞이해야만 했다.

     

   ‘역시 포식이 시작되고 있었나.’

     

   세계 침식이 끝나는 지점.

   그곳에 끝자락과 이어진 세계 침식 때문이었다.

     

   앞에서 보이던 세계 침식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거대하고 울창한 숲.

   거기에 아직은 겨울 날씨가 남아 있는 프레이야 산맥과 달리 찝찝한 열기가 바람을 타고 느껴졌다.

     

   저 너머는 다름 아닌 금역, 거인의 숲이었다.

     

   거인의 숲이 갑자기 보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다름 아닌 최흉의 씨앗을 만들기 시작한 거인의 숲이.

   최흉의 씨앗을 키우기 위해 보다 많은 힘을 축적하고자, 다른 세계 침식을 집어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인의 숲과 괜히 가까운 게 아니라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거인의 숲은 세계 침식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눈앞에 놓인 상황에 비앙카도 조금 걱정스레 크라슈를 보았다.

     

   일반적인 세계 침식이었다면 세계 침식 내부에 주인이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거인의 숲이 포식을 시작하며 세계 침식 주인의 영역이 그만 넓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 검은 손 역병을 퍼뜨린 세계 침식의 주인이 그만 거인의 숲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아직 세계 침식이 전부 삼켜진 건 아니다.’

     

   금역을 감안하고 움직인 것은 아니나 아직은 주인을 처치하면 세계 침식을 닫을 수 있는 상태.

   검은 손이 조금이라도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는 지금 반드시 제거해두는 게 맞다.

     

   “움직인다.”

     

   이미 한 번 들어가 본 곳.

   두 번이라고 못 갈까.

     

   주인을 잡고, 거인의 숲을 빠져나온다.

   두 번째 거인의 숲 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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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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