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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4

    자유 도시 연합 깊숙한 곳, 청과 그 일행이 머무는 아지트.

    청은 의뢰를 끝내고 나면 창틀에 앉아서 창밖을 자주 바라보곤 했었다.

    자유 도시 연합의 공기는 일반인은 숨쉬기 힘들 정도로 오염이 심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오염은 시야를 거의 방해하지 않았다.

    투명한 오염 물질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오염이 눈으로 안 보여서 더욱 성가신 느낌이었다.

    마치 비가 온 뒤의 거리를 보는 것처럼 맑고 깨끗해 ‘보이는’ 공기.

    하지만 일반인이 그 깨끗해 보이는 공기를 무심코 들이마시면, 폐가 상해서 피를 토하게 되겠지.

    게다가 투명해 보이는 것만큼 투과율은 높아서, 피부를 상하게 만드는 자외선이 강렬하게 내리쬐었다.

    오늘도 청은 지정석처럼 쓰이는 창틀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

    하지만 오늘은 유독 오염이 심해서 거리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가끔 이런 날이 있었다.

    오브젝트 폐를 가진 사람도 외출을 피할 정도로 오염이 심한 날.

    이런 날에도 가문이 지배하는 지역 근처는 공기 오염이 없다던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청의 머리에는 이런저런 의문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청, 그거 불편하지 않아? 사무실에 제대로 된 처리 장치를 설치하는 건 어때?”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던 여자가 자신의 입가에 마스크 모양을 만들며 말했다.

    “음…. 괜찮아. 돈 아껴야지.”

    여자가 말하는 설비는 아마 양압을 걸어서, 외부 오염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설비를 설치하자는 거겠지.

    이번에 가문 의뢰로 돈을 꽤 많이 벌었어도, 과한 사치였다.

    청은 그렇게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거절한 뒤, 터덜터덜 TV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에는 창밖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밖이 보이질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청은 여자랑 같이 소파에 앉아서 TV 보기 시작했다.

    사실 청은 이 동네의 TV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자유 도시 연합은 자꾸 오브젝트를 몸에다 처박다 보니 정신이 이상해졌는지, TV도 이상해진 상태였다.

    엄청 야하거나, 엄청 잔인하거나.

    최소한 둘 중 하나였다.

    단순한 광고를 예로 들자면, 내장을 들어내고 오브젝트로 교체하는 수술 장면을 차량 엔진 교체하는 장면처럼 보여주는 홈쇼핑이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전신이 붉게 물든 쇼호스트들이 새하얀 건치를 보여주며 웃는데, 그 기묘한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뇌리에 깊숙이 남아 있었다.

    대사와 포즈도 기억에 남아버렸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얼굴 옆에 들어 올리고 환하게 웃으며, [지금 당장 주문하세요!] 라고, 외쳤었지.

    ‘으으, 소름 돋아.’

    청이 혐오를 이기고 오랜만에 TV를 보려고 자세를 잡은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거구의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왔어.”

    사무실에 들어온 남자는 커다란 4개의 손을 이용해서 잔뜩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닫히자, 그 충격에 선반 위의 메뚜기 통조림이 구르다가 떨어져, 국자 위에 안착 후 빙글빙글 돌아서 돌팔매질처럼 발사되었다.

    그 모습은 마치 피칭 머신에서 쏘아지는 야구공이랑 닮아있었다.

    “으엑.”

    청은 머리에 통조림을 맞고 작게 비명을 토했다.

    남자는 짐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하하. 청, 요즘 재수가 없네. 괴황지로 ‘영부’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청은 통조림에 맞은 머리를 문지르며 대꾸했다.

    “싫어. 그딴 오컬트.”

    그러던 중, 누군가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빤히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리니 아무도 없었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털 뭉치뿐.

    설마?

    청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털 뭉치를 붙잡고 시선을 마주하자, 주황 사신의 감긴 눈 속에서 눈동자가 도록도록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너였구나!”

    그 순간 청은 이제까지 기이한 불운과 행운, 그리고 마법과 같은 현상이 이어지며 깨달아버렸다.

    “이런 장난꾸러기 같으니라고.”

    청은 고마움 반, 짜증 반을 섞어서 주황 사신의 볼을 마구 주무르기 시작했다.

    주황 사신의 볼이 부어서 빵빵해질 때쯤, 청의 휴대전화가 반짝이며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

    의뢰를 끝낸 지 얼마 안 돼서 연락할 사람이 없을 텐데? 

    청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

    세희 연구소, 지하로 향하는 긴 통로.

    나는 황금 사신들을 이끌고 지하 온천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황금 사신들은 마치 아기 오리들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뚜방뚜방.

    내가 평소에 걷는 자세와 똑같은 자세로 뚜방뚜방.

    그렇게 오리 떼를 이끌고 세희 연구소를 횡단하자, 다른 미니 사신들도 하나둘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하에 마련된 온천에 도착하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월급 도둑질 중인 연구소 소속 애착 인간들과 미니 사신들.

    그리고 눈에 확 들어오는 거대한 황금상.

    내 뒤를 따라서 온천에 도착한 황금 사신들은 환하게 웃으며 물속으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퐁당퐁당 물속에 들어간 황금 사신들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물속에 들어가 있으니, 다른 미니 사신들도 나를 따라서 퐁당퐁당 물속에 뛰어들었다.

    가장 색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보라 사신이었다.

    마치 세희 연구소 미니 사신 온천을 처음 보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조심 따뜻한 물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발끝부터 조심스럽게.

    보라 사신은 그 따뜻한 물속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감은 채, 배를 내밀고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림자로 만든 복장도 풀어 헤치고, 둥실둥실.

    내밀고 있는 통통한 배를 콕콕 찔러도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만끽하고 있었다.

    ‘나중에 보라 사신 애착 인간에게 이런 습성을 알려주면 좋아하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자, 빠른 속도로 헤엄을 치고 있는 황금 사신이 보였다.

    몇몇 황금 사신들은 지치지도 않는 건지, 물에만 들어오면 쉬지 않고 물속을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간간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를 집어서 들어 올리자, 고개를 갸웃하며 황금 사신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목덜미를 잡아서 천천히 물 근처로 내리자, 팔다리를 마치 헤엄치듯이 천천히 휘적휘적하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의 팔다리는 물에서 멀어지면 점점 느려졌고, 물에 가까워지면 점점 빨라졌다.

    히히.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올렸다가 내리기를 20분간 반복하니, 내 손을 붙잡고 ‘앙’하고 물어버렸다.

    ‘그래그래. 미안해.’

    나는 화가 난 황금 사신을 화가 풀릴 때까지 쓰다듬어 주다가, 물속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황금 사신은 마치 모터가 달린 것 같은 빠른 속도로 물속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황금 사신을 떠나보내고 나는 어리광 부리는 황금 사신들을 잔뜩 몸에 매단 채, 온천에 설치된 모니터로 TV를 보기 시작했다.

    미니 사신들은 TV를 안 좋아하니, 나를 위해서 설치된 모니터였다.

    [중국 정부는 한국 오브젝트 협회의 자유 도시 연합 진입을 거부했습니다.]

    [이는 최근 양국 간의 상호 협력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나온 결정으로, 황금뿔 추적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협회에서는 별다른 의견 표명도 없이 이루어진 중국 정부의 거부에 적잖이 당황한 것으로 보입니다.]

    TV에서는 자유 도시 연합 이야기가 자주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렇게나 집중적으로 보도해 주다니, 조금 의외였다.

    오브젝트 협회는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관심을 두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TV를 보다 보니, ‘자유 도시 연합’에 미니 사신 하나가 들어간 것이 떠올랐다.

    꽤 강력한 오브젝트가 도사리고 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들어갔다는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황금뿔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어서, 한 번쯤은 들러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음 궁전 복원이 끝나면 가봐야겠네.

    ***

    소리 없이 깜박이는 휴대전화.

    청이 천천히 다가가서 휴대폰을 들고 확인하자, 그 안에는 짧은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PIG:완성됐다.]

    메시지를 보낸 것은 자신의 아이디를 PIG라고 지은,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기술자였다. 

    청의 기억 속에는 ‘프로토타입 뭔가 지니어스’인가 하는 이상한 말의 약자였던 것으로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완성됐다는 소식을 들은 청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외부 외출용 마스크를 쓰고 코트를 챙겨입기 시작했다.

    청이 준비하는 것에 맞춰서, 주황 사신은 둥실둥실 날아서 청의 정수리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같이 외출해서 신난 것처럼 두 다리로 청의 머리 위에 서서 위아래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둠칫둠칫.

    청은 그게 정신 사나웠는지, 꾹 잡아서 모자처럼 주저앉혀 버렸다.

    “나 PIG 아저씨 공장으로 좀 갔다 올게.”

    청의 말을 들은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청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PIG 그 자식 뭔가 수상한데, 나도 같이 갈까?”

    여자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하지만 청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괜찮아.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저저저번에도 매번 수상하다고 했는데, 괜찮았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딴 오브젝트 의체를 쓰는 녀석이 제정신일 리가 없어!”

    뭐, 청이 생각하기에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PIG의 의체는 자유분방한 의체를 사용한 자유 도시 연합에서도 한층 더 특이한 모습이었다.

    일명 나비 날개가 달린 민달팽이!

    다리 대신에 있는 것은 달팽이처럼 꾸물거리는 덩어리.

    그 길쭉한 덩어리 위로 달팽이의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는 배가 툭 튀어나온 대머리 아저씨의 상반신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저씨의 등 뒤에는 커다랗고 화려한 나비 날개를 달면 완성!

    그 의체는 실용성 제로인 데다가, 심미안마저 일그러졌으니 제정신일 리가 없겠지.

    사실 청이 생각하기에는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브젝트를 박는 것도 이상했지만, 더욱 이상한 것은 심미안 쪽이었다.

    자기 몸을 자유롭게 개조할 수 있는데도 미형의 사람은 거의 없고, 기괴하게 생긴 사람들만 가득했다.

    차라리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만 가득했다면, 청은 조금이나마 이 도시를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튼 다녀올게.”

    ‘그래, 다녀와.’하는 동료들의 말을 들으며, 뿌옇게 흐려진 길거리로 나섰다.

    ***

    오늘따라 유난히 짙은 공해로 뒤덮인 도시의 어둡고 음침한 뒷골목. 

    공기 중에는 각종 유해 화학 물질들이 뒤섞여 유독가스를 형성하고 있었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의 오염 물질들이 뭉쳐서 돌아다니며 골목을 메우고 있어, 숨을 쉬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마치 그 모습은 물 위에 유성 물감을 퍼트려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악취 나는 공기 속에서 붉은색 안광이 번뜩였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그림자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허름한 뒷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풍기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오브젝트 피부는 광학 미채 기술이 적용되어 있어 주변 환경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다.

    마치 짙은 공해 속에서 떠다니는 환영 같았지만, 그 날카로운 시선만큼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목표가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작전을 개시한다.]

    무감정한 음성과 함께, 붉은 안광이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재빠르고 침착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를 잡자, 그들이 흘리고 있던 붉은 안광마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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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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