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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5

       원자폭탄이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마왕은 그것을 전부 제 입으로 처넣었다.

       

       “왜 폭탄을 드시는 겁니까?”

       “과인이 직접 사용하기 위함이다.”

       

       마왕의 능력.

       

       지성체를 먹으면 그 지식과 능력을 흡수한다. 반면에 기물은 먹은 개수만큼만 그 특성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

       

       원자폭탄을 세 개 먹었으면, 핵폭발도 세 번만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대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가능한 많은 폭탄을 먹어두어야 했다.

       

       수 톤짜리 폭탄을 벌써 열 개가량 흡수한 마왕은 이전보다 그 체적이 크게 불어났다.

       

       “여봐라.”

       “네, 주군.”

       “다음 주 자정이 되는 즉시, 사천에게 일러두었던 일을 시작하라고 전달하라. 짐이 직접 나서서 제국을 함락시킬 것이다.”

       “알겠습니다.”

       

       마왕은 지금도 시설을 조금씩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그가 기물을 흡입하는 방식은 거대한 뱀과도 같았다. 물건을 최대한으로 압축한 다음, 한꺼번에 집어삼키는 식이다.

       

       빌헬름은 마왕이 입을 벌릴 때마다 그 광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대체 저게 무어란 말인가.’

       

       마왕의 아가리에는 이빨이 없었다.

       

       대신 빨판이 달린 촉수가 수십 갈래 돋아나 있었는데, 이것을 통해 입에 가져온 물건을 식도로 넘기는 식이었다.

       

       마왕이 원자폭탄 하나를 먹을수록 식도와 촉수의 크기도 조금씩 커졌다.

       

       ‘저 많은 게 대체 어떻게 위장으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빌헬름 최대의 미스터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질량 보존 법칙을 무시하는 모습인데.

       

       ‘이 정도 되니까 마왕이라 불리는 것이로구나.’

       

       대가리가 중화기로 된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마왕이 이물스러운 존재라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

       

       

       나는 세실 총장을 비롯하여 모든 이들에게 지난 일을 설명했다.

       

       마왕군에 종군한 과정, 세상에 앙심을 품게 된 과정, 갑자기 개심하고 투항했던 심리적인 근거까지.

       

       사실 설명이라고 보기에는 푸념에 가까웠다. 동시에 이 나라 사람들에게 하는 사과이기도 했다.

       

       “그래요, 그렇군요.”

       

       다행히도 세실은 내 말을 어느 정도 납득했다.

       

       “금안이 차별을 받아온 건 사실이에요. 아마 못 볼 꼴을 전부 당하셨겠죠. 이 점에 대해선 제가 대신 사과드려도 괜찮을까요?”

       “총장님께선 잘못하신 일 없습니다.”

       

       우리는 나름 계산해서 말을 맞추었다.

       

       사실 세실이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덴 이유가 있었다.

       

       나를 임용한 사람이 세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 마왕군이라는 얘기가 돌면, 나를 뽑은 세실도 같이 모가지가 날아간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으로 한배를 탄 사이.

       

       당연히 세실을 아니꼽게 보던 자들은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바로 지금처럼.

       

       “총장님, 시위대가 주요 도로를 전부 막은 탓에 교통이 정체되고 있습니다.”

       

       번듯한 정장 차림의 엘프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우리에게 그리 고했다.

       

       누구인고 하니, 행정부에서 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란다.

       

       그런데 행정부에 있는 사람이 왜 총장실에 와서 이런 말을 하는데. 도로 문제는 보통 자기들이 현장에 가서 처리하지 않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자가 뒤룩 눈알을 굴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쯧.”

       

       뭐 이 새끼야.

       

       녀석이 나를 노려보길래, 나도 녀석을 노려보았다.

       

       내 눈빛이 서늘하기라도 했는지, 곁에 앉아있던 버멜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독여주었다.

       

       “참아, 참아.”

       

       솔직히, 머리로는 알고 있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 없다는 것쯤은.

       

       애초에 성선설을 믿었던 내가 병신이지. 앞으로는 날 위해주는 사람만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한 나였다.

       

       하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건 전혀 다르단 말이지.

       

       “군인과 검찰은 뭐합니까? 마수 하나 제대로 못 잡아내고.”

       “저기, 당사자 앞인데 조금만 말씀을 유하게 해 주심이….”

       “죄송하지만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국민의 여론이지요.”

       

       그는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긁을 머리카락도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차피 저런 제스처도 전부 시늉이다. 이렇게 시치미 떼는 놈들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제발, 참아줘. 제발….”

       

       버멜이 낮게 속삭였다.

       

       “후우.”

       

       그래, 참아야지.

       

       언짢은 기분을 가라앉힐 겸 놈의 머리통 반사계수를 구하려던 참이었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저 마수를 내쫓으시길 권고하기 위함입니다.”

       “뭐?”

       

       훅 들어오네.

       

       여기서 참으면 호구라고 생각했다. 나는 찻잔을 탁, 내려놓고는 격하게 일어섰다.

       

       버멜이 쩔쩔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공무를 보는 사람이 당사자 앞에서 워딩을 저렇게 쳐? 미쳐도 제대로 미쳤구나.

       

       나는 일단 정중하게 불편함을 드러냈다.

       

       “선생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공직자로서 마땅히 드릴 말씀을 드렸습니다. 염치를 아신다면, 검경에 출두하시길 바랍니다.”

       “정령왕께서도 제 진의를 받아주시고 이해해 주셨습니다. 제가 수사를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공무를 보는 입장에서 제정을 분리한 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령왕조차도 카우렐리아의 행정권에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당국은 귀하에게 면책 특권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점점 대화가 날카롭게 변한다. 말 한마디에도 비수가 숨어있는 듯했다.

       

       나는 10분이 넘도록 말싸움을 벌였다. 급기야 오가는 말에 인신공격까지 첨가되었다.

       

       “제 성씨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로스차일드입니다. 당신과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것이 불명예나 다름없습니다.”

       “성씨는 모르겠고, 하시는 짓이 차일드라는 건 잘 알겠습니다.”

       “제 가문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참기 힘듭니다.”

       “계속 이러시면 저야말로 참기 힘듭니다.”

       “플레어라도 쏘실 생각인가요? 그렇다면 매우 유감…….”

       “아뇨, 안 합니다. 당신한텐 쏴도 안 먹힐 테니까요.”

       “……?”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이마를 가리켰다.

       

       “리플렉티비티가 1이니까.”

       “잠깐, 그게 무슨….”

       

       생각할 틈을 줄 아량은 없었다. 나는 손을 휘저으며 그의 말을 강제로 끊어냈다.

       

       “제가 검은 피를 지녔으나, 엄연히 지성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갈등을 일으키고 싶진 않습니다.”

       

       나름 정치적 수사를 동원해서 한 말이었다. 지금쯤 이 사람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 정령왕의 두둔을 받고 있다. 정령신앙이 있는 엘프 중 상당수는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단 말이다. 국민 눈치를 봐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게 참 골때리겠지.

       

       그래, 언니가 아니었더라면 일이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로테나 프레이만 보고 이 또라이들을 도와줘야 했겠지.

       

       그런 상황까지는 안 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엘프국이 나를 지원해 주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설전에서 패배한 그가 얼굴을 붉히며 나가려고 했을 때였다.

       

       ‘벌컥’ 하고 총장실 문이 열리더니, 바깥에서 기다리던 수행비서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비서의 표정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무슨 일인가?”

       

       소곤소곤.

       

       “……!”

       “왜요. 무슨 일인데요?”

       

       세실이 물었으나 답변은 듣지 못했다. 기밀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이후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세실이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을 찰나, 버멜이 입을 열었다.

       

       “마왕이 부활한 것 같아요.”

       

       

       **

       

       

       마왕 파르켈수스.

       

       내가 아는 마왕이란, 매사에 철두철미하며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처리하는 괴물이었다.

       

       심지어 여신에게 봉인 당한 것조차 일련의 계산이었다는 말이 돌 정도였으니.

       

       흑주를 완성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까다로운 존재이리라.

       

       하지만 흑주를 만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정령의 샘이라는 곳에 갈 거야.”

       

       오랜만에 가진 버멜과의 술자리에서, 나는 그리 털어놓았다.

       

       “뭐?”

       

       온더록스 잔에 채워진 양주를 비워낸 버멜. 그의 얼굴이 건어물처럼 뒤틀리며 멍청하게 변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물의 정령왕이 말했어. 로테를 살리려면 정령의 샘이라는 곳에서 24시간 목욕재계를 해야 한다고. 거기서 여신에게 직접 소원을 빌어야 한다더라.”

       “…….”

       

       버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안 돼, 가지 마.”

       “왜?”

       “마수가 샘에 들어가잖아? 시한부 디버프에 걸려.”

       

       이것 좀 웃기네.

       

       “물에 몸 좀 담근다고 시한부?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라니까?”

       “그냥 물이 아니라서 그래. 마수에게 극독이라고 불리는 성수(聖水)지.”

       “성수면 뭐 어때서?”

       

       물은 물이다. 일산화이수소, 다이하이드로젠 모노옥사이드.

       

       그런 물질에 하루 동안 몸을 담근다고 사람이 죽을병에 걸려? 지나가던 개가 공중제비 돌겠다.

       

       “아무튼 안 돼. 내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정령계엔 들어가지 마.”

       

       그 이후로 제대로 된 대화는 할 수 없었다. 술에 취한 이 녀석이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제발 가지 마라. 위험하니까 가지 마라. 제발, 제발…….

       

       그러나 마음을 이미 굳힌 뒤였다.

       

       그렇게 다음 날.

       

       나는 버멜이나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시큐엘을 만났다.

       

       “정령계도 시간의 흐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당신의 친구는 지금도 조금씩 죽어가고 있어요.”

       

       시큐엘이 한 말은 무척이나 절망적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르면 일주일 내에 세상을 떠날 거예요.”

       

       콰득.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는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흑주를 만들고 그다음에 로테를 구하는 게 맞다. 마왕이 부활한 이상, 흑주가 아니라면 이 세상을 정리하기가 매우 힘들 터이니.

       

       원자폭탄 생산 방법도 다 알려주고 왔으니 문제가 더 심각했다.

       

       버멜은 ‘원자폭탄을 먹지 않은 마왕’은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마왕이 원폭을 손에 넣은 이상, 전부 끝장이다.

       

       이젠 정말 내 마법 말고는 가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것을 시큐엘도 알고 있었기에, 근엄한 얼굴을 한 채로 내게 말했다.

       

       “마왕을 무찌르기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 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촉박합니다.”

       

       경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게다가 정령의 샘은 신성함이 담긴 장소. 마수인 당신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겁니다. 아마 수명을 깎아 먹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도, 인간 소녀 한 명을 위해서 샘에서 하루를 버틸 자신이 있나요?”

       

       수명을 깎아 먹을지도 모른다니. 결론적으로 버멜의 말은 틀리지 않은 꼴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코웃음을 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이 세계는 망했을 겁니다.”

       

       로테가 이 세상의 은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정령왕조차도 자세한 스토리를 모른다.

       

       만약 내가 지금 사라지더라도 가망이 없는 건 매한가지.

       

       원자폭탄을 발사하고 다니는 괴물은 이제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정령들도 알아야 한다.

       

       내가 물었다.

       

       “만약 수명이 깎인다면 얼마나 깎이나요?”

       “그건 소원의 난해함에 따라 달라져요.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시큐엘은 고민하더니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내 말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시큐엘의 입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그러면 들어갈까요?”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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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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