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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5

       끝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황제가 세운 계획은 두 가지 다 ‘뒤가 없는’ 계획이었다.

        

       세계대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한다면 언젠가는 패배하게 될 테니까. 설령 세상을 정말로 통일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그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신의 힘’이었고.

        

       그리고 그 여신의 힘을 찬탈하지 못한다면, 최종적으로 전쟁이 승리했더라도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보고 이후에 세운 두 번째 계획도 마찬가지다.

        

       대놓고 세상을 불바다로 만드는 계획은 아니었지만, 주변국과의 마찰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계획이었다. 벨부르를 지나 법국의 가장 중요한 곳을 치고, 법국이 믿는 종교 그 자체를 우롱하는 짓이었으니까.

        

       완전히 테러 행위다. 그것도 제국의 제일 높은 곳에 앉아있는 이가 저지르는 테러.

        

       이 경우에도 마지막에 여신의 힘을 찬탈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주변국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건, 찬탈한 여신의 힘으로 그 불만들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그래서?”

        

       내 설명을 들은 샤를로트는 굉장히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여신은 처음부터 그 계획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던 거죠? 그리고 황제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해서 이 세상에 자기 힘을 뻗치려고 한 거고.”

        

       벨부르 군대가 법국 국경을 넘어와 빠르게 점령하는 사이, 이벨리아 왕국도 국경에 군대를 배치했다고 한다. 다만 벨부르와의 군사적 충돌을 우려해 국경을 넘지는 않았다. 이벨리아 왕국은 제국 바로 옆에 붙어있는 벨부르 왕국보다도 현대화가 덜 된 곳이니까. 게다가 내부적으로 소수민족 문제도 있다는 모양이고. 본격적으로 군사적인 충돌을 일으키기에는 상황이 여의찮다는 모양이다.

        

       그래도 법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답게도, 벨부르에 항의 성명은 발표했다는 모양이지만…… 그 소식을 들은 샤를로트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을 보면 그것도 그저 형식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직 법국 중앙의 성당에 있었다. 전투가 끝난 지 네 시간 정도가 흘렀고, 전의를 잃은 제국의 기사들은 모두 구속해두었다.

        

       황제와 황제의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중에서 죽은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여러모로 JRPG 같은 결말이다. 적이고 아군이고 중요 인물은 하나도 죽지 않았고, 죽거나 크게 다친 이들은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아니지, JRPG 식 결말이라기보다는 아제르나 전기의 특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비아?”

        

       잠깐 딴생각에 빠졌던 나를 샤를로트가 다시 불렀다.

        

       아, 여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지.

        

       “그렇습니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

        

       “…….”

        

       그리고 잠깐의 침묵.

        

       “어…… 그게 끝?”

        

       샤를로트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그러니까, 그런 거 있잖아요. 세상을 두고 싸웠으니까 그 뒤쪽에 뭔가 더 대단한 저의를 숨기고 있다거나, 그렇게 복잡한 계획을 세운 구체적인 이유가 더 숨겨져 있다거나…….”

        

       “그런 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오히려 나는 샤를로트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신과 황제는 그야말로 세상 그 자체를 두고 경쟁한 것입니다. 여신은 세상을 ‘자신이 보기에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에 팬그리폰이 만들어둔 그 장치를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장치를 제거하기 위해 ‘그 장치가 만들어졌던 그 옛날’ 그 시점에서부터 계획을 세웠고, 그 결과 만들어진 존재가 법국의 교단입니다. 장치가 완성되기 직전에 부서졌기에 여신이 세상에 참견할 수 있는 틈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여신은 그 틈을 통해 실제로 세상에 참견했다.

        

       법국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자신과 믿음으로 이어진 신도들에게 계시를 내려 ‘나’를 속이기 위한 장소를 준비했다. 내가 알고 있는 ‘원작’처럼 만들어서, 내가 원하는 해피엔딩을 위해 걸을 길을 미리 준비했다. 수백 년 전부터.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 길에 속아서 여기까지 왔고. 내가 애초에 그렇게 이기적인 성격이 아니었거나, 어중간하게 정의로운 성격이었다면 여신의 말을 따라 그 ‘질서 있는’ 세상에 동의했을지 모른다.

        

       내가 원하는 해피엔딩에 내가 끼어있기를 바랐기에 여신의 의도는 무너졌다.

        

       그렇다면 여신은 어떻게 그런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걸까?

        

       이 세상이 아무리 ‘원작’과 비슷한 법칙 속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게임 안은 아니다. 이곳에는 시스템이니 상태창이니 스탯이니 하는 부분이 없었으니까. 여신이 원작과 ‘비슷한’ 부분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도시나 마을 같은 곳이야 원작과 비슷해도 이상하지 않다. 밀레니엄 사에서는 게임 속 도시와 마을을 나름대로 치밀하고 그럴싸하게 만들어두었으니까. 하지만 ‘게임처럼’ 만들어져야 할 ‘던전’은 그렇지 않다. 여기저기 있는 정체불명의 방이나, 이상하게 쓸모있는 아이템이 들어있는 상자라거나……

        

       여신은 ‘여신’이다. 볼 수 있는 세상이 여기뿐만인 것은 아닐 거다. 내가 양자역학이니 평행우주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얼핏 들은 바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은 평행우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던가 없다던가.

        

       여러 세상을 둘러보고 가능성을 찾고, 속일 수단을 마련하고, 마지막으로 속이기에 적합한 인물을 선정한다.

        

       그 과정에서 선정된 장기말이 나였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 판에 관여된 모든 이가 여신의 장기말이었을지 모른다. 애초에 나라는 존재 때문에 처음부터 황제의 계획이 빗나가게 되었으니까.

        

       애초에 여신이라는 존재가 신적인 존재다. 내가 단편적으로 읽어낼 수 있었던 여신의 생각만으로 확실하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신은 세상 저 너머에서 새로운 계획을 짜고 있을지 모르니까.

        

       뭐, 그 계획이 실행될 때쯤에는 나도 늙어 죽은 지 한참 된 뒤 일 거고, 솔직히 그때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지구 반대편의 인간이 굶어 죽는 것이 내 알 바 아닌 것처럼. 내가 ‘구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내가 얼굴을 아는 사람뿐이다. 그조차도 ‘내 근처’와 ‘그냥 지인’으로 나뉘고.

        

       “그 틈을 통해서 신도들과 접촉하고, 자신의 힘을 돌려받을 무대를 미리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는 건, 법국의 기사들이 그만큼 세상 여기저기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인가요?”

        

       샤를로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라면 ‘계시’를 받은 이들이 제국에도 꽤 있다거나. 이건 나중에 직접 조사해서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장치가 가동되어 여신의 힘이 물러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틈이 아직 남아있는지 아닌지는 확인해봐야 할 문제다.

        

       나는 소피아 쪽을 보았다. 전투가 끝나고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이를 고르라면 누구나 소피아를 지목했을 것이다.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에 대한 배신감, 분노, 그런 것들이 겹쳐서 몸을 아끼지 않고 데미안에게 달려들었던 거겠지.

        

       지금은 미아에 의해서 많이 치유되었다. 성당 안을 찾아보면 분명 여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치유 장치도 있을— 아, 그렇지. 여신은 지금은 이 세상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었지. 그렇다면 그 장치의 기능도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리고 신성 마법도.

        

       나와 눈이 마주친 소피아의 시선이 내려갔다.

        

       지금 소피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소피아가 여기까지 나를 따라온 것은 황제와 대적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여신의 장기말인 내가 여신을 배신하고 이 세상에서 여신을 쫓아냈으니, 어떤 의미에서 나는 데미안보다 더한 존재가 된 거 아니겠는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할까.

        

       “아직 질문 안 끝났어요.”

        

       내가 혼자 멋대로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샤를로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정말로 여신의 장기말이었다면, 여신은 어째서 당신을 선택한 거죠?”

        

       “…….”

        

       어…….

        

       내가 나이 서른 되어서까지도 미소녀가 잔뜩 나오는 JRPG를 하면서 과몰입하는 씹덕이라서?

        

       ……가상의 캐릭터들에게까지 감정을 이입해서 그 캐릭터들 모두를 살리고자 하는 이가 나라서 그랬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나뿐만이 아니겠지. 과몰입하는 씹덕들이야 세상 어디를 봐도 널려있으니까. 여신은 그중에서 적당한 이를 한 사람 골랐을 뿐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하필 그 고른 녀석이 ‘여신의 선택을 받은 챔피언’이라는 말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탕 종자였다는 거지.

        

       사람의 행동을 분석하고 미래에 적절히 배치하면서도, 정작 사람의 ‘속’은 읽지 못하는 것을 보면 여신은 사람의 자유의지에는 크게 관여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자유의지에 관여하기엔 힘이 부족했던 거겠지.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이미 세상은 여신이 생각하는 그 질서 있는 세상이 되었을 테니까.

        

       “질문을 바꿔볼까요.”

        

       내가 대답하지 않고 있으니, 샤를로트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그 순간 여신을 배신한 건가요?”

        

       그야 너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여신이 심어준 거짓된 행복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한 행복 속에서의 해피엔딩을 위해.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내가 그 안에서 같이 웃고 있기를 바랐으니까.

        

       그런데 당연히, 나는 그런 쪽팔린 말을 내 입으로 할 생각이 없었

        

       “대답하세요, 그레이스의 흑백합.”

        

       다?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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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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