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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5

    초보자가 다루다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거나, 끔찍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해서 흑마법이 무조건 배척해야 할 마법인 것은 아니다.

    충분한 숙련자가 다루게 된다면 흑마법도 확실한 결과값을 만들어내니까.

    이 세상에는 흑마법으로만 다룰 수 있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심지어 피나 영혼등의 제물은 딱히 흑마법이 아니더라도 일부 마법에서는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흑마법 자체가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흑마법이든 마법이든, 마나를 다루는 지식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흑마법에 대한 인식이 그리 나쁜가, 하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꽤나 명료했다.

     

     

    흑마법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가치’였다.

     

     

    흑마법 말고도 많은 마법들이 가치를 중시하기는 하지만, 흑마법은 그보다 훨씬 더 가치에 대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마법의 원리는 깊이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마나와 권한을 빌어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 일반적인 마법은 들이는 마나만큼의 결과값을 내어준다.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들이는 가치와, 나타나는 가치가 동일하다는 뜻이다.

    같은 마법을 쓰더라도,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많은 마나를 사용하면 더욱 강력한 마법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것은 법칙이 명료하고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흑마법에서의 가치의 교환은 등가교환이 아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흑마법은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해서 무서울 정도로 많은 가치를 요구한다.

     

     

    성자의 피, 영웅의 영혼, 왕의 시체…….

     

     

    그 정도로 어떤 마법보다 ‘가치’를 중시하는 흑마법은, 개인이 지닌 가치만으로 다루기엔 끔찍하리만치 비효율적이다.

     

     

    그렇다, ‘개인’이 지닌 가치만으로는…….

     

     

    ————–

     

     

    “아까부터, 여기서 지독한 흑마법의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

     

    그 말을 들은 세이어는 우뚝 멈춰섰다.

    그에 따라, 몇걸음을 더 걸어나간 루크는 그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잠시간의 침묵.

     

    루크는 가만히 세이어의 표정만을 살피고 있었다.

    이 침묵은 세이어가 깨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혹스러운 웃음을 얼굴에 띄운 채.

     

    “흑마법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여기서 무슨 안 좋은 냄새라도 나?”

     

    세이어는 뒤늦게 허둥대며 변명거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세이어가 그런 변명들을 아무리 늘어놓는다고 해도, 루크에겐 닿지 않았다.

     

    루크는 리브를 잠시 아래에 내려놓고 세이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그는 이번엔 조금 혼내는 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애초에 흑마법이 뭔지는 알고 하는 말이니?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어?”

     

    그의 질문에 루크는 자신의 손을 들어 손톱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세이어, 말을 돌리지 말지.”

    “…….”

     

    그렇게 입을 연 루크의 목소리에는 어리숙하고 천진난만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내가 묻는 이유를, 그대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알고 있다니 무슨…….”

     

    ‘이것 참,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끝까지 발뺌할 셈인가.’

     

    더 이상 시간을 끌기 귀찮았던 루크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이곳에서 나는 시체의 냄새 때문에 내 코가 썩어버릴 지경이라고, 내가 굳이 말을 꺼내야 하느냔 말이다.”

    “……아하하.”

     

    계속된 루크의 추궁에 세이어는 당혹한 표정을 지워내고는 안경을 고쳐쓰며 말했다.

     

    “그거 말이구나? 역시, 너는 수인이라 그런지, 코가 좋은가 보네.”

     

    곧, 그는 어쩔수 없다는 듯이 조금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조용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비밀인데 말야……. 나는 사실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에이레스 정부에서 파견된 비밀 요원이거든. 시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종종 흑마법을 다루기도 하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루크는 살짝 눈썹을 들썩였다.

     

    “비밀요원이라고?”

    “그래, 그래. 다른 사람에게 들켜선 안되는 임무가 있어서, 자세한 건 너 같은 아이한테 말해줄 수가 없거든. 그래서 사실을 숨길 수 밖에 없었어.”

    “오호…….”

    “그렇다보니, 시체가 좀 있긴 해도 안전한 이쪽 길로 안내를 하게 된 거고. 여긴 정말로 몬스터 같은 건 없거든.”

    “그렇단 말이지…….”

     

    과연, 자신에게 진실을 숨긴 것도 사실은 그런 거라면 꽤나 말이 된다.

     

    비밀요원이라니!

    하긴, 그런 거라면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으리라.

    기껏해야 자신은 이 사회에선 고작 10살짜리 꼬마아이일 뿐이고, 그 탓에 비밀요원과 같은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정보에는 쉽게 다가갈 수가 없으니까.

     

    루크는 그것이 여태껏 한 말들 중에 가장 흥미로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여태까지 세이어가 한 ‘거짓말’ 중에서는 말이다.

     

    루크는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며 물었다.

     

    “헌데, 요즘 에이레스에서는 시체도 채용하나?”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니?”

     

    세이어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루크의 눈은 세이어의 웃음에 순간 부자연스러움이 떠오른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대는 살아있는 자가 아니잖은가.”

     

     

    루크는 마침내 그에게서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를 입 밖으로 내었다.

     

     

    “리치, 아닌가?”

     

     

    리치.

     

    죽음을 거부하며 시체 속에 자신의 자아를 집어넣은 망령.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강한 향수 등으로 감추긴 했지만, 여전히 시체의 냄새 만큼은 지울 수가 없었다.

     

    ‘요즘 리치는 굉장히 살아있는 것 같군. 어떻게 한 거지?’

     

    그나저나, 이 부분은 솔직히 놀라웠다.

    거의 살아있는 것 같은 몸에다 라이프베슬을 이을 수가 있다니?

     

    살을 발라내 뼈에 직접 각인을 새겨야 하는 그 흑마술의 특성상, 저런 외형을 그대로 남기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두개골에는 특히나 더 많은 마법식을 새겨야 하기에, 얼굴이 저렇게 말끔하다는 것은 정말로 신기할 일이다.

     

    아무래도 마법이 크게 발전하면서 흑마법 역시도 꾸준히 발전한 모양이다.

    옛날의 방식밖에 모르는 자신은 알 수 없는 어떤 새로운 방식이 있겠지.

     

    ‘최신 흑마술인가…….’

     

    그 정보에 루크는 꽤나 흥미가 동했다.

     

    “왜 말이 없는가? 설마, 이것도 부정할 생각인가?”

     

    어떻게 말을 하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변명을 하는 그의 모습에, 루크는 이제 그가 대체 이번엔 어떻게 변명을 하나 구경하는 재미를 슬슬 느끼던 차였다.

    하지만, 그런 루크의 기대는 이번엔 충족될 수 없었다.

     

    “하아, 그냥 손쉬운 먹잇감일 줄 알았는데.”

     

    그는 이마를 짚은 채로 고개를 숙이며, 한탄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대체 언제부터 알았지?”

    “그게 그리 중요한가?”

    “중요하지, 다음부터는 조심할 수 있을 테니까.”

    “다음은 없을 텐데.”

     

    그렇게 말한 루크가 돌 위에 앉아있던 리브를 향해 눈짓하자, 리브는 즉시 몸을 일으켜 아장아장 걸어가 루크의 앞에 섰다.

    보기에는 꽤나 귀여운 광경에 세이어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하하하! 뭐야, 설마하니 서클러에 인형사였어? 어쩐지, 양쪽 다 수상쩍을 정도로 가치가 높아 보이더라니!”

    어린 나이에 꽤나 높은 마력을 쌓은 서클유저에, 그리고 그 서클로 인형을 운용하는 소녀라?

    게다가 서클 사망률이 종족중에 가장 높은 수인인데다, 어리다.

    확실히, 그러면 가치가 높을 만 하기는 하다.

     

    “으음.”

    그러나 루크는 그의 말에 턱을 살짝 쓸었다.

    그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큰 차이는 없어 보이긴 해도, 이건 인형술이라기보다는 골렘술에 더욱 가까운 영역이므로.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정정하며 친절히 설명해줄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루크는 적당히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글쎄, 어떨까.”

    “하아.”

     

    세이어는 그렇게 웃느라 흐트러진 안경을 다시금 고쳐 쓰며 말했다.

     

    “이럼 나도 진심을 내지 않을 수 없겠는 걸.”

     

    고작 저런 꼬맹이 장난에 진심을 낸다, 라고 하기에도 웃기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는 저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가치보다도 더 높은 몸과 영혼이라니!

    이런 기회는 절대 쉽게 오지 않는다.

     

    ‘저 꼬맹이가 가진 ‘가치’만 있으면, 굳이 여기서 가치를 모으며 시간을 죽치고 있을 필요도 없어져.’

     

    언제나 부족한 것 보다는 과한 게 더 나은 법이다.

    흑마법에는 특히나.

     

    세이어는 여유롭게 웃으며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러자 루크는 이 장소에서 그토록 지독하게 흑마법의 향이 퍼지던 원인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어어…….”

    “으워어…….”

     

    세이어의 등 뒤, 숲 전체에 자욱하게 깔린 어둠 속에서 하나 둘 안광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무의미하게 성대를 울리며 몸을 일으킨 그것의 수는 마치 숲을 가득 메울 것처럼 빽빽 했다.

     

    마치, 시체들의 군단이었다.

     

    공포에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뭐어, 나도 네 가치를 떨구고 싶지는 않거든. 네가 반항하지 않는다면 아프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해줄게.”

     

    그의 가치를 운운하는 말에 루크는 생각했다.

    흑마법은 개인이 다루기엔 너무나 큰 가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흑마법에 심취한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대부분 자신의 가치를 갈고 닦기보다는 타인의 가치를 탐한다.

    그것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이니까.

    역시나 흑마법사들은 최후에는 결국 이렇게들 된단 말이지.

    남의 가치를 보고 욕심을 부리는 자들.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의 가치까지 거래의 천칭에 올려버릴 수 있는 흑마법에 빠져들면 다들 이런 마음가짐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흑마법사는 결국 강도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가치가 굉장히 높은 루크에겐 너무나 다른 관점의 이야기였다.

     

    마지막 마수와 드래곤하트로 엮은 여신의 그릇이자, 영웅의 서클인 이 몸의 가치는 고작 저런 리치 따위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렇게 가치를 셈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내리던 루크는 이내 지루하게 중얼거렸다.

     

    “수지가 전혀 안 맞아. 완전히 손해군.”

     

    저쪽이 지닌 모든 가치를 통산해 보아도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무엇 하나 살아있는 것이 없는, 전부 다 쓸데없는 시체가 아닌가?

    안 그래도 서클에 쌓을 마나도 부족한데 전투를 해도 얻는 게 없다니?

    루크에게 그건 정말로 짜증나는 일이었다.

     

    루크는 직접 손을 사용할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루크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리브에게 명령했다.

     

    “리브, 지금부터 네게 가해진 제약은 없다. 하지만, 저 자만큼은 최후까지 죽여선 안된다.”

     

    이렇게 된 이상, 저 리치만큼은 가져야만 하겠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호기심이라도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

     

    주군의 명령에,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나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돼… 엄청 진지하게 그리고 싶었는데…. 리브는 어떻게 그려도 그냥 귀여워… 이건 디자인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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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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