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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5

        

         

       진성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궁금했던 것도 해결했으며, 실력이 있는 주술사와의 연도 생겼으며, 그 주술사가 강령술을 익히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말까지 한데다가, 꽤 훌륭한 재료들까지 얻게 되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상한 놈마저 제정신을 차렸을 터이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꽤 품질이 좋은 악령들이로다.’

         

       진성은 만족스러운 듯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불씨가 꿈틀거리는 그의 눈동자에는 선명하게 네 개의 머리통이 보였고, 그 머리통들은 사슬에 꿰여 있었다.

         

       아까는 신나게 휘파람을 불었을 악령들의 입은 전부 꿰매져 있었는데, 이는 악령들이 괜히 말로 집안사람들을 홀리려 드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물론 영체에 직접 바느질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악령들을 인형에 봉인시키고 그 인형을 바느질했을 뿐이다.

         

       그는 고추와 황금을 엮어 햇빛을 잘 받은 실을 이용해 인형의 입을 손수 한 땀 한 땀 꿰맸으며, 혹여 허튼수작을 부릴 수 없도록 닭 피와 아교를 섞어 만든 접착제를 이용해 인형의 입술을 단단히 붙여놓기까지 했다.

         

       저 악령들은 이제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으리라.

         

       저 봉인이 유지되는 한은 말이다.

         

       인형은 곧 사람의 형상을 본뜬 물건이라.

       인형은 물건이되 사람을 흉내를 낸 것이니 마땅히 사람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며, 악령이 사람에게 깃들 듯 인형에도 깃들 수 있는 바.

         

       인형은 악령에게 훌륭한 집이 되었고,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감옥 속에서 악령은 형태가 고정된 채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을 무력하게 받아낼 수밖에 없었으니, 이제 저 악령들은 그의 허락이 없다면 결코 나아갈 수 없으리라.

         

       인형이 갈기갈기 찢기면 안의 악령 역시 찢겨 산산조각이 될 것이요, 불구덩이에 들어가면 인형과 함께 타들어 가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되리라. 그리고 한 줌의 재 속에서 타버린 영혼을 끌고 비명만 연신 지르며 고통의 굴레 속에서 허우적대겠지.

         

       ‘라우드켐빙어를 추종하는 고래의 안에 들어가 있었지. 그리고 그 고래들의 몸을 찢고 튀어나오기까지 했으니….’

         

       진성은 꿈속의 풍경을 떠올렸다.

         

       사악한 고래들이 물귀신과 사악한 고래들을 끌고 건물을 향해 돌진하던 그 모습을.

         

       비록 윌리엄의 정신 방벽을 완벽하게 산산조각 내고 그를 꿀꺽 삼키지는 못했으되, 그 근처까지는 다다랐었다.

         

       아마 한두 번만 더 의식을 반복했으면 얄팍하게나마 남아있던 정신 방벽은 조각나고, 윌리엄은 그대로 라우드켐빙어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으리라. 그리고 윌리엄을 장난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잔인무도하게 다룰 것이며, 가지고 노는 것이 싫증이 났을 때 비로소 윌리엄을 꿀꺽 삼켜버렸으리라.

         

       그렇게 된다면 윌리엄은 죽었으리라.

         

       사인은 아마 심장마비로 나왔을 것이며, 저주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만을 추측해낼 수 있었겠지.

         

       하지만 토마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흑주술을 이용해 정신 방벽을 완전히 조각내버리고 고래의 아가리에 윌리엄을 처넣어 죽이는 대신에, 라우드켐빙어를 그저 벽을 부수는 망치처럼 사용했다. 흑주술은 그저 정신에 파고드는 틈을 만들려는 방법이었으며, 그 사이로 영혼을 집어넣기 위해 개구멍을 만드는 사전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어설프고 무식하지만, 그렇기에 꽤 강력했던 악령들을 파고들게 만들어 윌리엄을 홀리게 했고, 윌리엄을 몽유병 환자처럼 자는 상태로 움직이게 만들어 교회로 오게 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악령이라면 상당히 강력한 녀석들이다.

         

       아마 DMZ를 넘어 북한에 가야 그 정도 악령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거기다가 꿈에까지 들어갔다 나온 녀석들이니, 이것들을 잘 갈아서 장식물을 만들면 악몽을 꾸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겠구나. 좋구나, 좋아.’

         

       업(業)이라는 것은 겹겹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 향기가 진해지는 법이다.

       선한 사람의 향기가 땅을 넘어 천상에까지 닿고, 악한 사람의 악취가 땅을 뚫고 지저까지 다다르듯 살업(殺業)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릇 살생을 많이 하는 이들의 몸에서는 피비린내가 나며, 같은 종을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그 공포와 죽음의 향기가 몸에 남기 마련이다.

         

       아무리 사나운 개라고 할지라도 개장수의 앞에만 서게 되면 꼼짝도 못 하고 오줌을 질질 싸는 것처럼, 피와 죽음의 냄새가 겹겹이 쌓이며 개체를 넘어 단체로, 단체를 넘어 종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가 된다면 그 자체로 끔찍한 위협이자 경고가 된다.

         

       진성이 만들려고 하는 주물 역시 이와 같은 것.

         

       찢기고 갈린 악령들을 이용해 만든 주물이 어떤 향기를 품겠는가.

       하잘것없는 귀신들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겠는가.

         

       그가 만드는 주물은 악령이고 악귀고 두려움에 떨며 주물의 힘이 미치는 영역으로 들어오기를 꺼리게 할 것이며, 하잘것없는 귀신들은 혼비백산하여 저택의 바깥으로 쫓아내는 물건이 될 것이다.

         

       장대 위에 해골을 걸어 경고하는 것처럼, 주물은 그 자체로 수문장이자 장벽이 되어 삿된 것들의 접근을 막을 것이다.

         

       게다가 재료로 쓸 악령들은 꿈에 들어갔다 나온 것인즉, 단순히 현실의 삿된 것뿐만이 아니라 꿈속에서 마주할 삿된 것도 물리치는 효과를 가질 터.

         

       아마 어지간한 드림캐처보다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하게 되리라.

         

       ‘곧 집을 나가게 될 것인데 선물 정도는 남겨야지. 그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 * *

         

         

         

         

       “평화롭네요. 그렇지 않나요, 동생?”

         

       평화가 찾아왔다.

         

       윌리엄은 엘라에게도 아그네스에게도 껄떡대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으며, 저택 주변에서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부리는 경호원들이나 사용인들 역시 보이지 않았으며, 이상한 수작질도 전혀 부리지 않았다.

         

       마치 윌리엄이라는 인간이 증발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기묘한 정적과 평화는 도리어 엘라에게 고민거리로 다가왔다.

         

       ‘더 크리스마스’인지 뭔지 하는 조형물 때문에 저택으로 찾아오지 못할 때도 전화와 문자로 온갖 난리를 치던 것이 윌리엄이라는 인간이었는데, 예언이 끝났다고 갑자기 조용해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이상하네요. 그 사람이라면 예언을 이뤄줬으니 어쩌고 하면서 수작을 부릴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엘라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윌리엄이라는 인간이 이렇게 ‘예언이 이루어졌으니 일은 끝났네. 더 이상 볼 일 없으니 난 이만 간다!’라며 깔끔하게 떠나갈 인간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척거리고 끈적이며, 느끼하고 역겹기 짝이 없는 인간.

         

       그런 인간이 이 흥미가 갈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건을 두고 아그네스에게 수작을 부리지 않는다?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으음~ 꿈에서 험한 꼴을 봐서 공포에 떨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니에요. 그럴 사람이라면 망나니로 유명해지지도 않았겠지요. 무서우면 무서운 대로 모성애를 자극하려고 수작을 부릴 인간이랍니다. 절대로 이렇게 조용할 사람이 아니에요.”

         

       엘라는 지금 이 평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아는 윌리엄이라면.

       아니, 그녀가 보고 들었던 윌리엄이라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10분의 1이라도 진실이라면 이렇게 평화로울 리가 없었으니까.

         

       “왜일까요…. 죽었나?”

         

       오죽하면 ‘꿈속에서 뭔가 잘못되어 죽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엘라의 추측을 부정했다.

         

       “으음. 이 언니가 잘은 모르지만요, 그 사람이 죽었으면 뭔가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요?”

       “그럴까요….”

         

       물론 실상은 엘라의 추측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윌리엄은 죽지도 않았고, 공포에 떨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강제로 치르게 된 결혼식 뒤의 허니문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 즐기는 것 역시 반강제에 가까운 것이겠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동생. 고민하지 마세요. 어차피 이제 예언이니 뭐니 하는 것도 끝났고, 다시 볼 일이 없을 거 아닌가요!”

       “네, 그렇…긴 한데요.”

       “어차피 보고 싶지도 않고, 안 보는 게 좋은 사람이라면 지금 상황은 좋은 거 아닐까요? 자기가 알아서 연락을 자제해주고 있는데 왜 그렇게 걱정을 하나요! 동생은 잡생각이 너무 많아요!”

         

       아나스타시아는 망나니의 달라진 패턴에 혼란스러워하는 엘라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가 위로했음에도 엘라가 계속 고민을 하는 것 같아 보이자, 못마땅한 듯 입술을 비쭉 내밀더니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리곤 창가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창가에서 햇빛을 받으며 무지개색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게이밍 오목눈이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짹.

         

       그러자 오목눈이는 일광욕하는데 왜 방해하냐며 소리를 내었다.

         

       “자, 같이 산책이라도 하고 오세요!”

         

       뺙.

         

       아나스타시아는 고민의 늪에 빠져 있는 엘라를 가리켰다. 그러자 게이밍 오목눈이는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곤 고개를 끄덕였고, 그대로 날개를 펼쳐 느릿느릿 날아가 엘라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어, 어라?”

         

       뺘악!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엘라는 자기 머리 위에 뭔가 올라가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게이밍 오목눈이는 머리에서 미끄러져 떨어지기 전에 날개를 펼치고 다시 날아올랐고, 그대로 엘라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렇게 엘라의 품에 안착한 오목눈이는 어서 자신을 껴안으라고 날개로 엘라의 팔을 툭툭 쳤고, 그녀가 얼떨결에 팔을 모아 자신을 받치자 날개를 이용해 그녀의 팔을 두드리며 신호를 보냈다.

         

       “네?”

         

       뺘악!

         

       게이밍 오목눈이는 날개를 하나 들어 창가를 가리켰고, 어서 자신을 밖으로 데려가 달라고 엘라에게 재촉했다.

         

       “동생! 새랑 같이 산책이라도 하고 오세요~ 그리고 오는 길에 간식도 챙겨와용.”

         

       콰앙!

         

       아나스타시아는 당황하는 엘라를 침대에서 끌어내었고, 등을 떠다밀며 방 밖으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야멸차게 문을 세게 닫아버리곤 그대로 잠가버렸다.

         

       산책하고 오기 전에는 절대로 열어줄 수 없다는 듯 말이다.

         

       엘라는 자신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물 흐르듯 진행된 이 일련의 사건에 어안이 벙벙한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산책?”

         

       뺙.

         

       엘라는 자신이 강제로 새와 산책을 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게이밍 오목눈이 역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컨택트의 끝에, 게이밍 오목눈이가 입을 열었다.

         

       뺘악!

         

       아주 흉포하면서도 위엄 넘치는 소리가 나왔다.

         

       게이밍 오목눈이는 우두커니 서서 뭐 하냐는 듯 몸을 흔들며 그녀를 재촉했다.

       엘라는 그 귀여운 모습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요. 제가 너무 고민이 많았는지도 모르겠네요.’

         

       반짝반짝 빛나면서 폭신폭신한 게이밍 오목눈이를 안고 있자니 자신의 고민이 하잘것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엘라는 복잡해진 머리가 맑게 변하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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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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