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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5

        

         아르카디아 교단(Cult of Arcadia).

         만다라曼陀羅 교가 이 동네의 불교 비슷한 위치를 담당하고, 가끔 나오는 기독교는 파편화되어 민간 신앙처럼 세간에 녹아내려 있다면. 이것들은 그야말로 악질적이며 동시에 정석적인 -이 분야에도 사람 홀리는 교범이 존재한다면- 사이비 종교의 온상이 아닐까?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발달에 의한 인류 멸망론’ 신봉자들이기에 주변에 불안감 조성하지.

         우리는 단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기에 이러는 것이라며 합리화하고, 무지한 나머지를 계몽한다며 괜히 깝죽대지.

         

         …아, 이제 또 그 ‘예정된 멸망을 피하고 싶으면 자기네 종교에 귀의하라.’는 식의 포교 활동도 빼놓으면 섭하다. 꼭 나쁜 소문이나 사상일수록 전염병 마냥 쭉쭉 퍼져 나가요 아주.

         

         이것들이 진정 악랄한 점은. 이렇게 방송국을 습격해서 우리의 뜻을 알린다! 같은 앞뒤 안 가리고 즉흥적이며, 동시에 과격한 짓을 망설이지 않고 따를 병신 새끼들도 가득한 반면.

         

         인공지능이나 사이버웨어 등의 전반적인 소프트웨어 분야에 종사하다가 흘러 들어온 기술자나 엘리트도 많은 탓에 또 그걸 진짜 실행으로 옮길 능력이 있다는 점이 악질이다.

         

         갓난아기가 식칼을 쥐었는데 하필 성인의 근력과 팔 길이를 보유한 경우라고 해야 하나?

         

         보살피기 그렇게 힘들다는 몸만 성장한 자폐 아동과 약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비유적 표현이긴 하다만.

         

         아무튼 결국 각 할렘가와 무인 구역을 점거하고 활동하는 갱단들과 함께 랜덤 인카운터로 죽어라 플레이어를 괴롭히다가, 네오 헤이븐의 1막 보스로서 주인공에게 개박살이 난 채 허망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친구들이란 얘기다.

         

         단지 이제 여기서 문제라면…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도 동향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이 놈들의 본거지를 내가 모른다는 것 정도?

         

         아니, 그야 몇 백 번을 클리어했으니 구조는 달달 외우고 있는데! 메인 퀘스트에서 이것들 기지로 들어가는 방법이 일부러 납치당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탈출한 다음 돌아가는 과정도 안 보여준 건 저라도 별 수 없거든요?

         

         그리고 날짜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지나야 그 외의 여러 사건이 발생하는지도 솔직히 애매하고.

         

         내가 네오 헤이븐을 정말 정말 애정하고, 여러 정보들을 달달 외우다시피 하긴 했는데 모든 일의 상세한 시각까지 기억하는 건 좀…… 사이버웨어에 열심히 메모해 놓은 요약 자료들을 다시 본다 한들 기억날 것 같지 않은데.

         

         능력을 써서 무의식 중에 기억하던 걸 끄집어낼 수 있다면야 가능할 수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이게 잘 안 먹히면 또 플랜 B가 필요하지 않겠나?

         그래서 지금 방송국에 온 김에 제로보고 열심히 뿌리게 만든 악성 코드가 바로 내 해답이 되시겠다.

         

         자가증식한 채로 이쪽 폐쇄 네트워크에 숨어있다가, 정비사던 직원이던 하여간 아무나 접속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장 대상의 사이버웨어에 부착되어 ‘아르카디아 교단’과 관련이 있을 법한 키워드를 찾아내서 보고하는 불법 스파이웨어.

         

         주기적으로 개발자인 나에게 사용자의 위치를 보고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해를 끼치는 기능도 집어넣지 않아서, 발각되기도 힘든 작은 낚시 바늘.

         

         …뭐, 제대로 다 뿌리기도 전에 알아서 온 물고기가 낚이는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소득이었지만 이런 건 기쁜 오산이지.

         

         이제 함부로 방송국에 접속하다가 감염된 전자 장비나 사이버웨어를 지닌 우리 사이비 특공대 친구들 몇몇이 빠져나가게 내버려두기만 하면 땡이었는데요….

         

         그들이 추적자에게 완전히 몰살당하길 바란 건 아니었다지만 찾아오는 놈들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수동적으로 대응하겠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쟤들을 너무 활개치게 놔두는 게 아닐까? 쇼우 야 인마…!! 너 원래 그런 소극적인 캐릭터가 아니었잖아!

         

         “인근 스튜디오나 방에 대피한 지인들이 계시다면 모두 이곳으로 오셔도 괜찮다고 연락하시겠습니까? 여기는 그래도 저희 쪽 전투 요원들이 방비를 굳혀서 안전을 보장해드릴 수 있으니, 에나마 코퍼레이션은 언제나 시민분들의 건강을 살핀다는 책무를 다 할 수 있습니다.”

         

         

         “꺅! 어떡해…! 너무 감사해요!”

         “아이고… 이렇게 배려해주실 필요까진 없는데… 이거 영광입니다. 이사님!”

         “…에나마 상품이나 서비스들, 조금 비싸서 고민했었는데 앞으로는 열심히 사서 쓰겠습니다!”

         

         

         등장은 살벌했을지언정, 이런 긴급 사태가 발생한다면 더 든든할 수가 없는 메가 코프 임원의 배려에 모두가 환호하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

         

         방송국 지침도 따를 겸, 광고 촬영을 도와주던 이들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아예 홀로그래픽 스튜디오를 피난처 삼아 상황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려는 모양인데.

         

         왜 내 눈에는 출입구 쪽에 임시 바리케이드를 칠 준비를 하는 저게 외부의 위협을 원천 차단하는 게 아니라 지금 실내에 있는 누군가가 옳다구나 하고 빠져나가는 걸 막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이왕 촬영 작업이 중단된 김에 나와 진득하게 여기 있겠다는 게 무슨 비효율적이고 미친 역발상이야.

         

         그냥 얼른 정리하고 일 끝낸 다음 깔끔하게 헤어지자고! 좋다고 시간 끌려 들지 말고!

         

         하다못해 평판도 올리면서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거기에만 빡 집중하던가, 자꾸 나를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힐끔거리는 게 아니라!

         

         “…….”

         “이런 씁.”

         

         일장연설도 아니고 겨우 문장 몇 개로 스탭들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 쇼우가 소란이 잦아드는 대로 금방 멈췄던 얘기를 계속하러 돌아올 것처럼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길래, 어떻게 여기서 더 도망갈 장소가 없나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무슨 타조도 아니고. 정해진 운명을 외면한 채 땅에 머리를 파묻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거 말 존나 심하게 하시네! 작전상 후퇴도 몰라? 격투 게임하듯이 뒤로 계속 백대쉬 하면서 ‘응, 니가 와~’를 시전하면 쟤가 먼저 지쳐서 나가 떨어질 수도 있는 노릇 아니야.

         

         쾅!

         

         일단은 후다닥, 제로를 데리고 탈의실 겸 의상실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아걸었다.

         

         진짜 바보같이 스스로 직원들의 시선도 닿지 않는 막다른 밀실에 들어서서 어떤 위험천만한 특정 이벤트의 발동 확률을 높였다 하진 말아 주기를 바란다.

         

         적어도 이 더럽게 불편한 옷부터 좀 원래대로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오프숄더 블라우스에 타이트한 검정 치마라니. 신경 안 쓰고 움직이면 상의는 그대로 흘러내릴 것 같고, 다리를 원하는 각도까지 움직이려 하면 하의는 역으로 말려 올라가서 허벅지가 막 드러나고.

         

         이 망할 옷차림만 아니었어도, 아까 쇼우 녀석의 양팔과 벽 사이에 갇혔을 때 바로 반격부터 나갔을 거라니까?

         

         캐주얼한 복장을 입었으면 입었지, 이런 뽐내는 듯한 패션을 입는 사람은 길에서 본 적이 없는 시대인만큼 섣부른 일반화는 금물이긴 한데. 예전 세상에서 여자들은 잘도 이런 걸 입은 채 밖을 돌아다녔구나 싶다.

         

         – 제가 문을 막은 채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게 그 아샤님과 에다마츠 이사의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상은…. –

         

         “나도 알아! 이건 그냥… 아까처럼 덤벼들지 말라는 뜻으로 벽을 좀 쳐 놓자는 것뿐이야.”

         

         그렇게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지고 다시 전투복을 껴입는 와중.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중간한 위협으로는 도저히 쇼우의 막무가내 접근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제로가 드물게 약한 소리를 해왔지만 뭐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나.

         

         진짜 뒷일 생각 안 하고 한 번 대판 싸워서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꼬라 박을 게 아니라면. 어디까지나 계속 사양하고 거부하고, 그럴 생각은 없다며 밀어내는 거부의 지겨운 반복이지.

         

         …그래, 환풍구! 혹시 환풍구 같은 거 어디 없냐? 잠입 액션이나 공포 장르의 창작물 보면 이런데 꼭 사람이 지나갈만한 크기에 뚜껑도 손쉽게 열리는 구멍 같은 게 있더만.

         

         더 이상의 요행에 기대는 게 어처구니없기는 한데, 그런 걸 타고 쏘옥 내뺐다가 나중에 촬영 재개했을 때 슬쩍 돌아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능청 떨 수 있으면 완전 범죄잖아.

         

         당연히 그동안 나를 놓친 쇼우야 존나 삐딱하게 반응하겠지만, 적어도 그때는 다른 직원들 눈치 보느라 못 덤벼들 테니 그것만 해도 나로선 더 바랄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런 여건이지만….

         

         – 공기 청정 시스템이야 당연히 존재하긴 합니다만… 네오 헤이븐 환기 관련 법규가 23년 전 개정된 이래, 그런 대형 환풍구가 남아있는 건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밖에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

         

         “게임적 발상도 이럴 땐 도통 도움이 안 되네!”

         

         산만한 투덜거림, 거기에 약간의 우왕좌왕.

         그러다 어디 밀고 들어올 테면 해 봐라. 여기서 농성하듯이 버텨주겠다는 황당한 결심으로 정신 무장을 마치곤 의류 거치대 뒤쪽에 안전 거리를 확보해 샥 숨기까지.

         

         한바탕 난리법석이 지나가자마자. 여태 안에 있는 내가 진정하기만을 엿들으며 기다리고 있었던 듯, 큭큭거리는 웃음을 눌러 참은 쇼우가 입실 허가를 구해왔다.

         

         “큿, 흠흠…! 어떻게. 옷은 다 갈아입으셨습니까 아샤?”

         “……그러든가 말든가.”

         

         제발 예의 바른 신사답게. 얌전히 말로 풀어보자고 우리. 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변태 출몰 지역, 주의 바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 그리고 하시는 일 모두 잘 풀리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년도 적을 때 2024라고 적어야 한다니… 어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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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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