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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5

     제국 경제학자들이 황금의 대란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황금가치 하락에 대하여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사이.

     “황금?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야?”

     오로솔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작금의 상황에 대하여,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창고에 다들 금화 한 무더기로 쌓아두기도 하잖아. 왜 그렇게 난리를 피우는 거래?”

     “몰라.”

     그들에게는 황금이 얼마나 많은지, 그건 딱히 관심이 없었다.

     노스트럼이라는 땅에 황금이 지난 500년 동안 제법 많이 나온 것도 있고, 또 황금여명 기사단이 황금으로 된 갑주를 입고 다닐 만큼 널리 퍼졌던 것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주머니 속에 당장 들어있는 금화만 하더라도 금이다.

     지름 1cm 짜리 1골드 금화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금이 아깝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기도 했지만, 아깝다고는 해도 그걸 실제로 녹여서 새로 금으로 만드는 게 더 돈이 아까운 게 노스트럼의 현실이었다.

     그러다보니, 노스트럼 사람들은 황금이 늘어나는 것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불만이 있다면 제국에서 물건을 수입해오는 상인들이 그나마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정도.

     “아니야, 얘들아. 지금 우리 큰일났다니까? 제국에서 들여오는 이 사탕 한 봉지를 사려면 금화를 얼마나 준비해야 되는지 아냐고. 예전에는 한 주머니였다면, 지금은 가방 하나를 갖다줘야해. 나중에는 수레 가득 금을 채워서 사탕값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니까?”

     “아담, 너는 너무 걱정이 많아. 사탕이 비싸면 초콜릿을 사먹으면 되지.”

     “…….”

     “그리고 1골드 금화를 뭐하러 수레에 다 채워서 다녀? 1골드 100만 개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냥 100만 골드를 주면 되는 거 아니야?”

     금전에 민감하거나 상회를 운영하는 이들, 특히 제국신문을 자주 살피며 제국의 동향을 살피는 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나, 졸업하면 제국으로 갈까봐.”

     “제국으로? 에이, 거기 공기 답답해서 못 살 걸?”

     “여기에서 지내려고 하면 내가 답답해서 못 살겠어.”

     어떤 이들은 제국으로 떠나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허. 아예 제국으로 가서 살려고?”

     “아니. 지브롤터에서 잠시 몇 년 있다가 그 다음에 한 번 여행을 다녀볼까해.”

     “흐흐. 여행다닌다면서 어디 제국의 순진한 여자애 꼬시려고 하는 거 아니냐? 너도 ‘그레이’하려는 거냐?”

     

     그레이하다.

     제국의 여인을 상대로 연인관계를 구축한 다음, 제국에서 자산이든 권력이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해당하는 자리를 얻어내다.

     “너는 지브롤터를…하아. 아니다. 그냥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담. 너는 주변 사람들을 너무 무시해서 문제야. 지브롤터가 황금의 영령들에게 당할 것 같아? 전혀. 우리는 그냥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지내고, 가문의 창고에 늘어나는 황금을 가지고 목걸이나 팔찌를 만든 다음 어떤 보석을 끼워넣을까 고민하면 되는 거라고.”

     “아주 그냥 넘쳐나는 황금을 가지고 식기랑 변기도 만든다고 하지 그래?”

     “왜 이렇게 공격적이야? 황금이 넘쳐나는 것 뿐인데, 뭘 그렇게 짜증을 내고 그래?”

     대부분의 노스트럼 사람들은 그다지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그냥 황금이 좀 많이 넘쳐나는 것 뿐이잖아.”

     “그러다가, 황금이 무한히 나오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야?”

     “…개나소나 황금을 가지게 되고, 너희가 그렇게 꺼려하는 평민들도 황금을 가지게 된다면?”

     “…….”

     누군가는 황금이 너무나도 보편화된다는 것에 잠시 걱정하는 낌새를 보이기도 했으나.

     “뭐, 누군가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나리아 여왕님이든, 아니면 지브롤터든. 그도 아니면…아담, 너든.”

     “…….”

     “아. 아니다. 제국으로 가면 좀 다른 방식으로 이름을 불러야 하나? 헤이, 애덤?”

     “내가 말을 말아야지.”

     황금이 늘어나는 시대. 

     개인은, 그저 자신의 주머니에 황금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을 기뻐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황금을 얻기 위해 바르셀로나든 그 국경이든, 계속해서 모여들기를 반복할 뿐이고.

     “애덤. 너무 열 내지마. 황금이 늘어나고 황금 가치가 내려가고 물가가 상승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화폐가치가 마구 흔들리고 탈러의 위상이 내려가는 것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대륙 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되겠지만,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너, 다 이해했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고?”

     “그럼. 학부생인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아니면 모두가 공평하게 황금을 나누자고 그럴까?”

     “마르크스, 너….”

     “황금이 흔해지고 나라가 어지러워질수록, 때로는 어떤 이들에게 기회로 다가올 수 있지 않겠어?”

     오로솔 아카데미.

     “망하는 건 노스트럼 왕국과 제국이지. 그러면 모두가 평등하게, 전부 주머니에 풍부한 황금을 쥐고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대전제가 하나 있었다.

     “우리 무능왕께서 기어이 대륙을 황금으로 뒤덮으려고 왕가의 기적을 행사하시었는데, 개인이 뭘 할 수 있냐고.”

     황금의 복사는, 막을 수 없다는 것. 

     

     * * *

     그 시각, 오로솔 아카데미 모 대회의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오로솔 아카데미 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가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황금빛 머리칼을 가진 청년, 아카데미 3학년이자 제국 유학생의 일원 중 한 명이며-동시에 지금은 모종의 사유로 강제 휴학 중인 전 부학생회장 누아르 지브롤터의 대리로 활동하고 있는-

     “저, 임시 부학생회장 대리 블론드. 이 자리에 모인 제국 유학생 여러분을 대표하여 말하겠습니다.”

     제국 유학생 1기 201호이자 기숙사장, 블론드가 대회의실에 모인 제국 유학생과 일부 외부인들을 훑으며 연단에 섰다.

     “우리 제국 유학생들이 지난 두 달 동안 모두가 밤을 지새우며 정보를 수집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모은 결과, 황금의 대재앙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두 가지로 정리되었습니다.”

     팟.

     “하나. 이 사람이 유일왕이 되는 것.”

     블론드가 옆으로 손을 뻗자, 위에서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한 인물의 초상화가 내려왔다.

     “우리의 학생회장이자 노스트럼 왕국의 군왕,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께서 진정한 ‘성인’이 되었을 때. 성년 노스트럼의 자격을 가지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폐위한 뒤, 유일한 노스트럼 왕족으로서 명령을 철회하면 황금의 재앙은 끝날 것입니다.”

     회의실에 들어온 이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인쇄물을 넘겼다.

     그곳에는 블론드의 주장에 대한 근거와 추론 과정이 자세하게 적혀있었고, 그 양은 십수 장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는 이게 불가능할 때를 대비하여야 합니다. 언제까지 황금이 계속 범람할지 알 수 없으나, 그렇기에 우리는 이 황금을 수습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건….”

     블론드의 시선이 회의장 가장 앞에 앉은 한 여인을 향했다.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황녀님. 당신께 달렸습니다.”

     “저요?”

     제복 차림의 아스타시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자료를 흔들었다.

     “제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의 계획을 향한 전폭적인 지원.”

     “아, 그거라면 할 수 있죠. 난 또 뭐라고.”

     그레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아스타시아의 표정이 풀렸다.

     아스타시아의 뒤에 앉은 다른 제국 유학생들은 침조차 삼키지 못하고 애꿎은 인쇄자료만 만지작거렸고, 블론드 또한 연설대에 가려진 손을 쥐락펴락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레이 지브롤터 총독은 오로솔 아카데미에 공식 의뢰를 하였습니다. 협곡 개발에 대한 즉각적인 연구를 시작할 것을. 그리고 그를 위해, 지브롤터 협곡의 철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협곡을 개발할 것을.”

     펄럭.

     “황금이 무한히 쏟아져서 그 황금을 어딘가에다가 써야 한다면, 우리는 그 황금을 가장 가치있는 곳에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블론드의 뒤로 또다른 초상화가 하나 내려왔다.

     “우리의 황제,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제국 유학생들 모두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유학생들 이외에 교수라거나 카페 사장, 오로솔 아카데미 관리직원 등 학생이 아닌 이들도 서로 시선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압니다. 여러분들 모두 황제폐하를 향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여러분들과 저 또한 다를 바가 없습니다. 특히, 황녀 전하라면 더더욱.”

     블론드는 차갑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스타시아 황녀의 눈빛에도 침을 꿀꺽 삼키며 합스베르크 황제를 손으로 가리켰다.

     “우리는 황제폐하의 황금상을 만드는데 총력을 다할 것입니다. 제국력 100년을 맞이하여, 넘쳐나는 황금을 이용해 온갖 기념비적인 물건들을 만들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이 직접 언급했다고 하는, 300m짜리 황금상!”

     “…….”

     제국 유학생들이 서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위대한 테르시안 제국의 일원으로서,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황제의 위대함을 협곡을 개발한 빈 공간에 세워 널리 퍼뜨릴 의무를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블론드의 목소리에 흘러나오는 약간의 광기를 경계하는 동시에, 블론드라는 인간이 제국 유학생이라는 신분으로도 휴학 중인 누아르 부학생회장의 대리를 맡고 있다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제국의 유학생! 국가의 일은 국가에, 학생은 학생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그러므로, 우리 제국 유학생은!”

     능력이 되기 때문.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솟아나는 황금의 영령들을 쓰러뜨려 얻어내는 황금을 이용하여,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과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황녀님의 약혼식이 열리는 날까지 두 사람의 약혼을 축하하는 황금상을 만들어야 함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순간.

     “오로솔 아카데미 지브롤터 장학재단 건물의 앞에, 두 분이 손을 잡고 있는 황금상을 만들어 아카데미에 대대로 내려가는 영구불명의 연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회의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두 분의 앞에서 서로 고백을 하고 키스를 하면 영원히 깨지지 않는 커플이 된다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우리 제국 유학생 중 일부가 유혹하는데 성공한 왕국 귀족들을 그곳의 앞에서 정식으로 고백하여 결혼을 맹세하는 걸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저기, 블론드.”

     “…연설 중에 무슨 짓인가, 스칼렛. 네가 아무리 황녀님의 담당 시종이라고 하더라도…!”

     “뒤.”

     “뒤?”

     오직 블론드만이 눈치채지 못했다.

     “……!”

     황금의 영령이 블론드의 뒤에서 솟아나, 가만히 블론드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을.

     “…흠.”

     블론드는 침착하게 옆으로 물러났다.

     땅에서 솟아난 황금의 영령은 손에 황금으로 된 철퇴와 상급 기사의 상징인 인장을 흉갑에 달고 있었으나,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놀래라.”

     황금의 영령.

     그들은 온갖 곳에서 솟아나지만, 평범한 이들에게는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는다.

     오직 지브롤터만.

     그리고 지브롤터를 죽이기 위해 가는 길에 자신을 가로막는 존재만을 상대할 뿐.

     “황녀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이 황금의 영령을….”

     ■■■■■■■!!

     황금의 영령이 갑자기 마나를 방출하더니, 그대로 창문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 창문에는, 무언가 황금색으로 빛나는 밧줄 같은 것이 하나 덩그러니 내려와있었다.

     와장창!

     창문이 깨지며, 황금의 영령이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블론드를 위시한 제국 유학생들은 저마다 ‘여기가 7층이었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으나.

     “이런, 이런.”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한 명에 곧 황금의 영령이 왜 갑자기 창문을 향해 뛰어든 건지 알아차리고 말았다.

     “몰래 데리러 왔는데, 하여튼 분위기 깨는데는 일가견이 있군.”

     “아…!”

     표정이 굳어있던 아스타시아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레이!”

     

     그대로 깨진 유리창을 향해 달려가, 유리창 너머에서 나타나는 이를 향해 뛰어나가 안겼다.

     스르륵.

     두 사람은 순식간에 하늘로 사라졌다.

     아래가 아닌, 하늘로.

     “…여긴 7층인데.”

     구구구구구구.

     무언가, 거대한 마도엔진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

     광장에서 솟아나는 황금의 영령들이, 하늘을 향해 무기를 겨눈 채 흐느적거리기만 하는 광경이 창 밖에 보였다.

     “…설마.”

     “하늘?”

     구구구구.

     블론드가 가장 먼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순간.

     “하.”

     오로솔 아카데미의 위로 전열함이 하늘을 날아가며, 아래로 내렸던 밧줄을 회수하고 있었다.

     황금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밧줄.

     그리고 그 밧줄과 마찬가지인, 황금으로 빛나는 전열함.

     “…황금을 비행선을 만드는데 전부 써버리면, 인플레를 막을 수 있는 걸까?”

     블론드의 물음에 답을 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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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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