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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6

    과거, 리브가 아린세이아를 지키는 기사였던 시절.

    단단하고 무거운데다 마력방호도 뛰어난 아세릴로 만들어진 몸을 가지고 있던 리빙아머는 단순한 움직임 만으로 인간의 몸을 으스러트리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리브의 몸은 대부분 천과 실, 그리고 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상해를 입지 않도록 굉장히 안전하게 만들어진 곰인형은, 아무리 강하고 빠르게 공격한다고 해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한 파괴력은 나올 리 없다.

     

    그러나, 그것이 리브에게 문제가 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너무나 간단한 해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숲 속에는 이미 무기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바로, 인류가 최초로 사용했다는 무기.

     

     

    ‘돌’이다.

     

     

     

    -파각!

     

     

    돌은 꽤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무기였다.

    손에 쥐고, 적당한 속도로 휘두르기만 하면 간단히 뼈를 부수고 내장을 진탕시킬 수 있다.

    날을 세울 필요도 없으니, 굳이 오러도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마력의 소모를 낮출 수 있다는 뜻이며, 결과적으로 그건 리브의 가동효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고작 몇백년조차 살지 못하는 인간의 뼈와 살은, 수천, 어쩌면 수 만년간 땅을 받쳐온 암석에 비하면야 너무나 연약하다.

     

    하지만, 이미 한번의 죽음을 겪은 시체들은 다시금 찾아온 안식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돌을 던져서 머리를 부수고 팔다리를 박살내더라도 시체들은 다시 일어나 다가왔다.

    조금 더 확실한 공격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리브는, 이내 적당한 돌을 찾아 양 손에 움켜쥔다.

     

    -콱, 콱, 콱.

     

    머리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척추가 부러져 지탱할 수 없게 된 시체는 결국 완전히 움직임을 멎는다.

     

    -털썩.

    그 시체가 쓰러짐과 동시에, 부서진 머리와 허리, 그리고 팔다리의 관절부에서 검은 피가 터져나왔다.

     

    -휙.

     

    리브는 약간의 움직임만으로 간단히 그 피를 피해냈다.

    자신의 주군이 더러운 피가 묻은 자신의 몸을 안아 들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자신의 몸엔 결코 피가 튀어선 안되는 것이다.

     

    그 결과를 확인함과 동시에 리브는 그 시체를 피하고 도약해, 또 다른 시체의 얼굴에 돌멩이를 처박는다.

       

    이미 죽은 자의 심장은 뛰질 않으며, 피는 거의 굳어 있다.

    그리고 그걸 피하는 것은 리브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

     

    -파각, 팍!

     

    양 손에 돌멩이를 쥔 리브의 움직임은 마치 용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도 같았다.

    이대로라면 손쉽게 시체들의 군단을 박살낼 수 있으리라.

     

    “……어이쿠, 이거 참. 생각보다 인형의 성능이 좋네.”

     

    하지만, 세이어는 여전히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는 중이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나 꿍꿍이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으나, 아까부터 마력시엔 어떤 움직임도 잡히질 않고 있었다.

    단순한 허세인가, 아니면 자신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한 속셈이 있는 걸까.

     

    ‘뭐, 어떻든 상관 없지.’

     

    하지만 뭐가 되었든 루크에겐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세이어에게서 어떤 묘수가 나오든 문제없이 대응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오히려, 그런 묘수를 보여줬으면 했다.

    마력이야 아깝긴 하겠지만, 그 또한 흥미롭지 않겠는가?

     

    그 때, 세이어가 참 재미있다는 듯이 루크를 향해 묻는다.

     

    “그런데, 너는 참 신기하네. 보통은 이런 수의 시체를 눈앞에 두면 어떻게든 평소와는 다르게 반응하기 마련인데 말이야.”

     

    일반적으론 경악하거나, 울거나, 공포에 질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끔은 시체와 싸우며 도망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거나, 미쳐서 웃어버리는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아이는 어떤 표정변화도 없었다.

     

    아무리 저렇게 성능이 좋은 ‘인형’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루크는 인형이 시체들을 도륙내는 장면을 보면서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듯이 무표정하다.

     

    그 질문은 루크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야, 그런 것에 일일히 반응할 이유도 없을 정도로 많이 상대를 해 보았으니까.

    사령술사에 대한 대처법은 이미 질릴 정도로 반복숙달이 되어 있었다.

     

    5000년 전, 마계의 침식이 정점에 이른 시절, 부족한 자원을 두고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지속되던 전란의 시기엔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 시체였다.

    그렇기에 사령술사가 기승을 부리는 것 역시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

     

    그 때는 정말로 발에 치이는 것이 사령술사였고, 심지어는 강도 중에도 사령술사가 끼어 있었다.

    애초에 흑마법사들이 강도나 다름이 없는 사상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 신기할 것도 없는 이야기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루크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그래. 이대로 그대의 군단이 무너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되겠지만, 그냥 기다리기 적적하기도 하니 대화나 좀 해볼까.”

     

    세이어는 그 말에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크게 웃어제끼기 시작했다.

     

    “뭐? 하하하하! 역시 넌 정말 이상하다니까, 하하하하!! 큭크크큭…….”

     

    한참을 그리 웃다가 겨우 웃음을 거둬들인 세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너도, 나와 똑같은 눈을 하고 있구나. 아주 훌륭한 마법사의 눈이야.”

    “그럴지도.”

     

    루크는 적당히 맞장구쳤다.

    실제로, 세이어와 자신은 꽤나 닮았다.

     

    둘 다 한번 죽음을 거부했고, 마나를 다루는 지식에 중독된 인간들이다.

     

    비록 그 방식과 도달한 곳은 크게 엇나가 있었지만, 둘 다 근본은 호기심이 곧 행동의 원리인 마법사라는 존재다.

     

    그러자 저 아이의 말대로 자신의 군단이 너무나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는 것은 실제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고, 이 양상이 계속되면 자신이 패배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태연하게 대화를 나눌 여유따위는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이 꼬마가 정말로 궁금하단 말이지.’

     

    세이어 역시 숨길 수 없는 마법사였다.

    이 아이가 대체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세이어는 흔쾌히 루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뭐, 좋아. 그럼 그동안 각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라도 하자. 이제부터는 서로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동의하니?”

     

    세이어는 손짓으로 허공에 마법진을 만들어 낸 뒤에, 루크를 향해 던졌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마나의 맹세였다.

     

    현대에서는 이 마법을 조금 변형하여 거짓말 탐지로 사용하는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거짓을 말하면 온 몸의 마나가 뒤죽박죽 엉켜버리는 패널티를 지닌 계약마법.

     

    허나 원래 자신의 가치를 중시하여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 마법사들에겐 별로 의미가 없는 마법이기도 하다.

     

    ‘게다가, 맘만 먹으면 디스인챈트 하는 것도 간단하고.’

     

    이 마법의 해제는 대마법사가 아니면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바로 그 대마법사가 아닌가?

    루크는 서클이 아직 좀 모자랄 뿐이지, 서클마법에 대한 지식에는 그 누구보다도 큰 자부심이 있었다.

    이런 초보적인 계약마법 따윈 언제든 풀어버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서클마법은 그동안 크게 발전을 이루지 않았기 때문인지 술식이 마법언어가 발전해 좀 더 경량화되고 안정화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기본원리는 동일했으니까.

     

    마법식이 자신에게 특별히 문제를 줄 수 없다는 걸 확인한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에 마력을 채워넣었다.

     

    “그래, 동의한다.”

    굳이 이런 마법식을 쓰지 않더라도 자신은 거짓말을 한 적 따윈 없으니까.

    앞으로 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이 마법을 이용해 세이어에게 진실을 강요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오히려 이득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내뱉는 흑마법사인 세이어는 그걸 모르겠지만.

     

    서서히 마법식이 효과가 자신의 몸에 발휘하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 세이어는 곧장 루크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먼저 물을게.”

    “하게.”

    “너, 정말 10살 맞아?”

     

    루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세이어는 여전히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여자들은 다 나이 얘기를 꺼내면 그런 표정을 짓더라. 하하하.”

    루크의 표정이 변한 것은 그딴 시답잖은 이유는 아니었지만.

    루크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사실이다.”

     

    이 몸은 사회적으로 10살임이 보장되는 몸이다.

    그러니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이 몇 살인지를 대체 어떻게 따진단 말인가?

     

    자신은 생물이 아니라, ‘서클’이다.

    어쩌다보니 기억과 자아를 지니게 되었을 뿐이지, 확실한 나이를 셈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센다는 것도 의미 없고, 기억의 시간을 모두 합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자신의 기억은 루크의 것 말고도, 마계에서 생활하던 레비의 것과 알 속의 파르바티의 것, 그리고 여신의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조리 혼재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느쪽을 고르느냐에 따라 나이가 전부 다르게 되기에 일관성이 없다.

    애초에 정확한 시간을 셈할 수도 없고.

     

    그러면 결국 이 몸의 성장상태에 따른 사회적인 나이를 고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루크의 대답을 들은 세이어의 눈빛이 굉장한 흥미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진실이라니?!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10살에 그런 재능과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방법이 대체…….”

     

    루크는 세이어의 중얼거림을 끊어내며 말했다.

     

    “질문은 한번에 하나. 이번엔 내 차례일세.”

    “아차차, 미안, 미안. 그럼 이제 뭐든 물어봐.”

     

    루크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운 티를 내고 있는 세이어를 바라보며 물었다.

     

    “최근 이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실종사건들. 그대의 소행이지?”

     

     

    루크는 세이아의 뒤에 일어선 시체의 모습을 보자마자 과거 시루드의 신고를 받고 서드의 집에 찾아온(사실은 거기는 서드의 집이 아니었지만) 시에나의 그 한탄과도 같은 경고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요즘은 실종자도 부쩍 늘어나고 있단 말이지.’

     

    얼굴들이 꽤 익숙했기 때문이다.

     

    숲에 어슬렁거리는 시체들 사이에는 직접 자신이 시설에서 사살한 악인들도 있었지만, 정말 이 근처를 자주 오가는 인물도 꽤나 섞여 있었다.

    루크는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행인들의 얼굴은 꽤 많이 기억을 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이 근처에서 활동을 시작한 시기부터 시체를 납치한 방식을 추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녀석이 가진 배후의 규모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된다.

     

    “……꽤 날카로운 질문이네.”

     

    그 질문의 복합적인 의미를 깨달은 세이아는 마치 허를 찔렸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다음의 질문을 할 수 없게 된다.

    세이어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맞을 거야.”

     

    “그렇군. 충분한 대답이 되었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싸움은 부하들 맡기고 수다떠는 두 마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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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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