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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6

     휘이잉.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침 9월의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덕분에, 비행선으로부터 쭉 아래로 내려온 황금의 와이어가 뒤로 흩날린다.

     “그, 그레이!!”

     내게 안긴 아스타시아가 내게 꼭 안긴 채 외친다.

     “자, 자꾸만 이렇게 할래요?!”

     “니드호그를 타고 날아갈 때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갑자기 찾아온 건 반갑지만, 계속 이런 스릴을 계속 원하는 건 아닌데요!”

     아스타시아는 아래를 눈으로 가리켰다가 질끈 감았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밧줄 어디에 묶여있는 건데요!”

     “기둥에 단단히 묶어뒀죠.”

     나는 밧줄의 위를 가리켰다.

     “황금으로 만든 배의 기둥.”

     “두 사람 무게면 황금이 찌그러질 수도 있잖아요!”

     “아스타시아가 있으니 1.5명 무게입니다.”

     “그,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아스타시아가 꽉 붙잡고 있는 내 등에 손톱을 박아넣을 기세로 화를 냈으나, 나는 그런 아스타시아를 더 단단하게 붙잡았다.

     “그런데 아스타시아. 니드호그를 타고 날아다녔을 때보다는 0.1명분 늘어난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요?!”

     “손잡이라고 할 수 있는 허리는 잘록해졌는데, 몸에 닿는 부분은 더 커진 것 같은데요?”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아스타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소, 손잡이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거, 거기보다 조금 더 위가 아닐까요?”

     “보통 손잡이라는 거, 한 손에 안 들어올 정도의 크기를 말하는 건 아닐텐데요?”

     “……흥. 약았네요, 정말.”

     “알고 있습니다. 모른척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허리보다 더 잡기 편한 손잡이가 있다는 건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

     “지금은 안 됩니다. 지금은.”

     하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참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도 하고-

     “이런 상공에서 밧줄 하나 붙잡고 날아가는데 그러기에는, 아무리 저희라도 위험하죠.”

     여기에서는 안 된다.

     “……그것 때문에 사실 처음부터 말하고 싶었던 게 있는데.”

     “올라갈 겁니다, 아스타시아.”

     내가 밧줄을 살짝 당기며 아래에 걸린 발판을 비틀자, 곧 마도장치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우리의 몸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이건….”

     “사람은 없습니다. 기둥에 묶인 밧줄이 감기면서, 자동으로 올라가도록 설계되어있거든요.”

     “와. 그건 좀 신기하네요.”

     “예. 따로 이걸 당겨주는 사람이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나는 올라가는 밧줄의 위를 가리키며, 아스타시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배의 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예?”

     “합스베르크 황제가 타고 왔던 배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무인선이 될 수 있도록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으니까요.”

     “사람이 없…. 거짓말. 사람이 없을 리가 없잖아요?”

     아스타시아가 볼을 부풀렸다.

     “그냥 우리가 무엇을 하든 모른척 해준다거나 할 뿐이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럼요.”

     “진짜로 아무도 없습니다. 저 배는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진 배니까요.”

     덜커덩.

     나는 아스타시아를 안은 채, 배의 옆으로 뻗어나온 구멍을 향해 그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부 다 황금이네요?”

     “공교롭게도, 이게 원래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위해 만들어진 그의 무덤이라서.”

     “…….”

     “괜찮습니다. 그에게 넘어가기 전까지는, 우리의 배니까요.”

     나는 밧줄을 회수한 뒤, 황금으로 된 레버를 당겼다.

     덜커덩.

     비행선의 구멍이 닫혔다.

     나는 손가락을 튕겨 비행선의 마도장치를 조작했고, 곧 비행선 천장에 설치된 형광등이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황금…?”

     “빛이 나는 부분은 마석이죠. 황금의 노예를 녹인 건 아니고, 그냥 황금빛으로 빛나는 마석일 뿐이지만.”

     나는 아스타시아를 놓은 다음, 두 팔을 벌렸다.

     “환영합니다, 아스타시아. 대륙을 대표한 두 번째 시험운행에 참여한 걸.” 

     “…진짜 아무도 없어요?”

     “당연하죠.”

     “아무도? …아버님이랑 어머님, 이거 한 번 타보고 싶어하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범운행입니다.”

     나는 위아래를 가리켰다.

     “혹시나 추락할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아무나 태울 수 없죠.”

     “저는요?”

     “아스타시아는 제가 구할 거니까 괜찮습니다.”

     “…….”

     

     아스타시아는 잠시 눈을 샐쭉이더니.

     “손, 잡아줘요.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자꾸 떨려서 긴장되는 것 같으니까요.”

     내게 한 손을 내밀었다.

     “손잡이를 잡으라는 말입니까?”

     “…….”

     나의 말에, 아스타시아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셔도 되고.”

     * * *

     비행선이 대중에 공개된 날로부터 약 2달.

     

     사람들은 모두들 황금에 정신이 팔려있지만, 지브롤터 협곡에 있었던 이들은 모두 하늘을 날았던 비행선에 대해 연일 떠들어댔다.

     제국 마도연구소에서 만들어진 풍석을 대량으로 비행선의 하부에 장착하고, 그 풍석의 일부를 비행선의 후방에 배치하여 마력풍을 방출한다.

     마력풍의 출력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바다를 누비고 다녔던 배들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은 다들 비행선의 등장에 열광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이 늘어난 황금을 두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제 이 많은 황금을 자본으로 삼아, 비행선을 마구 만들어내면 되겠구나!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황금이라는 게 일단 계속 나오기도 하고, 황금을 팔아다가 그 예산으로 비행선을 제작한다면 분명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다들 기뻐했다.

     정작 그 황금이 이 정도로 시장에 많이 풀리고, 2달이 지난 시점에서는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은값에 역전당하기 일보 직전까지 몰리게 되자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다!

     노스트럼에서만 사는 비룡의 도움 없이도, 마법의 도움 없이도 인간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마도자동선은 사실 처음부터 땅이 아닌 하늘을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구나!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황제 폐하, 만세!

     우리를 하늘로 인도하여 주소서ㅡㅡ!

     라고 다들 외쳤지만, 사람들이 비행선을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한 시점.

     사실, 미뤄졌다.

     제국인들은 제국력 99년이 되기 전에 일부나마 비행선을 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 기회가 제국력 100년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어째서?

     노스트럼 협곡을 넘어가는 사진과 영상이 돌아다니는 걸 제국 전체가 봤는데, 우리는 왜 비행선을 타지 못하는 건가?

     돈 문제일까?

     아니면 안전?

     그도 아니면, 오직 황족만 타고 다닐 수 있는 권위의 상징?

     비행선이라는 게 얼마나 비싸고 희소한 물건이길래?

     -[비행선, 새로운 인류의 날개가 되나?]

     -[10년 내로 열차는 사라지고, 비행선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바토리 소장 “풍석만 달면 모든 게 떠오를 수 있다. 모든 것이.”]

     

     제국신문 1면에는 노스트럼에서 일어난 황금의 대란에 대해서 다뤘다면, 2면에는 비행선에 관한 제국 마도연구소와 황제의 공식적인 답변이 매일매일 갱신되었다. 

     -[합스베르크 황제 “비행선 운행 지연에 유감.”]

     합스베르크 황제는 비행선에 관하여, 제국 시민 전체가 알 수 있도록 언론에 비행선 운용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흘렸다.

     비행선의 등장을 통해 본격적으로 비행선 전용 항구인 ‘공항’이라는 걸 만들고, 반년 동안의 시범 비행을 통해 비행선을 주요도시마다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국에서 출발한 비행선이 노스트럼의 땅에 ‘협곡을 날아’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그 구체적인 계획이 언론에 퍼져나갔다.

     

     신문내용만 보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제국력 100년을 맞이하여, 인류가 비행선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계획은 ‘연기’되었다.

     [합스베르크 황제 “경제가 먼저다.”]

     황금의 대란.

     노스트럼에서 쏟아져들어오는 황금의 양은 제국이 총력을 기울여야 억제 가능한 수준이었다.

     

     아무리 제국의 마도연구소에서 ‘이 황금은 진짜 황금이 아니다’라고 구분을 하고 그래도, 일반인의 눈에는 황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가짜가 진짜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황금의 가치를 흔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국의 첩보원들이 밀수를 통해 들어오는 황금을 통제하려고 해도, 그 첩보원들마저도 눈앞의 황금에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황제가 직접 나서서 황금을 억제하고 있는 상황.

     황제가 비행에 관한 문제를 계획은 전부 다 세워뒀는데 실행하는 걸 미뤄야 할 정도의 상황.

     누군가는 말한다.

     아니, 그 정도면 비행선 운용에 관한 건 천천히라도 진행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에 대한 합스베르크 황제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합스베르크는 언론을 통해 말할 것이다.

     -비행에 관한 시범운행과 안전성 확보는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맡겼다.

     라고.

     어째서, 갑자기 그레이 지브롤터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바르셀로나 총독부에 있던 이들부터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부와 테르시안 제국 마도연구소가 협업하여 만들어낸 황금 전열함.

     온통 황금으로 빛나는 비행선이 하늘을 날아 왕도를 향하는 것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 본 제국 시민들은 생각했다.

     아아.

     그렇구나.

     

     합스베르크 황제는 하늘을 향한 문제조차, 제국의 사람이 아닌 그레이 지브롤터와 논의를 하고 실제로 그 결과를 내고 있구나.

     제국인이 아닌 지브롤터와 하늘에 대한 논의를 할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합스베르크 황제는 지브롤터를-그레이 지브롤터를 많이 신경 쓰는구나.

     -이게 황태자가 아니면 뭐겠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던 이들도, 결국 서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테르시안 제국의 차기 황제는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이 여황제에 등극하거나, 아니면 그 국서인 그레이 지브롤터가 황제에 오르거나.

     어느 쪽이든, 제국 시민들은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우리도.

     황금으로 만들어진 비행선을 타고 싶다.

     * * * 

     “와ㅡ아.”

     황금의 비행선을 쭉 훑어보며 갑판에 올라온 아스타시아가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정말로, 아무도 없네요?”

     “하늘에 아무도 없다는 겁니까, 아니면 이 배에 아무도 없다는 겁니까?”

     “둘 다죠.”

     아스타시아는 한 손으로 비어있는 하늘을 가리켰다.

     “비행선을 따라다니는 비룡기사단도 없고, 비행선에 숨어있는 그림자도 없죠. 이렇게…순수한 의미에서, 그레이 당신과 둘이 이렇게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는 누구도 없다.

     그 어떤 이들의 시선도 없고, 우리를 보는 이들은 어디에도 없다.

     “그레이, 그러면….”

     “키스 이상의 걸 바라는 겁니까?”

     “…그레이는 어때요?”

     “저야, 언제나 그렇죠.”

     “…그러면, 우리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아스타시아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가슴을 향해 손을 올리는 순간.

     “…아.”

     표정을 굳히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스트럼, 이 미친.”

     “…그러게 말입니다.”

     지브롤터의 저주든.

     노스트럼의 저주든.

     “끔찍하군요.”

     황금의 마갑을 두른 비룡을 탄 황금의 기사가, 우리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컨디션 문제로 내일은

    1편 혹은 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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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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