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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6

    자유 도시 연합, 지하 깊숙한 곳.

    어둠이 짙게 깔린 그곳에는 숙주를 잃은 오브젝트 의체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있었다. 

    마치 손가락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거미처럼 생긴 그것들은 도시 곳곳에 의도적으로 뚫린 복잡한 통로를 통해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 통로의 종착지에는 거대한 원통형 오브젝트 수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수조는 연합 도시 면적만큼 어마어마한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상당히 깊은 수조였지만, 그 넓이 때문에 팬케이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격’도 높았는데, 거의 ‘달’에 필적할 만한 수준이었다.

    수조 안에는 인간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길쭉하고 수많은 마디를 가진 손가락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손가락 내부에는 투명한 낭포 같은 것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인간의 태아 같은 것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추악한 모습이 바로, 수조로 들어간 의체들의 말로였다.

    수조 주변에는 인간은 결코 들을 수 없는 의지들이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기회를 잡았어야 했는데….’

    ‘도시 연합의 전설이 될 거야.’

    ‘아직은 죽을 수 없어.’

    죽은 자의 한탄 같은 후회부터.

    ‘인간, 인간을 먹어야 해.’

    ‘아직도 목소리가 들려, 더 먹어야 해. 더!’

    스캐빈저의 광기 어린 중얼거림까지 다양했다.

    그런 수조 위로는 가끔 영롱하게 빛나는 황금 덩어리들이 떨어지곤 했다.

    그때마다 손가락 지렁이들은 마치 떡밥에 몰려드는 붕어 떼처럼, 혹은 숙주의 근육을 파고드는 기생충처럼 황금을 향해 몰려들어 파먹었다.

    지렁이들은 자신에게는 없는 기쁨과 호의, 따뜻함이 담긴 황금을 탐했지만, 그것은 결코 채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 수조에는 확연히 크고 길쭉한 손가락 지렁이가 수조 전체를 빙글빙글 돌며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손가락들은 마치 빛나는 황금과 칙칙한 금속으로 이뤄진 전선과 융합한 것 같은 끔찍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거대 손가락 지렁이 위에는 각각 하나씩 모니터가 달려 있었는데, 그 모니터에서는 붉은빛이 깜빡이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습격 실패.][습격 실패.][습격 실패.]

    모니터의 붉은 빛은 마치 경고음처럼 강렬하게 반짝였다.

    그 모습은 충격적인 사실을 전파하는 것 같았다.

    그 빛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며, 공간을 더욱 음산하고 불길하게 만들었다.

    모니터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변화했다. 

    [새로운 작전이 필요함.]

    그것은 마치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떨 때는 인간이 흔히 하는 혼잣말이나 생각처럼 보이기도 했다.

    [목표 확보 난이도를 특급으로 상향.]

    메시지의 빛은 점점 질척질척한 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목표에 걸맞은 작전 구상 중.]

    작전을 구상한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모니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자의 나열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세희 연구소.

    나와 티라노를 싣고 구름 고래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의 가장 소중한 티라노의 모습은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멋들어진 금속으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 모습은 제임스가 만들어 준 것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원래 제임스의 설계대로라면 티라노가 갑옷을 입은 모습이었겠지만, 지금의 야광 티라노는 뼛속까지 갑옷과 완벽하게 융합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설계대로 갑옷을 입혀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화려한 안장을 얹은 볼품없는 당나귀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야광 티라노는 순수하게 내 상상력으로만 만들어져서 그런지, 가까이서 보면 조금 디테일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헤일로를 사용하여 갑옷을 입은 티라노를 완벽한 메카 티라노로 재탄생시켰다.

    ‘후후, 멋있어.’

    그 결과 정말 멋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티라노를 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 부족한 상상력을 제임스의 갑옷이 채워줘서, 두 배는 더 멋있는 메카 티라노가 완성되어 버렸다.

    게다가 ‘격’도 상당히 강해져서, 특급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오브젝트 수준은 도달해 있었다.

    그렇게 구름 고래 위에서 메카 티라노를 하염없이 구경하기를 몇 분.

    나는 어느새 자유 도시 연합 근처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자유 도시 연합에 가까워질수록, 공기 중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해로운 냄새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와, 정말 심각하네.’

    여기에 도착하고 나니, 미니 사신들이 함께 오기를 꺼렸던 것이 이해가 갔다.

    머리카락 속에 붙어있는 한두 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도망쳐 버릴 만한 악취였다.

    그럼, 이 도시에 계속 남아있는 미니 사신은 얼마나 인내심이 강한 걸까?

    나는 천천히 구름 고래의 고도를 낮춰서, 자유 도시 연합 외곽에 내려설 수 있었다.

    ‘가자!’

    그리고 나는 메카 티라노를 타고 당당하게 자유 도시 연합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오염으로 가득한 공기.

    오브젝트를 활용해서 만든 특이하게 생긴 자동차.

    삼두육비의 아수라도 군중 속에 손쉽게 섞일 만큼 다양하게 생긴 사람들.

    그래서 그런지 도시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

    내가 유령화를 풀고 서울 한복판에 나타났을 때처럼 호들갑을 떨거나.

    아니면 해로운 오브젝트가 가득한 도시이니만큼, 나를 향한 습격이 있을 줄 알았는데….

    습격은커녕, 특별한 반응도 보이질 않고 있었다.

    오히려 멋진 메카 티라노에 올라탄 나의 모습을 보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구가하고 있었다.

    “회색 사신. 도시 몇 개나 괴멸시킨 특급 오브젝트야! 조심해.”

    “자극하면 안 돼!”

    “용병으로는 무리야. 가문 사람들을 불러!”

    중국어라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감탄을 하는 거겠지.

    느껴지는 것도 공포와 경외 같은 감정들이 가득했다.

    다들 티라노를 존중하고 있었다.

    히히, 세계 어느 곳이라도 티라노는 존중받을 만하지.

    자동차는 경적도 울리지 않고, 느릿한 속도로 엄숙하게 주변을 지나가고 있었다.

    행인들 역시 평소처럼 걸어갔다.

    마치 내가 티라노사우루스를 타고 다니는 게 당연한 일인 양 말이다.

    이 도시는 끔찍한 냄새가 나는 데다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내가 지내기에는 편할것 같네.

    히히.

    ***

    자유 도시 연합, 청 일행의 아지트.

    “PIG 아저씨는 안타깝게도 도착했을 때는 이미….”

    청은 과장되게 침통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건 아저씨의 유품이야.”

    청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PIG 아저씨에게 주문했던 외골격을 꺼내 들었다.

    오브젝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청 전용’의 외골격이었다.

    다리의 하중을 대신 들어주고, 어깨까지 올라와 총기의 반동까지 잡아주는 편리한 외골격이었다.

    자유 도시 연합의 용병들은 외골격을 쓰느니, 오브젝트로 근육과 뼈를 강화하겠지만, 오브젝트를 사용하지 않는 청에게는 꼭 필요한 도구였다.

    “흑흑. 외골격은 잘 쓸게요.”

    청이 우스꽝스럽게 훌쩍거리자, 머리 위의 주황 사신도 슬픈 박자로 둠칫거리기 시작했다.

    담배를 물고 있던 여자 역시 과장된 동작으로 그 행위에 동참했다. 

    “흑흑.” 

    한편, 팔이 4개 달린 남자는 그들의 행태를 ‘도대체 뭔 개짓거리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가 팔꿈치로 힘을 실어 그를 찌르자, 어쩔 수 없이 따라서 ‘흑흑’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안 죽었어!”

    그런 장난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아지트 구석에 앉아있던 낯선 사람이 불퉁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달팽이 의체와 PIG라는 아이디를 쓰던 여자였다.

    그 목소리에 청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달팽이 의체 PIG 아저씨는 그때 죽었어요.”

    그리고 표정을 진지하게 바꾼 청이 이어서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왜 그 꼴로 다니던 거예요?”

    PIG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그래. 몸을 의탁하는 건데, 당연히 설명해 줘야겠지.”

    그러고는 그간의 사정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껄렁거리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원격조종 로봇으로 사람들을 만나왔다는 이야기부터.

    오브젝트 저항성이 너무 낮아서, 오브젝트를 조금만 접합해도 붉은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사실까지.

    PIG는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위장과 폐, 피부 정도만 오브젝트라고 설명했다.

    PIG의 사정을 듣고 난 후, 청은 히히 웃으며 근처에 앉아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하필 그런 형태의 달팽이 로봇을 쓴 거예요?”

    “? 내 취향인데?” 

    PIG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자, 청은 웃음을 멈추고 굳은 채로 조금 멀찍이 물러나 앉았다. 

    ***

    ‘평화롭네.’

    청은 멍하니 앉아서 주황 사신을 끌어안고, 일행들이 떠드는 모양새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PIG 아저씨에서 PIG 언니가 되어버렸지만, 다행히도 일행과 잘 섞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정신 나갔다고 매번 그랬어도 의뢰는 곧잘 같이했으니까, 그런 건가?

    게다가 청 자신도 달팽이 의체를 벗어버린 PIG 언니는 몇 배로 더 친근하게 느껴졌으니.

    다른 사람도 그런 거겠지.

    청은 ‘역시 그 달팽이가 문제였어.’라고 생각하며, 주황 사신의 볼을 잡고 대신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 순간, 아지트에 마련된 컴퓨터에서 ‘삐-‘하는 날카로운 신호음이 울려 퍼졌다.

    “의뢰?”

    그 소리를 들은 남자가 의아해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컴퓨터로 의뢰를 살펴본 남자는 표정이 굳어진 채로 청에게 다가와 말했다. 

    “청, 이건 직접 확인해 봐.”

    “?” 

    청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뢰 내용을 확인했다.

    그러자 청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이번 의뢰는 명백히 ‘청’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의뢰 내용은 기밀이라 직접 만나서 알려준다고 적혀 있었고, 보상은 의뢰 수락 즉시 선불로 지급한다고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보상은 다름 아닌 청이 그토록 되찾고 싶어 했던 부모님의 유품이었다.

    의뢰인의 이름을 보자 청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자유 도시 연합 용병들의 왕, 거신.

    그리고 사전 미팅 장소는 도시 중앙에 우뚝 솟은 ‘중앙탑’이었다.

    이 의뢰는 분명 평범하지 않았다.

    청을 직접 지목한 것도 그렇고, 보상으로 제시된 유품의 존재도 석연치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유품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청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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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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