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76

    <276 – 좋지 않은 웃음>

     

    놀라지는 않았다.

    NPC들이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리프가 왜 에이프릴이랑 자쿠를 죽이려고 해요?”

    “…아가씨. 오랜만에 뵙는 자리에서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려 송구합니다. 하오나.”

    “변명은 거기까지 해요.”

     

    두 사람을 지나쳐서 앞을 막듯이 서니 리프의 동공이 거칠게 떨렸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재단의 지령은 절대적. 이행되지 않는 지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오늘 처음으로 예외를 둬야겠네요! 저는 리프와 조나가 보고 싶다고 했지, 리프가 에이프릴과 싸우길 바란 적은 없는걸요.”

    “재단은 암살메이드인 저를 파견했습니다. 제가 지령을 수행하지 못하면 다음은 저보다도 위험한 사람을 파견할 겁니다.”

    “괜찮아요.”

     

    실력에 자신감도 있지만 그 외에도 자신감을 주는 요소가 있다.

     

    “저는 파파의 딸이니까요!”

     

    재단의 이사장.

    아카데미와 쌍벽을 이루는 이번 회차만의 강력한 비밀조직의 수장.

     

    “아가씨는 그분의 위험성을 모르십니다.”

    “아뇨. 충분히 알아요.”

     

    지금까지는 줄곧 신경을 껐다.

    이벤트 순서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기말고사도 코앞이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바로 다음 주부터는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언제까지고 남의 일처럼 외면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사장은 내가 아는 회차에서 어떤 NPC에 대응되는 존재일지.

    고정요소와 가변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운빨로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지만 주역으로 등장하는 빌런들은 핵심인물일수록 강력한 고정요소를 지닌다.

    조직의 이름이 달라져도, 얼굴과 외모가 달라져도, 어쩌면 성별이 달라지더라도.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최악의 빌런이 셋 있다.

    이들은 아카데미 내부에 챕터보스가 있듯이, 아카데미 외부에서의 환경을 격변시키는 챕터보스보다 큰 범위의 시즌보스 역할을 수행한다.

     

    신성중앙제국의 혁명가.

    만신의 대리인.

    결사의 총수.

     

    모두 국가 규모의 지역이벤트를 앞당기거나 직접 발생시키는 원흉들이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영향력은 전 대륙에 영향을 미치는 이 삼대거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재단의 이사장인 파파 또한 분명 혁명가나 만신의 대리인, 결사총수 셋 중에 한 사람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추정되는 상황!

     

    ‘보통 시즌보스는 적대관계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번 회차는 특별해.’

     

    세계구급으로 깽판 치는 삼대거악의 세력이 아니고서야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이 세계에서의 영향력은 이해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정보부족으로 셋중 어느 쪽이라도 될 수 있는 상황.

    그렇지만 세 거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멋진 악역은 신념을 지키는 악역!’

     

    약속은 내다버리고, 원칙은 존재하지 않고, 지켜야 할 자신만의 선이라 부를만한 자기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이딴 게 시즌보스? 싶은 쓰레기는 아니다.

     

    “리프는 절 너무 어린애 취급해요. 저도 메이드의 목숨 정도는 제 맘대로 고를 힘이 있다구요~!”

    “…못 보던 사이에 아가씨께서 많이 달라지셨군요. 이런 것도 성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키는 전혀 안 컸지만요!”

     

    그래도 리프에게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두 사람 다 따라와요. 제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멋대로 캣파이팅을 하는 꼴은 용납할 수 없으니까요. 모처럼의 귀여운 꼬리인데 아껴줘야죠!”

    “…재단 사람들의 꼬리를 향한 집착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에이프릴이 어정쩡한 자세로 다리를 오므리며 쭈뼛쭈뼛 따라왔다.

     

    “뭐해요? 안 따라오고.”

    “…나도 따라가도 되는 거냐?”

    “관계자니 같이 다니는 게 당연하잖아요. 자쿠도 프라이머도.”

     

    나무 위에서 쿵 하고 사람 하나가 떨어졌다.

    들켰다는 생각에 놀란 나머지 엉덩이부터 자빠진 프라이머였다.

     

    “일으켜주기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죠?”

    “가, 갈 수 있어! 내 발로 갈 수 있어!!”

     

    모두를 데리고 향한 곳은 통신실.

    전화를 거는 곳은 당연히 와이히엠하이 재단이었다.

     

    “와이히엠하이 재단 이사장 비서실입니다. 용무가 있으면 남겨주십시오.”

    “안녕하세요! 오늘도 파파의 딸인 오크노디가 전화 드렸는데요. 제 메이드를 멋대로 처분하라고 해도 곤란하거든요?”

    “…딱 한 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메이드를 처분하십시오. 그 편이 반드시 오크노디 아가씨께서 가장 손해를 덜 보는 길입니다.”

     

    모지?

    비서실장이 말대꾸?

     

    “됐으니까 파파랑 통화하게 해주세요!”

    “저는 분명 경고해드렸습니다.”

     

    비서실장은 무거운 한숨과 함께 수화기를 내렸다.

     

     

    * *

     

     

    와이히엠하이 재단 이사장실.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세계전도의 북부 마족점령지대를 훑던 이사장의 손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대지 주변에서 멈추었다.

    면적이 적었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다섯 배는 더.

     

    “마계에 숨어든 배신자의 암살은 아쉽게도 실패로 끝났군요.”

    “아직 아카데미에 발각되지는 않은 정보입니다. 일을 저지른 저희 장학생 마그도나르도에게도 단순한 연습사고로 판단되어 아직 강도 높은 페널티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뭐어, 이것만으로도 이득입니다. 세상에는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생명체도 있으니까요.”

     

    지도의 설정을 전환하자 대륙각지의 온도가 수치로 떠올랐다.

    숲이 있는 곳 중심으로 불바다마냥 잔뜩 올라간 온도들은 화염초나 화염넝쿨처럼 식물형 몬스터들이 속출한다는 뜻.

    아카데미 측에서 정령계로 새어버린 상위계층 화염마법에 단단히 빡친 정령들을 제대로 달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증거였다.

    매달 최소 한 번.

    월례행사처럼 일어나는 아카데미직송으로 전 세계에 배달되는 세계혼란은 이제 우스갯거리도 못 된다.

     

    “수계마법사와 빙계마법사를 고용하여 아지트와 시설, 물자를 지키시겠습니까?”

    “함정입니다.”

     

    이사장의 얼굴에는 친절하고도 인자한 미소가 지어졌다.

    젊음과 식견을 고루 지닌 미남자의 미소는 남자조차도 매력적으로 느낄 법했지만 비서실장은 보기만 해도 가슴에 칼 하나가 박히는 서늘함을 느꼈다.

    이사장의 웃음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게 언제나 웃는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더욱 더.

    그는 언제나 위험한 사람이니까.

     

    “대륙전도를 제 손 안에 쥐고 내다볼 수 있는 정보력의 소유자를 추려내려는 작업입니다. 드래곤 교장의 음흉함은 역시 알아줘야겠군요. 후후. 적이지만 참 재밌는 상대입니다.”

    “…제 생각이 짧았던 점 면목이 없습니다. 이사장님의 식견은 언제 느껴도 존경스럽습니다.”

    “비서실장이라면 제 조언을 토대로 어떤 책략을 세우시겠습니까?”

     

    이것은 시험이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며 조롱하는 이사장이 그를 장난감으로 삼았다는 증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장난감의 취급은 험악해진다.

    애정이 없는 장난감은 팔을 쥐고 함부로 흔들어도 되고, 팔이 빠지면 대충 끼워 맞추며 가지고 놀다가 새로운 장난감과 바꿔치울 수도 있다.

    생각 한 번, 말 한 번도 신중해야 한다.

     

    “…이 정보를 제국의 <혁명가>에게 흘리겠습니다.”

     

    오답은 아니라는 건지 이사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을 얻은 비서실장은 마저 입을 열었다.

     

    “혁명가도 삼대거악의 일원으로써 우리들의 주적이 제국과 신뿐만이 아닌 아카데미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 겁니다. 대놓고 빙계마법사를 중용하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겠죠. 하지만 이 정보를 적극적으로 혁명의 단초로 써먹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역으로 화계마법사를 중용할 겁니다. 대륙에 화마의 기운이 강성해지는 이 때, 화계마법사의 강함은 극에 달합니다. 구제가 아닌 파괴에 써먹기 좋겠죠.”

    “그럴 바에야 파괴에 미친 만신의 대리인에게 정보를 파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혁명가도 결국은 혁명자금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흘린 정보를 만신의 대리인에게 판매할 겁니다. 만신의 대리인이라면 아카데미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과감히 수계, 빙계마법사를 쓰겠죠.”

     

    이사장이 돌아섰다.

     

    “비서실장은 훌륭한 모범생이군요. 언제나 그렇듯이 모범답안은 놓치지 않습니다.”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사장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는 뜻에 비서실장은 위축이 되었다.

    저 악마적인 사내의 마음을 충족시킬 아이디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전달을 깜빡했군요. 아카데미의 오크노디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라면 조금은 덜 화를 내지 않을까.

    작은 기대와 함께 비서실장은 오크노디에게 들은 내용을 전달하였다.

     

    “아이들은 욕심이 많지요. 손에 쥐어진 것은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그런 동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이 남자가 무슨 바람이 들어서 사람 듣기 좋은 훈훈한 소리를 하는 걸까.

    좋은 의도는 아니다.

    비서실장은 속으로 확신했다.

    그의 추측이 옳았음은 곧이어 드러났다.

     

    “허가해주십시오.”

    “…!”

    “보고 싶지 않습니까? 양 손 가득 과자를 든 아이가 더는 제 손으로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과자를 지니면 무엇부터 내던지게 될지.”

     

    이사장은 언제나 그렇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하십시오. 다음 주, 기말고사가 끝난 뒤에 여름방학에 재단을 방문하는 아이들과 메이드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줄 예정이라고. 친구는 가급적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데려오라고 말입니다. 후후후.”

     

    정말로 좋지 않은 웃음이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