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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7

       [root@Le’Cuiness:~# 훌륭합니다. 여태 만들어 본 객체 중에 당신 같은 존재는 없었어요.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여신은 아주 흡족해하며 몇 줄에 걸쳐 칭찬하는 채팅을 적었다.

       

       무엇 때문에 여신이나 되는 존재가 나에게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태도는 곧 로테를 살려주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종교적인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래. 기도가 통한 셈이다.

       

       [root@Le’Cuiness:~# 하지만 룰 때문에 최소한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대가 말입니까?”

       

       [root@Le’Cuiness:~# 네. 그 소녀를 소생하는 과정에서 코스트가 들어요.]

       

       [root@Le’Cuiness:~# 이 코스트를 지불하지 않으면 나중 가서 코드가 엄청 번잡해지거든요. 흔히 스파게티 코드라고 부르는데. 저는 그런 거, 되게 싫어합니다.]

       

       여신은 그러면서 각 소원에 대한 대가가 어떻게 지불되었는지를 알려주었다.

       

       많은 경우엔 수명을 빼앗긴다고 한다. 가장 간단하고도 명료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부자라면 재산을 몰수당하는 경우도 있고, 유명 인사라면 명예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역사에서 공백이 조금씩 있었다고, 여신은 말했다.

       

       [root@Le’Cuiness:~# 극단적인 예로 이런 경우도 있어요. 만약 죽은 사람인데, 내가 정말 살리고 싶다. 그러면 다른 세계로 보내거나, 아니면 정령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거든요?]

       

       “죽으면 못 살린다면서요.”

       

       시큐엘에게 그렇게 들었는데.

       

       [root@Le’Cuiness:~# 통상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나름 방법이 있는데…….]

       

       여신이 그 사례를 말해주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왜 죽은 사람은 여신의 권능으로도 못 살린다는 얘기가 나오는지 납득이 간다.

       

       [root@Le’Cuiness:~# 아무튼, 이건 당신과는 관련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서로 시간이 없으니 본론을 꺼내 봅시다.]

       

       올 것이 왔다.

       

       나는 샘물에 닿은 살갗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root@Le’Cuiness:~# 규율은 절대적이에요. 친구의 소생을 원하신다면 저는 당신에게 시한부 조건을 걸 겁니다. 이것을 따를지 말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날 위해서 몸을 날릴 줄 아는 아이를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다.

       

       로테가 죽는다면 마왕을 쓰러뜨려도 쓰러뜨린 게 아니다. 아마 영영 고통에 몸부림치겠지. 그런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다.

       

       여신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답변했다.

       

       [root@Le’Cuiness:~# 좋습니다. 당신은 여길 나가는 순간부터 삶에 1년의 제약이 걸릴 겁입니다.]

       

       1년이라.

       

       “알겠습니다.”

       

       [root@Le’Cuiness:~# 마왕을 쓰러뜨릴 때까지 충분한 시간인지요.]

       

       “충분합니다.”

       

       흑주의 완성까지.

       

       그리고, 이 세계와 작별인사를 하는 것까지. 전부 끝내고도 남을 시간이다.

       

       [root@Le’Cuiness:~# 죽음을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한부는 비유적인 의미이고, 이 세계에 더는 남지 못하게 되는 것뿐이니까요.]

       

       [root@Le’Cuiness:~# 어차피 하늘 아래에 두 명의 동일인이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죠. 이게 다 데이터 절약을 위한 일이니 양해해 주시길 바랄게요.]

       

       데이터 절약이라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샘터에서 일어났다.

       

       “배려 감사합니다.”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점에 감사할 따름이다.

       

       다만, 1년이 지나면 로테를 포함한 모두와 영영 만날 수 없게 되겠지.

       

       씁쓸한 일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원래의 나는 이 대륙이 미친 듯이 싫어서 떠나고 싶어했던 몸인데.

       

       지금 와서 1년만 지나면 지구로 귀환할 수 있다고 하잖나. 따지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안이었다.

       

       [root@Le’Cuiness:~# 그러면, 건투를 빌겠습니다.]

       

       파앗.

       

       그 메시지를 끝으로, 통신은 중단되었다.

       

       “…끝났어요, 동생.”

       

       숨죽여 대화를 지켜보던 앨리스가 조심스레 나타나 말을 걸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선 걱정과 애한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래, 끝났네.”

       

       끝나가고 있다.

       

       이 여정이.

       

       천천히, 현기증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샘물에서 나왔다.

       

       “…윽.”

        

       몸이 쑤시지 않은 곳이 없었다.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목은 뻣뻣하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

       

       “……!”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에, 입을 막고 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쿨럭.”

       

       손바닥이 검붉은 피로 한가득이었다.

       

       “…시작이구나.”

       

       여신 르퀴네스와의 계약.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8760시간 뒤,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

       

       

       옷을 차려입고 세계수 바깥으로 나오니 버멜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들어갔다 왔구나.”

       “…….”

       “왜 말이 없어?”

       

       24시간이나 얼굴을 안 비추었으니 들키는 건 당연한가.

       

       버멜은 어딘가 퀭한 얼굴이었다. 꼭 하룻밤을 지새운 직장인 같았다.

       

       내가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여기서 얼마나 기다렸냐?”

       “지금 그게 중요해?”

       “해야 할 일도 많은 녀석이 여기서 오래 기다리면 안 될 일이지.”

       

       버멜이 피식 웃으며 답을 내놓는다.

       

       “22시간.”

       “지랄하지 말고.”

       “…….”

       “…진짜?”

       

       이 새끼가 뭘 잘못 처먹었나.

       

       “기한은 1년, 맞지.”

       “아닌데?”

       “아니긴 뭘 아니야.”

       “여신 상대로 입 좀 잘 털었지. 수명을 대가로 받진 않았어.”

       

       나는 가슴을 쫙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아픈 내색 없이 평소대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멜은 의심의 싹을 거두지 않았다.

       

       새끼, 의심하는 거 보면 마왕 저리가라 할 정도다.

       

       “정령에게 물어보는 수 있어.”

       “물어보든지 말든지.”

       

       나는 태연함을 가장했다.

       

       앨리스나 시큐엘 등 다른 정령에게 미리 말을 해 두었기 때문에, 그들이 버멜에게 사실을 고하는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다.

       

       그리 생각했다.

       

       “정령들은 거짓말을 절대로 못해. 좋게 얘기할 때 스스로 말하는 게 이로울 거야.”

       “…….”

       

       아 맞다.

       

       속으로는 크게 당황했지만, 일단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한다. 포커페이스는 내 나름의 특기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버멜은 나를 쳐다보는 대신 고개를 슬쩍 올렸다. 그곳에는 입술을 자근거리고 있는 앨리스가 있었다.

       

       “전계의 정령왕이시여.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선에서 대답해 드리죠.”

       

       버멜의 말은 굉장히 직설적이었다.

       

       “에테르가 1년 후에 이 세상에서 사라집니까?”

       “…….”

       

       앨리스는 대놓고 긍정하는 대신 묵비권을 행사했다.

       

       “죄송하지만 그 건에 대해선 답변드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하아.”

       

       진짜 이 빡대가리 언니.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아닌가, 이건 내 잘못인가.

       

       한숨을 쉬며 손을 내저었다.

       

       “깊게 생각할 거 없고, 지금 중요한 건 두 가지뿐이야.”

       

       하나는 로테를 만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한시간 내 흑주를 완성하는 것이다.

       

       특히 후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타임어택인 상황이다.

       

       마왕이 침공할 때까지 내가 흑주를 완성하지 못하면 세상은 마왕군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정령들은 모조리 참수당하고, 여신은 아렌스 대륙에 대한 주도권을 잃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황은 그녀가 이 세상이라는 디렉토리를 전부 지워버리는 명령어를 입력하는 것이고.

       

       반대로, 내가 흑주를 완성할 때까지 이곳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마왕군의 패배다.

       

       마왕은 내 마도에 죽게 될 것이고, 그의 편에 섰던 놈들은 줄줄이 목이 날아갈 것이다.

       

       세상엔 평화가 찾아오겠지만, 마왕 사후에도 살아있을 전범들의 말로는 결코 좋지 못하겠지.

       

       당연히 전자보다는 후자가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다 못해 마왕군 중에서 괜찮고 온순한 애들은 살릴 수라도 있지, 전자는 압도적인 배드 엔딩 확정이다.

       

       “버멜, 날 신경 쓸 시간 있으면 연구단 꾸리는 거나 좀 도와줘.”

       “연구단?”

       “흑주를 완성해야 할 거 아니야.”

       

       혼자서 연구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제한시간은 1년. 그 안에 완성하기 위해선 나 외에도 여러 천재와 수재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내 신원 보증을 서 줘. 연구 인력이랑 예산을 모을 수만 있다면 반 년 안에 실험을 진행할 수 있어.”

       

       실제로 혼자서 계획했던 것도 8개월에서 2년 사이다. 지금은 흑주까지 앞으로 몇 걸음만 남은 상황인 것이다.

       

       재료, 예산, 시간과 노동력. 이 네 가지만 맞아 떨어진다면 3개월 내로도 못할 건 없다.

       

       “알겠어. 힘 닫는 데까진 해볼 테니까.”

       

       버멜이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미리 죽지나 마라.”

       “너보단 오래 살 듯.”

       

       그렇게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세계수 입구에서 시큐엘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더니 다시 들어갔다.

       

       틀림없이 이리로 와 보라는 뜻이리라.

       

       “…잠깐 들어가 볼게.”

       

       버멜에게 그리 말한 뒤 시큐엘을 따라 세계수의 심부까지 들어갔다.

       

       “제단 위로 올라가 보세요.”

       

       제단 위쪽에는 꽃으로 장식된 유리관이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는 계단을 밟았다.

       

       유리관 내부에는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여자아이가 한 명.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의 혈색과 가슴팍을 살폈다.

       

       혈색은 멀쩡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고, 짚이는 맥도 정상적이었다. 가슴팍에 뚫려 있었던 무수한 구멍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진 뒤였다.

       

       그야말로, 기적.

       

       여신이 기적을 내린 것이다.

       

       “……으.”

       

       내가 다가서자마자 소녀의 눈꺼풀이 스르르 올라갔다. 조만간 침음을 흘려대던 그녀가 내 쪽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에테르…?”

       

       그녀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갑자기 일어나서 신음을 낼 법도 한데, 전혀 아픈 기색이 없었다. 나는 안도하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며칠 되지 않았는데, 정말로 오랜만에 만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서 웃어야 하나? 아니면 울어야 하나.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를 쳐다 본 로테의 얼굴이 점차 경악과 당황으로 물들어갔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그 즉시 발걸음을 멈추었고.

       

       다음 순간. 로테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갑자기 글썽이기 시작하는 로테.

       

       유리관을 걸어 나오려던 그녀가 제자리에서 털썩 무너져 내렸다.

       

       “왜, 왜 너까지 죽었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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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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