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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7

       이겼다! 이야기 끝!

        

       하고, 소설 속에서처럼 뒷이야기가 몇 줄 정도로 그냥 요약되고 끝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인생사가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흘러간다면 세상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여신은 그런 복잡한 세상을 혐오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질서를 확립하여, 심플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고자 했던 걸지도. 막상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상황에 놓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전투 직후 그 장소를 정리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이곳에서 제대로 깨어있는 사람 중 법국의 사람은 소피아 단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그 소피아마저 당장은 본인이 법국 소속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국적 자체는 벨부르 사람으로 되어있으니까. 법국에서 심은 스파이라고는 하지만, 문제는 법국의 높으신 분들이 죄다 여신 곁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정말로 여신 곁으로 떠날 수 있었을까? 떠나는 와중에 내가 그 길을 와르르 무너뜨려 버린 것은 아닐까?

        

       뭐, 그거야 죽은 사람들만 알 이야기이니 일단은 접어두기로 하고.

        

       교황은 죽었다. 당연히 그 교황을 보호하던 법국의 기사들도 거의 다 죽었고, 살아있는 이들조차 제정신을 차린 이가 없었다. 죄다 성당 앞에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얼마나 싱거운 최후인가. 내부에 첩자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고작 그것 하나로 이렇게 무너지는 것 자체가— 아, 그래, 그것도 여신이 깔아둔 길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어쨌거나 여신의 계획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황제가 여신의 지보를 여기까지 가지고 와야 했으니까.

        

       법국 기사의 능력은 여신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힘을 가진 이의 숫자도, 그 힘의 강함도, 여신에 의해 통제되었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과정을 거쳐 황제가 이곳까지 가지고 온 것은, 빈 공간을 여신이 직접 만들어 메운 것이었다. 미래의 황제가 보냈다고 생각된 ‘가짜 앨리스’는, 사실 미래 황제가 보낸 것이 아닌 여신이 보낸 존재였으니까. 아니, 애초에 미래의 황제 따위 없었다. 처음부터 여신이 황제를 속일 생각으로 그럴듯하게 꾸며 만들어낸 존재가 가짜 앨리스였다.

        

       사람의 의지는 수백 년을 갈 수 없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인간이라도 육체는 늙어간다. 그리고 그가 죽어서 남긴 사상은 시간이 흐르며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질수록 변질되고, 그 의미를 잃어가는 법이다. 그의 후손인 황제가 팬그리폰의 유지를 이을 생각이 없었듯이.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계속 존재하는 여신은 다르다.

        

       수백 년이건 수천 년이건, 본인이 생각한 의지에 따라 그 계획을 착실하게 실행해나갈 능력이 여신에게는 있다. 애초에 억겁의 시간을 사는 존재라면 그 기나긴 시간을 인지하는 방식조차 우리와 다를 거다.

        

       지금도 어쩌면 새로운 계획을 짜고 있을지도 모르고, 벌써 실행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부디 이번에 그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고 싶다면, 다음에는 나 말고 조금 더 고귀한 인물을 골라야 할 거다.

        

       뭐, 게임을 그렇게 파고드는 씹덕 중에서 성격이 유별나지 않은 인간을 고르는 것 자체가 더 어렵겠지만.

        

       이용하기 좋아 보이는 사회성 나쁜 인간을 고른 것 같다만, 애초에 친구도 몇 명 없는 나 같은 사람을 골라서 대체 뭘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여신도 친구가 없나?

        

       아마 없으니 친구가 얼마 없던 인간이 친구가 생겼을 때 그 친구들한테 얼마나 집착할지도 몰랐겠지.

        

       *

        

       “그러니까…… 이건 내가 아니라는 거지?”

        

       앨리스가 다시 한번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계 자체를 해체할 수는 없었다. ‘지보’로 분류되던 그 마지막 한 조각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품들은 죄다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방식으로 얽혀있어서 도저히 어떻게 빼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가 꺼낼 수 있었던 존재는, 안에 있던 가짜 앨리스였다.

        

       지보를 빼내고 난 공간은 아슬아슬하게 사람 하나가 구겨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 자체는 생각보다 훨씬 좁아서, 종종 기록화에 그려지곤 하는 그 우람한 체구의 ‘팬그리폰’이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긴, 그 설화 속에서도 팬그리폰은 애초에 기형이라고 몇 번이나 나왔지. 그저 육체적인 능력뿐만이 아니라 특유의 카리스마와 기지를 발휘하여 버려진 존재이면서도 그리폰의 지도자가 된 존재.

        

       끝끝내 여신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여신에 대항하고자 했던 존재.

        

       어떤 의미에선, 황제가 자기 스스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신의 능력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외부에서 시계태엽을 돌리는 것처럼, 세상의 위치를 원상복구 하는 것. 하늘의 별의 위치도, 모래알 하나하나도, 전부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는 것이다. 시간 자체를 돌리는 것이 아니었으니, ‘시간여행’ 같은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사람의 기억을 완전히 지우는 것도 불가능했던 것 같고.

        

       아까부터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수상했다. 특히 나와 여러모로 자주 얽혔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런 분위기가 더 심했다.

        

       어쩌면, 여신이 그동안 숨겨두었던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지 모르지.

        

       ……당장 내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앨리스가 나를 보는 시선마저 평소와 미묘하게 달랐다.

        

       좋아, 일단은 모른 척하자.

        

       전력으로 모른 척해서 시간이 지나 그 기억들이 데자뷰 비슷한 것으로 느껴질 때까지.

        

       “미래의 존재를 보내는 방법이 없으니, 애초에 이 세상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그저 ‘다른’ 존재여야 합니다. 그러니 이 존재도 황녀님일 수는 없죠.”

        

       “…….”

        

       자신을 황녀님이라고 부르는 나를 흘겨보긴 했지만, 앨리스는 이번만큼은 굳이 거기 토를 달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너를 공격하는 건 자제했고.”

        

       “그렇게 행동했어야 눈치채야 할 존재들이 눈치챌 테니까요.”

        

       앨리스 본인부터, 나나 황제까지.

        

       실제로도 속았고.

        

       “그러니까…… 그런 말이야? 내 경험이나 기억을 어설프게 흉내 낸 존재라고?”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대답에 앨리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우리가 바닥에 눕혀둔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딱딱한 맨바닥에 눕히는 것이 조금 그래서, 바닥에 내가 입고 있던 코트를 깔고 그 위에 눕혀두었다. 안 그래도 착용하고 있는 외골격 슈트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뒤라 벗어야 할 정도였으니 겸사겸사.

        

       가짜 앨리스의 상태는 심각했다.

        

       지보 부품이 배 속에 있었다고 했었나.

        

       피를 전부 다 흘려버린 듯 비어져 나온 내장에 혈색이 없어서, 조금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사이사이 박혀있는 작은 톱니바퀴 같은 부품들을 보면 당장 토가 쏠려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는데.

        

       절대로 곱게 죽지는 못한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아까 눈을 번쩍 뜨고 나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와는 다르게, 그 무표정함 속에서 미세한 미소마저 보이는 것 같다고 착각할 정도로.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그저 이용당할 처지였구나.”

        

       나의 능력을 막아서 황제의 편이라고 의심받도록 하고, 그러면서도 황제에게 반발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 앨리스라는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나타나는 곳은 철저하게 ‘황제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과 장소’…… 인정하겠다. 솔직히 속을 만했다.

        

       앨리스는 그 사실을 깨닫고 슬픔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자길 죽이려고 했던 존재였는데도.

        

       “얘가 아니었다면 내가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

        

       클레어라는 존재가 있었어도, 내가 이쪽으로 넘어온 이상 가짜 앨리스가 있건 없건 계획은 결국 실패했을 것이다. 앨리스는 지보를 이용하기에는 피가 옅었고, 나는 애초에 팬그리폰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존재였으니까.

        

       여신이 가짜 앨리스의 몸에 실어 보낸 그 부품이 지보와 하나가 되고, 여신이 이 세상에 자기 힘을 마음껏 펼칠 상황이 마련된 상태에서 내가 나에게 양도된 여신의 힘을 여신에게 반납한다. 거기까지가 여신의 계획이었으니 사실 가짜 앨리스가 없었다면 여신의 계획도 실패하긴 했겠지.

        

       여신이라면 한 발자국 물러났을 거다. 여신의 시간은 길다. 언젠가 다시 계획을 세워 또 시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황제는 자기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황제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생뿐이니까.

        

       그리고 그 상황에서 기계에 들어갈 존재는 앨리스뿐이다.

        

       “고맙다는 말은 아니야. 어쨌거나 나는 얘한테 죽을 뻔했으니까. 그래도……”

        

       앨리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굽혀 자길 빼닮은 그 존재 옆에 앉았다.

        

       “그래도, 뭔가, 이상하게 공감이 되어서.”

        

       “…….”

        

       나는 그런 앨리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는 최대한 빠르게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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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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