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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7

    “아마도, 맞을 거야.”

    “그렇군. 충분한 대답이 되었네.”

     

    역시나 그랬던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요 근래 벌어진 실종사건의 주범이라면…….

     

    과연, 역시나 그는 저 시체들을 모두 땅을 파서 얻어낸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루크는 그렇게 그 시체들의 틈바구니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높은 품질의’ 시체가 섞여 있던 이유를 알았다.

     

    직접 살아있는 인간을 납치하거나 살해해 사령술에 사용한 것인가.

    정말이지 막나가는 흑마법사가 아닐 수 없다.

     

    ‘요즘같은 시대에 그런 방식을 쓰다니…….’

     

    물론 끔찍한 일이기는 하지만, 루크에게 이건 도덕적인 문제 이전의 문제다.

     

    마법을 사용하고 현장에 남은 마력흔이나 감시카메라, 또는 사용되는 마력감지 시스템 등등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마법을 사용한 인간을 추적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경찰의 시선을 피해가며 사람을 납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흑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납치를 했을 터이니 분명 어떻게든 흑마법을 사용했을 것인데, 에이레스에선 범죄를 저지를 만 한 장소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전제로부터 현재 루크가 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측은, 그는 에이레스의 ‘뒷골목‘에서 주로 범행을 벌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근거는 과거 시에나와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긴 지금 시간에도 꽤 어둡구나.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네.’

     

    경찰인 시에나가 몰랐다.

     

    그 말은 곧, 그 뒷골목은 경찰도 잘 알지 못하는 장소였다는 뜻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수사망이 닿을 수 없었던 곳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논리적인 비약이 꽤 있기는 했지만, 원래 추측이란 것은 어느정도 비약적인 사고를 거쳐야만 한다.

    만약 아니라면 그때 가서 추측을 수정하면 될 일.

     

    ‘나중에 뒷골목의 사정에 대해 알고 있는 서드와 한번 상담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루크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루크의 질문에 답한 후의 세이어는 꽤나 즐거워 보였다.

     

    “그럼, 이제 다시 내 차례인가?”

     

    그리 말하는 그의 표정은 너무나 해맑아서, 그가 극악무도한 사령술사이자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어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 모습을 보면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파이리스도 얼른 이 사실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악당처럼 생겼다고 다들 악당이 아니고, 호인처럼 생겼다고 해서 실제로 호인인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마음가짐인 것이다.

     

    뭐어, 일전에 ‘시설’에서 있었던 사건의 경우 결과적으로 보면 파이리스가 옳기는 했지만, 그 외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정령이라 감정을 읽을 수 있는 파이리스는 그 정보를 맹신하는 탓에, 사람들을 단순히 선인과 악인으로 구별하는 편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령이라고 사람의 머릿속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선악에 대한 기준이 제멋대로다보니 생겨나는 오해다.

     

    사람은 감정과 생각, 의도와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살인의 쾌락에 빠진 인간이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감정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그게 정말 선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고, 아이가 어려운 이웃에게 맛있는 음식을 건네면서 아깝다는 감정을 느낀다고 그것이 악행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작 이 경우엔 파이에게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파이에 대한 생각을 마친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을 허락하겠다는 뜻이었다.

     

    “좋아!”

     

    세이어는 한동안 혼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흐음, 어떤 걸 물어볼까……. 어떻게 그런 가치를 손에 넣게 되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이런 곰인형을 구했는지를 물어볼까. 하하!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은 걸!”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세이어는 쉽사리 질문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고민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체들은 돌을 쥔 리브에 의해 계속해서 새로운 안식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루크는 세이어가 일으킨 시체의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를 계산하며 입을 열었다.

     

    “뭐, 고민하는 건 나야 상관이 없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다간 내게 질문할 기회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네.”

    “아차차, 그렇겠네. 그럼 안되겠지.”

     

    루크의 재촉아닌 재촉에 세이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하여 고른 질문을 건넸다.

     

     

     

    “딜런트를 죽인 거. 너지?”

     

    “…….”

     

    이번에는 루크가 침묵할 차례였다.

     

    ———

     

    “…….”

     

    루크는 입을 다물었다.

    설마하니 그런 걸 예상해낼 줄이야.

    조금 허를 찔렸달까.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타이밍에 내려앉은 침묵은 이미 충분한 대답이었다.

    계약을 끊어버린다고 해도 동일한 대답이 되겠지.

    외통수라고 할 수 있다.

     

    루크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세이어는 큭큭, 웃었다.

     

     

    “역시 그렇겠지.”

     

     

    ‘추측은 비약적인 사고를 동반해야한다.’

     

    그것은 세이어 역시 알고 있는 말이었다.

    그야, 그 또한 루크 이루시의 수많은 격언들 중에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세이어는 자신의 주장이 그렇게까지 비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0살이라고 자신을 밝힌 저 여자아이는, 나이에 전혀 맞지 않는 마법적 지식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머리가 좀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이상할 정도다.

    애초에 비약을 하지 않고는 논리가 절대로 성립되지 않는 조건이다.

     

     

    제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정도가 있는 법이니까.

     

     

    수많은 시체를 눈앞에 두고도 저렇게 태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아이는 단언컨대, 없다.

     

    그것은 똑똑함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고되고 피나는 훈련을 완벽히 해낸 군인이라고 하더라도, 막상 첫 임무에 배치되면 긴장하기 마련이다.

    시합에 나가기 위해 미친듯이 훈련한 선수도 처음 몇 분간은 긴장해서 기량을 제대로 뽐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시체를 본 아이의 반응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심드렁하기만 했다.

    마치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본 것과 다름없는 표정.

    그것은 연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만일 누군가 자신에게 그 아이가 처음에 보인 천진난만한 모습과, 자신이 흑마법사인 것을 알게 된 후에 보인 모습중에 어느 쪽이 연기를 하지 않는 것 같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일말의 지체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쪽이 훨씬 더 연기하기 어려운 영역이었으니까.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도 첫 경험에는 모두가 긴장하고 굳어버리기 일쑤인데, 하물며 변변한 경험도 없을 10살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절대로 아니다.

     

     

    분명 압도적인 경험이 있는 것이리라.

     

     

    “그런거군.”

     

    세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경황이 너무나 명확해졌다.

     

     

    ‘10살임에도 엄청난 마법적 지식과 사고력, 거기에 수준급의 연기실력과 숱한 전투경험, 특이한 외모와 인형까지…….’

     

    모든 조건을 종합해본 세이어는 어렵지않게 하나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메를린, 죽음의 인형사.

    ‘어쩌면 이 꼬마는 그 여자의 작품일지도.’

    그녀는 원래 딜런트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애초에 그와 사이가 좋았던 사람도 별로 없기는 하지만.

    어쨌든, 세이어는 만약에 딜런트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면 그녀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

     

    그렇게 세이어가 전혀 다른 인물의 이름을 떠올리며 추측을 이어나가고 있을 무렵, 루크도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딜런트를 알고 있는 흑마법사였나?’

     

    물론 딜런트는 별볼일 없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지닌 아티팩트만큼은 달랐다.

    단신으로 사이클롭스 토벌이 가능한 숲지기인 예르나가 그 아티팩트 때문에 큰 부상을 입었고, 그 아티팩트가 폭주한 영향으로 차원에 균열이 생겨 시가르마타가 현신했다.

     

    당연히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세이어는 그때 보았던 흑마법으로 제작된 드래곤하트 아티팩트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이어도 그것과 비슷한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자신은 딱히 완벽한 우위에 서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 탓에 저토록 여유를 부리고 있었던 건가?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리브 혼자만으로는 벅찰 수도 있으리라.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면 생포는 어려울수도 있겠다.

     

    루크는 마음에 여유를 조금 덜어낸 후에, 세이어를 향해 물었다.

     

    “딜런트와 넌 무슨 관계지?”

    “딜런트? 아아,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그래, 내가 상인이면 그쪽은 고객이라고 할 수 있겠네.”

     

    대답을 건넨 세이어는 안경을 고쳐올리며 씨익 웃었다.

     

    “이제 서로 대충은 사정을 알게 된 것 같은데, 그럼 이제 진심으로 해볼까.”

     

    -딱.

     

    -털썩, 털썩.

     

    세이어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직 서있던 시체들이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힘을 잃고 바닥에 몸을 처박아댔다.

     

    “……?”

     

    갑자기 공격하지도 않은 시체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자, 리브는 어찌 된 영문인지 의문을 품고서는 루크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루크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을 세이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 마법은……! 설마……. 강제희생?”

     

    강제희생.

    그것은 타인의 가치를 강제로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흑마법이었다.

     

    “정말 대단한데? 설마하니 이것까지도 알고 있을 줄은.”

     

    세이어의 말과 함께, 돌연 검은 화염이 쓰러진 시체들을 장작삼아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물질 그 자체가 불로 변화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영과 육을 먹어치우며 떠오른 불길은 이내 세이어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빛을 삼키는 불꽃, 그것은 사용할수록 이 세상에서 가치를 영영 소멸시키는 흑마법의 정수였다.

     

     

    자신의 몸에 검은 화염이 떠다니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세이어는 루크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야.”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메를린에 대해서 알게 된 이상 그 정보를 ‘우리들’에게 전해야 할 거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할 테니까.

    그리고, 검은 불길이 먹어치우는 것 역시 효율은 별로여도 가치는 어느정도 갈취할 수 있고.

     

    그나저나, 이 아이가 지닌 가치가 너무나 많아 눈이 부실 정도다.

     

    메를린, 이 아이에겐 정말로 공을 들였나본데.

    못 본 사이에 실력이 굉장해진 것 아닌가?

     

    과연, 이 가치는 어떤 모습으로 타오를까?

    흥미가 생겼다.

     

    세이어는 손을 들어 루크를 겨누며 말했다.

     

    “그러길래, 처음부터 얌전히 저항하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화르륵!

     

    “으, 아…… 꺄아악!!”

     

     

     

    검은 화염에 휩싸여 몸을 비트는 아이의 공포에 질린 비명이 어두운 숲 속에 울려퍼졌다.

     

     

     

     

    ——-

     

     

     

     

    “……라고, 할 줄 알았나?”

     

    그렇게 불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리던 아이는 무릎이 땅에 떨어지기 직전 돌연 움직임과 비명을 멈추고 태연하게 몸을 바로했다.

     

    “음?”

     

    세이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저 불꽃은 모든 가치를 불태워 양분으로 삼는 일종의 해체식이다.

    물질 뿐 아니라 생명과 영혼마저 불태우는 불꽃일진대…….

     

    “역시 그대도 사용할 수 있나보군, 검은 화염.”

     

    루크는 털끝 하나 그을린 흔적도 없었다.

     

    “어떻게?”

     

    루크는 어떤 마법적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저토록 멀쩡히 서있을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아아, 그래. 이제는 그대가 질문할 차례였지?”

     

    세이어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루크는 오히려 굉장히 재미있다는 듯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지식을 탐구하는 동료로서, 내게 그대의 저주가 닿지 않는 이유를 친히 알려주도록 하지.”

     

    루크는 몸을 감싼 검은 화염을 손가락 끝에 모으며 말을 이었다.

    “이 불꽃은 생명을 부싯돌삼아 피어오르고, 붙은 대상의 가치를 태워 자신을 유지한다네.”

     

    하지만 루크의 설명이 무색하게도, 검은 화염은 점차 색이 옅어지더니, 종국에는 흰 색으로 화하며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어찌나 위태로운지, 마른 나뭇잎 하나 태우지 못 할 형상이었다.

    그렇게 흔들리던 하얀 불꽃은 마침내 연기처럼 흩어져 소멸했다.

     

    “하지만, 내겐 이 불꽃이 태울 가치가 전혀 없다네.”

    “그럴리가!”

     

    세이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자, 루크는 검은 화염이 머무르고 있던 자신의 손 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일견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죽지 않는 자의 수명엔 사실 아무런 가치가 없거든.”

    루크는 벙찐 표정의 세이어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어떤가? 죽은 자에겐 충분한 대답이 되었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바보야 불멸자는 수명팔이 못해

    죽은 사람한테 난 안죽는다고 기만하면서 장난치는 루크 이루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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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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