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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7

        

       “이르기를, 눈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문화권에 따라 창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거울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수면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공통된 것이 있다면 마음은 눈에서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성은 빨간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 달이 떠오르면 달의 형상을 수면 위로 떠 올릴 것이요, 해가 떠오르면 강렬한 빛에 아래까지 맑게 되지요. 때로는 가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흐르며 모양을 바꾸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그늘에 들어갔다가 양지로 나오기를 반복하며 반짝이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눈이야말로 마음을 비추는 통로라고 여겨왔던 것이지요.”

         

       진성은 상냥한 말투로 엘라에게 말했다.

         

       “하지만 물이라는 것은 언제나 맑고 깨끗할 수는 없는 법. 물이 맑다가 흐리는 것처럼, 마음 역시 물의 성질을 닮았으니. 청정(淸淨)하되 그 맑음은 오래가지 않으며, 깨끗하되 약간의 불순물만으로 쉽게 더러워지는 것이 바로 마음의 성질이지요. 그렇습니다. 마음은 쉬이 혼탁하게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네? 네….”

       “혼(混)이라는 글자에서 보듯 물이 갑자기 늘어나면 그 안이 흐릿하게 변하는 법이지요. 한때 깨끗했던 물은 흙탕물로 뒤덮여 속을 알아볼 수 없게 되며, 높아진 물의 수위는 한때는 말랐던 땅마저 침범하며 풍경을 잡아먹지요.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보아왔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혼란이 잡아먹은 세상이 비칠 뿐입니다.”

       “물이 늘어나면 흐려진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 갑자기 불어나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흐려지게 되며, 그렇게 흐려지게 되면 제 마음도 모르게 된 채 방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범람한 마음은 침범하지 않았던 구역을 집어삼키며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들고, 맹목적으로 그것에 집착하게 만들며 시야를 좁아지게 만들지요.”

         

       생각이 없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한 것 역시 좋지 않다.

         

       지금 엘라는 생각이 과하게 많았다.

       그리고 그 생각의 대부분은 쓰잘머리 없는 것들이었다.

         

       가차 없이 잘라서 버려도 되고, 버려야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들.

         

       “생각은 좋은 것이며, 머리를 쓰는 것 역시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방향성도 정하지 않고 그저 쑤셔 박기만 하고, 그것에 휘둘리는 것은 과하지요. 지금 프라우 빈터는 생각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에 괜히 이리저리 휘둘려가며 사서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사서 고생하고 있었다.

         

       무릇 사람이 가지고 사는 고민 대부분은 군더더기가 붙은 것.

       공포가 먹이를 먹고 커져 무형의 허상이 되어 사람을 짓누르게 되듯, 고민 역시 눈덩이가 불어나듯 커져 사람을 짓누른다.

         

       하지만 그 군더더기를 쳐내고 쳐내면 결국에 보이는 것은 하잘것없는 본질이다.

         

       사람을 한없이 짓눌렀던 공포는 과거의 사건이 씨앗이 되어 피어난 허상임을 깨닫게 될 것이며, 고민이라는 거대한 눈 덩어리는 자그마한 돌멩이가 구르면서 시작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진성은 엘라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웃음이었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 본질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본질을 보게 되면 그 실체가 이러했음에 깜짝깜짝 놀라곤 하지요. 사람의 어깨를 사정없이 눌러서 바닥을 기게 했던 고민이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시작되었나 싶어질 테니까요.”

       “….”

       “하지만 살이 덕지덕지 붙은 고민은 그 본질을 쉬이 알아볼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눈덩이 속에 파묻힌 근원은 어찌 생겼는지 알 수가 없고, 산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불씨는 그 시작이 어찌 되었는지는 시간에 파묻혀 알아보기 힘든 까닭입니다. 하니 제가 조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성은 엘라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프라우 빈터. 지금 당신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은 윌리엄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네? 헤어 박, 지금….”

         

       엘라는 진성의 입에서 나온 ‘윌리엄’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그녀의 말을 부인했다.

       아니, 그녀의 고민을 아예 뿌리부터 부정했다.

         

       지금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은 윌리엄 때문이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프라우 빈터께서 지금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요즈음 당신을 괴롭혔던 골칫거리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이지요.”

       “네? 그럴 리가요…. 저는 지금….”

       “프라우 빈터.”

         

       진성은 엘라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렸다.

         

       그리고 사람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윌리엄 그 사람이 싫어서 고민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프라우 렌츠에게, 당신의 스승님에게, 이 저택의 사람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까 싶은 염려 때문에 고민을 한 것이지요. 이 두 개는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

       “프라우 빈터. 당신은 상냥한 사람입니다. 까칠해 보이는 모습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마음이 가득 들어 있음을 저는 알 수가 있어요. 아니, 저만 알고 있는 건 아니군요.”

         

       엘라를 토끼라고 부르며 따라다니는 사람.

       껄렁이는 면도 있고, 약간 난폭하면서도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

       하지만 본능에 충실하기에 사람의 본질을 잘 꿰뚫어 보는 사람.

         

       “가족이 걱정되니 가족에게 그것을 쉬이 털어놓지는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혼자서 끙끙 앓다가 매몰되었겠지요. 하지만 프라우 빈터에겐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상냥함을 깨닫고 당신을 좋아해 주는 친구가 있지 않습니까?”

       “친구….”

       “산책을 끝마치면 찾아가 보세요.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 그 짐이 반 이상 덜어질 것이며, 같이 신나게 욕을 하다 보면 그 무게감이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니.”

         

       진성은 상냥하게 그렇게 말하며 엘라의 어깨를 살짝 잡고 그녀를 이끌었다.

       엘라는 진성의 말에 약간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누군가를 떠올렸고, 진성의 상냥한 에스코트를 받으며 정원의 구석에서 벗어나 저택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엘라가 멀어져가고 있을 무렵, 엘라의 팔에 안겨있는 무언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진성을 보며 소리를 내었다.

         

       짹.

         

       고맙다는 표시일까?

       아니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저 새의 울음소리에 불과한 것이기에 알 수는 없었다.

         

       ‘저 나이대에는 원래 떨어지는 낙엽만 보고도 마음이 심란한 법이지. 자연스러운 일이로다.’

         

       진성은 엘라가 사라지자 다시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길을 잃은 양에게 방향을 가르쳐주었으니 좋은 일이요, 고민하는 모습에 덩달아 마음이 불편하게 변할 사람들 역시 없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요, 그리고 의식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역시 좋은 일이라.’

         

       진성은 자신이 황금 도끼로 찍어내던 나무로 향했다.

       그리곤 냉기를 끌어올려 손에 모으고, 그것을 밖으로 발산하고 응집시켰다.

         

       그러자 손을 기준 삼아 얼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듯 그의 손을 두르기 시작했다.

       냉기는 곧 서리가 되었고, 서리는 곧 얼음 알갱이가 되었다. 그리고 얼음 알갱이들은 다리를 놓고 선을 뻗어나가기 시작하며 기둥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형상을 이룬 얼음은 점차 손끝으로 나아가 날카롭게 자라나기 시작했고, 이윽고 송곳의 형태로 변했다.

         

       파악!

         

       진성은 손끝에 자라난 송곳을 그대로 나무에 꽂아버렸다.

         

       쩌억!

         

       단단하게 굳은 송곳은 나무에 깊게 꽂혀버렸고, 도끼로 난도질 된 나무의 표면을 손쉽게 쩍 갈라지게 했다. 마치 나무에 말뚝을 박은 것처럼 작지 않은 틈새를 만들어 내었고, 얼음송곳만큼이나 싸늘한 냉기를 품은 어둠을 드러내었다.

         

       진성은 양손으로 벌어진 틈새를 벌리기 시작했고, 손 하나가 능히 들어갈 크기가 되자 왼팔을 집어넣어 안에 들어간 것을 꺼냈다.

         

       곳곳에 거친 바느질 자국이 남아있는 인형들이었다.

         

       인형의 입 부분은 실로 몇 겹이나 꿰매져 있었고, 그 아래 배 부분 역시 길게 세로줄이 나 있었다. 배를 한 번 갈랐다가 좋지 않은 솜씨로 꿰매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는데, 두꺼운 실로 얼기설기 꿰매서 그런 것인지 징그럽게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안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인형의 배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진성은 나무의 안에서 그 인형들을 꺼내 바닥에 조심스럽게 두었고, 오른손에 삼매진화를 피워올렸다.

         

       물질과 비물질을 태우는 불꽃.

       정화의 힘을 머금은 정신의 불꽃.

         

       그는 손에 피어오른 불꽃을 그대로 인형에 떨어뜨렸다.

         

       화르륵!

         

       불꽃은 인형에 닿기 무섭게 타올랐다.

       마치 기름이라도 부어놓은 것처럼 엄청난 기세로 말이다.

         

       투둑.

       투두둑.

         

       불꽃은 인형을 태웠다.

       인형의 털을 태우고, 인형의 옷을 태우고, 인형의 솜을 태웠다.

       그리고 인형의 배를 봉합하고 있던 실마저 태워버렸다.

         

       실은 불꽃에 타들어 가며 투둑 소리를 내며 끊어졌고, 그에 따라 인형의 배에 있는 것들이 자연스레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배 안에는 동물의 사체가 있었다.

         

       아주 자그마한 동물들.

       쥐, 새, 뱀, 거미, 지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인형의 배에 여럿을 쑤셔 박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동물들이었다.

         

       인형의 배 밖으로 나온 동물의 사체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기꺼이 불꽃을 받아들였고, 기꺼이 삼매의 불꽃에 제 몸뚱이를 바치며 한 줌의 재로 변했다. 그리고 그 사체가 사라진 빈자리에는 불꽃이 들어차며 안을 태웠으며, 그렇게 타들어 간 불꽃은 인형의 머리로 향했다.

         

       화르르륵.

         

       머리로 나아간 불꽃은 폐를 불태우고 식도를 불태우는 것처럼 인형의 속을 철저하게 불태웠다. 인형의 속을 채우고 있던 솜 대신 그 자리를 들이차며 인형을 폭삭 내려앉게 했으며, 인형의 외피 역시 천천히 불태우며 흔적을 없앴다.

         

       그렇게 인형은 재가 되었다.

         

       “깨끗하게 탔군.”

         

       진성은 인형이 타고 남은 재를 잘 쓸어모았다.

       그리곤 그것을 양 손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 나무의 뿌리에 그것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 재가 잘 스며들라는 듯 품 안에서 통을 꺼내 물을 콸콸 부었으며, 흙을 약간 파서 재와 잘 섞었다.

         

       진성은 몇 번이고 흙을 덮고 섞기를 반복했으며, 적당한 수준이 되었다 싶었을 때 다시 도끼를 들었다.

         

       쿵!

       쿠웅!

         

       그리곤 흙을 다지듯 자루로 땅을 두들겼다.

         

       쿠웅!

       쿵!

         

       그렇게 얼마를 두들겼을까?

         

       흙에서 음산한 기운이 풍기기 시작했다.

         

       사람의 육감을 자극하는 섬찟한 기운이었다.

         

       겨울의 한기를 그대로 품은 듯한 냉기는 흙에서 머물렀다.

       자신이 머물 수 있는 그릇을 찾기 위함이었다.

         

       냉기는 자신을 품을 수 있는 존재를 찾기 위해 곰팡이가 그러하듯 천천히 사방에 기운을 뻗치기 시작하였으며, 수증기처럼 허공에 솟구쳐 오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냉기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악령에게서 비롯되었기에 사람에게 머무르기를 원했던 냉기는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끔찍한 음기와 양기를 품고 있어 자신이 쉬이 머무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며, 조금 전까지 자리에 머무르고 있던 최고의 그릇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게다가 흙과 뒤섞여 떠나갈 수가 없어 사람이 많은 곳으로 이동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냉기는 자신이 머물만한 그릇을 쉽게 찾지 못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갔고, 천천히 아래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래로 내려간 냉기는 바닥에 깊숙하게 뻗어있는 나무뿌리에 닿았다.

         

       스으으….

         

       나무뿌리에 닿은 냉기는 음산한 소리를 내며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 소리는 악령이 내는 단말마 같기도 했고, 겨울바람에 낙엽이 스치면서 내는 섬찟한 소리 같기도 했다.

         

       “되었다.”

         

       진성은 냉기가 사라지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뿌리가 악령에서 비롯된 음기(陰氣)와 사기(邪氣)를 한껏 머금었으니 뱀처럼 뻗어 저택을 제 권역으로 삼을 것이요, 우뚝 솟은 나무에 행하였으니 수호목의 성질을 품었음이라. 제 권역의 존재는 지키되 외부에서 오는 것들을 잘 쫓아내겠구나.’

         

       저택을 지켜줄 수호목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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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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