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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7

       스파이.

       뭔가 거창한 이름이 붙었으나 사실 별거 없었다.

       아카데미에 가서 평범하게 수업을 받다가, 항목에 해당하는 사람이 보이면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겨울아, 언니가 뭐랬지?”

       

       한여름이 조금 커진 내 뺨 위로 손을 올렸다.

       진짜로 키가 커진게 아닌, 환영으로 인한 눈속임이었다.

       

       “어··· 학생들을 차별하거나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으면 보고해요.”

       

       “응. 그 외에는 평소대로 행동하는 거야. 알았지?”

       

       “네에.”

       

       정유나와 협회의 마법이 집약된 반지였다.

       아카데미에선 절대로 들킬리 없으니 걱정 말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정 못하겠으면 그냥 수업만 받으면 돼. 거기 수업도 도움이 될 거니까.”

       

       “네. 열심히 할게요.”

       

       나는 준비물을 챙긴 뒤, 현관으로 이동했다.

       그런 내 뒤를 한여름과 아이들이 쫄래쫄래 따라왔다.

       

       “왕아, 가면 언제 오냐···?”

       

       “쥬인···”

       

       아이들이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내가 멀리 떠나가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후에는 올거야.”

       

       “오후에 오냐?!”

       

       “응. 학교가 아니라 학원 느낌이거든.”

       

       “킥킥, 그럼 다녀와라!”

       

       내가 금방 돌아온다는 걸 깨달았는지, 레비나스가 해맑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를 본 가을이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함께 손을 흔들어주었다.

       레비나스가 기뻐하니, 나쁜 상황은 아니라 이해한 것 같았다.

       

       “나 이제 가야겠다. 새벽아 레비나스랑 가을이 잘 부탁해.”

       

       “응. 걱정 말고 다녀와. 근데 겨울이 진짜 예쁘다.”

       

       새벽이가 내 머릿결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어린 몸은 잘 몰랐지만, 확실히 성장한 이 몸은 예뻤다.

       

       중학생 일 학년보다는 조금 작은 키.

       수인족의 귀와꼬리는 없고, 머리가 검정이었다.

       외모는 원래의 내가 성장한 느낌이었다.

       

       “나는 새벽이가 더 예쁜 거 같은데.”

       

       “우리 완전히 똑같이 생겼는데?”

       

       “그치.”

       

       나는 킥킥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내가 길드를 오가는 걸 보이면 안되기에, 후드도 깊게 눌러 썼다.

       

       그렇게 사람이 없는 길로 들어가 차를 탔다.

       운전자는 엔시아였는데, 엔시아도 나처럼 후드를 쓰고 거기에 썬글라스까지 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함인지 차도 낡고 오래된 중고차로 바꿨다.

       

       “모시겠습니다.”

       

       “네에.”

       

       엔시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아쉽지만 엔시아는 차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떠났다.

       모든 건 다 내정체를 숨기기 위함이었다.

       

       ‘이제 진짜 혼자네.’

       

       열심히 해 봐야겠다.

       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아카데미를 향해 들어섰다.

       

       

       **

       

       모험가들이 가장 선망하는 길드라 하면, 당연히 여명이었다.

       그러나 모든 모험가들이 여명에 가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모험가들은 자신의 실력에 맞게 길드를 선택하고는 했다.

       여명보다는 한 수 아래지만, 충분히 대기업 길드라 불리는 신성과 태산.

       강소길드의 군단 등.

       

       눈을 낮추고 낮추다보면, 가장 아래에 있는 것이 아카데미였다.

       

       어떤 길드에도 들지 못한 이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장소.

       사람들은 아카데미를 밑바닥이라 불렀다.

       

       모험가를 꿈꾸는 이들이 가장 비참해지는 장소.

       많은 이들이 이를 알기에, 바닥 출신의 성공담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에는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부자들이 가난을 훔치듯, 실력있는 자들이 아카데미를 훔쳤다.

       

       밑바닥에서 부터 시작해, 대기업 길드에 들어간 모험가.

       삶을 빛낼 타이틀로는 이만한게 없었다.

       

       ‘미안하지만···’

       

       모험가 백이현은 가늘게 뜬 눈으로 주변 모험가들을 살폈다.

       자신을 빛내줄 ‘진짜 바닥’들.

       그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실력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으으···!”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갔을 법한 소녀가 덤벨을 붙잡았다.

       여린 팔뚝만 바들바들 떠는데, 덤벨은 들어 올리지 못했다.

       

       저녀석은 바닥 중의 바닥이구나.

       저정도 덤벨은 이곳 모험가라도 들 수 있을 텐데.

       백이현은 저도 모르게 비웃음이 나올 뻔한 걸 참았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재능을 몰라볼 정도는 아니지.’

       

       중학생이면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나이였다.

       미래는 모른다고들 하지만, 백이현은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은 모험가로서 끝이라는 걸.

       

       ‘···외모가 아깝네.’

       

       저대로만 성장한다면, 여성 모험가들의 동경 대상인 한여름을 웃돌 텐데.

       아쉽게도 모험가로서의 자질은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뭐,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

       있다면 강진호 정도겠지.

       백이현이 자신도 도달하지 못한 길드를 생각하며 쯧 혀를 찼다.

       그러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처음부터 실력을 보일 필요는 없다.’

       

       백이현이 필요로 하는 건, 재능 없는 이의 성공 스토리였다.

       첫 기록은 바닥을 찍어야겠다.

       그리고 조금씩 올라가야지.

       

       백이현이 그리 마음먹었으나, 한가지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조금 전 자신이 평가했던 그 소녀였다.

       

       “으, 으으으···”

       

       중량 턱걸이 간신히 한 개.

       중량 윗몸일으키기도 겨우 한 개.

       무게를 치는 모든 시험에서 간신히 한 개씩을 기록했다.

       

       아카데미 수준이 처참해 하나만 해도 합격이었지만, 진짜 하나만 하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바닥중의 바닥이라도 일반인보다는 강했다.

       중량조끼를 입고 열 개를 하는 녀석도 형편없다고 하는 마당에···

       

       바닥 아래에도 더 깊은 심연이 있구나.

       이러면 최하위는 못 찍겠네.

       백이현은 자신의 첫 출발을 망치는 소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가 많았으면 건드리기라도 해 봤을 텐데.

       

       ‘뭐, 상관없으려나···’

       

       백이현이 아카데미 강사진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두명의 강사진이 몇 초 정도 자신과 눈을 마주치다 빠르게 고개를 돌린다.

       이를 본 백이현의 입꼬리가 작게 올라갔다.

       

       꼴찌는 모르겠지만, 일등은 확실하다.

       이따위 곳에서 일등을 못할 실력은 아니었지만, 사람일이라는 건 모르니까.

       백이현은 모든 걸 확실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

       

       

       

       

       나는 저린 팔뚝을 주무르며 다음 시험을 준비했다.

       아카데미 입학시험이 쉽다고 했는데, 근력이 약한 내게는 하나를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다음 시험은 나름 할만했다.

       내 특기인 민첩성을 보는 시험이었으니까.

       

       정면에서 날아오는 공을 피하는 시험.

       세상을 슬로우모션으로 볼수 있는 내게 공을 피하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었으나, 다 피하지는 않기로 했다.

       아카데미를 감시하기 위해선 눈에 띄는 일은 피해야 했다.

       

       스무개의 공중 세 개를 피하면 합격.

       나는 적당히 다섯 개의 공을 피했다.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피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헤헤···”

       

       근력쪽이 힘들긴 했지만, 모든 부분에서 합격했다.

       안도하며 근처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굉장하다.’

       

       아카데미가 실력이 부족한 모험가들의 마지막 보루라 했는데.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저마다 특출난 부분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으니까.

       

       저사람은 근력이 강하고, 저사람은 눈이 좋다.

       사람들을 구경하는 내근처를 또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다.

       

       “같이 아카데미 다닐 거 같은데,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네에 저두요.”

       

       “그쪽도 합격하셨어요?”

       

       “네. 운이 좋았어요.”

       

       순수하게 호의를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크흠.”

       

       “휴우···”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 점수를 보며 안도하는 이도 있었다.

       내 점수가 제일 낮으니, 저런 행동을 보이는 이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 같지는 않은데.’

       

       모두가 평범한 사람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릴 때였다.

       한 쌍의 남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흐흐, 내가 언니인 거 같은데 말 편하게 해도 될까?”

       

       “네. 그럼요.”

       

       인상 좋은 갈색머리 소녀였다.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하는 내가 편해질 정도였다.

       

       “동생은 몇 살이야?”

       

       “저는 이제 열두 살이에요.”

       

       “아, 아직 만나이 안 지났구나?”

       

       “네에.”

       

       아카데미의 입학 조건은 중학교 일 학년.

       최소 열두 살부터 가능하단 이야기였다.

       

       “열두 살에 아카데미 입학이면 굉장하네.”

       

       “그쪽두 굉장해요.”

       

       “에이, 그쪽이라니.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그, 그게, 언니는 조금···”

       

       “아! 불편하구나? 그럼 그냥 이름으로 불러 난 윤현서고 이쪽은···”

       

       “한태휘.”

       

       윤현서과 한태휘.

       두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는 새로운 내 이름을 밝혔다.

       

       “저는 하랑이에요. 강하랑.”

       

       “그렇구나. 이름이 하랑이구나?”

       

       “네에.”

       

       “하랑이는 되게 착한 친구 같네.”

       

       환하게 웃은 그녀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붙었다.

       환영 속에 숨겨진 꼬리가 조금 살랑거렸다.

       

       “하랑아 나랑 같이 팀할래?”

       

       “팀이요?”

       

       “응. 기왕이면 좋은 사람이랑 팀 하고 싶어서.”

       

       “어···”

       

       나야 나쁘진 않은데.

       조금 고민하고 있으니, 윤현서가 내게 귓속말을 해왔다.

       

       “우리랑 팀 하면 상위권으로 졸업할 수 있을걸?”

       

       “상위권이요?”

       

       “응. 우리 하얀눈 길드한테 스카웃 제의 올 정도거든.”

       

       “하얀눈이요···?”

       

       처음 듣는 길드였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윤현서가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이 근방에선 나름 유명한 곳이야. 신성 길드 알지? 거기랑 협력 예정이기도 하다?”

       

       “우와.”

       

       신성 길드랑 협력하는 거면 확실히 굉장한 길드긴 하겠다.

       어디에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지만, 한 가지 의문은 있었다.

       

       “근데 제 점수가 그렇게까지 높진 않은데, 왜 저예요···?”

       

       “동생 생각나서, 언니 동생이 하랑이랑 똑같은 나이거든. 옆에 태휘도 여동생 있거든.”

       

       “아···”

       

       가족 생각나서 그랬구나.

       그러면 걱정이 들 수밖에 없긴 하지.

       

       이젠 정말로 거절할 이유가 없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 팀을 맺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겨울이의 가짜 이름은 강하랑이랍니다…!
    어디선가 본적 있는 거 같다구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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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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