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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7

     하늘을 날아가면 적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말고,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이.

     그래서 나는 나 혼자 먼저 황금의 배를 운행하는 걸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땅에서 무수히 많이 솟아나는 황금의 노예들.

     그들 중에는 분명 비룡을 수족처럼 다루던 이들도 있었다.

     아마도 윈체스터 대공이 죽어서 황금의 노예가 된다면, 자신의 비룡과 함께 묻힌다면 하늘을 날아 지브롤터 성을 공중강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런 경우가 없었기에, 나는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험하고자 이렇게 황금의 비행선을 몰고 나왔는데, 설마 최악의 타이밍에 우리를 덮칠 줄은 몰랐다.

     부ㅡ웅!

     비룡이 우리 위를 스치듯 날아가며 위협했다.

     아래로 뻗은 황금의 창날을 정확히 우리 사이를 가르며,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그대로 코가 베였을 기세로 빠르게 지나갔다.

     

     딱히 위협적인 공격은 아니었지만, 나와 아스타시아 사이의 거리가 벌어진 건 분명했다.

     “…….”

     아스타시아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안 그래도 비룡의 기척을 느낄 때부터 표정이 안 좋았는데, 이제는 아예 하늘을 날고 있는 비룡과 황금의 기사를 잡아죽일 기세로 째려보고 있다.

     “아스타시아.”

     “……앗.”

     

     그리고 내 부름에, 그녀는 바로 표정을 풀고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레이, 그게, 그러니까.”

     “저는 다른 남자를 향해 그렇게 째려보는 당신이 너무 좋습니다.”

     “네…?”

     누군가는 냉철하거나 표독스럽다, 뭐 그런 식으로 깎아내리려고 할 수 있겠지.

     실제로 아카데미(회귀 전) 시절부터 아스타시아는 그렇게 질투심 많은 레이디들에게 모욕을 들었고, 나와 결혼을 한 뒤로도 그런 소리를 자주 듣고는 했다.

     황제의 핏줄이다.

     그리고 에르윈 황후의 핏줄이다.

     두 사람 모두 내 사람에게는 살가운 이들이지만, 내 사람이 아닌-‘적’에게는 가차없는 사람들이다.

     “아스타시아가 그런 시선을 제게 보내지 않는다는 걸 느낄 때마다, 제가 아스타시아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거든요.”

     “그레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옆에 놓아둔 지팡이를 그대로 들어,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이 습격자는 제가 처리할테니,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카ㅡㅡ앙.

     황금으로 된 창날과 지팡이 끝에서 빠져나온 칼날이 부딪친다. 

     황금과 강철이 부딪치면 당연히 무기로서 연마된 강철 쪽이 단단한 게 당연하지만, 양쪽 무기에 오러가 깃들어있다면 또 이야기는 다르다.

     그리고 그게 마스터급의 오러라고 한다면.

     “흠….”

     공격을 제법 깊게 밀어넣었고, 실제로 효과는 봤다.

     서걱.

     창날을 베어넘기면서 동시에 허벅지를 오러 블레이드로 갈랐다.

     

     비룡까지는 아쉽게 닿지 않았으나, 황금으로 물들었던 허벅지는 그대로 이탈하는 비룡기사로부터 떨어져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용기사는?

     허벅지가 잘렸지만, 그대로 비룡을 몰고 급선회를 하며 오히려 다시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고통을 모르는 모양이네요.”

     “평범한 인간이라면, 아니 마스터급이라고 해도 저 정도로 베이면 전투력을 상실하기 마련인데.”

     “역시, 언데드라서 그런 걸까요?”

     “그렇죠. 언데드라서…응?”

     황금의 갑옷 사이, 어딘가 익숙한 무언가가 보였다.

     “…설마.”

     “그레이, 왜 그래요?”

     “아는 사람 같아서요. 아스타시아, 잠시.”

     나는 황금의 기사가 다시 날아오기 전, 아스타시아의 손을 놓고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빠르게 휘둘렀다.

     평소보다 더 빠르게.

     오러를 흩뿌리듯 참격을 날려, 실체화된 마력의 칼날이 날아가 그대로 비룡을 사선으로 갈랐다.

     서걱.

     비룡을 잃은 인간은 하늘을 날지 못한다.

     비룡은 반으로 갈라진 채 공중에서 피를 흩뿌리며 우리의 옆으로 스쳐지나가며 피비린내만 남긴 채 갑판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비룡이 잘리면서 비룡의 안장에서 뛴 황금의 기사는 한 발로 갑판에 착지했다.

     

     황금빛 전신갑옷의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무언가.

     “제로스 바르셀. 지하에서 죽었는데, 이번에도 또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황금색 슬라임 껍질과도 같은 피부의 바깥, 목 부분에 있는 베인 흔적이 익숙하다.

     내게 목이 날아갔던 그 궤적을 그대로 가진 채, 황금여명의 기사단장은 황금의 노예가 되었다.

     [그…레…죽….]

     

     황금색 투구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제대로 된 언어도 아니었다.

     그저 앓는 소리를 내기만 할 뿐이고, 그마저도 내가 마나의 진동을 통해 일부나마 소리를 유추할 수 있었을 뿐이다.

     “추하군.”

     저건 제로스 바르셀이 아니다.

     제로스 바르셀이라는 인간은 이미 죽었고, 제로스 바르셀의 형태를 한 황금의 노예다.

     “지하를 통해 몰래 바르셀로나 총독부를 습격하려고 할 때 머스킷에 뚫려 죽은 것처럼 보이던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진짜는 그 때 죽은 건가?”

     [죽, 여버리겠…!]

     “아무래도 맞는 것 같은데.”

     이제는 악령 제로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성불하기에 딱 좋은 방법이 있지.”

     나는 비룡을 죽였던 것과 같이, 사선으로 검을 그었다.

     [크, 어?]

     “인간은 급소를 베이면 죽지. 심장이든 뇌든, 영혼이 실체를 가지고 있는 유령이라고 하든.”

     나는 제로스의 머리와 심장을 동시에 손으로 갈랐다.

     “둘 중 어디가 급소인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둘 다 베었다.”

     푸화ㅡㅡㅡ악.

     옆으로 미끄러지는 제로스의 머리와 팔에서 황금색 피분수가 터진다.

     배의 갑판 위로 거짓된 황금으로 빚어진 황금색 혈액이 그대로 흩뿌려지고, 나는 아스타시아의 앞에 서며 팔을 뻗었다.

     “위험했군요.”

     “그레이가요?”

     “아뇨. 저희 말고, 다른 이들이 비행선에 탔다면 말입니다.”

     황금의 노예는 죽었다.

     그게 제로스 바르셀이었든, 아니면 제로스 바르셀의 분신을 황금의 노예로 만든 다음 비룡에 태워 올려보냈든, 우리를 급습한 황금의 노예-용기병은 죽었다.

     “합스베르크 황제가 제일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했군요. 비행선을 운행함에 있어, 가장 걱정하던 부분이.”

     “…용기병에 의한 공중강습.”

     “대처하기 쉬운 게 아니죠.”

     마스터급 인재가 타고 있지 않다면, 공중에서의 공격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비룡을 타고 비행선을 습격하는 사람이 창을 든 용기병이나 근접공격만 가능한 언데드가 아니라, 상급 마법사다?

     비행선은 곧장 지상을 향해 추락하며 폭발을 일으키는 무덤이 되겠지.

     “아스타시아. 방으로 들어가겠습니까? 갑판 청소를 해두고 내려가겠습니다.”

     “계속 비행선 몰아도 되는 거예요?”

     “마스터급이 아니라면 대응하기 어렵다는 건, 마스터급이라면 공중에서도 대처 가능하다는 말과 같죠.”

     그리고 나는 공중에서의 습격을 대응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리하고 내려가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아스타시아.”

     나는 외투를 벗고 소매를 걷으며, 갑판의 청소도구함을 열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왜 굳이 이 배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

     아스타시아는 무안한듯 한 번 볼을 긁적이더니.

     “여기, 샤워시설도 있죠?”

     “예.”

     “그러면….”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가며, 손키스를 날렸다.

     “먼저 씻고 기다릴게요.”

     * * *

     잠시 뒤.

     “당연한 말이지만, 키스까지는 괜찮습니다.”

     “부우.”

     “키스보다 더 나가는 건 안 됩니다.”

     “부우우.”

     나도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난 뒤, 비행선 내부의 특실에 마련된 책상에 아스타시아와 마주앉았다.

     “4개월 뒤면 모든 게 가능해질 겁니다. 제국력 100년 1월 1일이 되는 순간, ‘그 날’이 되는 거죠.”

     “그러면…그 날에 딱 맞춰서 하는 건 어떤가요?”

     생각 이상으로 아스타시아가 적극적이다.

     

     아니다. 

     생각해보면 아스타시아는 언제나 적극적이었다. 

     회귀 전도 그렇지만, 회귀한 지금도 아스타시아는 솔직하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그러니까….”

     “연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0시 0분이 되는 순간 바로 선을 넘는 거죠.”

     “어폐가 있군요. 그 때는 선을 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그 때, 우리는 미성년자가 아니게 된다.

     “그레이는 정말 이상하네요.”

     “제가요?”

     “제국 유학생들도 다들 10대 후반 남자들이라, 막 주체할 수 없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막 어떻게 하고 그러던데.”

     “…….”

     나는 제국 유학생들의 명예를 위해 솜누스 차를 마시는 걸로 침묵하기를 선택했지만, 아무래도 아스타시아는 오늘 끝장을 볼 모양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이미 17살 때부터 왕국 여학생이랑 눈이 맞아서 지금까지 그렇고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그…블론드 있잖아요. 201호. 부학생회장 대리가 되기 이전부터 오로솔 아카데미 여학우 둘과 삼각관계를 만들기도 했어요.”

     “그렇군요.”

     “그리고 그들 모두, 그레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건전하지 못한 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했죠!”

     “노스트럼과 달리, 제국이 진보적이라서 그렇습니다. 개방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 개방적인 제국 남학생들이 꼬신 사람들은 전부 왕국의 여성들인데요?”

     “하지만 저희는 왕국 남자와 제국 여자 아닙니까?”

     “하…!”

     아스타시아는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나를 향해 두 손가락을 쭉 펼쳤다.

     “제국 유학생으로 온 여학생들 중, 왕국 남학생들과 연인이 된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게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연인으로 한정해야 하는 겁니까?”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고 그런 관계를 한 번이라도 구축한 경우요.”

     “두 명 빼고 전부 다?”

     내 말에 아스타시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손가락을 엄지 두 개만 빼고 전부 접었다.

     “맞아요. 누굴 것 같아요?”

     “아스타시아. 그리고 아스타시아를 보좌하는 305호의 그….”

     “스칼렛이요! 여전하네요, 정말. 이름 잘 못외우는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제가 정확하게 이름을 외우는 건 가족이거나, 제 편이거나 하는 경우 뿐이라서요.”

     305호의 스칼렛은 아스타시아의 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스칼렛이라고 하는 이름을 쓰고 있고, 그것이 가명이며 실제로는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도 첩보를 통해 파악한지 오래다.

     “그런 이름이었군요. 305호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다른 여자에게 너무 무신경한 거 아녜요?”

     “여자라면 아스타시아만 신경 쓰면 되는 거지, 꼭 신경을 써야 합니까?”

     하지만 아스타시아 앞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아스타시아, 은근히 이러는 거 좋아하니까.

     “치.”

     그리고 내가 그러는 걸 아스타시아 또한 알고 있다.

     내숭이라고도 할 수 있고, 거짓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이런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해왔다.

     “그레이. 솔직하게 물어볼게요. 저, 매력이 없나요?”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그, 참는 거예요?”

     “참는 게 아닙니다.”

     참을 리가.

     “아스타시아를 본 날로부터 제가 몇 번을 참고 또 참았는지 모릅니다. 꿈에서 만나는 아스타시아를 상대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뭐예요. 꿈 속의 저랑 도대체 얼마나 그렇고 그런 짓을 많이 한 거예요?”

     “아스타시아는 다릅니까?”

     “…….”

     아스타시아가 입을 꾹 다물었고, 나는 아스타시아를 향해 다가가 그녀의 턱을 잡아들었다.

     “상상 속의 그레이 지브롤터를 상대로 얼마나 자신을 내어준 겁니까?”

     “그, 그런 적 없는데요…?”

     “정말로?”

     “그, 그러면….”

     아스타시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현실 속의 당신이, 제게 해주시나요?”

     “아마도, 조만간.”

     “그러면, 지금은….”

     아스타시아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약속을…잠깐.”

     나를 향해 상반신을 들려다, 그대로 좌우를 훑었다.

     “또, 갑자기 방해꾼이-”

     스륵.

     나는 아스타시아를 당겨, 그대로 입을 맞췄다.

     “…….”

     착각일까, 아니면 몸으로 그 의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걸까.

     순식간에 내 목을 휘감는 아스타시아의 손은 4개월 뒤에 이보다 더 심하게 할 거라고 예고를 하는 것처럼 진득했고, 나는 아스타시아가 만족할 때까지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구구구.

     비행선이 하늘을 날아,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한참이 지날 때까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300만 달성 기념

    어떻게든 써왔습니다

    휴식 후 자정에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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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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