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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7

    자유 도시 연합의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거대한 지하 공동. 

    그곳은 빛조차 닿지 않는 심연의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렁이들이 기어다니는 홈이 파여있는 기둥들과 끝없이 펼쳐진 넓은 공동.

    그 두 가지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진동은 공기 속으로 불길한 울림을 퍼트리고 있었다.

    그렇게 태어난 공명은 마치 수천 명의 유령이 울부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공명 속에서 기둥의 홈을 타고 걸어 다니는 오브젝트 의체들의 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타다닥, 타다닥.

    마치 시체의 손톱으로 쉴 새 없이 돌멩이를 두드리는 듯한 그 소리는 듣는 모든 사람을 신경질적으로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유령의 울부짖음과 손가락들의 걸음 소리는 서로 어우러져,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그 음산한 분위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그르르륵!

    그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공동의 음산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변모했다. 

    수조 안에 들어차 있던 손가락 지렁이들은 마치 소금을 뿌린 거머리들처럼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창백하고 축 늘어진 몸뚱이는 서로 뒤엉키며 혐오스러운 광경을 연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끈적하고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수조 속 액체는 마치 끓는 물처럼 보글보글 뜨거운 기포를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손가락 지렁이들의 비정상적인 발작과 액체의 불길한 변화는 섬뜩한 공포와 혐오감을 자아냈다.

    그리고 전선으로 얽힌 채 수조에 붙어있는 세 개의 지렁이 모니터에서는 경고음처럼 긴박한 빨간 불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오브젝트를 죽이는 오브젝트.]

    [회색 사신이 침입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모니터에 띄워진 글자들은 당황과 혼란을 여과 없이 내비쳤다.

    한편 지하 수조는 여전히 끓는 물처럼 격렬하게 보글거리며 열기를 뿜어냈다. 

    [혐오는 있을지언정, 적대적이진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괜찮다.]

    잠시 후, 모니터에서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뒤엉킨 지렁이들의 발작과 수조의 열기는 점차 잦아들며 평온을 되찾았다. 

    [특급 오브젝트, 그 너머의 오브젝트.]

    [그 너머에 도달한 ‘거신’은 회색 사신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신의 준비가 아직이군.]

    세 개의 모니터가 일제히 동일한 문구를 띄웠다.

    [그렇다면 시간을 끌자.]

    그 문장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무언가 계획이 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

    자유 도시 연합, 중앙탑.

    청은 택시를 타고 와서, 그 중앙탑 앞에 천천히 내려섰다.

    그녀의 시선은 하늘 높이 치솟은 탑의 끝을 향해 있었다.

    “엄청 높네.”

    중앙 탑을 올려다보며, 주황 사신에게 말을 거는 청의 눈빛에는 약간의 감탄이 담겨있었다.

    자유 도시 연합의 상징인 이 탑에는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이야기가 서려 있었다.

    자유 도시 연합의 상징.

    도시를 지배하는 세 가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장소.

    지금은 거신의 거처이지만, 그 이전에는 자유 도시 연합의 역대 용병 왕들이 머물던 곳.

    그야말로 도시의 전설들이 머물렀던 장소였다.

    청은 딱히 용병계의 정점에 서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전설들의 무대였던 탑을 바라보니, 가슴 한편에서는 조그마한 설렘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청이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중앙탑 안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차가운 인상의 그 남자는 무심한 얼굴로 청에게 다가와 안내를 시작했다.

    “따라오시죠.”

    청은 심호흡하며 긴장된 마음을 다잡았다.

    청은 평소에는 열리지 않는 문을 지나 반질반질한 바닥과 커다란 보안 게이트가 마련된 로비로 들어섰다.

    주변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지만, 청은 이상하게도 이 넓은 공간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기분이었다.

    ‘괜찮을 거야.’

    청은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려는 듯 머리 위에 모자처럼 얹혀있는 주황 사신에 손을 올렸다.

    주황 사신 특유의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 전해지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러자 문득 아지트에 남아있을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그들은 모두 이번 일을 반대했었다.

    의뢰 자체가 수상함투성이였다.

    거신이 지정한 용병은 ‘청’ 단 한 명뿐이었고, 다른 이는 아무도 중앙탑에 입장할 수 없었다.

    게다가 보상으로 내걸린 것은 다름 아닌 청이 그토록 갈망하던 유품이었다. 

    마치 청을 노리고 던진 미끼 같았다.

    하지만 청은 이 기회를 거부할 수 없었다. 

    추억의 흔적이 담긴 그 유품을, 차마 외면할 수는 없었기에. 

    이런 상황 속에서 청이 믿을 수 있는 건, 곁을 지켜주는 주황 사신뿐이었다. 

    청은 이 변덕스러운 존재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소중한 유품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청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안내인의 뒤를 따라 유리처럼 투명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의 벽면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청은 마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변의 건물들은 점점 작아지고, 지면은 발밑으로 멀어져 갔다.

    높이 올라갈수록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자유 도시 연합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유리를 통해 보이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색색의 건물들이 모여 이루는 도시의 모습,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 그 위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사실은 어딘가 뒤틀리고 참혹한 도시였지만, 멀리서 바라보니 알록달록한 모자이크 글라스 같았다.

    띵!

    그렇게 밖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최상층에 도착해 있었다.

    칙칙한 금속으로 가득한 일직선 복도.

    고급스러운 호텔 로비 같던 1층과는 달리, 최상층은 어딘가 격납고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거신께서는 복도 끝 방에 계십니다.”

    뚜벅뚜벅.

    창문 하나 없고 조명도 최소한으로 있어서, 음산한 분위기의 복도.

    그 복도 끝에 놓인 독방 문처럼 육중하고 커다란 철문.

    청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끝없는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누구 없나요?”

    문 너머의 방바닥에는 물이 차 있는 것 같았다.

    청의 발걸음에 맞춰 찰박찰박, 바닥에 고인 물이 찰박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몇 걸음 더 걸어 들어가자 큰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어두운 방 안에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방의 중앙, 그곳에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있었다.

    찬란한 황금과 칙칙한 검은 금속이 어지럽게 뒤섞인 채, 붉은 핏물에 흠뻑 젖은 덩어리였다.

    그 주변에는 붉은 광채를 내뿜는 액체가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었고, 그 옆에는 끔찍하게도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시쳇더미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시쳇더미를 보는 순간,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혈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는데!

    “드디어 마지막 조각이 도착했군.”

    그 순간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덩어리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온몸에서 금속성의 광채를 발하는 그 존재, 그것이 바로 거신이었다.

    ***

    회색 사신이 없는 평화로운 마시멜로 평원.

    그곳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4족 보행 황금 사신 인형 옷 주변으로 하얀 아귀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잔뜩 모인 하얀 아귀들은 제대로 접히지도 않는 짧은 손가락으로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다.

    승리한 하얀 아귀는 뒷다리로 서서 기쁨의 ‘뀨!’를 내질렀고, 패배한 아귀는 슬픔의 뀨힝힝을 흘리며 터덜터덜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야말로 희비의 교차가 일어나는 곳이었다.

    패배자들은 회색 사신이 자주 다니는 평원에 배를 깔고 누웠고, 승리자들은 황금 사신 인형 옷을 입고 평원을 뛰어다녔다.

    회색 사신의 잔혹한 보복이 예상되기에, 희생자를 고르는 잔혹한 가위바위보였다.

    뀨힝힝.

    ***

    야광 메카 티라노사우루스를 타고 신기한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흘러 태양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해로운 도시에서 강력한 메카 티라노의 힘을 보여주려는 순간, 도시 전체에 축제 분위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거리.

    흥겨운 음악과 춤추는 사람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과 간식들.

    축제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을 느꼈는지, 악취를 피해 내 머리카락 속에 숨어있던 황금 사신들도 고개를 빼꼼 내밀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이 추는 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홀로그램 바니걸이 추는 춤을 따라 하는 건지, 내 더듬이를 봉처럼 잡고 휙휙 빠른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분명 섹시 어필을 하는 춤이었을 텐데….

    원본 동작은 봉을 중심으로 천천히 도는 것이었지만, 결과물은 선풍기처럼 회전하는 미니 사신 풍차!

    황금 사신의 해맑은 얼굴과 몇 배로 빠르게 움직이는 신체 능력이 합쳐지니, 동작 하나하나가 서커스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여러 가지 춤을 따라 하는 황금 사신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정말 놀라운 광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건물 사이사이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홀로그램 티라노사우루스들이 거대한 몸집을 흔들며 돌아다녔다.

    ‘티라노!’

    나는 메카 티라노 위에서 일어나, 홀로그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티라노사우루스는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하는 시늉을 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살짝 놀랐지만, 나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히히.

    티라노 축제라니.

    건물 옥상을 넘나드는 거대한 티라노가 뛰어다니는 멋진 축제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폭신폭신한 마시멜로를 뿌리는 기계들.

    도시를 누비는 수많은 공룡 홀로그램.

    즐거운 음악과 흥겨운 춤.

    지구상의 그 어떤 축제보다 멋진 축제였다.

    나는 메카 티라노의 등 뒤에 앉아,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마시멜로를 집어 먹으며 정신없이 축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

    쿵!

    거신의 묵직한 주먹이 바닥을 내려치자,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주황 사신의 애착 인간인 청은 간신히 그 공격을 피했지만, 계속 버티기는 어려워 보였다.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군.”

    거신이 냉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청을 꿰뚫었다.

    하아. 하아.

    창백한 안색의 청의 입에서는 가쁜 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청은 한계에 가까워.’

    주황 사신은 계속해서 확률 조작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거신은 금속과 황금뿔을 엮어서 엉성하게 만들어진 존재로 보였지만, 아무리 확률을 조작해도 무너지지 않았다.

    확률을 살짝만 비틀어도 무너져 버리는 구조인데도 그랬다.

    “소용없다. 말로 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것 같군.”

    거신이 커다란 손아귀를 펼치자, 손을 이루는 부품들이 조각조각이 나서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초적인 능력이지.”

    그리고 거신이 다시 손을 내밀자, 분해되었던 부품은 다시 뭉쳐서 손의 형상을 이루었다.

    ‘!’

    확률 조작!

    주황 사신은 감은 눈을 살짝 뜰 정도로 매우 놀랐다.

    자신과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적이라니!

    “우리는 회색 사신의 ‘죽음 유도’를 연구해서, 결국 회색 사신을 뛰어넘어 ‘확률 지배’의 영역에 도달했다.”

    거신은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대업을 거의 마친 우리의 능력은 회색 사신조차 능가했을 터. 미약한 네 녀석의 확률 놀음은 통하지 않는다.”

    거신이 허공에서 손을 움켜쥐자, 청의 죽음 확률이 미친 듯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안 돼… 애착 인간이 위험해!’

    주황 사신은 온 힘을 다해서 확률을 억눌렀지만, 역부족이었다.

    퍽!

    청의 몸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렸다. 

    마치 타공기에 넣고 통째로 뚫어버린 것 같은 상처였다.

    주황 사신의 애착 인간, 청은 온몸에 구멍이 뚫려 죽은 시체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게다가 청이 피를 한 방울 흘릴 때마다, 바닥에 차오른 핏물은 눈에 띄도록 수위가 높아졌다.

    그리고 그 높이만큼 거신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었다.

    “이제 끝내주지.”

    점점 달의 격에 가까워지는 거신이 다시 한번 청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돼!’

    엄마를 부를 수 없는 완벽하게 차단된 건물.

    도무지 이길 수 없는 강대한 적.

    위험한 애착 인간.

    주황 사신은 청의 품에서 나와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동안 즐거웠어.’

    주황 사신 몸에서 황금색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좀 더 장난치고 싶었는데….’

    확률 조작이 통하지 않는다면, 더욱 강한 확률 조작을 사용해야 해.

    주황 사신의 몸이 불타오를수록, 핏물이 가득한 바닥이 몽실몽실한 구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주황 사신의 몸이 흐릿해질수록, 주변에 가득한 시체들은 사라지고 평화로운 구름 고기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난스럽게 씨익 웃는 순간.

    거대한 주황색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락해서 힘을 잃은 주황색 달이 아니라, 온전히 찬란한 빛을 흩뿌리는 주황색 달이었다.

    그렇게 축제로 소란스러운 자유 도시 연합에, 태양에 지지 않는 찬란한 주황색 달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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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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