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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7

    <277 – 거절할 수 없는 제안>

     

    기말고사가 끝났다.

     

    “거짓말. 저 녀석, 우리랑 같은 급의 허접이었잖아. 무슨 수를 써서 저렇게 점수가 높아진 거야?”

    “듣기로는 쟤도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에 들어갔다던데.”

    “거기 답도 없이 곤충이나 잡고 다거나 약초나 캐는 채집꾼과 심마니들의 모임 아니었어?”

     

    지난 중간고사에서 파란을 일으킨 것이 제 사람은 챙기는 오크노디와 지만 아는 이슈타르였다면 이번 기말고사의 파란을 일으킨 학생들은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 소속이었다.

     

    “답안지라도 유출된 거 아니야?”

    “맞아. 그렇지 않고서야 납득이 가질 않잖아.”

    “오크노디의 스승인 의적 브론즈 교수님이 다른 교수님의 쪽지시험 답안지를 훔쳤다는 소문도 있었지.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분명 훔친 게 틀림없어!”

    “가서 따지자.”

    “교수님들이 분명 벌점을 줄 거야!”

     

    자기들이랑 별반 차이도 없는, 오히려 밖으로 놀러 다니면서 수련도 등한시 한 녀석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학생들.

    그런 학생들 사이에는 인망을 쌓고 새로운 조직을 일으키려는 야심을 지닌 이도 존재했다.

     

    “모두들, 내가 돕도록 허락해주지 않겠나?”

    “헥토르 왕자님!”

    “어느 나라 왕자님인데?”

    “그 있잖아, 남부의 약소국 트로이의 왕자.”

    “건국왕이자 명장으로 유명한 헤더의 유일한 아들이지만 아비만은 못하다던 소문의 그 왕자…?”

     

    왕자는 왕자지만 힘이 없는 약소국의 왕자.

    부담을 느끼던 학생들도 경계의 끈을 내려놓았다.

     

    ‘좋은 기회다. 카시아를 감싸고도는 오크노디, 그 아이에게 대항할 영향력을 키울 기회는 그리 간단히 찾아오지 않아.’

     

    카시아의 아치에너미.

    복수의 날을 고대하며 추종자들과 함께 부딘히 성장만을 거듭해온 자.

    왕자 헥토르와 추종자들은 다른 조직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달리, 교내 대부분의 주요이벤트를 숨죽이며 조용히 보냈다.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고 누구의 견제도 당하지 않는다.

    단지 조용히 배후에서 카시아를 칠 인재를, 그리고 그녀를 돕는 오크노디에게 적의를 품은 이들을 하나 둘 포섭했다.

     

    “자금지원이라면 내게 맡겨주세요. 암흑상회만큼은 아니어도 제 이름을 본딴 유이상단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으니까요.”

     

    원작에서 지젤 대신 상인포지션을 가져갔을 유이.

    도로시에게 밀려 상급반 진급에 실패한 그녀가 헥토르의 밑에 들어갔다.

    인성에는 결격사유가 있지만 나름 2티어 조연인 NTR히로인 상인녀 유이는 헥토르 파벌의 자산을 순조롭게 불렸고 영향력을 크게 키웠다.

    그의 가세는 개인이 아닌 조직의 가세.

    추한 질투심을 품고 교수에게 따지러 가던 학생들에게는 너무 과한 권력자도 아니고 적당히 강성한 약소세력의 수장이자 든든한 조력자의 등장이다.

     

    “그게 뭐가 문제이죠?”

     

    그런데 머리에 꽃을 단 이 미친 교수님께서는 헐벗은 차림새만큼이나 개방적인 사고관을 지녔다.

     

    “자연에서 도둑질이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생존전략이에요. 들키면 분노한 포식자에게 물어 뜯겨 죽지만 들키지 않으면 분에 넘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죠.”

    “…부정행위를 용인하시는 겁니까?”

    “오히려 대견하지 않나요? 선배들도 실패하는 부정행위를 고작 1학년이 성공시켰다는 것이. 대자연의 섭리에 도전하는 용감한 장난꾸러기들의 미래가 기대되네요.”

     

    이 사람은 세상에 무슨 졸업생을 배출시키려는 걸까.

    얼굴이 절로 일그러진다.

    뒤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듣는 학생들의 얼굴도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컨닝 했지.”

    “힘들게 공부 왜 해?”

    “무언가 착각이 있는 모양이군요.”

     

    위어드 교수가 창문을 열고 손을 뻗자 창밖을 팔랑팔랑 날아다니던 날개가 예쁜 나비 한 마리가 그녀의 넝쿨손가락 끝에 걸터앉았다.

    자연과의 교감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에 넋 나간 학생들이 홀린 듯이 손끝의 나비를 바라보았다.

    헥토르의 눈에는 나비와 저 얼빠진 학생들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었다.

     

    “여러분은 기프트 아카데미에 대해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오해…? 이곳은 세계제일의 실력자들이 교수진으로 모여든 세계최고의 교육기관. 세계제일의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잖습니까.”

    “아니에요.”

    “예?”

    “교수진은 세계제일이 맞죠. 하지만 여러분 모두를 세계제일의 인재로 양성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재능도 노력도 운도 모두 따라주는 자에게만 허락된 경지니까요.”

     

    평소에는 식물줄기를 몸에 칭칭 감고 나뭇잎으로 아슬아슬하게 성기나 가리는 변태치녀라서 감사한 교수님이라거나 “자, 다 썼죠?”라고 지 자랑만 하고 칠판의 필기를 슥슥 지워버리는 나쁜 년인 위어드 교수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것은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배워야할지를 알려주는 진정한 교육자였다.

     

    “세상에는 언제나 뒤처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연에서도 도태되는 동식물은 많죠. 저희는 아카데미를 거친 학생들이 저 밖의 사회에서 도태당하지 않도록 모든 상황에 대응 가능한 적응력이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답니다. 적어도 하급반에 한해서는요.”

    “그것이 오크노디 산하 추종자들의 부정행위와 무슨 상관입니까?”

    “가령 신성중앙제국의 황제가 영지전에 대한 칙령을 전달할 사자를 전장에 파견했다고 치죠. 보통 귀족들은 칙령이 도착하기 전에 영지전에서 조금의 이득이라도 더 보려고 욕심 부리는 선에 그칠 겁니다.”

     

    헥토르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상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유리하다면 조금이라도 많은 땅의 점령을, 불리하다면 결사항전의 의지로 이 악물고 농성을 한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졸업생들은 다를 겁니다. 여기 3년생에게 물어보죠.”

     

    위어드 교수가 돌무더기 사이에 파묻힌 선배를 한 손으로 끄집어내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려준다면 실습에 쓸 의형석을 삼키지 않고 몰래 뱉어서 팔아치우려던 죄는 눈감아주죠.”

     

    흙투성이 선배가 대답했다.

     

    “가짜 전령을 만들어 상대를 속이거나 적의 무기로 전령을 살해하고 황제의 분노를 사도록 음해할 겁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전령이 영지로 향하는 길에 호위를 보내거나 수로나 도로를 파괴하여 도착시간을 조절하겠죠.”

    “들었니?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들은 너희 선배 중에는 아무도 없단다. 무능한 주제에 고지식하기만 하면 절박하지 못한 것이지. 그런 것들은 자연도태 당해도 싸고.”

     

    위어드 교수가 가볍게 선배의 어깨를 툭툭 쳐주자 흙투성이 교복이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신이 난 선배가 얏호를 외치며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기가 무섭게 땅이 쑥 꺼지며 선배를 지면에 다시금 파묻었다.

     

    “의형석을 팔아치우려던 죄는 눈감아줬단다. 다음은 분필의 악마, 필기마녀 죽어라고 외친 죗값을 치르렴.”

    “…”

     

    선배와 위어드 교수의 대답은 헥토르와 추종자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규칙을 따르기만 해서는 능력이 부족한 자들은 그대로 도태될 뿐이다.

    살아남으려면 약자들은 온갖 지혜와 전략을 총동원해야만 했다.

    오크노디에게 붙어서 답을 훔친다.

    이 또한 전략의 일부.

    들키면 최소 생매장 N시간 수준의 징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저지른다.

    훔친 답안지를 모종의 수단으로 공유받는다.

    저지른 쪽이나 혜택을 받는 쪽이나 어지간한 각오로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군. 아직도 나는 카시아나 오크노디에게 맞서기에는 부족했던 건가.’

     

    헥토르의 눈빛이 변했다.

    도태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저지를 수 있는 광인에 가까운 눈으로.

    그 눈빛은 3학년들이 품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눈의 빛깔과 다르지 않았다.

     

     

    * *

     

     

    “여름방학 기간 동안에는 아카데미 외부로 외출할 수 있습니다. 단, 2학기 개학 기간에 맞추어 복귀하지 못하면 징계부터 휴학처분까지 강력한 페널티가 뒤따르니 이점 유념하길 바랍니다.”

     

    마하바라타 교수는 상급반 학생들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고는 해산을 외쳤다.

    학생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서로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논의하거나 본가로 돌아갈 채비를 갖추고 짐 가방을 질질 끌었다.

     

    “다들 저희 집에 놀러 오실래요?”

     

    그러던 차에 날아든 오크노디의 제안은 많은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오크노디네 집?”

    “재단의 소굴?”

    “악의 조직의 본진에?”

     

    도로시는 굉장히 두렵다는 얼굴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거, 거절하면 안 될까? 오랜만에 고향 숲에 록펠이랑 들렀다 오고 싶은데.”

    “싫으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파파가 모처럼 친구들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했다는데 아쉬워하겠네요!”

    “…선물? 무슨 선물?”

    “뭔지는 몰라도 아주 특별한 선물이라고 들었어요! 분명 다들 기뻐할 거라고도 했고요. 제때 받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거라고 하던데요?”

     

    마하바라타 교수가 공지를 전하던 것처럼 가볍게 말한 오크노디였지만 내용까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무조건 협박이잖아…’

     

    도로시는 울상을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중간고사와 겹치는 느낌이 드는 기말고사 에피소드 통스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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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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