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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8

       당황스러웠다.

       

       “너라도 살았으면 좋았잖아. 그런데 왜 죽은 건데. 왜 죽어서 여기로 온 거냐고!”

       

       로테는 펑펑 울어대며 나를 껴안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죽어서 사후세계에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예기치 못한 친구의 반응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우선 로테가 제대로 살아났다는 점에서 안도감이 들었고, 그다음으로는 묘하게 장난을 치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제아무리 마왕이 오고 있다지만, 처음부터 사실을 얘기해 주기엔 아까웠다.

       

       나는 속으로 큭큭대면서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그래도 같은 곳에 와서 다행이야. 나는 내가 지옥에 떨어질 줄 알았거든.”

       

       그러자 로테가 더욱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세계수를 유지보수하던 공무원들이 ‘쟤 뭐냐’라는 표정으로 쳐다볼 정도였다.

       

       그렇게 시큐엘이 중재를 하기 전까지, 로테는 장장 30분에 걸쳐 내 품에서 울고 또 울었다.

       

       대가로 지불한 수명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뭐야. 나, 산 거야?”

       

       시큐엘에게 이야기를 듣고 난 직후, 로테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그래, 우리 둘 다 살아있어.”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본래 감정을 표출하는 데 서투른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웃음이 끝없이 나왔다. 이러는 걸 보면 나도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상황이 전부 내 장난이었다는 걸 안 로테.

       

       그녀의 볼이 사과처럼 붉게 변했다.

       

       이후 로테는 기숙사로 돌아갈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고, 돌아와서는 이불에 머리를 박고 한참이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농담이었다니까. 그만 화 풀어.”

       – 화 안 났어.

       “그런데 왜 그러고 있는데.”

       – …….

       

       소녀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빼꼼.

       

       한동안 이불킥을 시전하던 로테가 머리를 슬쩍 내밀었다. 그녀의 볼은 여전히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고마워.”

       

       로테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날 구해줘서.”

       “우리 사이인데 뭘.”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됐어?”

       

       그 물음에, 나는 급속도로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영 좋지는 않아.”

       

       파스모의 세계수 습격 사건 이후로, 또다시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유피엘의 먼 친척인 윌버 피어바인 사제, 그들과 함께 세계수를 관리하던 사람들, 힘겹게 전투를 이어나가던 마도사들.

       

       그리고 견학을 온 학생들까지.

       

       “이번 일은 시작에 불과해. 마왕이 부활했어.”

       “뭐, 왜?”

       “로드스톤을 전부 빼앗겼어. 이건 내 잘못인데…….”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조금만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더라면.

       

       아니, 한때 비뚤어진 생각을 지니지만 않았더라면 세상이 이렇게 암울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콰앙! 하고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윤기 나는 자줏빛 머리카락에, 아담한 여우 귀와 여우 꼬리를 지닌 소녀.

       

       프레이였다.

       

       “야, 그게 왜 네 잘못이야!”

       

       쟤는 언제 여기 온 거야.

       

       성큼 다가온 프레이가 나를 나무라며 혀를 쯧쯧 차댔다.

       

       “너는 하나도 잘못 없어. 틸레트에 있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기껏 도와주고 구해줬더니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어이가 없다, 진짜!”

       “너…….”

       

       프레이는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나를 껴안았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볼살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그간 못했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돌아와 주어서 기쁘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는데. 속사포처럼 다다다 내뱉고 있던 탓에 전부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이것 봐. 네가 주었던 반지, 지금까지 끼고 있었어. 나는 믿고 있었다구. 네가 돌아올 거라는 걸 말이야!”

       

       하지만 진심만큼은 전해진다.

       

       다시 한번, 이쪽 편에 서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테도 웃으며 자기 검지를 보여주었다. 예술제 우승으로 받은 ‘정열의 반지’가 그 색이 바래지 않은 채 명휘하고 있었다.

       

       “프레이 말이 맞아. 로드스톤을 빼앗긴 것도, 마왕이 부활한 것도 네 잘못은 아니야. 알겠지?”

       “…….”

       “대답해 줘.”

       “알겠어, 알겠다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들었다.

       

       로테가 산뜻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우리 셋이 다시 모였잖아. 그동안 나와 프레이도 공부를 열심히 했어. 어느 정도 도움은 될 수 있을 거야.”

       

       그 말이 맞다.

       

       노예로 구르던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마음만 먹는다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터.

       

       “로테 말이 맞아! 마왕? 그까짓 게 뭔데? 네가 만든 그 폭탄으로 펑펑 터뜨려 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프레이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실실 웃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프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라 웃어주었다.

       

       “그래. 애초에 그걸 위해서 같이 연구한 거였지.”

       “맞아.”

       “오랜만에 머리를 맞대볼까?”

       

       곧 우리는 사담을 멈추고 공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제 막 아카데미 교수가 된 초짜 한 명과 학부생 두 명이 소곤거리는 일에 불과했지만.

       

       이 대화로 인해 세상의 운명은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

       

       

       세계수 습격 사건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 과정에서 많은 유족이 생겨났고, 당연히 이들은 나를 증오했다. 어제 분향소에 가도 되냐고 물었는데 강경히 거절당한 것이 그 증거였다.

       

       결과적으로.

       

       내 존재에 대한 엘프들의 평가는 반반이었다.

       

       – 뭐해? 감방 안 집어넣고!

       – 마왕이 부활하여 급박한 상황입니다. 일단 사면해 주죠.

       – 이 나라 법은 죽었습니까? 마수를 처벌하는 데 예외가 어디 있다고?

       – 정령왕의 비호를 받고 있잖아요. 이거, 잘못하면 여론이….

       

       의회에선 나를 감방에 넣느냐 마느냐를 두고 찬반 토론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말이 논의였지, 라디오를 틀어보면 뭔가 집어던지는 소리밖에 안 들렸지만.

       

       – 국민 여러분! 이 나라 민주주의는 죽었습니다.

       – 저기 저놈, 경질해. 당장 경질하라고!

       – 대통령께서 책임을 물으시고 자진 사퇴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리오니….

       

       “…에테르, 너는 뉴스 보지 마.”

       

       오죽하면 로테와 프레이가 그리 조언할 정도였다. 내가 상처 입는 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솔직히, 내가 욕먹는 건 그다지 상관없었다.

       

       주변 사람에게 불똥이 튈까 봐 걱정이지.

       

       특히 ‘마왕군 수뇌부=금안족’이라는 가설이 확실시되면서 금안에 대한 인식은 더욱더 나빠지는 중이었다.

       

       슬슬 나 말고 다른 금안족 소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카샤? 로즈마리?

       

       내 사랑스러운 동생들. 물론 그 아이들도 걱정이다.

       

       로즈마리는 제국에 묶여있다고 들었고, 아카샤는 비호하는 정령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중이다.

       

       아마 나도 곧 있으면 법원에 가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자들이 입원해 있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똑똑.

       

       – 누구세요?

       “선생님이야. 들어간다?”

       – 들어오세요.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2인 병실에서 두 소녀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한 명은 교과서를, 다른 한 명은 교양서적을 읽는 중.

       

       교과서를 읽고 있는 소녀는 유피엘 피어바인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금안족 엘프인 레니냐였다.

       

       두 사람은 중상에 가까운 경상을 입은 후 이렇게 입원했다.

       

       “몸은 좀 괜찮니?”

       “네.”

       “정령님 덕분에 거의 다 나아가고 있어요.”

       

       의사가 말했지. 시큐엘의 치유가 없었더라면 과다출혈로 죽었을 수도 있었다고.

       

       물의 정령왕에겐 정말이지,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도 부족하다.

       

       나는 두 학생과 한담을 늘어놓다가 슬쩍 말을 꺼냈다.

       

       “그런데 레니냐, 다른 건 괜찮니?”

       “어떤 것 말씀이신가요?”

       

       레니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던 책을 내려놓았다.

       

       “나 때문에 괜히 너까지 욕을 먹게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왜요? 선생님도, 저도 잘못이 없잖아요.”

       

       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으니 말이다. 성품이 여린 레니냐가 괜히 나와 묶여서 안 좋은 꼴을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

       

       레니냐도 이런 내 심정을 알아챘는지 미묘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뗐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무얼 걱정하시는지는 알 수 있어요. 사실 많은 사람은 성급하게 일반화를 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니까요.”

       “…….”

       “물론 금안족에도 이상한 사람이 있겠죠. 마왕군 소속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선생님과 저는 아니에요. 세상 사람들이 에테르 선생님을 괴물이라고 칭할지라도, 같은 금안인 저만큼은 선생님을 존경하고 존중할 거예요.”

       

       레니냐의 일장 연설에 나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이 맛에 교육자 하는 거구나.

       

       뭔가, 헤를라인 선생님의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그야, 선생님은 제 동지시잖아요.”

       “……?”

       

       뭐? 동지?

       

       “…갑자기 그 표현이 여기서 왜 나오니?”

       “여기, 이 책에 적혀있었어요.”

       

       레니냐는 그러면서 읽고 있던 책을 슬쩍 보여주었다.

       

       책이 전체적으로 붉은색이어서 처음에는 성인 소설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굳이 무슨 책이냐고 물어보지 않았었는데….

       

       “금안은 서로가 뜻이 맞는 한 서로가 동지이고 동무이며,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대할 땐 ‘동지’라고 지칭한다…….”

       

       이게 대체 무슨 책이야.

       

       “그게 대체 무슨 내용이니?”

       “금안족이 현재의 헤게모니에서 탈피하는 방법론을 담은 철학 서적이에요. 얼마 전 삼촌이 심심할 때 읽으라고 두고 가셨어요.”

       

       촤르륵, 하고 책의 페이지를 넘긴 레니냐.

       

       “선생님께서도 좋아할 만한 구절이 있을 거예요.”

       

       그녀가 책의 첫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대륙의 금안족이여, 단결하라…!”

       “잠깐, 거기까지.”

       

       뭔가 싸하다.

       

       나는 유피엘의 눈치를 살피며 레니냐의 말을 끊어냈다. 다행히 유피엘은 교과서를 복습하느라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책 좀 잠시 빌려줄래?”

       “물론이죠.”

       

       혹시나 싶어서 레니냐에게 책을 빌려 구절을 빠르게 훑었다.

       

       [금안의 역사는 종족 투쟁의 역사다.]

       

       [종족 투쟁은 곧 계급의 투쟁이다. 금안이 온전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선 스태프를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벼려야 한다.]

       

       [하이엘프들로 하여금 금안의 물결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우리가 혁명으로 잃을 것은 족쇄뿐이요, 얻을 것은 온 대륙이니.]

       

       “이거, 언제 나온 책이니?”

       “확인해 보니까 몇 달 안 되었더라구요.”

       “……쓰읍.”

       

       이걸 읽으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이래라저래라할 권리는 없지만, 레니냐가 혹시라도 강경한 어조로 쓴 책을 읽고 편협한 생각을 가지기라도 한다면….

       

       그러면 선생인 내 책임이리라.

       

       “일단, 책은 나중에 읽고 선생님과 이야기 좀 나누어 줄래? 혹시 시간 괜찮으면 말이야.”

       “저는 괜찮아요.”

       “유피엘도 이리로 오렴.”

       

       그래,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자.

       

       레니냐도 나름 천재 반열에 드는 친구고, 유피엘은 열정이 넘쳐서 장래에 큰일을 할 친구다.

       

       “마침 두 사람 모두 선생님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구나.”

       

       두 사람의 사이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다. 나는 유피엘과 레니냐를 모아놓고 일련의 계획을 발표했다.

       

       “혹시 선생님이랑 마법 하나 연구할 생각 없니?”

       

       잡다한 일을 맡기더라도, 인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사실 내가 병원에 찾아온 건 두 사람에게 이 제안을 하기 위함이었다.

       

       “어떤 마법인가요?”

       “마왕이 부활했다는 소식은 들었지? 그 녀석을 막기 위한 대규모 마법을 구축할 계획이야.”

       “……!”

       

       레니냐와 유피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할래요.”

       “하고 싶어요!”

       

       좋아. 이걸로 참여 인원수가 다섯이 되었다.

       

       비록 네 명 모두 학생에 불과하지만, 모두 출중한 능력을 지녔다. 연성이나 양산 작업에는 충분히 투입할 수 있겠지.

       

       나는 의욕이 넘치는 두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음을 고민했다.

       

       우선 연구단을 꾸리려면 정부, 의회, 그리고 여러 사람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걸 위해선 버멜의 도움이 필수적인데.

       

       “…….”

       

       그런데, 버멜이 오늘따라 도통 보이질 않았다.

       

       이런 중요한 시국에, 대체 어디서 무얼 하는 건지.

       

       

       **

       

       

       어둑한 시각.

       

       버멜은 정령계의 심부로 향하고 있었다.

       

       [사락, 사락.]

       

       바람의 정령왕, 에어리얼이 버멜의 안내자역을 자처한다.

       

       에어리얼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간 버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샘터에 도착했다.

       

       “후.”

       

       짧은 한숨.

       

       [……?]

       “할 겁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끄덕.]

       

       에어리얼은 못마땅해하는 표정이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정령계에는 아무나 발을 들일 수 없다. 오로지 대정령급 되는 존재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객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버멜은 에어리얼의 호의를 샀다.

       

       다른 누군가를 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그녀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까닭이다.

       

       에어리얼은 멀리 떨어져서 소년을 관찰했다. 그녀가 꽃을 꺾어 머리에 쓸 화관을 만드는 동안 시간은 휙휙 지나갔다.

       

       어느덧 24시간을 다 채웠을 때.

       

       […!]

       

       찰팍.

       

       샘터에서 청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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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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