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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8

    죽음에게 묻는다.

    모든것에 가치가 있다면, 무한한 것에는 어떤 가치가 있느냐고.

     

    죽음의 답은 이렇다.

     

    ‘불멸자의 수명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흑마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

     

    흑마법의 가치판단 기준은 여타 마법과는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

     

    결과가 항상 같은 가치와 교환되는 일반적인 학파들의 마법과 달리 결과를 내기 위해서 언제나 더 많은 가치를 필요로 하는 흑마법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가치는 즉, ‘상실’이었다.

     

    당신이 그 제물에게서 얼마나 큰 상실을 느끼느냐, 흑마법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데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이라는 현상 그 자체를 이용하는 흑마법은 교환이 아닌 상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흑마법은 언제나 결과보다 더 큰 가치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생명이 거래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수명이었다.

     

     

    수명이란 것은 즉, 삶 그 자체다.

     

    그런 ‘수명’을 건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저울에 올린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렇기에 수명은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누려온 것, 누리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누릴 것.

    이 모든 것은 삶이라는 길 위에 놓여진 것이고, 삶을 바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높은 가치를 지닐 수 밖에.

     

    그 탓에 수명은 언제나 높은 가치를 지녀 모든 생명들이 공통적으로 품은 가치이며 장작이 되었다.

    그것을 강제로 소모하게 만드는 검은 화염은, 가치를 집어삼키고 삶을 태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시키는 아주 강력한 흑마법이다.

     

     

     

    하지만, 그 수명에 끝이 없다면?

     

    그것은 삶의 가치를 전혀 의미 없는 것으로 바꿔버리고 만다.

     

    무한한 것은 무한한 값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절대로 고갈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수명을 100년, 1000년, 10000년을 바친다고 해도 잃는 것이 전혀 없다.

    영생의 개념은 무한하지만, 물질의 상실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소모의 개념은 어쩔 수 없이 유한하기 때문에.

     

    죽음에게 상실을 일으킬 수 없는 것에 대한 값은 무가치하다.

     

    ———

     

    검은화염에 대한 것은 세이어 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루크가 말한 것은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관점이었다.

     

    검은 화염은 불멸자를 태울 수 없다니?

     

    애초에 영생이라는 개념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 부터가 논리적인 오류다.

    누군가 어떤 법칙과 논리를 가져오더라도, 마법사들이 본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밖에는 받지 못하리라.

     

    죽음은 모든 생명에게 공통적으로 언젠가 찾아오는 끝이다.

    그 누구도 그것을 마음대로 극복할 수는 없다.

     

    자신 역시도, 그것을 극복할 수가 없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세이어는 자신을 죽지 않는 자라고 주장하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하, 농담은…… 영생은 불가능해.”

     

    영생이란 결코 물질계에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영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 마법에 존재하는 그 어떤 논리도,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는 방법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언젠가 닥쳐올 이 세계의 죽음도 마찬가지.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이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별다른 마법적 조작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혼자서 사그라져버리고 말다니!

     

    세이어는 계약마법을 꺼내 확인했다.

    그것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어떤 특이점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방금 저 꼬마가 내뱉은 말은 최소한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짓말은 아니었단 말이지…….’

     

    설마 정말로 불멸자인건가?

    그것 말고는 전혀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세이어의 표정이 점차 노골적인 흥분으로 달아오른 순간, 루크가 입을 열었다.

     

     

    “방금 내가 그대의 질문에 답했으니,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네.”

     

    계약엔 질문은 한번에 하나, 분명 그리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게 마지막 숨겨둔 수였다면, 내가 더 이상 그대에게 질문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더 이상의 대화는 루크의 흥밋거리가 되지 못했다.

     

    당초에, 심심해서 시작한 대화가 아니었던가.

    현재 그는 모든 시체를 잃었고, 마지막 수조차 방금 전 잃었다.

    만약 또 그에게 또 다른 기상천외한 타개책이 없다면 이제는 동등한 대화가 아닌 심문을 할 때.

     

    애초에 그에게 자신이 불멸자임을 알린 것 자체가, 그의 도주경로를 확실히 틀어막은 상태였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루크가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세이어는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몇 번 손가락을 튕겼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보았자 다른 곳에 예비로 숨겨 두었던 시체들도 반응하지 않는데다, 도주를 위한 공간이동마법도 시전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은밀하게 이 공간에 전방위적인 마법적 교란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도주도, 반항도, 심지어는 외부의 연락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마치, 안개에 옷이 젖어버리는 것 처럼 천천히, 자연스럽게…….

     

    “……설마, 대화를 시작한 건 이걸 노린 거였니?”

     

    루크는 말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하.”

     

    그는 이내 한 방 먹었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폭소했다.

     

    “하, 하하하하하!! 너, 보기보다 성격 나쁘구나?”

     

    그는 하는 수 없이 등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파각!

     

    ———-

     

    리브는 꽤나 섬세하고 정밀하게 세이어의 뒷통수를 가격했다.

    그러자 라이프베슬에 충격이 가해졌는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는 세이어.

     

    -털썩.

     

    세이어는 그렇게 별다른 반응도 없이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는다.

    얼굴에 씌워져 있던 안경이 튕겨나와 풀바닥을 굴렀다.

     

    제아무리 리치라고는 하지만, 마력의 사용을 봉한 장소에서의 충격에는 저항할 수 없다.

    마법이 무력화된 마법사는 이토록 허무하게 제압되는 것이다.

     

    “꽤 좋은 솜씨였다, 리브.”

    “…….”

    방금 전까지 시체들을 도륙내던, 게다가 숨겨져 있던 시체들도 모두 찾아내 전투불능으로 만들어버린 곰인형은 이내 루크의 칭찬에 쥐고 있던 돌을 저 멀리 치우고 감사를 표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경례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근엄한 척 기사의 경례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리브의 겉모습은 곰인형이었기에 귀여울 뿐, 그다지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은 아니다.

     

    사실은 리브를 그런 몸에 넣은 것도 자신이긴 하지만 말이다.

     

    루크는 그런 리브의 들어올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경례를 너무 그렇게 꼬박꼬박 할 필요 없다. 팔도 다리도 짧아서 잘 안되지 않느냐.”

    “…….”

     

    루크의 말에 리브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는 것이, 아무래도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닌 모양이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할 때인…….”

     

    루크는 순간 하던 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루크가 세이어를 향해 다가간 순간, 돌연 그의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그 광경에 당황한 것은 루크 뿐만이 아니었다.

    리브 역시도, 혹시나 자신이 실수로 죽여버린 것이 아닌가 불안한 듯 루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분명 주문은 ‘죽이지 말 것’이었으니 말이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처럼 얼굴이 녹고 있는 세이어.

    루크는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쪼그려 앉아 그의 머리카락을 쥐고 얼굴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루크가 들어올렸을 때는 이미 이마와 코뼈는 얼굴 뼈가 보일 정도로 흘러내린 상태였다.

     

    흘러내리고 있는 피부를 찍어 바라본 루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라이프 베슬에서 이미 영혼이 떠났군.”

     

    루크의 말에 자책하는 듯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땅에 짚는 리브.

    굉장한 허무함과 좌절감이 느껴지는 자세다.

     

    “하하, 그대의 잘못은 아니다. 이건, 녀석이 직접 자살을 택한거야.”

    “……?”

     

    루크의 말에 리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리치가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나?

    죽음이 그토록 싫어서 타인의 생명을 취해야만 연명할 수 있는 언데드로 영락하면서까지 이어온 삶이다.

    그런 삶을 이토록 허무하게 버린다는 것은 리브로써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떻게든 삶을 붙잡고 싶었기에 반대로 죽음의 사자가 되어버린 것이 리치 아니던가.

     

    하지만 루크는 그것의 의미를 알았다.

     

    “거짓된 죽음으로 도망친 게지.”

     

    미리 만들어둔 새로운 라이프베슬에 자신의 영혼을 옮겨, 새로운 기회를 노리는 거다.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듯이 말이다.

    하지만 라이프베슬 하나가 필요로하는 자원은 결코 만만치않다.

    그토록 죽음이 흔하던 과거에조차 많아봐야 한 두개 정도를 준비해두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허허, 현대에서 예비용 라이프베슬을 준비해둘 정도라니…….”

    “……!”

     

    루크의 말을 듣자, 리브는 그럼 도망친 게 맞지 않느냐며 어떻게 하냐는 듯이 허둥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많이 놀란 모양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그런 것도 대비하지 않았겠느냐.”

     

    과거에도 그런 식으로 그 비루한 삶같지도 않은 삶을 연명하고자 그런 일을 벌이는 경우도 많았다.

    루크는 당연히 그 대응책도 이미 상정을 해 두었다.

     

    “녀석의 영혼에는 아직 계약마법이 묶여 있지.”

     

    계약마법은 본래 ‘영혼’에 새겨지는 마법이다.

    그것을 서클과 마나로 살짝 비틀어낸 것이 바로 ‘마나의 맹세’의 본질.

     

    루크는 처음 녀석과 계약을 할 때, 살짝 그 틈을 조작해 대상을 세이어의 영혼에 묶어두었다.

     

    ‘어차피 마나폭주를 일으켜도 예비 육신이 있으면 무의미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따라서, 녀석이 육체를 버린 지금도 아직 계약은 유효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질문할 차례’.

     

    “간단한 모순 하나면 트리거가 발동될게다.”

     

    루크는 씨익 웃었다.

     

    영혼에 새겨진 계약에 답할 수 없는 질문.

    그것은 마치 우물에 독을 푸는 격이다.

    어떤 라이프베슬로 몸을 옮기더라도 그 질문은 그가 ‘사고하거나 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반드시 활성화될 것이고, 질문에는 답을 꺼낼 수 없으니 영원히 입을 다물고 사고하지 않고 살거나, 그 삶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겠지.

     

    마법사가 말과 사고를 잃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끝장을 의미했다.

     

    ‘영혼인 채로 도망치지 않았다면 계약마법의 수정도 대응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야.’

     

    사실 이것은 가끔 있는 고위급 리치를 상대할 때 일일이 모든 라이프베슬을 파괴하기 귀찮았던 루크가 떠올렸던 꼼수였다.

     

    영혼은 본래 삶이 끝나고 남은 흔적과도 같은 것.

    지나가고 남은 흔적은 단지 존재할 뿐,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때문에 그 자체엔 어떤 현상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지 못하기에 계약마법의 수정에는 절대 대응할 수 없다.

     

    루크는 손에 묻어있던 불쾌한 액체를 풀바닥에 닦아내며 말했다.

     

    “아무튼, 리브. 그러니까 너무 자신을 탓하진 말거라.”

    “…….”

     

    안심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곰인형.

    루크는 그런 리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 그럼 이걸 옮겨볼까.”

    “…….”

     

    루크의 중얼거림에 리브는 어떻게 할 거냐는 듯 루크를 빤히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이 시체를 메고 한참을 걸어서 집에 가져갈 생각은 아닐 테니.

     

    “물론, 내게 다 생각이 있지.”

     

    루크는 그런 리브의 시선을 받고는 가방에서 월영석 목걸이를 꺼내 흔들어보인 뒤에, 거기에서 ‘열쇠’를 뽑아내며 말했다.

     

    “자, 나는 아공간을 열 테니, 너는 그의 물건들을 챙겨두거라. 이 기분나쁜 액체에 오염되지 않게.”

    “…….”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 그럼 집에 장난감을 가져갈 시간이구나!”

     

    간만에 연구할 거리가 생긴 루크의 목소리는 굉장히 신이 난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험이 끝나고 장난감 집에 가져가서 갖고 놀 생각에 벌써 신이 난 루크 어린이…!

    네, 결국 불꽃튀는 두뇌싸움은 제 머리에서 불꽃이 튈 지경이라 어쩔 수 없이 대폭 축소시켰습니다!
    사실 중요한 건 전투가 아니니까!
    음… 그래. 루크가 귀여우면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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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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