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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8

       엘라가 상자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은 강당의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함성과 갈채를 쏟아냈다. 이미 참가자들 대부분은 미니 게임을 기권한 상태였기에 그들은 경기장에서 들려오는 소식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던 참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앞선 팀들이 상자를 열었을 때보다 더 열광적이었다. 기대받지 못하던 존재가 예상을 뒤엎고 성공하는 이야기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쉬웠다.

         

       그렇다고 괴물 서커스를 향한 관객들의 지지가 모두 그런 심리의 작용으로 인한 것이라 할 수는 없었다. 엘라가 보였던 활약은 분명 놀라운 것이었다. 그녀의 기지와 기술은 레카체프의 교수들도 감탄했을 정도였다.

       다들 그녀를 오늘 시합의 주인공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와 싸웠던 서커스단 사람들도 마지못해 인정하는 바였다.

         

       “솔직히 엘라가 너무 대단했어. 그녀가 시합을 제패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렇지. 하지만 나는 미니 게임에 참여한 단원들의 활약도 놀랍다고 생각해. 평균 5, 6등을 꾸준히 찍었잖아?”

       “확실히 그렇군. 이 게임은 탐색 팀만 잘한다고 이기는 게 아니니까.”

       “다시 봤어. 기이한 외모만 믿고 설치는 자들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잘했다, 괴물 서커스!”

         

       관객들은 괴물 단원들에게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때로는 그들의 이름을 외치기도 했다.

         

       단원들은 처음 받아보는 성원에 다들 어쩔 줄 몰라 했다.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도 그들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괴물’로서였다. 초상화를 찍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괴물 흉내를 내야 했다. 우몬 같은 경우는 우둔하고 난폭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한다는 설정이라 으르렁거리면서 고기 타령이나 해야 했다.

         

       손님들은 그들을 신기한 짐승인 것처럼 대했다. 일부 무례한 인간들은 저 괴물들을 어떻게 ‘조련’했냐며 묻기도 했다. 나와 엘라는 그들 스스로 ‘훈련’했다고 답해주었다.

         

       결국, 괴물 서커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은 어디까지나 나와 엘라를 위한 말이었다. 단원들은 아무리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어도 그것이 마냥 즐겁지만 않았을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단원들은 원래 그렇게 행동하는 괴물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괴물 캐릭터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력 있는 곡예사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나는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보육원 시절, 나는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해 왔었다.

       전능교에서는 ‘모금 활동’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앵벌이였다. 대학가나 번화가 앞에서 ‘친구들을 도와주세요’ 푯말을 목에 걸고 앉아 중국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100장에 3만 원에 산 기념물 스티커를 1장에 5천 원을 받고 파는 것을 도왔다.

         

       “아이고, 이렇게 어떻게 산대.”

       “안됐어요, 쯧쯧.”

       “이봐요, 여기 5만 원이요. 스티커는 안 줘도 돼요.”

       “피부도 좋고 살도 잘 올랐네. 여기는 애들을 제대로 키우나 봐요.”

         

       나는 그들에게 나처럼 활동성이 떨어지는 장애인은 성장기에 살이 오르는 것은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전능교 직원들이 내게 요구한 것은 돈을 받을 때마다 어눌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돈을 낸 사람들은 그것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두들겨주는 권리를 획득한 사람처럼 굴었다.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호의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나 자신도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방송을 시작할 때 ‘토치 댄서’의 캐릭터를 그렇게 까불거리게 잡은 것도 그 시절에 대한 거부감이 한몫했다. 시청자들에게 불우한 모습을 보여주고 후원금을 받는 것은 그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원들에게는 ‘괴물 취급’이 그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사람들에게서 이런 갈채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그리고 내가 그들의 단장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유라크네, 밴딕, 한스텐, 두네돌, 세브람, 우몬.”

         

       내게 이름을 불린 단원들이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들을 향해 최대한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단원들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잠시 후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봤다.

       우몬은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눈물을 쏟아냈고, 트라이머리 형제는 울음을 참는 듯 턱에 힘을 주고 내 시선을 피했으며, 밴딕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젓더니 입을 꾹 다물었고, 유라크네는 나를 향해 은은한 미소를 보내며 눈가를 훔쳤다.

         

       그래. 말은 필요 없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곧 2번 경기장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저 원더스타인 단장님, 지금 당장 현관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죠?”

       “그게 말입니다. 장애물이었던 계단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엘라 선수가 그 안에 갇힌 것 같군요. 아, 시합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엘라 선수가 트로피에 손을 댄 시점에서 괴물 서커스의 승리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 흉악한 함정과 장애물들을 격파한 엘라가 벽이 좀 무너진 걸로 다쳤을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내가 엘라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을 때였다. 음량을 최대로 증폭시켜도 마찬가지였다. 하다못해 신음이나 숨소리라도 들려올 법 한데도 조용하기만 했다.

         

       설마 돌에 맞아서 기절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설마…….

       나는 불안감에 얼른 단원 관리 창을 띄어봤다.

         

         

       이름: 엘라

       나이: 17

       호감도: 30 (다음 보상: 호감도 50)

       칭호: 부단장

       직업: 맹수조련사

       특성

       : [인스피라-스피릿 링크], [인스피라-모자 마술]

         

         

       그녀의 상태창은 초록색인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달리 회색이 되어 있었다. TTT 원작에서 프로필이 회색으로 표기되는 것은 이벤트 특성상 해당 서포트 캐릭터를 사용할 수 없을 때 나왔다.

         

       여기 와서 나는 단원 프로필이 회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딱 한 번 겪어봤다.

       그것은 3개월 전, 드발체프를 떠나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때, 단원들은 자카누바 무리와 싸우느라 크게 다쳐 있었고, 성녀 발렌티나는 그들의 몸에 성침을 박아 넣어 몸을 회복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때, 나는 단원 관리 창을 띄워두고 초조하게 엘라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사신의 낫에 찔린 그녀에게 이상한 특성이 부여되지 않는지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몇몇 단원들의 상태창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성침이 몸에 박히는 순간, 프로필에 회색으로 물들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금방 원작의 시스템을 떠올렸다.

       회색. 이 캐릭터는 현재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에 나는 그들에게 채팅을 걸어 봤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의상실 기능 역시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진단 기능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교회 사제들이 쓰는 빛의 힘은 마신의 힘을 차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퇴마사들은 범죄를 저지른 마도사들을 체포할 때 그들의 몸에 성정을 박아넣었다.

         

       데볼루트도 발렌티나가 쓰는 빛의 창에 맞으면 사멸했었다. 이 상태창 역시 마신이 준 것이라면 정교회의 힘 앞에 무력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때 일부러 발렌티나에게서 내 몸에도 성침을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몇 가지를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빛의 힘에 몸을 관통당한 상태에서는 상태창의 기능 대부분이 먹통이 되었다. 데볼루트 역시 성침이 박힌 곳 근처에 흘려보내면 반발을 일으키다가 소멸해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내 육체적인 힘이나 재생력에는 조금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활력이 돋게 했다.

         

       즉, 정교회의 힘으로 차단되는 것은 마신의 힘뿐, 마신의 힘으로 생체를 조작했던 결과까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상태를 가리켜 ‘오프라인’이라고 불렀다. 인터넷이 끊겨도 로컬에 설치한 게임은 실행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레카체프 학교는 한때 대성당이었던 곳이었다. 건물 안쪽에 성스러운 힘이 강한 구역이 있다고 하면 엘라의 현재 상태가 설명됐다.

         

       “단장님!”

         

       저 앞에서 유라크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그만 휠체어 미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다. 나는 그녀에게 어서 엘라가 있는 곳으로 가보라고 손짓을 한 후에 바퀴를 손으로 굴려 그녀의 뒤를 쫓으려 했다.

       그러나 얼마 가기도 전에, 누군가가 내 휠체어의 손잡이를 붙들었다.

         

       “원더스타인 씨?”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의 키는 나와 비슷했지만, 덩치는 내 2배는 되어 보였다.

         

       “저희랑 함께 가주실까요?”

         

       3명의 사람이 더 나타났다. 그중 여자 둘은 클라라나 레이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고, 한 명은 우몬보다 두세 살 많아 보였다.

         

       “당신들은 누구시죠?”

       “저희가 엘라를 붙잡았습니다.”

         

       설마 방금 일어난 건 사고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놈들은 도대체 누구지?

         

       나를 노려보는 그들의 눈빛은 차가웠고 경계심에 가득 차 있었다. 아마 이런 상황에서 느긋하게 웃고 있는 내 여유로움을 수상하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같이 가지요.”

         

       일단 이들이 엘라를 잡아갔다면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순순히 따랐다.

         

       한 명이 내 휠체어를 미는 동안, 나머지는 경기장 방향으로부터 내 몸을 가렸다. 4명이 딱딱 호흡을 맞춰 걷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이었다. 아무래도 만만한 놈들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단원들에게 현재 상황을 알릴까 하다가 말았다. 일단 이들이 누군지부터 알아야 했다. ‘검은 마도사’를 알고 온 것이라면 다른 단원들 모르게 처리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엘라가 지금 오프라인 상태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그곳에 도착하면 상태창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나는 남은 데볼루트를 육체 개조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이런저런 특성들도 준비했다.

         

         

       ***

         

         

       레이나는 사회자가 시험 종료를 알리는 순간, 황금 카니발 진영에 잠시 다녀왔다. 오늘 이곳에 오면서 싸 왔던 자신의 짐을 챙기러 간 것이었다.

         

       단원들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덕담 한마디씩 건네주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아버지 되는 사람은 후원자 측과 얘기하면서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의 태도가 어찌나 싸늘했던지 오히려 대화하던 상대방들이 레이나 쪽을 흘끔거리며 불편해할 정도였다.

         

       떠나는 가짜 딸에게 더는 줄 관심도 없다는 것일까.

       자신도 이대로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레이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다가가 기습적으로 뒤에서 꽉 껴안았다.

         

       “이익!”

         

       지몬은 설마 그녀가 그럴 줄은 몰랐는지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버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그를 떠났다.

       지몬은 험악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그는 뭔가 말할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그녀에게서 시선을 뗐다.

         

       ‘이걸로 다시는 볼 일이 없겠지.’

         

       레이나는 아쉬움이 뒤섞인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이제 자신은 괴물 서커스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고 현장으로 떠난 동료들을 뒤쫓아 강당 밖으로 나왔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도 그녀는 정확히 원더스타인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단장님?’

         

       그녀는 그가 경기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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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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