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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8

        

         

       예로부터 수호라는 것은 삿된 것을 막고 물리치며 쫓아내는 것.

         

       그렇다면 수호를 위한 나무는 어떤 힘을 낼 수 있는가?

         

       “저주의 나무야, 악령을 먹고 자라는 나무야. 뿌리는 거꾸로 뒤집혀 땅으로 가지를 뻗는 것 같고, 뻗은 가지는 하늘에 뿌리를 내리는 것 같은 나무야. 위와 아래를 뒤집고 저주를 품고 자라나 뿌리를 뻗으라.”

         

       진성은 나무에 손을 대고 주언(呪言)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무는 얼음장에서 꺼내오기라도 한 듯 섬찟한 냉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특히 인형을 꺼냈던 틈새에서는 사람을 얼려버릴 정도로 끔찍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치 얼어붙은 곳에서 온 괴물이 입김을 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잎사귀에 피를 머금은 이슬이 굴러 땅을 적시고, 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땅속으로 뻗는 가지에 흘러 양분이 되리라. 흥건한 피는 혈관처럼 몸을 타고 흐르며 냄새를 풍기고, 틈새 사이사이에 흐르는 바람은 절규가 되어 바람결에 흩어지고 부서지기를 반복하며 무의미한 고통을 반복하리라. 뿌리에서 열매가 열리되 그것은 구멍이 뚫려 있어 오감이 살아있을 것이요, 기묘한 열매가 속삭이는 소리가 온갖 짐승의 귀에 닿으리라.”

         

       나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나무가 아니라 나무로 위장하고 있던 생명체라도 되는 것처럼 꿀렁꿀렁 움직이며 제 몸통을 이리저리 비틀었으며, 가지를 촉수처럼 움직이며 보는 것만으로 역겨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뿌리 역시 뱀처럼 움직이며 땅속으로 파고들었고, 흙에 머금은 재를 먹어 치우며 뿌리를 점차 길게 뻗어나갔다.

         

       길게.

       아주 길게.

         

       뱀이 한계까지 제 몸을 쭉 늘리는 것처럼 늘어나고, 그렇게 가늘어진 몸은 다시 굵어진다.

       그리고 그 굵어진 몸은 다시 한계까지 가늘어지며 길이가 늘어나고, 다시 굵어지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뱀이라기보단 벌레에 가깝게 보이기도 했고, 벌레보다 더 원시적인 생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길게 뻗어나간 뿌리는 담벼락을 따라 저택을 빙 둘렀다.

       뿌리는 빠르게 뻗어나갔고, 곧 담벼락을 감싸는 형태가 되었다.

         

       뿌리는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자 방향을 바꿔 안쪽으로 스물스물 움직이며 세를 넓혔다.

         

       나무는 정원을 두르는 몇 겹의 원을 만들고 나서야 성장을 멈추고 뿌리를 갈무리하였고, 대신 넘치는 양분을 위쪽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꿈틀.

         

       나무가 양분을 이용해 진행하는 것은 바로 의태(擬態)였다.

         

       징그럽게 꿈틀대던 모습을 숨기고자 딱딱한 외피로 제 몸을 감쌌고, 평범한 나무처럼 색을 물들였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눈알 같은 것을 솟구치게 했다가 그것을 나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옹이처럼 위장했고, 자유자재로 신축하며 사람 하나는 너끈히 찔러 죽일 수 있는 가시는 이리저리 뭉치며 나무줄기로 위장했다.

         

       그리고 촉수처럼 꿈틀대었던 가지는 때에 맞지 않은 싱그러운 초록빛 잎사귀를 무성하게 자라나게 하였고, 그 사이사이로 향기 없는 꽃을 피워내었다. 그리고 가지 사이사이에 기생식물로 보이는 덩굴을 만들어내었는데, 보기에만 기생식물일 뿐 실제로는 나무의 일부이자 나무가 공격용으로 사용할 무기였다.

         

       ‘훌륭한 귀목(鬼木)이 만들어졌구나.’

         

       진성이 만든 것은 수호목이다.

       집안을 수호하기 위해 나무에 역할을 부여하고, 힘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수호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적군과 아군 구분은 할 수 있어야 하는 법.

         

       아군을 구별하고, 적을 구별하려면 당연하게도 최소한의 자아(自我)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무가 그 정도의 자아를 획득하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기나긴 세월과 함께하며 영성(靈性)을 획득하거나,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가 그러했듯 숭배의 대상으로 추앙받으며 신체(神體)가 되거나, 아주 특별한 기적이 있어 요선(妖仙)이나 요괴(妖怪)로 거듭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안에 귀신이 깃들어 나무와 하나가 되거나.

         

       진성이 한 방법은 바로 마지막의 것이었다.

         

       귀신과 나무를 결합해 귀목(鬼木)으로 만드는 것.

         

       하지만 그냥 귀목으로 만들게 된다면 나무에 깃든 악령이 온갖 패악질을 부리고 다닐 것이 자명한 일.

       그렇기에 진성은 악령을 가루로 만들어 그것을 나무에 먹였다.

         

       악령이 주도권을 잡을 수 없도록 정신을 완전히 박살 내고, 오직 그 영양분만을 흡수시켜 나무를 진성의 의도대로 휘두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러한 진성의 주술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 나무는 귀목의 성질을 그대로 품고 있으되 사악함이 없으며, 진성이 주입한 명령에 따라 저택의 구성원을 지키는 수호목의 역할을 충실히 행할 존재가 되었다.

         

       물론 사악함이 없다고는 하나 귀목이 품고 있는 잔혹함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니기에,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저택에 들어오는 ‘적’은 좋은 꼴을 볼 수는 없으리라.

         

       ‘귀신이 품은 음기를 가지고 있으니 사람에게 추위를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요, 음기가 더 강해지면 선선한 가을에도 사람을 홀려서 얼어 죽게 할 수 있겠구나.’

         

       게다가 덩굴을 움직여 사람의 목을 매달 수도 있으며, 가시를 뻗어 심장을 꿰뚫어 죽일 수도 있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음기를 이용해 적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중간중간 섬찟한 느낌을 들게 만들어 오롯이 전투에만 신경 쓸 수 없도록 방해하기도 하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귀목이 귀신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악령 여럿을 갈아서 만들었기에 그 자체로 강력한 영적 능력을 품고 있을 것이며, 자신보다 약한 귀신 정도는 꿀꺽 삼켜서 자신의 양분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게다가 그가 주언으로 읊은 대로 귀신의 머리통을 열매처럼 매달아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테니….

         

       아마 어지간한 악령과 악귀는 저택에 범접조차 할 수 없으리라.

         

       아무리 정신이 돌아버렸다고 한들 괴물 아가리에 제 몸을 밀어 넣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선물도 줬으니,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겠지.’

         

         

         

        * * *

         

         

         

       수호목을 만든 후 진성은 바쁘게 움직였다.

         

       저택에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저택의 구성원들은 그러한 진성의 외유에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응? 오라비가 이사 준비한다고? 그래? 근데 오라비는 어차피 저택에 있어도 별로 볼 일이 없잖아?”

         

       진성이 저택에 있으나 저택 밖에 있으나 보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불참하고, 저택을 돌아다니거나 외출을 활발히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사용인들조차 자신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집에 돌아오면 가끔 마주치는 것 말고는 자신의 방에 계속 틀어박혀 있거나, 아무도 모르게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곤 하니….

         

       이미 저택의 사람들에게 박진성이라는 사람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관측하기 전에는 저택 안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존재.

         

       가끔 지나가다 보기라도 한다면 ‘아, 오늘 좋은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희귀하게 목격되는 존재였다.

         

       물론 예전에는 이것이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다.

         

       진성을 보는 것이 ‘희귀하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드물게 된 것은 그가 회귀한 후부터였다.

         

       예전의 경지를 회복하고 주물을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것은 물론, 러시아나 일본 등의 외국을 쏘다니며 짧게는 며칠부터 길게는 몇 개월 단위로 자리를 비움에 따라 저런 말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에 진성의 이사 준비는 저택에 머무르는 사람들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진성이 떠나면서 생긴 빈자리에 허전해하기에는, 이미 진성의 빈자리가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들이 진성의 이사에 대해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유는 또 하나가 있었다.

         

       “학교 통학하는 길에 건물이 있던데….”

         

       그것은 진성이 저택을 나간다고 하더라도 연이 끊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양훈이 진성을 식구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듯, 이미 진성은 그들의 일부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진성이란 이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찬 식구를 독립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식구의 연은 집을 나간다고 해서 끊기지 않는다.

       핏줄은 같지 않되 그는 이미 그들의 가족이었으며, 가족은 아무리 멀리 떨어진다고 한들 언제든 반갑게 찾아갈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게다가 이양훈이 진성에게 준 건물은 이아린과 이세린이 언제든 찾아가기 쉬운 위치에 존재하기까지 했다. 그녀들이 학교에 갈 때 사용하는 통학로 근처에 존재했다.

         

       이아린과 이세린은 박진성이 나가면 혹여 사이가 멀어질까 걱정하고 있었고, 이양훈은 둘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주기 위해 그녀들이 찾아가기 쉬운 위치의 건물을 진성에게 준 것이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이세린과 이아린은 심심할 때마다 건물에 찾아올 수 있었고, 어쩌면 저택에 있을 때보다도 진성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아질 수도 있었다.

         

       물론 건물의 어디까지 들어올 수 있느냐는 진성의 의지에 따라야 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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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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