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78

     제로스 바르셀(황금)의 공중강습 이후, 다른 비룡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인트 지오가 나를 노리기 위해 따로 대규모 병력을 준비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제로스 바르셀 한 기만 보내고 실패하는 바람에 습격 계획을 접은 건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황금으로 된 배로 노스트럼 전역을 날아다니며, 우리는 비행선의 안에서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마도스크린을 통해 지상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저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스타시아?”

     “…위험하다는 생각?”

     아스타시아는 스크린에 비친 사람들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상 250m 정도 되는 높이에서 금화 1골드만 떨어져도 그게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될텐데, 저렇게 두 팔을 든 채로 서 있는 건 황금을 원한다는 거겠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

     오로솔 아카데미 방향으로 갔다가 그대로 남쪽으로 꺾어 날아가는 동안, 많은 왕국민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치켜들었다.

     황금의 비행선에 놀랐기 때문에?

     놀랄 법도 하다.

     하지만 저들이 두 팔을 벌리며 황금의 노예들마냥 따라온 건 황금덩어리가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

     “저들 모두, 하늘에서 금가루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겁니다. 황금의 노예는 무수히 많이 나오고 있지만, 민간인이 함부로 제압할 수는 없으니까요.”

     “대부분 노스트럼의 영웅들이니까…최소한 상급 기사가 아니라면 잡을 수 없죠.”

     “예. 그렇기에, 일반 백성들의 삶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황금이 제국 경제를 크게 뒤흔들고 황제가 직접 나서서 억제하여야 할 정도로 넘쳐나지만, 정작 그게 일반 백성들에게로는 두 달이 지난 지금도 퍼지지 않고 있다.

     위험하기 때문.

     황금의 기사가 순순히 죽어준다면 뒤에서 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치든 아니면 칼로 찌르든 어떻게 죽일 수 있었겠지만, 그랬다가는 황금의 기사들은 바로 반격을 날린다.

     아마도 지브롤터를 죽이러 가는데 방해하려는 지브롤터의 하수인으로 인식할 터.

     “백성들 입장에서는 원통하고 억울하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매국노 선언’ 때문에 피해는 전국민이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오로솔 아카데미에서도 강의 도중에 강의실에서 황금의 영령이 솟아나는 바람에 강의가 중단된 적도 있었어요.”

     “공동묘지에서 솟아나는 걸 보고, 자기 조상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노예가 되어 지브롤터로 죽으러 가는 모습을 보고 원통해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들을 어떻게 좀 막아보려고 하다가…안 좋은 일을 당한 사람들이 꽤나 많았죠. 안타깝게 생각해요. 그리고 동시에,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황금이 된 건 우리 조상님인데, 왜 그 황금을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도 모를 황금 사냥꾼 놈들이 차지를 하고 그러냐.”

     노스트럼에 만일 제국신문과 같이 신문사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면, 아마 지브롤터 경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억울한 상황에 대하여 노스트럼 전체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 다들 까무라쳤을 겁니다. 조상님의 무덤이 갑자기 뻥 뚫리더니, 안에서 조상님의 시신이 황금으로 차올라서 지브롤터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죽은 조상의 황금언데드화.

     “그것이 마법이나 어떤 기적에 의한 일이든 뭐든, 조상님이 쓰러져 황금이 남으면 그 황금은 누구의 것이 될까요? 그 황금을 다시 무덤에 묻으려고 할까요, 아니면 그 황금을 처분해서 굶주린 자식을 먹일 음식을 살까요?”

     그것이 설령 거짓된 황금이라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는 그 황금이라도 얻어서 팔아치운다음 빵 한 조각이라도 먹고 살기를 바란다.

     “합리화할 겁니다. 조상님들이 비록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명령에 의해 황금으로 부활하였지만, 황금을 남긴 건 전부 후손을 위해서 남긴 거라고. 죽어서도 우리를 보살펴주려고 하는 거라고.”

     조상 중에 노스트럼을 수호하는 영웅이 있었다는 건 반갑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지금 당장 집안의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세워주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당장, 집에 필요한 돈으로서.”

     가난이 질병이라면, 그 질병을 치료해주는 약은 황금이다.

     가난한 자에게는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법이지만, 당장 움직일 힘도 없는 이를 위해서는 입 안에 어죽을 만들어 미음처럼 먹여줘야하는 법이다.

     “황금은 분명 덩어리지만, 노스트럼에서는 화폐입니다. 500년 동안 이어져내려온 전통과 역사죠.”

     황금이 그렇다.

     “그런데 그 황금이 후손이 아닌 다른 이들, 특히 ‘사냥한 이들’에게로 넘어간다면 어떨까요?”

     “화가 나고, 억울하겠죠.”

     “예. 정작 자신들에게는 황금의 노예가 된 조상을 다시 저승으로 보내거나 성불시킬 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유권을 주장한다고 한들, 노스트럼에도 제국에도 시신의 몸에 차오른 황금에 대한 소유권에 대한 해석은 적어도 당장은 없어요. 적어도…지금 당장은 급하니까, 황금의 영령을 사로잡은 사냥꾼에게 그 처분을 맡기는 편이죠.”

     상급 기사 수준에 이르는 황금의 영령을 쓰러뜨릴 수 있는 건 그만한 힘을 가진 기사나 사냥꾼을 다수 운용할 수 있는 사람들 뿐.

     “많은 귀족가문들이 황금사냥꾼을 고용했어요. 황금여명은 몰락했지만 거기에 끈을 대고 있던 기사들 중 일부도 살아있고, 제국에도 황가에 충성은 하지만 군인이 아닌 용병 신분인 폭력배들이 존재하죠.”

     “전자는 롤랜드 후작가에 흡수되었고, 후자는 세이레네 백작이 고용한 사설 용병의 형태로 노스트럼에 들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해요. 순수한 의미에서 거짓된 황금의 범람을 막고자 하는 이들은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에서 파견나온 이들과 지브롤터 기사단 뿐이죠.”

     “예. 모르가니아마저도, ‘일단 거짓이고 뭐고 황금은 모아둬야한다’라는 상황이니.”

     그 모르가니아마저도 황금의 범람을 막자는 의견에 동의하기는 하지만, 황금을 당장 시장에서 퍼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모르가니아의 빈 창고에 저장해둬야한다는 입장이다.

     적이었다면 헛웃음이 나올 소리였지만, 아군이니까 넘어갈 수 있다.

     원래 내가 하면 동화 속 사랑 이야기고, 남이나 적이 하면 당장 그 목을 베어넘겨야 할 치정극일 뿐이니까.

     “아스타시아.”

     즉.

     “황금은, 여전히 부와 권력의 상징입니다.”

     현재, 황금은 전부 권력자에게로 몰리고 있다.

     “황금 자체가 너무 많아진다는 것에 대한 우려로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는 있지만, 황금이 민간에 퍼지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민간에서 황금이 퍼지는 건 ‘진짜’ 아녜요?”

     “그렇습니다.”

     거짓된 황금은 황금의 영령을 사냥하여 그 황금혈액을 챙기는 이들에게로.

     진짜 황금은 바르셀로나 금광에서 직접 땀을 흘려가며 곡괭이질을 한 광부들에게로.

     “물론, 이제는 기존의 방식대로 땅에서 채광한 황금이 진짜 황금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일이 분석을 해봐야 한다는 것 자체가 황금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증거겠죠.”

     “…제국은 그 문제에 대하여, 딱히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 않아요?”

     아스타시아가 쓴웃음을 짓는다.

     “그 동안 위조화폐로 몰래 빼돌린 금화가 얼만데.”

     “거기까지 따지고 들어가려고 한다면, 세이레네 남부 해협의 해적섬에서 해적이라는 이름의 해군을 운용하면서 배를 나포하고 빼앗았던 것까지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거, 아마 언급하기 힘들 걸요?”

     아스타시아는 뚱한 얼굴로 답했다.

     “합스베르크 폐하께서는 워낙 유능하신 분이라, 그런 흠이 잡힐만한 건수는 남겨두지 않는 분이시니까요.”

     “아쉽군요. 그걸 약점으로 걸고 넘어진다면, 세이레네 쪽에 있는 폭탄을 하나 터뜨릴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세이네레에 뭔가 수작을 부리셨어요?”

     “아직 수작이라고 할 건 아닙니다. 하려면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그러기에는 눈치가 보여서.”

     “누구 눈치요?”

     나는 말 없이 아스타시아를 가리켰다.

     “저요?”

     “예.”

     “여자를 상대로 뭔가를 하는…아하.”

     아스타시아는 내가 자신을 가리키자마자 바로 손가락을 튕겼다.

     “비운의 백작 영애를 꼬드기려고 하셨구나?”

     “미인계는 언제든지 통하는 법이죠.”

     “하지만 아스타시아가 있는데, 그녀가 과연 넘어올까요?”

     “설득은 그녀의 안에 있는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으로 할 겁니다. 하이레딘 장군을 죽인 사람은 따로 있지만, 하이레딘 장군이 죽는 상황으로 몰고 간 건 그녀의 아버지-세이레네 백작이니까요.”

     “으음…. 인과관계가 별로 안 맞는 것 같은데.”

     “객관적으로 보면 인과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백작 영애의 주관에 따르면 만악의 근원은 사랑하는 남자와 국가가 다르다고 떨어지게 만든 아버지였으니까요.”

     “…….”

     아스타시아가 조금은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훑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뇨, 음, 그게, 뭐라고 해야 할까.”

     아스타시아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제가 없었다면, 제 눈치를 안 봤다면 그레이는 어디까지 하려고 했을까 싶어서요.”

     정말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흠.”

     “만일, 이건 정말 만일의 이야기인데요. 저와 13살에 만나지 않고, 제가 아카데미로 유학을 오지 않고 20살에 그레이와 만났다면 그레이는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일단, 하나는 못을 박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스타시아를 10살 때, 제국방향에서 날아오는 제국 신문을 통해 그 존재를 알았습니다.”

     “정말요?”

     “예.”

     

     그런 걸 찾으려고 자주 협곡 관문으로 향했고, 기어이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아직까지 가지고 있죠. 그걸 제 가보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공개한 적 없는 비밀입니다. 아스타시아에게만 알려주는 거죠.”

     “흐음. 그래서요?”

     “아스타시아라는 사람에게 첫 눈에 반했기에, 아스타시아라는 여인을 만나기 전까지 ‘이전에 누군가와 사귀었다’라는 추문을 만들 생각이 없었죠.”

     “…….”

     “아스타시아가 듣고 싶은 건 ‘아스타시아라는 존재를 몰랐을 때의 그레이 지브롤터’인가보군요?”

     “그렇죠…?”

     “흐음.”

     

     어떻게 한다.

     “아마,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여인의 마음조차 희롱하여 이용하는 인간이었을테니.”

     “…….”

     “예.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을 겁니다. 그와 저는 단 한 부분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니.”

     나는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과의 성향이 99.9% 일치한다고 봐야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으음, 맞춰볼까요?”

     아스타시아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가족?”

     

     단 한 마디로, 나를 절로 웃게 만들었다.

     “아스타시아. 점수, 몇 점을 원하십니까?”

     “네?”

     “이번 답은, 당신이 원하는만큼 점수를 가져가면 되거든요.”

     “그러면, 점수 대신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뭘요?”

     “우리, 지금 어디 가는지!”

     “도착했습니다.”

     이미 도착은 했다.

     단지 시간이 문제였을뿐.

     “아스타시아, 이쪽으로 와보시겠습니까?”

     나는 아스타시아를 창쪽으로 인도했고, 아스타시아는 내 옆으로 달라붙어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와.”

     “이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황금빛 노을이 지는 바다가 창 밖에 보였다.

     그 광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아스타시아가 내가 아닌 풍경을 한참이나 보고 넋을 잃을 정도였다.

     “황금이 아무리 세상에 넘쳐난다고 한들, 이보다 더 아름다운 황금은 없을 겁니다.”

     “…정말이지, 이런 건 언제 알았던 거예요?”

     “글쎄요.”

     

     회귀 전, 공주와 신혼여행을 왔던 곳이 이곳이니까.

     “당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왕국 전체의 여행기를 찾아봤답니다, 공주님.”

     “흐음….”

     “이건, 몇 점 정도입니까?”

     “어쩌죠. 점수로 표현하기에는…너무나도 안타까운 광경이에요.”

     아스타시아가 내 손을 꽉 움켜쥐며,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을텐데, 해는 저물어가고 있잖아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메이드복 버전이 나왔습니다

    서비스 일러스트는 일러스트 재단에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