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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8

   본명, 바이오렌 제블람.

     

   크라슈와 같은 올해 16세이자 라헬른 아카데미 소속, 특수학과 수석인이.

   원래는 거한의 남자 모습으로 들어왔으나 크라슈를 통해 제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된 이.

     

   그녀가 살아온 삶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녀가 4살쯤 되던 해.

   어머니였던 결계사가 떠나갔다.

     

   떠나갈 때 그녀에게 한마디도 남기지 않은 대신.

   결계사는 자신이 수필로 남겨 놓은 결계 관련 책 한 권만을 남겨 놓았다.

     

   바이오렌은 그 책을 전부 외울 정도로 매일같이 읽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그리움이었을지도 몰랐다.

     

   적어도 4살까지 자라나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와 함께 지냈었으니까.

     

   바이오렌은 어머니가 떠난 이유에 관해 잘 몰랐다.

   타고난 성격이 의젓해서인지 처음 몇 년은 어머니가 어련히 알아서 돌아오겠거니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고, 바이오렌은 결국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라면 알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마황은 꾸준하게 바이오렌을 찾아와 그녀와 대화하고, 결계술의 진도를 살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에 관해 물었고, 아버지는 별다른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예전과 같이 그저, 질문을 하고 결계술의 진척을 살핀 뒤 떠나갔다.

     

   그리고 10살이 되던 해.

   더 이상 아버지 또한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바이오렌은 혼자 남았다.

     

   일단은 마황의 자식인 만큼 부족한 거 없는 삶을 산 그녀지만.

   그녀는 평생토록 제블람 왕궁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더불어 그런 그녀의 삶을 보조하는 이들도 대부분이 마법으로 만들어진 골렘이었다.

     

   「바이오렌 님, 식사 시간입니다.」

   「너희는 그런 말밖에 못 하는 거야?」

   「입력되지 않은 물음에 답할 수 없습니다. 저는 가정용 골렘 M-28, 입력된 행동을 반복합니다.」

     

   골렘은 입력해 놓은 대답을 반복적으로 할 뿐.

   그녀가 원하는 대답은 늘 해주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악!」

     

   시간이 흐르며 세계 침식의 힘은 점차 그녀를 좀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황을 찾아갔으나 마황은 그런 그녀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 이렇게 될 수도 있었나.」

     

   때로는 핍박보다 무관심이 더 괴로울 때도 있는 법이었다.

     

   마치, 실험해볼 것은 다 해본 실험 재료를 보듯.

   그는 몇 가지 실험을 위한 조언을 던져볼지언정 바이오렌을 좀먹어 가는 세계 침식의 해결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죽음마저도 실험의 결과물이라는 듯.

   그는 바이오렌을 관찰할 뿐이었다.

     

   바이오렌의 성격은 조금씩 더 괴팍해져 갔다.

   사소한 것들에 날이 섰고, 경계심이 서리기 시작했다.

     

   세계 침식이 자신을 좀먹어 죽는다는 상상이 잇따랐다.

   그렇기에 그녀는 개인적으로 결계 연구에 열을 올려야 했다.

     

   어머니가 두고 간 결계 관련 책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왕궁을 찾아온 마법사들을 발견했다.

     

   아버지인 마황에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마법사들이었다.

   바이오렌은 타고난 결계술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고, 그들의 뒤를 밟았다.

     

   「그거 들었어? 마황님께 자식이 있다는 거.」

   「저번에 마황님께서 발표한 논문 이야기냐. 지겹다. 지겨워.」

   「아니, 아니, 진짜라니까. 마황님께 자식이 있다고.」

     

   자식이라는 말을 듣고, 바이오렌은 멈칫하였다.

   마황의 자식이라 하면 자신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듣자 하니 세계 침식자를 직접 납치한 뒤에 아이를 배게 했다더군.」

   「마황님이? ……아니, 마황님이니까 정말 그럴 수도.」

   「정말이라니까. 논문에서도 봤잖냐. 그건 도저히 실험해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라고.」

     

   납치?

   바이오렌은 눈을 깜빡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이야기였으니 당연했다.

     

   「마황님이 하시려는 일 무엇인지 알지.」

   「야, 그거 함부로 떠벌리고 다니면 죽어.」

   「여긴 우리밖에 없잖아. 어쨌든 마법 종족 창조를 위해 세계 침식자를 납치해 연구 자료로 쓴 거야. 아이는 그 과정에서 나온 연구 자료 중 하나고.」

     

   어린 나이의 바이오렌이지만.

   그녀는 교육 골렘들을 통해 영재 교육을 마쳤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녀는 무려 마황의 딸.

   당연히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두뇌 발달이 빨랐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전부 저주로 작용하고 있었다.

   바이오렌은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멍청했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이야기였다.

     

   바이오렌의 몸이 천천히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태어난 이유는.’

     

   그동안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이던 차갑던 태도.

   그것들이 전부 이제야 이해 가기 시작했다.

     

   마황은 정말로 자신을 실험체로서 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실험체를 태어나게 할 모체.’

     

   바이오렌은 이제 결계사의 얼굴도 흐릿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일까, 기억은 바이오렌의 불안정한 심리의 영향을 받아 왜곡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 자신을 슬프게 보았고, 딱히 아끼지도 않았다는 사실로 말이다.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늪이 바이오렌의 다리를 휘어 감아 천천히 아래로 끌어 내리기 시작했다.

     

   무엇이 현실인지는 바이오렌도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녀는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머니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게 되니까.

     

   바이오렌의 눈동자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저,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자 부정했을 뿐이었다.

     

   자신은 실험체.

   그것도 이제는 가치를 다해버린 실험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납치당해 자신을 낳은 어머니는.

   결국 증오의 덩어리인 자신과 아버지를 두고 도망쳤다.

     

   바이오렌은 이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었다.

     

   바이오렌은 어느샌가 마황의 마법 연구실에 와있었다.

   오늘도 늘 그렇듯 그는 마법 종족 창조를 위해 연구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이오렌의 양손에 주먹이 꽈악 쥐어졌다.

     

   어머니를 향한 원망 대신 그녀는 마황을 향해 깊디깊은 원한을 쌓았다.

   하지만 복수하겠다는 일념을 다짐하지는 않았다.

     

   「커흑, 크흑.」

     

   그녀는 당장 자기 몸을 갉아 먹는 세계 침식으로 인해 시시각각 목숨의 위협을 받는 와중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생존이 곧 목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죽음이 늘 조여오고 있었기에 허망함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살기 위해서 결계술에 매달려야 했던 만큼.

   그녀는 모든 걸 내려놓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제블람 왕궁을 이리저리 파헤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마황의 눈을 피해 그의 마법 실험실에 들어섰다.

     

   거기서 그녀는 마황이 절개해 놓은 몇 가지 기억을 엿보았다.

   그 기억 중에는 마황이 왜 마법 종족 창조에 집착하는지도 있었다.

     

   ‘……이딴 게 고작 내 존재 이유란 거야?’

     

   자신은 이 마법 종족을 창조하기 위해 연구된 결과물 중 하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바이오렌은 숨이 턱 하니 막힌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지독한 고독감과 괴로움이 몸 안쪽부터 피어올랐다.

   전신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토악질이 올라왔다.

   떨리는 몸이 금방이라도 탈진 상태에 빠질 것 같았다.

     

   ‘……나가고 싶어.’

     

   바이오렌은 더 이상 왕궁에 남아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곳에 있는다면 자신은 필히 미쳐 버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바이오렌은 몰래 왕궁을 빠져나왔다.

   마황은 쫓아오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녀에게 관심을 뗀 지 오래기도 했고.

   바이오렌을 잡을 이유는 마황에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나오고서야 바이오렌은 깨달았다.

   자신이 만약 나가려고 마음먹었다면 언제든 나갈 수 있었다는 걸 말이다.

     

   그녀는 허탈한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 자신이 구태여 계속 제블람 왕궁에 남아 있었던 이유를 떠올렸다.

     

   언젠가 어머니가 다시금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 막연한 기대감으로 바이오렌은 지금껏 왕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구나.’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머니는 이곳으로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증오스럽기 그지없는 이곳에 돌아올 이유 따위 없었으니까.

     

   어머니는 나를 버렸다.

   오래된 옛 추억은 이제 언제든 떠나고 싶은 마음만을 지닌 어머니의 얼굴을 대신 비치었다.

     

   ‘나는 더 이상 여기로 돌아오지 않아도 돼.’

     

   이곳은 그녀가 기억하고 있던 자기 집이 아니다.

   집이란 돌아왔을 때 환영해 주는 이가 있는 곳이니까.

     

   이곳에 자신이 있을 자리는 없다.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러니 그녀는 신분을 숨긴 채 라헬른 아카데미의 특수학과 시험을 치르고자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이오렌 제블람이라는 이름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대로 평민의 이름을 쓰자니.

   그것도 섣부른 판단이었다.

     

   자신은 평민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만큼 금방 들통 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는 머리를 썼다.

   어차피 이 세상에 그녀의 신분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는 제블람 왕궁을 나오면서 훔쳐 온 마도구 몇 가지를 팔아 자금을 번 뒤.

   이제는 이름밖에 없는 세드니 가문의 이름을 구매했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

   바이오렌 세드니.

     

   그녀는 그 이름과 함께 라헬른 아카데미 특수학과 시험을 치렀다.

     

   이미 결계사로서 반열에 오른 그녀다.

   라헬른 아카데미 입학시험은 무척이나 간단하기 그지없었고, 그녀는 성공적으로 수석에 도달했다.

     

   가문을 사느라 돈을 써 한 푼도 없는 그녀에게 있어 장학금 면제에 추가 지원이 달리는 수석은 놓칠 수 없었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그녀는 그렇게 혼자 살아왔다.

     

   인간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세계 침식자라는 절반의 핏줄.

   세계 침식자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절반의 핏줄.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이.

   그저, 혼자 묵묵히.

   자기 삶의 가치는 그저, 실험체로 태어난 것이었다 한들.

   세계 침식의 힘이 자신을 갉아 먹는 걸 결계로 견뎌야만 한들.

   그녀는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한 소년과 마주했다.

     

   크라슈 발하임.

     

   바이오렌에게 있어 저주 같았던 세계 침식의 해결 방법을 알려준 이이자.

   이제는 여러 일들로 엮여가고 있는 이.

     

   크라슈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자신과 같이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루는 그이지만 그의 곁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도 도망치고, 아버지도 무관심에 골렘에게 둘러싸여 살았던 자신과 달리.

   그의 곁에는 수많은 이들이 어우러져 함께 지내고 있었다.

     

   크라슈는 모르겠지만, 바이오렌에게 있어 그런 크라슈와 엮인 관계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에게 있어 삶의 목표는 오로지 자기 몸을 갉아 먹는 세계 침식을 해결해 살아남는 것뿐.

     

   그러니 그녀는 늘 막연하게 생각했다.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살아남은 뒤에 자신은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자신은 기껏해야 이미 버려진 실험체인데.

     

   하지만 크라슈는 바이오렌이 거래로 세계 침식자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결계를 만들던 날.

   그녀에게 말하였다.

     

   「바이오렌, 어머니를 찾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결계를 완성한 뒤에 한 번 더 나를 찾아와라. 단서를 줄 테니까.」

     

   크라슈로서는 결계사의 시체를 발견한 날 보았던 바이오렌의 얼굴을 알고 있다.

     

   허무함과 허망함.

   그날을 기점으로 바이오렌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완전히 단절했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그녀에게 삶의 목적이었던 생존 대신 결계사라는 목적을 부여했다.

     

   바이오렌이 은연중에 품고 있던 막연한 생각.

   절대 돌아오지 않을 어머니지만, 그럼에도 찾아가고 싶었던 그 마음.

     

   내면 깊숙한 곳에 넣어둔 그것을 크라슈가 건드려 꺼내 든 것이었다.

     

   눈치 빠른 그다운 처사였다.

     

   설령 세계 침식에서 살아남는다 한들, 삶의 목적 따위 아무것도 없던 바이오렌에게 있어 또다시 살아갈 목적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으니까.

     

   바이오렌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결계를 완성 시키고, 크라슈의 조언대로 살아남은 뒤에도 바이오렌은 크라슈를 바로 찾아가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유일한 목적이 만들어진 만큼.

   그것을 섣부르게 끝내 봤자 또다시 삶의 목적을 잃어버릴 뿐이었다.

     

   그러니 오늘까지 그녀는 새로운 목표를 마음속에 담아둔 채 살아왔다.

     

   “여기까지가 내가 살아온 삶이야.”

     

   바이오렌은 자기 삶에 관한 설명을 끝마쳤다.

     

   입 밖으로 내뱉기 달가운 이야기가 아니었을 텐데도.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 얼굴은 분명 이미 모든 게 익숙해져 버린 이의 얼굴이었다.

     

   바이오렌은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크라슈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넌 말이야. 예전부터 생각하는데 은근히 이런 이야기에 약한 거 같더라.”

     

   바이오렌도 나름 크라슈와 꽤 어울려 다녔다.

   그래서일까, 그가 이런 이야기에 꽤 약한 면이 있단 걸 바이오렌은 꿰뚫어 보았다.

     

   “걱정하지 마. 네 덕분에 나는 꽤 평온한 삶을 살 수 있게 됐잖냐. 당장 결계로 만든 몸뚱이도 쓸 필요가 없고.”

     

   크라슈가 결계의 힌트를 준 그날 이후.

   바이오렌은 세계 침식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결계 육체를 쓰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만 감안해도 바이오렌에게 있어서는 인생을 바꿀 도움이었다.

     

   “내일은 또 어떻게 버티느냐고 생각 안 해도 된 게 얼마나 큰 줄 아냐.”

     

   바이오렌은 그리 말하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니 크라슈, 너한테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해.”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그녀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익시온, 그 세계 침식자 집단이 나를 노려 뭘 하려는지는 몰라도 너도 노려지는 건 마찬가지잖아.”

     

   바이오렌에게 세계 침식자의 눈을 피할 결계를 만들어 달라 할 때부터.

   바이오렌은 크라슈가 쫓기고 있단 걸 알고 있었다.

     

   거인의 숲으로 크라슈가 납치당한 당시.

   제국은 크라슈가 4황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고 했으나.

   실상은 크라슈를 노린 게 분명하다고 바이오렌은 꿰뚫어 봤을 정도였다.

     

   “뭐든 너부터 우선해. 괜히 나 때문에 휘둘리지 말고. 어머니의 부탁에 얽매이지 마. 그 사람은 이미 나를 버리고 간 사람이니까.”

     

   누가 누굴 지킬 상황이 아니지 않냐고, 바이오렌은 그리 말하였다.

     

   “나보단 네가 더 필요한 세계잖냐.”

     

   마치, 자기 삶의 가치는 이미 오래전에 다해버렸으니 언제든 죽어도 문제는 없다는 듯이.

   바이오렌은 그렇게 웃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크라슈는 깨달았다.

   왜 회귀 전 그 날, 그녀가 자기 몸을 던져 최흉의 앞에 마지막 결계술을 펼치고 죽었는지.

     

   「좆까. 내가 세계 침식자든지 말든지. 아무리 손가락질해도 니 새끼들은 나한테 평생 빚진 채로 살아가는 거야. 반은 인간이고, 반은 세계 침식자인 나 같은 녀석 덕에 말이야.」

     

   그건 어쩌면 크라슈와 비슷했다.

     

   반푼이였던 삶이 의미 없이 느껴져 허송세월하던 도중.

   블랙 후드를 통해 저주를 훔치게 된 걸로 세상에 이바지한다는 저주에 걸린 것처럼.

     

   바이오렌은 살아남은 이후, 실험체로서도 가치 없던 자기 삶이 결계를 통해 창공의 세대를 지킬 수 있었기에 그걸 목표로 살아갈 수 있었다.

     

   ‘참, 똑같은 놈들끼리 모여서.’

     

   크라슈는 어느샌가 바이오렌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바이오렌은 또 머리털이 잡힐까 봐 흠칫한 모양이지만.

   크라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 녀석은 정말로 지금 웃고 있는가.

   아쉽게도 크라슈의 눈에는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이건, 행복과는 거리가 먼 그저 조건 반사적인 웃음에 지나지 않았다.

     

   “야, 바이오렌.”

   “어응?”

     

   설마 크라슈가 머리를 쓰다듬을 줄 몰랐던 바이오렌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바이오렌에게 크라슈는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살면서 가장 통쾌했던 게 뭔지 아냐?”

   “……뭔데?”

     

   크라슈는 씨익하니 한껏 웃음을 지었다.

     

   “거하게 한 방 먹일 때.”

   “먹이다니 뭘.”

     

   크라슈는 그 말과 함께 즉시 몸을 돌려 건물을 나왔다.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이었다.

     

   “뭐, 잠깐, 크라슈!”

     

   당황한 바이오렌이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곧 바이오렌의 눈에 크라슈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을 한복판에 선 크라슈는 우뚝 멈춰 선 채 숨을 들이켜고 있었다.

     

   대체 그가 뭘 할지 몰라 바이오렌이 더더욱 당황한 그 순간.

     

   “테라시우스 제블람!”

     

   마황의 본명을 크라슈가 목청이 터지라 내뱉었다.

   바이오렌의 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말릴 틈도 없이 내뱉은 이름.

   그러자 멀리서 하늘이나 보고 있던 마황이 이쪽을 보았다.

     

   이 상황에 크라슈가 직접 이름을 언급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자 크라슈는 우뢰성을 뽑아 들었다.

     

   “한판 붙자. 개새끼야.”

     

   그가 천상사강을 향해 도전장을 내민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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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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