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뒤.
겨우 버멜을 만날 수 있었던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의문을 가져야만 했다.
안 그래도 흐물흐물했던 면상이 아예 반쪽이 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하룻밤 사이에 애인이라도 만들었냐?”
처음에는 정기라도 빨린 줄 알았다. 부인한테 밤새 짜인 뒤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하는 남편의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버멜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부인했다.
“헛소리.”
하긴, 히든피스 모으느라 뭐 빠지게 구르던 녀석이 여자를 사귈 리 없지.
“그런데 왜 그리 안색이 안 좋아?”
내 물음에 버멜은 잠시 침묵했다.
혹시 이 녀석도 정령의 샘에 들어갔다 나온 건가?
생각해 보니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버멜과 마지막으로 만난 지 40시간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목욕재계를 하고 왔다 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설마.
“에이.”
아니, 아니겠지. 조금 전 생각은 너무 김칫국이다. 얘랑 나랑 얼마나 깊은 사이라고.
마왕을 잡으면 그걸로 끝나는 계약 관계다. 내가 녀석에게 그렇듯이, 이 녀석도 나한테 필요 이상의 연민을 품을 이유는 없었다.
정령의 샘에서의 일은 내 일이었으니, 버멜도 딱히 참견할 생각은 안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시한부인 것을 알더라도 그전에 마왕을 잡을 계획을 궁리할 녀석이니까.
그런 생각을 한 나는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버멜을 독촉했다.
“무슨 일 있었냐니까?”
“…너 오늘 아침에, 소식 못 들었어?”
“뭐.”
“하아…. 진짜 모르는 모양이네.”
버멜이 탄식하며 뉴스 기사를 보여주었다.
[검찰, 절멸급 마수 ‘아카샤’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 ‘도주 우려 있어….’]
이건 또 뭐야.
아카샤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건 안다. 그래도 비구속 수사라서 조사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는데….
이건 아예 감방에 묶어놓겠다는 소리 아닌가?
법은 잘 모르지만 카우렐리아 정부에서 내 쌍둥이를 어떻게 대하려는 건지는 가늠이 된다.
기사 내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카우렐리아 연구조사기관 설문조사]
[Q. 최근 투항한 마왕군 간부, 상천(上天) 에테르의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당장 구속에 찬성한다 : 44%]
[2. 구속에 절대 반대한다 : 36%]
[3. 마왕을 쓰러뜨린 후 구속해야 한다 : 13%]
[4. 모름&무응답 : 6%]
지금 조져야 한다고 말하는 깐프놈들 44퍼센트에, 토사구팽하려는 인간 이하 새끼들이 13퍼센트.
이 둘이서 과반이기 때문에 국민 여론은 내게 불리한 쪽이다.
“에테르, 다음은 네가 될 거야.”
버멜이 경고했다.
소시민 물리학자에 불과했던 내가, 판타지 세계에서 구속 위기까지 겪고 있다니. 미칠 노릇이구나.
“수사라고는 해도 아카샤에겐 이미 실형이 내려졌어. 마수라는 건 온 세상 사람이 다 아니까.”
“시발, 나 콩밥 먹는 거냐?”
여기서 한 짓이라고는 스태프로 몇 명 실신시킨 거랑, 플레어와 원자폭탄을 만든 일이 전부인데.
나는 사람 한 명 제대로 죽여 본 적 없는 선량한 마수인데!
어시스트 넣었다는 죄목으로 구치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억울하다.
“애초에 이게 말이 되나?”
“네가 정말 투항했으면 일단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 국민 상당수는 지금도 그리 생각하고 있어.”
“나한테는 앨리스 언니가 있는데?”
나는 엘프들이 따르는 정령왕의 비호를 받고 있단 말이다.
“정치에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지 마. 일부러 억까하는 놈들도 분명히 있으니까.”
정령의 말을 그렇게나 잘 따르는 나라가, 지금 와서 제정 분리를 운운하다니.
웃기는 일이었다.
“참고로 두 달 뒤에 총선이야.”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래, 다 표 때문이었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왕이 쳐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부 분열이라니. 얘네도 한 번 터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그래도 세상은 멸망하면 안 된다. 로테, 프레이, 유피엘이나 레니냐, 아카샤나 블루베리를 위해서라도….
그렇지.
흑주를 만들 연구단을 소집하기 전에 우선 아카샤와 면회를 가져보는 게 좋을 듯하다.
**
면회 접수는 생각보다 쉬웠다.
그래도 일단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가족끼리 서로 만나게 해주더라.
“시간제한은 20분입니다. 그때까지 편히 이야기 나누십쇼.”
덜컥.
의욕이 없어 보이는 공무원 엘프가 문을 닫고 나간 뒤.
우리는 유리창 하나를 두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머리카락 색을 제외하면, ‘정말로’ 모든 게 똑같은 쌍둥이 여동생.
나와는 달리, 그녀는 며칠 사이에 초췌하게 변해 있었다.
“테르.”
“카샤.”
“테르야….”
“카샤야….”
목소리가 많이 잠겼네.
절멸급 마수라고는 해도 힘들었겠지. 검찰 조사는 기본 몇 시간은 끌고 가니까.
아카샤는 억울하다는 듯 책상을 마구 두들겨댔다.
“테르야, 나 여기서 좀 꺼내 줘.”
“미안하다. 지금 내 능력이 부족해서.”
“하아….”
“하아….”
아카샤는 당연히 연구 인력으로 넣어야 한다. 그녀의 고유마도인 백야(白夜)가 있어야만 흑주도 최대 출력을 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언니가 생각을 고쳐먹은 건 환영이야.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투항했으면 안 됐어. 조금 더 괜찮고 유리한 방법을 찾았어야지.”
“눈앞에서 로테가 죽고 있었잖아. 내가 그때 여유가 어디 있었겠어?”
“없었어도 찾았어야지. 이 빡대가리 언니야.”
뭐?
아무리 그래도 자기 분신과도 같은 사람한테 빡대가리라니.
“내가 빡대가리면 너도 빡대가리야.”
“말 다했어?”
“아닌데? 더 할 건데?”
아카샤와 나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마주 보는 공간 사이로 찌릿, 하며 섬전이 튀었다.
그렇게 우리는 말싸움으로 5분가량을 날려 먹었다.
“됐다, 이렇게 싸워서 뭐 하냐.”
“다 좋으니까 일단 꺼내 달라니까? 여기 밥 더럽게 맛없어.”
“조금만 기다려 봐.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이걸 어떻게 한다.
문득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앨리스가 둥실둥실 떠 있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내가 눈치를 주자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신기하네요. 설마 ‘더미’가 존재했을 줄은.”
스르륵.
내 곁으로 내려온 앨리스가 아카샤를 유심히 살폈다.
“얼굴도 똑같아, 성격도 판박이에요. 그런데 머리카락 색은 완전히 정반대…. 여신님의 의도가 보여요.”
“갑자기 뭐야? 알아듣게 설명해.”
나와 아카샤의 독촉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앨리스.
곧 그녀가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두 사람은 사실 동일 인물이에요.”
“뭐?”
“뭐?”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야.
“이것 봐요. 동시에 똑같은 반응 보이는 거.”
그야 말이 안 되니까.
아카샤와는 기억이 존재하던 시절부터 함께 붙어 다녔는데, 어떻게 동일 인물이란 말인가.
“동생이 알아듣게 쉽게 설명하자면… 그래요. 여신께서 당신이라는 파일을 복사 붙여넣기 한 거예요.”
“왜?”
“음,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한 포석일까요? 아마 디버깅 작업을 하다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신 거겠죠.”
앨리스가 아카샤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당신은 사실 이쪽 세계선에 존재해선 안 되는 인물일 거예요. 여신님께서 잠깐 테스트하느라 만들어 놓으신 존재일 뿐이죠.”
폭풍과도 같은 앨리스의 발언. 아카샤는 벙찐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표정을 지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버멜은 아카샤의 존재를 전혀 몰랐었지.
“내가 아카샤고, 아카샤가 나라….”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앨리스가 말한 것이니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정령은 혼(魂)을 보고 사람을 구분한다고 하니까.
물론 이런 걸 알았다고 해도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어쨌건 아카샤는 이곳에서 꺼내야 한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데?”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데.”
우리는 똑같은 타이밍에 앨리스에게 따졌다.
방금 자신이 알려준 정보가, 아카샤를 여기서 내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느냐고.
“구속 해제를 요청해볼 만해요. 어쨌거나 이 논리대로라면 백발의 당신도 제 자매이니까요.”
생각해 보니 그렇다.
앨리스와 내가 친자매인데, 정령이나 지구와는 아무런 연이 없는 아카샤도 나와 친자매라면 그게 무슨 개족보란 말인가?
카우렐리아의 검찰도 이 점에서 의문을 느꼈기에 아카샤를 가둬 놓고 수사하는 중이다.
오히려 나와 아카샤가 같은 데이터였다는 걸 안다면, 바로 풀어줄지도.
“동생의 생각이 맞아요. 둘이 사실은 동일 인물이었다는 점을 토대로 네 정령왕의 보증을 받으세요. 그렇게만 되면 백발의 동생은 이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걸 국민이 믿을까?”
팩트가 존재하는 것과, 팩트를 믿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마력파와 혼의 검사 결과가 일치할 테니 믿을 사람은 믿을 거예요.”
“흠.”
“흠.”
적어도 아카샤에 대한 호의 여론을 형성할 수는 있겠지.
나와는 달리 비호하는 정령이 없는 아카샤는 거의 만장일치로 이렇게 붙잡힌 것이었으니.
“알았어. 일단은 얘기해 볼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며 면회를 끝내려고 하던 때였다.
“잠깐만.”
탁.
책상에 손을 짚으며 일어난 아카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서, 불안하고도 애석한 감정이 드러난다.
“거기 정령.”
“앨리스라고 불러요, 동생.”
“앨리스.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래서 만약 마왕이 죽고 세상이 안정을 되찾으면….”
아카샤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린다.
“…그때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건.”
앨리스가 말을 더듬는다.
“나보고 더미에 불과하다며. 그 디버깅 작업이 끝나면 존재 이유가 사라지겠지.”
“…….”
“여신이 나라는 존재 자체를 삭제하게 되는 건가? 아니면 어디일지도 모르는 세계로 추방당하는 건가?”
웃기지 마. 아카사갸 이를 갈며 그리 덧붙였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스산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정령은 입을 다무는 게 긍정이라고 하지. 내 말이 사실이긴 한가 보구나.”
아카샤는 입매를 비틀며 삐딱하게 앉았다.
나도, 앨리스도.
그녀의 분노에 대해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어떤 심정인지 전부 알고 있다. 또한 공감하고 있다. 그녀와 나는 거의 동일한 존재라고 하니까.
“카샤.”
“테르, 만약 여신이 나나 너를 지워버린다고 하잖아? 나는 다시 마왕의 편에 설 거야.”
“이러면 곤란해.”
“하나뿐인 친족과는 떨어지고 싶지 않아.”
설령 그것이, 다른 세계선의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아카샤는 그런 뒷말을 순간적으로 삼킨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 같아도 그렇게 말했을 테니까.
“아, 젠장.”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지구에 살던 남자로서의 자아와 이곳 아렌스에 살던 소녀로서의 자아를 겨우 합쳐냈는데.
그래서 더는 존재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변수가 생기다니.
흑주만 만들면 전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참으로 어리석었다.
– 스파게티 코드라고 부르는데. 저는 그런 거, 되게 싫어합니다.
여신은 데이터 낭비를 극도로 싫어하는 존재다.
백야(白夜)라는 본래 쓰임새를 다하면 아카샤를 삭제하려고 하겠지.
초월자인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가 아카샤를 처분하는 것은 수능 끝난 수험생들이 문제집을 버리는 것이나 진배없다.
언니.
[단순히 중복을 싫어하실 뿐이에요. 둘 사람 모두에게 손을 대실 정도로 박하시지는….]
그래, 그거다.
아무런 위안도 변명도 없이 면회실을 나가려던 나는, 면회가 종료되기 10초를 남긴 시점에서 아카샤에게 다가갔다.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에게 한 마디 해주었다.
“아카샤, 너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 마.”
“……?”
그건 또 무슨 궤변이냐는 듯, 눈썹이 슬쩍 찌푸리는 그녀.
아카샤는 나와 여신의 계약 내용을 모른다. 그러니 멀뚱거리고 있을 수밖에.
존재가 사라질까 봐 불안해하는 눈앞의 자신을 위하여, 나는 일말의 거짓 없이 아는 정보를 전달했다.
“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이 세상에 남을 거야.”
그것은 추측성 발언 따위가 아닌, 확신이 담긴 말이었다.
왜냐하면.
삭제되는 건 나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