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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9

       “당신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요.”

        

       내 말에 대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말에 담긴 뜻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신의 음성을 잠시나마 직접 들은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담긴 뜻을 어느 정도 유추하는 것은 가능하겠지.

        

       여신의 의지를 따랐다면 내가 여기 있을 수 없다는 뜻이 담겨있으니까.

        

       “…….”

        

       소피아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사실, 소피아와 내가 어마어마하게 친한 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긴 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만난 시간이 가장 짧은 편에 속했으니까. 그렇다고 마땅한 신뢰 관계를 구축할 사건도 없었고. 기껏해야 레오를 좋아하는 소피아에게, 나는 레오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준 정도일까.

        

       게다가 그런 소피아의 감정도, 지금은 본인에게 얼마나 우선순위에 놓여있는지 알 수 없다.

        

       여신을 믿는 이에게는 여신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까. 만약 여신이 직접 그런 존재를 사랑하는 것을 관두라고 하면…… 글쎄, 사람 감정이 그렇게 쉽게 끊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게 되겠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보다는 여신에 대한 믿음이 우선일 테니까.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당신이 이곳에 있도록 해준 여신님의 말보다,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어째서?”

        

       이 질문은 내가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감정에 이유를 붙이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일도 없다. 애초에 ‘감정’이지 않은가. 이성이라는 말과 완전히 대치되는 말. 논리적인 이유 같은 것을 아무리 붙여도, 그건 사실 그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가져다 붙인 말일 뿐이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내가 여기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나에게 직접 질문을 한 소피아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저를 원망하십니까?”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처음 소피아가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는 그대로 장이 베베 꼬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막상 계속 대화를 나누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뭐, 그렇다고 속이 완전히 편해졌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바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

        

       이번에는 소피아가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표정을 지운 채, 그저 시선만 멍하니 내 머리 위쪽을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잠시 바라보면서 한참 고민하던 소피아는 겨우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요.”

        

       한참을 고민한 끝에도 대답에 담긴 의미는 불분명했다.

        

       “분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해요. 이상하죠? 분명히 제가 진리로 믿고 있던 존재가 당신 때문에 사라졌는데, 막상 당신을 보고 원망하는 마음이 솟아나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소피아는 손을 들어 들여다보았다.

        

       검을 휘두를 때 신성력을 두르고, 그 신성력으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능력을 사용하려고 해도 사용할 수 없을 거다. 이 세상에서 여신의 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니까.

        

       여전히 마법이 존재했다. 그리폰 같은, 생물학적 지식에서 영 동떨어져 보이는 생물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기 앉아있다. 이상할 정도로 발전하여 특정한 부분에서는 오히려 내가 살던 세상보다 더 잘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증기기관도 그대로 있었고, 정말로 게임 속에나 등장할법한 악당들도 묶인 채 저기 앉아있었다.

        

       그 신비로운 세상에서 그저 여신의 힘만이 사라졌다.

        

       나에게는 더없이 마음이 놓이는 광경이었지만……

        

       “만약 여신님이 계셨다면, 당신이 여신님을 막지 않았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건 순수한 질문이었다. 정말로 모르기에 물어보는.

        

       “여신이 생각하기에 질서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겠죠.”

        

       “그 세상에 당신은 필요가 없었고요.”

        

       “그렇습니다.”

        

       나는 애초에 이질적인 존재. 그렇기에 한 번 쓰고 나면 다시 건져내야 할 존재였다. 그걸 못했기에 지금의 상황이 된 거고.

        

       “그렇다면 그 세상에서, 저는 여전히 저였을까요?”

        

       그렇게 말하는 소피아의 시선이, 아주 잠깐 레오를 향했다.

        

       “…….”

        

       아, 알 것 같다.

        

       여신은 질서를 사랑하는 존재. 그리고 그 사실 정도는 여신교 신도들도 알고 있다.

        

       그리고 여신이 추구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도 알고 있을 거고.

        

       그리고 그 오로지 질서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감정이라는 것 또한 불순물일지 모른다. 팬그리폰은 질서에 순응하는 척했지만 결국 죽는 순간까지 여신에 대한 반감을 버리지 못했고, 그 결과가 이 ‘질서 있지 못한’ 세상이었으니까.

        

       소피아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 또한 결국 혼란스러운 사람의 마음의 일부일 뿐이다.

        

       심지어 소피아가 레오를 좋아하는 감정은 뭔가 대단히 논리적인 이유로 생긴 것도 아니다. 내가 소피아가 아닌 이상 그 이유를 완전히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일단 그 반반한 외모가 밑바탕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사람의 외모 때문에 ‘반한다’라는 것은, 굉장히…… 이성적이지 못한 일이었다.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소피아에게 확언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여신이 만들어낸 세상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 사람의 자유의지조차 여신이 만들어낸 질서 아래에서 통제되는 사회는, 대충 상상하기만 해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

        

       소피아는 말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몇 번 반복할 뿐이었다.

        

       *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다른 이들과 말을 섞기 전에 벨부르의 군인들이 법국을 장악했다.

        

       아니지, 장악했다고 해야 할까? 애초에 비어있는 곳이었으니 싸울 일도 없었다.

        

       이벨리아 왕국 측에서 상당히 큰 반발이 있겠지만, 애초에 법국의 땅은 벨부르가 법국에게 넘긴 땅이었다. 정통성이나 명분으로 따지면 이벨리아 왕국은 벨부르보다 한참 떨어지는 위치에 있었다.

        

       게다가 여기는 그 벨부르 왕국의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가 와 있었으니까.

        

       “……미안하게 되었어요.”

        

       샤를로트는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 앨리스, 클레어, 그리고 다른 제국 사람들 모두가 벨부르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건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니까요. 여러분 모두 금방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약속드릴게요.”

        

       “이해합니다.”

        

       어차피 이런 결말이 될 거라고 생각은 했으니까.

        

       루테티아 지하를 뒤집어놓는 거야 국왕의 허락을 받은 일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나, 그리고 앨리스는 사실상 전범인 황제의 딸일 뿐이었다. 물론 그 전범 본인을 쓰러뜨리고 음모를 막아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우기도 했으니, 일단은 샤를로트의 말대로 이건 형식적인 절차일 것이다.

        

       실제로 황제나 다른 기사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구속되어있지는 않았다.

        

       “……해결해야 할 일들이…… 응, 참 많이 남았지.”

        

       앨리스는 먼 산을 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황제의 딸이고, 일단은 제국에서 유일하게 공인된 황녀였고. 뭐, 다른 황제의 아이들도 일단은 공인된 존재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굳이 황제의 자리에 올리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황제가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면, 그 자리의 공간은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다. 그 자리에 올라앉을 앨리스의 모습이 왜소하게 보일 만큼.

        

       “일단 저 그리폰도 어떻게든 해야 하고.”

        

       우리를 둘러싼 벨부르 병사들은 죄다 엄청나게 긴장한 표정으로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아까부터 내 뒤에 서서 병사들을 위협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리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대놓고 위협하듯 양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돌아갈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앨리스에게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돌아가는데?”

        

       “…….”

        

       나는 그리폰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게. 너 언제쯤 돌아갈 생각이냐.

        

       “……내일쯤?”

        

       킁.

        

       그리폰이 콧구멍으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음, 적어도 내일까지는 돌아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앨리스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폰이 제국의 상징이라는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제국과 황실의 인장 한가운데 떡하니 박혀있는 존재였으니까.

        

       “그 그리폰의 주인은 너고.”

        

       “저는 그리폰의 주인이 아닙니다.”

        

       애초에 나를 주인이라고 생각했으면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을 부침개 뒤집듯이 이리저리 뒤집지는 않았겠지.

        

       무슨 짐짝처럼 내던지지도 않았을 거고.

        

       내가 어디로 돌아가란다고 돌아갈 놈도 아닌 것 같고.

        

       “아무튼, 너를 따르고 있잖아.”

        

       앨리스는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말했다.

        

       “그리폰을 이끌고 나타난 황녀를 보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

        

       앨리스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리폰이 난입하는 것을 보고 ‘팬그리폰’이라고 중얼거리던 한 기사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피아가 나를 불렀을 때 ‘팬그리폰’이라고 불렀던 것도.

        

       …….

        

       에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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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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